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용사] 달콤한 꿈
유니와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일찍 잠든 것도 있지만 아마 유니와 보냈던 하루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은 아닐까.
정말 간만에 아무런 걱정 없이 푹 잤던 것이다.
덕분에 개운하게 일어난 나는 1층으로 내려와 잠시 앉아있기로 했다.
밖에 나가봐야 할 것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혼자 앉아있으면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
우리의 임무와 그녀들과의 관계 등.
고민거리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앉아있으니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렌 씨는 늦게 일어나는 편이니 아마 아닐 테고, 셋 중 누굴까?
어쩌면 그냥 다른 손님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찾던 나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아, 용사님. 안녕하세요.”
“……응.”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그대로다.
낯설지만 어딘가 본 기억이 있는 옷.
아린은 시련의 동굴에서 구했던 새 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아, 아린… 그거….”
“이거 말인가요? 후후… 조금 부끄럽지만 성능이 좋으니 입어보기로 했답니다.”
분명 저번에는 노출이 많아서 싫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막상 그 말이 입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냥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뻐끔 거릴 뿐이었다.
“용사님한테는… 조금 자극이 강한가요?”
왠지 이 말에는 조금 울컥했다.
용사님‘한테는’?
마치 나만 어린애 취급하는 듯한 태도가 아닌가.
“…예, 예쁜 것 같은데?”
나는 애써 불편한 마음을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렇게 답했다.
아린은 그 말에 빙긋 웃으며 내 앞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옆트임이 심한 옷이라 옷자락이 펄럭이며 허벅지 윗쪽을 아슬아슬하게 비추었다.
“…으윽!”
“부끄러워하시면서.”
아린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왠지 그녀에게 당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신관복에는 위쪽으로도 가슴이 파여 있었다.
덕분에 가슴골이 살짝 드러나 있었는데, 아마 그녀의 가슴이 더 컸다면 엄청난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딱히 그녀가 작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걸 기대하고… 아, 흐흠, 죄송해요.”
뭔가 더 장난을 치려고 했는지 허벅지가 트인 부분을 살짝 잡은 아린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고 멈칫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 변화에 의아했지만, 왠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니 짐작가는 곳이 있었다.
아린은 내가 이런 걸 싫어하는 줄 알고 있지 않는가.
당시에는 최선의 답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해볼까?
그렇지만 그러면 너무 속물적인 것 같은데….
그러나 내 고민은 세리아와 유니가 연달아 방에서 나오면서 무산됐다.
“아린 갑자기 무슨 일이야?”
“…재밌네.”
유니는 예상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고, 세리아는 놀란 것 같았지만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고 딱 한마디만 했다.
“찾아봤는데, 확실히 이것도 교회에서 인정한 신관복이 맞더라구요. 옛날기록이긴 하지만….”
“이, 이런 걸 인정했단 말이야? 와아….”
유니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정면으로 보고 있기 부끄럽다.
그녀들이 다 내려와 왁자지껄한 모습을 보니 문득 불안함이 들었다.
아직 그가 내려오지 않았다.
그 남자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아린에게 더러운 시선을 향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에 안 든다.
마치 그가 아린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왜 그래 에릭?”
내 손이 주먹을 쥐는 것을 봤는지 유니가 물었다.
나는 내 속마음을 감추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유니는 그다지 믿는 것 같지가 않았다.
“진짜야. 신경 쓰지 마.”
“…알았어.”
조심해야지.
내 걱정을 그녀에게까지 지우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화를 삭히고 있으니, 제렌 씨도 일어나 1층으로 내려왔다.
“왜 이렇게 소란….”
그는 아린을 보더니 순간 행동이 멎었다.
누가 봐도 놀란 표정이다.
역시 저 남자가 시켰다거나 그런 건 아니였구나.
아린을 믿고는 있었지만 혹시 모른 불안감은 덕분에 사라졌다.
그런데 너무 오래 바라보는 거 아냐?
내가 살짝 불편함에 헛기침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그가 마침내 시선을 피했다.
“…이상한가요?”
“크흠, 예쁜 것 같군요.”
둘 사이에 왠지 침묵이 길었던 것 같은데.
대화도 마치 아린이 억지로 대답을 들어내려는 듯한 모양이고.
그렇지만 착각일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아린이 그의 반응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 아닌가.
그냥, 그냥 본인도 아직 부끄러워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거겠지.
나한테도 어떠냐고 은근 돌려서 물어보지 않았던가.
…여자들한테는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리라.
***
도시에서 출발하는 내내 사람들이 아린만 쳐다보는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도시 밖에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음 마을까지는 5일이 걸렸다.
그 동안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나는 아린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런 옷을 입고 정말 괜찮은 건가?
본인 말로는 부끄럽지만 꾹 참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보는 그녀의 표정은 참는다기보다는 즐기는 표정에 가까워보였다.
옷의 면적과 함께 조심성도 사라진 건지, 그녀는 평소보다 무방비해보였다.
가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울 때면 파인 가슴 사이로 빨간 무언가가 보이곤 했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다리를 꼬는 바람에 하얀 천이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그것마저 없을 때도 있었다.
덕분에 자꾸 서버려서 곤란하다는 점을 빼면,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아린 때문에 흥분한 걸 불침번 설 때 해결하다보니, 가끔 유니가 대신 도와주고 뭐 그러면서 5일이 훌쩍 지났다.
그렇게 도착한 다음 마을에는 뭔가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
유니와 세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뭔가 위화감은 느껴지는데, 정작 그게 뭔지는 몰랐다.
“여기가 여관이에요. 방은 두 개로 잡으시나요? 제가 먼저 가서 말해놓을 테니 천천히 들어오셔요!”
“아, 네, 감사합니다….”
우리를 안내한 청년은 싱글벙글 웃으며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거리에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다들 웃고 있다.
남녀노소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걸음걸이가 힘차다.
아,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원래 그랬지.
아무튼 대체 뭘까, 마을 전체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아무도 안 쳐다보네요.”
아린이 홀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녀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젓기에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일단 들어가 보자. 뭔지는 몰라도 딱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세리아의 말 그대로였다.
일단 다들 저렇게 표정이 좋아 보이는데, 크게 걱정할 건 아니겠지.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여관 이름은 ‘최고의 숙면’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 그대로, 우리가 머무는 방은 그리 비싼 방이 아니었음에도 침구가 상당한 고급품이었다.
왕궁에 머물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느꼈으니 여관 주인이 얼마나 침구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요즘 늘 그렇듯 남자 방은 나와 제렌 씨 둘이 썼는데, 그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잠 못 잘 걱정은 없겠군요.”
“그러네요.”
이 정도로 포근하면 눕자마자 바로 잠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 잠들기에는 이른 시각이라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내려왔는데, 우리 말고 다른 손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이들도 하나같이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음식은 평범한데,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마을 주민도 아닐 텐데요….”
우리 모두는 의아했지만, 뭐… 일단 나쁜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들이 그렇게나 기분 좋아보였던 이유는, 다음날 아침이 채 되기도 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일찍 잠든 그날 저녁, 나는 꿈을 꾸었다.
무척이나 달콤하고 기분 좋은 그런 꿈을.
***
눈을 뜨자 나는 화려한 궁궐 속에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커다란 침대가 놓인 방이었는데, 굉장히 낯이 익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여기는 내 침실이니까.
평소처럼 나는 침대에 앉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
“우리 왔어.”
“들어와.”
문 밖에서 익숙한 소리가 났다.
그녀들이 손을 대기도 전에, 예쁜 메이드들이 문을 조심스레 열고는 다시 물러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들은 내 아내들이었다.
한 때는 소중한 동료였고 마왕을 퇴치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와 영원을 맹세한 신부들.
“또 옷 벗고 있었네. 에릭, 음란해.”
첫째부인인 유니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고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설마 또 한심하게 혼자서 위로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아까우니까 그런 짓은 하지 좀 말아줘.”
세리아, 둘째부인인 그녀는 내가 또 자위로 정액을 낭비하지는 않았나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진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저번에 문득 그리워져 혼자서 위로하던 걸 들킨 뒤로는 늘 저렇다.
“맞아요. 그럴 때마다 저희가 당신 손보다 못한 것 같아 슬퍼진답니다.”
셋째부인인 아린도 세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생각은 못해봤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알았어. 내 몸은 너희들의 것이기도 하지. 앞으로는 함부로 낭비하지 않겠어.”
“후후, 잘 알아들으니 좋아.”
세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내 왼팔에 착 달라붙었다.
“오늘은… 제가 먼저죠? 셋째부인이라고 따돌리기 없기에요.”
아린은 내 오른팔을 자기 몸에 밀착시켰다.
양 옆에 그녀들을 끼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했다.
“흥, 좋아죽네 좋아죽어. 그래도… 내가 언제나 첫 번째인 거, 알지?”
유니는 내 올라간 입꼬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입술을 비죽였지만, 곧 야시시한 미소를 띠더니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꾹 질러 빙글빙글 돌렸다.
“후후, 선두는 가져갈게요 유니.”
아린은 그렇게 말하며 내 부풀어 오른 자지에 먼저 손을 가져다댔다.
“아앗!”
“앗, 아린!”
남은 두 명의 부인이 뒤늦게 깨닫고 저마다 손을 뻗었다.
“으읏….”
세 명의 여자가 내 자지를 만지고 있다.
서로 다른 세 압력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벌써 가버릴 것 같다….
하지만 참아야지. 밤은 이제부터니까.
“하앗, 여보….”
“으응, 더….”
“여기다가도 넣어줘….”
그래.
정말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
“아.”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이곳에는 화려한 침실도, 나의 세 아내도 없었고 있는 것이라고는 쓸데없이 기분 좋은 침대와 축축해진 이불뿐이었다.
그래도 기분만은 좋다.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정말 최고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