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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22화 (122/236)

〈 122화 〉 [용사] 꿈에서 깰 때

세리아는 아마 마을 사람들도 우리들처럼 기분 좋은 꿈을 꾸었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니까… 나 말고 세리아나 아린, 유니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말이다.

나는 슬쩍 그녀들의 표정을 살폈다.

유니랑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무슨 꿈을 꾼 걸까?

궁금하지만 물어보는 건 실례겠지.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세리아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꿈이라고 했으니 아마 음마가 개입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만 할 뿐, 마을에서 음마의 흔적이 발견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날 밤에도 우리는 별 수 없이 잠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느샌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좋았어요, 용사님.”

“이제는 용사가 아니라니까.”

꿈속에서 나는 이불보로 몸을 가린 아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랑을 나눈 뒤 아린은 언제나 나와 이렇게 달콤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후후… 그래도 제 마음속에서는 항상 용사님이랍니다.”

“부끄럽네, 하하.”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는 그녀는 참 아름다웠다.

셋째 부인이라 자주 찾지 못하는 게 미안할 뿐이다.

“좀 더 자주 찾아올게.”

“기다릴게요.”

아린의 살짝 슬픈 듯한 미소를 받으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쉽지만 이제 돌아갈 때다.

나는 벗어둔 옷을 다시 입으면서 방을 나설 준비를 했다.

“…에릭, 일어나.”

“응?”

어느새 아린은 세리아가 되어있었다.

어라, 내가 세리아랑 했었나?

“일어나라니까!”

왠지 화가 난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한테 다가왔다.

“이, 일어나라니 무슨 소리야?”

그녀는 내 앞에 서서 손을 올리고는…

짜악!

“헉!”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세리아가 있었고, 열린 문 밖으로는 아린과 유니, 그리고 모르는 여자가 있었다.

“휴, 겨우 일어났네. 갑자기 깨워서 미안.”

“어, 응… 아냐.”

나는 살짝 얼얼한 볼을 문지르며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세리아의 얼굴은 물에 잔뜩 젖어있고, 유니와 아린은 처음 보는 여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인간처럼 생겼지만, 꼬리가 달려있는 것으로 봐서 인간은 아니었다.

“어… 무슨 상황이야?”

“얘가 우리한테 꿈을 꾸게 만든 장본인이야. 보다시피 음마고.”

세리아가 잡았다는 건가?

그녀의 추가설명에 따르면, 세리아가 시간차 마법으로 중간에 물벼락을 맞고 깨어난 덕분에 이 음마를 붙잡았다고 했다.

언제 오는지도 정확히 몰랐을 텐데, 그녀의 행동력이 참 무섭다.

“그래서 지금부터 얘기를 들을 건데, 에릭 너도 일어나야할 거 같아서.”

“그, 그러네. 고마워, 깨워줘서.”

그렇게 말하며 나는 슬쩍 옆을 살폈다.

제렌 씨는 아직 자고 있었다.

“제렌 씨는 안 깨워?”

“…나중에 전달하면 돼.”

세리아라면 왠지 그도 깨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대답을 듣고 나니 살짝 안심이 됐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걸로도 안심하는 나 자신에게 환멸감도 느꼈다.

정신 차리자,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대충 옷을 갖춰 입고 문 밖에서 손들고 서있는 음마를 만나러 갔다.

“흐윽… 그냥 담당구역 바꿔달라고 할걸….”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왠지 마족이라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다.

“저기….”

“살려주세요! 저 나쁜 짓 안했어요! 그냥 상부상조, 그래, 상부상조에요! 일석이조! 아, 이건 아닌가? 아무튼 아니에요!”

갑자기 말이 많아진 그녀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고 하나씩 차근차근 물어보기로 했다.

“흐윽… 또 이런 꼴을… 죄송해요 에아님….”

“에아?”

“아차.”

그녀는 당황하며 입을 합 막았지만, 이미 나는 그 이름을 들어버렸다.

“그게 누군데?”

“그… 그게에… 저, 저는 몰라요!”

그녀는 누가 봐도 거짓말이 분명한 어색한 말투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몸에 구멍 내줄 거야.”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세리아가 차갑게 한 마디 하자 그녀가 얼어붙었다.

“세리아, 너무 그러지 마. 겁먹었잖아. 괜찮아, 안 해칠 테니 몇 가지 질문에만 좀 답해줄래?”

“히이잉… 구멍 내지 마세요, 흐윽…. 말할게요….”

왠지 그녀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들이 된 것 같지만, 우리는 그렇게 비교적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녀에게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으음… 마을 단위로 실험이라….”

“나, 나쁜 건 아니에요! 인간들은 좋은 꿈을 꾸고! 저희는 인간과 마족이 함께 사는 신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아….”

세리아가 한숨을 쉬자 그녀는 지레 겁먹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입을 다무니 조용해서 훨씬 좋았다.

“생각보다 큰 문제 같은데요, 용사님.”

아린은 난처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아마 내 얼굴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족과 인간이 함께 사는 사회라.

이 몽마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이를 위한 실험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런 게 가능하면 지금 왜 이렇게 싸우고 있겠어?”

세리아는 그 가능성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대화가 안 통하니까 서로 싸우는 것 아닌가?

“그래도… 만약 정말 이게 가능한 일이라면 이제 안 싸워도 되는 거잖아….”

유니는 말하면서도 자신이 없는지 망설이고 있었지만, 사실 나도 그녀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당장 사천왕들만 봐도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데, 어쩌면 평화롭게 살 방법이 있는 것 아닐까?

“마, 맞아요…! 저희도 싸우고 싶지 않다구요!”

“시끄러.”

“히이….”

은근슬쩍 끼어들려던 몽마는 세리아의 한 마디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일단 가능 여부는 제쳐두죠. 이걸로 저희끼리 싸울 필요는 없어요.”

아린은 슬슬 주제가 탈선되려는 것을 방지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어떻게 하냐는 거예요. 용사님, 어떻게 할까요?”

“음….”

그녀를 슬쩍 바라보자 몽마는 제발 살려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죽일 생각은 어차피 없는데….

“그럼 일단 배후를 캐내야지. 에아라고 했나? 그 사람이 얘를 관리하는 사람이겠지. 그렇지만 분명 그게 끝은 아닐 거야. 아마 더 위로 올라가야겠지. …같은 음마니까 어쩌면 그 세라와 관련이 있을지도.”

“흐윽… 난 이제 끝났다….”

세리아의 말에 틀린 부분 하나 없었는지 그녀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인 것 같아 나도 동의했다.

그렇게 모두의 동의를 얻고 난 후, 우리는 그녀를 데리고 윗사람을 만나러 갔다.

협박 같은 짓을 할 필요도 없이, 그녀는 그냥 세리아가 한 번 째려보자 알아서 우리를 안내했다.

왠지 세리아가 무서웠다.

***

그녀는 우리를 마을 공터로 안내했다.

이런 늦은 시간에는 아무도 없어야 하지만, 그곳에는 그녀를 닮은 많은 몽마들이 있었다.

잠들어야 했을 이 시간에 우리들이 나타나자 그녀들 사이에서 소란이 벌어졌지만, 책임자로 보이는 마족이 하나 나타나 상황을 정리했다.

그 책임자의 이름은 역시 에아였다.

“우리 미리가 실수를 저질렀군요. 사정을 들려드릴 테니 우선 그녀를 저희 쪽에 돌려주시겠어요?”

에아는 상냥한 얼굴로 미리라는 이름의 몽마를 바라봤지만, 덜덜 떠는 그녀의 얼굴을 보건대 그다지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적이지만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여 나는 그녀를 살짝 내 뒤로 숨겼다.

“아….”

미리는 내 의도를 눈치 챘는지 내 등 뒤에 매달려 쏙 숨었다.

왠지 유니가 살짝 그녀를 노려본 것 같았지만 착각일 것이다.

“제가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너무 뭐라고 하시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하아,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데 제가 딱히 미리를 혼내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골치가 아픈지 자기 머리를 꾹꾹 눌렀다.

“그냥… 그냥 그녀가 저지른 약간의 실수에 대해 얘기를 나눌 뿐이죠.”

“그, 그렇군요….”

“히익….”

혼을 내지는 않겠다고 했는데도 미리는 여전히 겁먹은 분위기였다.

이렇게까지 말을 들었는데도 그녀를 계속 감싸기는 좀 그렇다보니, 나는 그녀를 달래 에아에게 보내주었다.

내가 왜 적에게 이렇게 친근하게 굴고 있지?

살짝 의아했지만 왠지 그녀를 보면 그러고 싶었다.

“미리, 우선 돌아가 있으세요. 자세한 건 이따가 이야기하죠.”

“흐윽… 네에….”

그녀는 세상의 끝이라도 본 표정으로 터덜터덜 자기 동료들 사이로 걸어갔다.

그런 미리의 뒷모습을 바라본 뒤, 에아는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무엇이 듣고 싶어서 오셨죠? 아니면 저희를 모두 죽이러 오신 건가요?”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우선 나는 목적부터 물었다.

정말 미리라는 몽마가 말한 대로의 목적이 맞는가?

그녀의 대답은 미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었는데, 그녀들은 진심으로 인간과 마족 간의 조화가 가능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안 될게 뭐있죠? 저희는 굳이 인간을 죽일 필요가 없고, 인간들도 저희를 죽일 필요는 없죠.”

“그걸 알면서 왜 전쟁을 계속 하는데?”

세리아가 빈정거리며 묻자 에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모두가 저희랑 같은 의견인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전쟁을 바라지 않는 인간들도 많을 텐데요.”

“그 말은 결국 너희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는 거네?”

살짝 의외였다.

마족들은 전부 마왕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체계를 갖추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긴, 당장 루엘라와 세라만 봐도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지.

“저희라고 뭐 인간이랑 다를 거 있나요. 당신들 국가만 봐도 똑같을 텐데, 고작 그런 게 궁금하셨나요?”

그녀의 말로 다시 주제가 원점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에아의 이야기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에아를 비롯한 몽마들이 바라는 사회는 마족, 그 중에서도 우선은 몽마에 한정한 마족이 인간사회와 섞여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인간들에게 자신이 가장 바라는 꿈을 꾸게 해주고 그 대가로 마을에서 살아갈 권리를 얻는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익숙해지면 다른 마족들도 사회에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그 첫걸음이 이 실험이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역시 너희는 여기 대륙 출신이 아닌 거지?”

“거기까지는 제가 답해드릴 수 없네요. 제 권한 밖의 일이라.”

세리아는 그녀의 대답이 못마땅한 듯 했지만, 굳이 더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저희 쪽 얘기는 다 드린 것 같군요. 못 믿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저희는 진심으로 인간을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에아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나와 시선을 맞췄다.

“그래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데, 눈감아주시지 않겠어요?”

“뭐라고?”

그 말에 내가 움찔했지만, 쉽게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5일 정도? 그 뒤에는 얌전하게 물러날 거고, 그 사이 다치거나 죽는 인간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이번 일이 잘 성사된다면, 인간과 마족 사이에 첫 가교가 생길 수도 있고요.”

나는 우선 그녀에게 우리끼리 의견을 나눌 시간을 구했다.

에아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우리는 따로 모여 서로의 의견을 물었는데, 의견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는 않았다.

세리아와 아린은 일단 반대였다.

세리아는 그녀들을 신용할 수가 없다고 했고, 아린은 마족과의 공존이라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유니와 마찬가지로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세리아의 의견도 틀린 것 같지는 않아 뭐라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파티의 리더는 너니까, 알아서 정해. 우리는 거기에 따를게.”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다.

“사실 우리에게 의논할 필요도 없어. 리더라는 건 원래 그런 거잖아? 우리 의견은 어디까지나 참고에 지나지 않고, 결국에는 제일 높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정하는 거야.”

그녀의 의견은 낯설게 들렸다.

예전에 다 같이 의견을 모아서 정하자고 했을 때는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생각이 바뀌어버린 걸까.

세리아의 말은 마치 더 높은 사람의 명령에는 절대복종해야한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네요. 용사님은 여신의 축복을 받으셨으니까, 어떤 의미로는 이를 결정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간일지도 몰라요.”

더 의외인 것은 아린도 그녀의 말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린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신이라는 절대자를 섬기고 있는 입장이라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나는 마지막으로 유니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이런 어려운 얘기는 잘 모르겠어. 그치만… 난 에릭의 판단을 믿어. 에릭이라면 분명 더 좋은 쪽을 고를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유니.”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고민됐지만, 사실 내 마음은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요 며칠 간 마을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미소, 그리고 너무나도 인간 같은 미리와 에아, 세라까지.

어쩌면 전부 속임수일지도 몰랐다.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해서 내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걸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녀들을 믿고 싶었다.

“정했습니다.”

“어떻게 하실 거죠?”

인간도, 마족도 싸우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그쪽을 고르고 싶었다.

용사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족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악한 존재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으니까.

“…저도 인간과 마족이 하나 될 날을 기대해보겠습니다.”

내 대답은 조금 의외였는지 에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생각보다 좋은 분이셨군요. 훌륭한 판단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에아가 내민 손을 잡았다.

***

우리는 마을에서 5일을 더 머물고 그녀들이 떠나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저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날에는 철수 전에 에아가 마을의 촌장과 대면해서 모든 사실을 밝혔는데, 마을 사람들은 화내기는커녕 제발 가지 말라며 그들에게 부탁했다.

에아는 추후에 있을 협상 테이블에서 그들의 생생한 의견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이 반응을 보니 적어도 실험은 성공인 듯 했다.

5일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는 원한다면 꿈을 꾸게 해주겠다는 그녀의 제안을 받았다.

나와 세리아는 거절했지만, 아린과 유니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는 걸 확인하고 우리도 채비를 서두르는데, 저 멀리서 미리가 급하게 뛰어왔다.

“어, 무슨 일이야?”

5일간 제법 친해졌기에 나는 그녀를 편하게 대했다.

“저, 저기… 만약에… 만약에 일이 잘 풀려서 저희가 인간들과 함께 살게 된다면….”

그녀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흐흠.”

어째서인지 유니가 헛기침을 했다.

“꼭…! 꼭 저를 에릭 님이 계신 마을에 불러주세요!”

“어? 어….”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하며 살짝 말을 흐렸는데, 그녀는 그걸 동의의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환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해요! 꼭 다시 봐요! 꼭이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는 다시 자기 동료들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라? 뭐지 이 분위기?

“에릭….”

차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나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유니가 있었다.

“용사님도 참….”

“제법이네, 에릭.”

그녀 뒤에서 아린은 한숨을 쉬었고, 세리아는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이거 혹시 오해를 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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