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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33화 (133/236)

〈 133화 〉 [용사] 잠든 공주

“정령사?”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 같은 정령사인 유니였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세리아가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정령사… 전대 용사 파티의 정령사라구요?”

아린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제렌 씨도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을 하며 우리 얘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리아는 할머니께 들은 얘기를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에르티나 공주. 그녀는 약 3~400년 전에 나타났던 마왕을 물리친 용사 파티의 일원이었다.

엘프들의 공주인 그녀가 직접 참전한 이유는 할머니도 몰랐지만, 왕족이 참여한 만큼 엘프들도 이때는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금도 도와주고는 있지만, 솔직히 딱히 체감은 안 된다.

아무튼 용사 파티는 마왕을 무찌르는데 성공했지만, 그 뒤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랬는데, 그냥 기록이 안 되었을 뿐이지 에르티나 공주는 돌아왔던 거지. 고향으로.”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 때문에 에르티나 공주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대신 스스로 봉인되는 길을 택했다.

“스스로 봉인?”

“대체 무슨 문제였기에….”

그 점을 모른다.

공주는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자신을 봉인하겠다고만 통보하고 어느 날 말없이 사라졌다.

“으음… 어디에 봉인됐는지는 그럼 모르는 거네요.”

“그렇지. 그래도 숲 어딘가래.”

적어도 이 숲 밖에서 목격담이 들린 적은 없고, 마지막으로 그녀와 마주했다는 엘프의 말에 따르면 에르티나는 숲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고 한다.

대충 알 수 있는 사실은 다 알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설마 저 넓은 숲을 다 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예상 밖의 사실에 놀랐지만, 결국 새로운 문제 앞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 넓은 숲에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그냥은… 못 들어가죠?”

“뭐, 엘프라면 몰라도….”

엘프들의 영토였기 때문에 숲에 들어가려면 허락을 맡아야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정해진 곳 이외로는 갈 수 없다.

“몰래 들어갈 수는 있어. 워낙 넓어서 다 관리가 안 되거든.”

세리아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그다지 내키는 선택이 아니었다.

정 안 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러나 들어가는 거야 양심의 가책을 무시하고 몰래 들어간다고 쳐도, 어떻게 찾아야하는가?

“자칫하면 못 빠져나올지도 모르죠….”

아린이 고민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숲이 워낙 넓은데다가, 잠든 공주가 사람들 다니는 길목에 스스로를 봉인하진 않았을 테니 분명 외진 곳에 있을 것이다.

그런 곳 들어갔다가는 길 잃기 딱 좋다.

“아냐, 내가 길은 찾을 수 있어.”

유니가 자신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령으로 흔적을 남기면 되겠구나.

“그럼 이건 대충 해결이 됐네. 그럼 남은 건 어떻게 찾냐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고민해도 별 수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어지간하면 숲 속 어딘가에서 발견되었을 텐데, 아무도 모른다는 건 정말 꽁꽁 숨겨져 있다는 뜻 아닌가.

우리가 평범하게 시도해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 문제 때문에 돌아오면서도 계속 고민했다.

유니는 내 옆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걷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왜?”

“응…?”

그녀가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며 갸웃한다.

“유니? 왜 그래?”

“…아냐.”

그녀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보더니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유니의 이상한 행동이 마음에 좀 걸렸지만, 그녀는 이에 대해 더 언급하지 않았고 나도 숙소에 돌아올 때쯤에는 이 사실을 잊어버렸다.

잠시 잊었던 그 기억이 다시 되살아난 것은 우리 모두가 숙소에 돌아온 뒤의 일이었다.

우리는 일단 내일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해산했는데, 유니가 나를 따로 불렀다.

“이 시간에 어딜 가자고?”

“가서 알려줄게.”

해도 졌는데 이 시간에 대체 어딜 가자는 건지.

왠지 요즘 유니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뭐랄까, 내가 아는 유니가 아닌 것 같은….

“가자, 에릭.”

“자, 잠깐만. 금방 오는 거 맞지?”

그녀는 무턱대고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어디론가 이동했다.

유니가 향하는 곳은 도시의 외곽이었다. 처음부터 성을 지어 만든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엘프 도시 라덴은 도시의 방벽이 다양한 소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곳은 돌이고, 나무, 심지어는 흙으로 된 곳도 있다.

유니는 흙으로 된 벽으로 나를 데려갔다.

“…설마 도시 밖으로 나갈 생각은 아니지?”

“맞아.”

유니는 그 말과 함께 정령으로 흙벽에 구멍을 내버렸다.

“자, 잠깐…! 대체 어딜 가려는 거야! 가려면 다 같이….”

그 말에 유니는 나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에릭… 너를 위해서야.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그 말에는 왠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담겨있는 것 같아 나는 잠자코 그녀를 따라갔다.

혹시나 싶었지만 정말 유니는 숲 안으로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유, 유니… 이러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그럴 일 없어.”

슬쩍 뒤를 바라보니 정령들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설마 잠든 공주를 찾아가는 걸까.

“…어딨는지 아는 거야?”

“아마도. 이게… 알려주고 있어.”

유니가 그렇게 말하며 꺼낸 것은 자신의 목걸이였다.

시련의 동굴에서 얻은 목걸이.

이 목걸이는 전대 정령사, 즉 에르티나 공주의 물건이기도 했다.

그 목걸이는 은은한 빛을 발하며 특정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 그 방향에 있다는 거야?”

“응. 아마 그럴 거야. 느낌이 그래. 말로 하기엔 어렵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그렇다면 다 같이 와도 될 텐데… 왜 굳이 나만 데려가는 거지?

세리아는? 아린은? 제렌… 씨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유니의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있어 도무지 묻지를 못하겠다.

우리는 말없이 새벽의 숲을 나아갔다.

고요하고, 어둡고, 차가웠다.

“이거 봐, 에릭. 방향이 계속 돌고 있어.”

“그게 무슨 뜻이야?”

앞을 가리키던 목걸이는 조금만 나아가면 곧장 뒤를 가리켰고, 옆으로 이동하면 그 반대편을 가리켰다.

“…여기라는 뜻 같은데.”

“아무 것도 없잖아.”

그 중간쯤 되는 지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나무가 한 그루 서있을 뿐이다.

“설마 이 나무가?”

혹시나 싶어 나무를 통통 두드려봤지만 그냥 평범한 나무였다.

대체 뭐지?

유니도 고개를 갸웃하며 한 손에 목걸이를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나무의 결을 쓰다듬었다.

화악!

그러자 갑자기 나뭇결 사이사이에서 빛이 쏟아지더니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렸다.

“어… 어?”

여전히 숲속이기는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주변에 그렇게나 많던 나무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오로지 이름 모를 풀들로만 바닥이 뒤덮혀 있었다.

분명 새벽인데 빛을 내는 수많은 구체들이 주변을 떠다니고 있어 아침처럼 밝았고 그 공간 중앙에 마치 나무관을 닮은 구조물이 놓여있었다.

“…설마 저 안에?”

“그, 그런 것 같은데?”

우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저거 다 정령이야, 에릭.”

“저 빛 말이야?”

“응. 빛의 정령.”

자세히 보니 확실히 사람 형태가 보일 듯 말 듯 했다.

눈 부셔서 자세히 보지는 못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고 알았는데, 그 안에는 사람이 한 명 누워있었다.

금색 머리를 한 유니 또래의 여자다.

귀가 긴 것을 보니 엘프고, 그녀 위에 가장 많은 빛의 정령들이 떠다니는 것을 볼 때 아무래도 우리의 생각이 맞는 듯 했다.

“…이 사람이….”

“에르티나 공주구나.”

공주 치고는 소박한 옷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달려있지 않은 흰색 드레스.

그러나 이 공간과 무척 어울려 잠든 공주라기보다는 숲의 공주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들은 대로라면 몇 백 년 전 사람인데, 흔들어 깨우면 일어날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어, 어쩌지?”

유니도 이 이후는 생각을 안 했는지 살짝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유니는 이 사실을 세리아나 아린에게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녀들에게 이 사실을 감추고 우리끼리 해결할 수가 있을까?

솔직히 불가능해 보인다.

“…역시 세리아나 아린을 불러서….”

“안 돼.”

“왜? 이걸 굳이 감출 이유가….”

“에릭.”

유니는 내 말을 끊고는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에릭은…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진실이라니?”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일까.

진실이라니.

“에릭도 알고 있지 않아? 세리아랑 아린이….”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세리아와 아린.

그녀들은….

“자, 잠깐만. 지, 지금 말고… 조금 이따가 듣자.”

“…에릭이 원한다면.”

듣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미뤄버렸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하시군요.”

엉뚱한 곳에서 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앗.”

그 목소리는 우리 사이, 그러니까 나무관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잠들어있던 금발의 엘프 에르티나가 눈을 떴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는데, 몇 백 년 만에 일어난 사람이라기보다는 막 잠에서 깬 사람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죠?”

“사, 삼사백년이라고… 들었어요.”

“마왕은 나타났나요? 하긴, 그러니 찾아왔겠죠.”

에르티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고는 나와 유니를 번갈아 바라봤다.

“당신이 용사, 그리고 그 쪽이 정령사겠군요. 맞나요?”

“네….”

“맞아요.”

조금 얼떨떨한 나와는 달리 유니는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목걸이를 차고 계시는 군요. 다른 사람한테 뺏기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앗… 드, 드릴까요?”

유니의 엉뚱한 질문에 에르티나가 쿡 웃었다.

“괜찮아요. 그건 이제 당신 거니까요.”

웃는 걸 보니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이제 슬슬 물어봐도 되는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군요. 뭐가 제일 궁금하시죠?”

“그….”

뭐를 물어보지?

정체… 는 이미 안다. 전대 용사 파티의 정령사, 에르티나 공주.

잠시 고민해보니 나는 질문거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부터 그녀를 찾게 된 이유 자체가 세라의 부탁이 아니었던가.

세라의 부탁이라, 그녀와 아는 사이겠지 역시?

“…세라와 루엘라에 대해 아시나요?”

“책에서 봤나요?”

책? 갑자기 웬 책?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에르티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역시… 예정대로 되었군요.”

아무래도 이 사람은, 사천왕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마왕은?

혹시 마왕에 대해서도 알까?

“그, 그럼 혹시… 마왕에 대해서도 아시나요?”

“마왕….”

그 말을 들은 에르티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마왕… 마왕님… 우리의, 큭, 아냐… 흐윽….”

“괘, 괜찮으세요?”

괴로운 얼굴로 말을 한 마디씩 뱉던 그녀는 갑자기 자기 머리를 잡으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냐… 당신 같은 건… 내 주인이… 흑, 으흑… 으, 으흐아윽… 아아악!”

쿠웅!

그녀를 중심으로 무형의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나와 유니는 정말 방심한 상태에서 얻어맏고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흑….”

“케흑… 에릭, 괜찮아?”

유니는 본인도 넘어져 다쳤으면서 내 걱정을 먼저 했다.

“괘, 괜찮아. 유니는?”

“나, 나도… 그런데….”

유니의 시선이 에르티나에게 향했다.

에르티나는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 아으아악! 아악!”

대, 대체 무슨 상황이지.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대로 있다가는 더 큰 공격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일단 나가자, 유니!”

“그, 그래야겠지?”

나는 재빨리 일어나 유니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우리가 도망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퍼져나왔다.

“크윽!”

재빨리 유니를 감싸 그녀의 피해는 최소화했지만, 대신 내 등이 망치로 맞은 듯 얼얼했다.

“아… 아으… 아…. 마왕… 님을 위해….”

그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확실하게 들었다.

마왕님이라는 말을.

“…에릭, 설마 저 사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저 여자는… 마왕의 편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일어섰다.

전대 정령사가 왜 마왕의 편에 섰는가? 모르겠다.

모습을 보니 그녀의 의지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직접 듣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나는… 마왕님의 바람, 아르티나… 읏, 아냐… 나는… 나는… 흐윽…!”

다시 한 번 공격이 들어온다!

나는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렇지만, 역부족이었다.

“크아윽!”

“에릭!”

꼴사납게 바닥을 구른 나는 재빨리 다시 일어섰다.

공격해야하나? 칼로 벨까?

칼을 쥔 손에 힘을 꾹 주고 그녀를 벨 의지를 굳힌 순간, 뜻밖의 원군이 찾아왔다.

“에릭!”

공간의 일부가 일그러지더니 세리아와 유니, 그리고 제렌 씨가 들어왔다.

“어, 어떻게 여기를…?”

유니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 해답은, 다음 순간에 바로 풀렸다.

들어온 이들은 그들 셋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아… 어쩐지 못 찾겠더라니, 이런 짓을….”

“에르티나 답네요.”

그들 셋 뒤로 들어오는 두 여자는,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인물들이었다.

“루엘라랑… 세라…?”

“수고했어요, 정령사. 덕분에 그녀를 찾았네요.”

“고마워요 용사님. 정말 제 소원을 들어주셨네요.”

그녀들은 나와 유니를 보며 한 마디씩 말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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