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짐꾼] 완전복종
아린은 잠시 할 말을 찾을 때까지 입만 뻐끔거렸다.
“…애, 애초에 유니는 용사님과 그런 사이가….”
“아직도 못 된 거지. 소꿉친구라면서? 아직도 여자 하나를 함락 못 시킨 얼간이 아닌가?”
“그건….”
“그러니 너랑 용사 관계도 지지부진한 거야.”
세리아가 눈치껏 나를 원조했다.
“맞아. 에릭은… 패기가 없어. 여자를 지배할 담력도 없어. 그래서 나는 에릭을 포기한 거야.”
“세리아….”
“진짜 남자는, 주인님처럼 여자를 지배하는… 하으읏.”
그녀는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을 기분 좋게 음미했다.
“이, 이건 이상….”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내 말에 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교회에서 상식을 배우며 자란 그녀에게, 이 상황은 분명 이상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린의 본성은 이를 받아들이고 하고 싶어 한다.
좋은 기회다.
우리 셋이 같이 다니면서 이 왜곡된 관계를 하루 종일 주입시키면 그녀의 정신을 마비시킬 수 있다.
“뭐, 갑자기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 이해해.”
“아….”
아린은 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살짝 놀란 눈치였다.
“저, 저기… 손이….”
“손이 왜?”
먼저 손대지 않겠다고 했었지.
그렇지만 나는 여태까지와는 달리 대놓고 이를 어겼다.
과연 아린은 이 사실을 지적할까?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자, 아린의 얼굴에 살짝 고민의 기색이 스쳤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아린이 택한 건, 침묵이었다.
“우리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볼 건데, 아린 너도 올 거지?”
“네?”
“올 거잖아. 아니야?”
그녀의 의사는 묻지 않은 판단.
그렇지만 아린은 세리아의 말에 부정을 하지 않았다.
“따라와.”
그렇게 우리 셋은 함께 골목 안쪽으로 나아갔다.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괴롭혔군요.”
“뭐, 애새끼들이 다 그렇지. 그래도 한 놈을 죽기 직전까지 패니까 다음부터는 조용해지더라. 신관이 듣기에는 별로인 이야긴가?”
“아, 아뇨…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나와 아린은 옛날 얘기를 하며 잠시 걸었다.
나는 일부러 그녀에게 폭력적이고 지배와 관련된 얘기만 언급했고, 그녀는 역시 이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아린, 너무 옆에 바싹 달라붙어 있지 마.”
“네?”
“세리아, 나서지 마라.”
“……네.”
세 발짝 뒤에서 걸어야하는 자기와는 달리 내 옆에 달라붙어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세리아가 한 소리 했지만, 나는 그녀를 평소보다 강압적으로 눌러버렸다.
“…….”
아린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리아는 살짝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아린을 바라봤지만, 내 뜻을 이해한지라 괜히 입술만 삐죽 내밀며 소소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 뒤로도 자꾸 세리아는 틱틱거리며 나한테 한 소리 들었다.
내 뜻을 이해하고 의도적으로 이런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얘가 정말 맘에 안 들어서 이러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훌륭한 연기였다.
“후… 미안, 아린. 세리아가 오늘따라 건방지네.”
“아녜요. 저를 부… 러워하는 것 같은데요.”
아린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겼다는 승자의 미소였다.
“…세리아는 당신과 같이 걷지 않나요?”
“노예 따위가 주인 곁에 설 수는 없는 노릇이지.”
“흐음, 그, 그렇군요….”
아린은 슬쩍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과 내 발걸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동등한 위치에서 걷고 있었다.
세리아는 세 걸음 뒤에 있었고.
그러나 잠시 뒤 내가 서로의 발걸음을 확인했을 때,
아린은 나보다 한 걸음 뒤에 있었다.
그렇게 도시 곳곳을 누비다가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발견했다.
여기 괜찮네.
슬슬 시작할 때인가.
“아린.”
“네?”
“잠깐 망 좀 봐.”
“…네?”
나는 세리아를 데리고 곧장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혼내는 연기를 좀 해야지.
적당히 눈짓하자 세리아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뭐, 뭐하시려구요?”
당황한 그녀를 골목 밖에 세워두고, 나는 세리아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치마와 팬티를 동시에 내렸다.
“알지? 최대한 아픈 척 해.”
“네, 네에….”
짝! 짜악!
“흐윽! 하윽! 자, 잘못했어요…!”
나는 일부러 아린이 신경 쓰도록 세리아의 엉덩이를 때렸다.
세리아는 물기 섞인 목소리로 나한테 사과했고, 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의 엉덩이를 때렸다.
“누가 자꾸 주인한테 말대꾸하래!”
“흐윽… 죄송해요… 죄송해요…!”
골목길 바깥에 있는 아린의 반응은 알 수 없지만, 이게 안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몇 번이고 그녀를 내리친 뒤, 나는 저릿저릿한 손을 털며 그녀의 이마에 조용히 키스했다.
“미안하다.”
“아녜요… 이제 안 아파요.”
세리아는 배시시 웃으며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녀를 잠시 놔두고 먼저 골목 밖으로 나와 아린의 모습을 확인했다.
“햐아악!”
쪼그린 채 자기 보지와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크흐흐….”
“읏, 으읏…. 말없이 나오지 마세요.”
설마 자위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만큼 아린은 미적지근한 용사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앞으로는 당당해지겠다며?”
“그,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죠.”
아린은 새빨간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세리아 교, 교육은 다 끝난 건가요?”
“이거 한 번으로 끝나겠냐? 오늘 아주 끝장을 봐야지.”
“끄, 끝장….”
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 너도 필요해?”
“……괘, 괜찮아요.”
아린의 입이 잠시 달싹거리다가 멈추더니, 결국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용사가 있으니 차마 해달라고 못하나 보지?
하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 뒤로도 우리는 짧은 시간에 이 짓을 세 번 더 했다.
“흐윽, 흑… 아파요… 흑….”
결국 세리아는 울음을 터뜨렸는데, 나도 순간 진짠줄 알고 움찔했다.
“뭐해요, 주인님. 어서!”
세리아가 울음을 펑펑 흘리면서도 나를 보며 속삭이자, 그제야 나는 이게 연기인 걸 알았다.
…진짜 감쪽같네.
“뭘 잘했다고 울어, 암컷노예년이!”
짜악!
“흐아앙….”
***
“저, 저기… 제가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아린은 고개 숙인 세리아의 눈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지금 세리아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을 짓고 우리 뒤를 얌전히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아린의 등에 손을 올려도, 세리아는 더 이상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물론 아까 연기하면서 다 사전에 협의한 사항이다.
중요한 건, 이걸 아린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린은 오히려 내가 그녀와 스킨십할 때마다 세리아를 살피며 은근슬쩍 그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막상 세리아가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자 미안해진 것 같았다.
미안한데 이거 다 연기다.
“원래 노예는 주먹으로 키우는 거야. 너희는 따분하게 교리니 뭐니 하는 걸로 사람을 길들이지만, 내 경험상 인간은 폭력과 지배로 길들이는 게 제일 효과적이지.”
“…….”
어떻게 보면 그녀의 종교를 무시한 셈인데도, 아린은 대꾸하지 않았다.
딱히 불편해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용사도 너무 물러. 마물 하나 제대로 잡질 못하잖아. 그러고서 용사라니… 쯧.”
“그건 용사님이 착하셔서….”
“착하니까 문제인 거야.”
나름 용사를 변호하려던 그녀는 내 마지막 말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지 입을 다물었다.
“용사는 좀 더 잔혹한 부분이 있어야해. 용사는 인간의 대표 아니야? 그런 놈이 마족과 공존한다, 같은 생명이다 이러며 망설이면 우리는 대체 뭐가 되는데?”
나는 조금씩 용사의 연약한 측면을 부각시키며 그를 깎아내렸다.
평소 같으면 지적이든 반박이든 뭐라도 했을 그녀도 지금은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 음마들이랑 협력한 것도 이해가 잘 안… 뭐야?”
한창 열심히 아린의 정신을 침식하고 있었는데, 골목길 반대편에서 웬 꼬맹이 하나가 나타났다.
근데 이 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타다닥!
막다른 골목인데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이 꼬맹이는 갑자기 뛰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탁!
나와 일부로 부딪친 이 꼬마는, 내가 어릴 때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내 지갑을 슬쩍 꺼내 도망쳤다.
“이 새끼가! 세리아, 잡아!”
“네, 네!”
세리아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뒤늦게 꼬마를 쫓아갔다.
뭐야, 이 빌어먹을 애새끼는?
한창 잘 되고 있는데 초나 치고.
내가 분개하며 씩씩거리고 있자 아린이 옆에서 가만히 서있다가 동조했다.
“참… 예의가 없는 꼬마네요.”
“빌어먹을 애새끼 같으니라고….”
“자, 잡히면 어떻게 하실 거죠?”
“묵사발을 내줘야지.”
그 말에 아린이 움찔거렸다.
“왜, 신관이라 내 말이 거슬리나?”
“아, 아뇨….”
“그럼 아린,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저, 저요?”
그녀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말로 잘 타일러서….”
“그거 본심이야?”
“…….”
누가 봐도 방금 대답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지어낸 것처럼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도 상관없어. 내가 뭐 이런 걸로 교회에 꼰지를 놈도 아니고.”
“…옛날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짓했다.
“누구나 꾸준히 시간을 들여 설득하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냥, 제렌 씨 말씀대로 매를 드는 게 더 빠른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린의 몸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죄책감? 아니.
이건 흥분이었다.
“새, 생각해보면… 수녀님들도 저희가 어릴 때 잘못된 짓을 하면 매를 들곤 하셨죠. 이건… 이건 잘못된 게 아니겠죠? 그렇죠?”
그녀의 마지막 이성이 아린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마지막 억제를, 풀어주었다.
“당연하지. 그게 맞는 거야. 어린 애들은 아무 것도 모르니까, 매를 들어서라도 가르쳐야지. 뭐가 옳고 그른지 말이야. 안 그래?”
“그, 그렇죠….”
아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럼 말이야, 아린.”
“네?”
나는 평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아이는 매로 다스리는 게 맞지?”
“…그, 그렇죠.”
좋아. 그대로 넘어왔군.
저 도둑 꼬맹이의 등장은 예상밖이지만 오히려 잘됐다.
원래 계획보다 더 자연스럽게 그녀의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표정을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히고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면 너도, 매가 필요하겠네?”
“……네?”
아린의 표정이 순간 당혹으로 물든다.
나는 더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꽉 쥐었다.
“흐윽…!”
“이 몸이 용사 거라고, 착각을 하고 있잖아.”
아린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경악과, 혼란으로 가득 찬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허락 없이 쳐다보지 마.”
짜악!
나는 그녀의 뺨을 거침없이 갈겨버렸다.
“하윽! 무, 무슨 짓….”
“말대꾸 하지마.”
퍽!
나는 그녀를 걷어찼다.
“커흑…. 제, 제렌 씨, 지금 무슨….”
“제렌 씨? 네 주인은 나야. 주인님이라고 불러라.”
“가, 갑자기 왜 그러세….”
나는 그녀의 옷을 강제로 벗겨버렸다.
아린은 미약하게나마 발버둥을 쳤지만, 그 표정은 거부감이라기보다는 당혹스러움에 더 가까웠다.
“흐윽, 이, 이러지 마세요….”
“변태 같은 년, 그러면서 왜 다리는 비비꼬고 있지?”
내 지적에 아린은 고개를 숙였다.
“용사랑 지내보니 어때. 만족스럽나?”
“…….”
“미적지근하고 재미없지 않아?”
“아, 아니에요…”
아린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발로 그녀의 얼굴을 눌렀다.
“커흑….”
“내가 너한테 용사에게 갈 기회를 준 건, 마음을 굳히라는 의미에서였어.”
사실 오늘 아린을 보고 즉석에서 만든 계획이지만, 나름 그럴싸한 것 같다.
원래 계획이라는 게 이렇다.
처음 생각이 끝까지 가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너 같이 지배당하는 걸 좋아하는 변태 년이, 그 용사 따위한테 만족할 리가 없거든.”
“흐읏, 흐으….”
아린은 내 발에 짓눌린 채로 숨가쁘게 호흡했다.
그냥 원래는 조금 더 고민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용사가 슬슬 뭔가 행동을 보일 것 같기도 하고 해서 급하게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그만둘 가능성도 있지만, 오늘 내내 흥분한 상태라 지금쯤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기회를 주지. 나를 선택하고 섬기던가, 아니면 용사와 재미없는 놀이를 반복하던가.”
“저… 저는 용사님을… 용사님이랑….”
그녀는 여전히 용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아린에게, 나는 현실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그 용사는, 지금 어디 있지?”
“아….”
아린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간다.
“좋아, 그럼 기다려보자고. 용사가 과연 널 구하러 올지 말지 말이야.”
“그, 그건….”
나는 아린이 대꾸하지 못하게 더 머리를 누르고서는 그대로 가만히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린의 다리가 허우적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헐벗은 몸에서 붉은 장미가 서서히 침식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용사는 등장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테니까.
“너는 네 취향을 억누르면서까지 용사와 지내길 바랐지만 용사는 그러지 않았어. 다른 여자랑 놀아났지.”
꽃잎 한 장이 검게 물들었다.
“용사는 유니와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계속 휘둘렸어. 오늘 개별행동 하자는 세리아의 말에도 유니의 눈치를 보고 동의하는 거, 너도 봤지?”
아린이 침묵하는 사이 하나가 더 검게 물들었다.
“너는 아직도 그런 남자와 함께 지내고 싶냐?”
꽃의 절반쯤이 물들었을 때,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치, 치워주세요.”
“왜?”
그 말에 아린은,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지 않으면 발에… 사, 사죄의 키스를 할 수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