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짐꾼-111화 (111/236)

〈 111화 〉 [용사] 여로

우리는 사건을 마무리 짓고 다음 날 마을을 떠났다.

그 개가 스스로의 의지로 마을을 떠나면서 이제 그들이 다시 습격받을 일은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사건이 완전히 끝났다고는 볼 수 없었다.

“아마 그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니겠지. 분명 주변에 그런 사건들이 더 있을 거야.”

출발하기에 앞서, 우리는 촌장 집에서 회의를 가졌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나는 그 엘프들의 숲에 가보고 싶었지만, 지금 당면한 문제가 더 급하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사람에게 저주를 걸어 형태를 바꾸는 실험, 아마 두 사천왕이 우리를 아세일라 안에 가둬둔 사이 진행한 실험이었으리라.

“어쩌면 더 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저주는 아닌 것 같았으니까.”

“네, 아마 굉장히 오래전부터 준비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렇다고 치면 이상한 점이 생기죠.”

사실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건 세리아와 아린이었고, 나와 유니는 듣는 입장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어?”

“네, 옛날부터 이런 실험을 하고 있었다면 왜 여태껏 흔적 하나 남기지 않다가 이제 와서 꼬리를 드러내는 걸까요.”

“으음….”

당연히 그 대답은 우리 중 아무도 몰랐다.

그걸 아는 건 사천왕 정도겠지.

“역시 둘 중 하나를 잡아서 정보를 캐내야하는데….”

세리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말이야 쉽지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체감하고 있었기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뒤로도 조금 더 의견을 나눠봤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점은 없었다.

전부 추측뿐이다.

주변 마을에서 비슷한 소문이 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는 유사한 실험이 행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거나,

이 마을에 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끄나풀이 있을지도 모른다거나.

무엇 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으으음… 그래서 우린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솔직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증거도 마땅치 않은 판국에 하루 종일 이 사건만 캐고 다닐 순 없으니까.”

세리아의 말에 아린은 살짝 불만인 듯 했지만, 그녀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지 그 점을 딱히 트집잡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죠? 사천왕의 위치도 특정했으니 교회에서 언급한 마을들에 들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사천왕을 찾았는데도 피해가야 한다니, 이게 용사인가?

스스로의 꼴이 우스웠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저기, 그럼 그… 엘프들의 숲은 어떨까?”

나는 다들 침묵하자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세리아가 눈을 확 치켜뜨며 나를 바라봤다.

“적이 쳐둔 함정에 그대로 걸어들어가자고?”

“아니, 그… 어차피 목적지도 없잖아. 내 생각에는 딱히 함정을 걸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물론 확신은 하지 못한다.

사천왕을 어떻게 믿겠는가.

다만, 내가 개인적으로 세라를 보고 느낀 점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미묘한 인상 뿐이다.

당연히 이것만으로 파티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어차피 지금은 그 외에 다른 선택지도 없지 않는가.

“확실히 용사님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함정을 걸 생각이라면 애초에 저희를 그 도시에서 탈출시켜주진 않았겠죠.”

“우리는 지금 그들의 목적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잖아. 너무 위험해.”

세리아는 꾸준히 반대했고, 나머지는 찬성했다.

결국 세리아는 설득이 안 먹힐 걸 알았는지 먼저 꼬리를 내렸다.

“그래, 알았어. 가면 되잖아.”

“고마워요, 세리아.”

“휴우… 무슨 일 생겨도 나는 몰라.”

말은 저렇게 해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가 제일 열심히 나서겠지.

그게 세리아니까.

팔짱을 끼고 툴툴거리는 세리아를 보며 나는 슬쩍 웃었다.

***

그래서 우리는 그 먼 엘프들의 숲으로 다음 목표를 잡았다.

하루 이틀 걸어서 도착할 거리가 아니므로, 당연히 우리는 도중에 여러 도시와 마을들을 지나치며 이동할 생각이었다.

간만에 또 터덜터덜 걷다보니, 몬스터와 조우할 일도 이전처럼 많았다.

“뀌에에엑!”

“에릭, 앞에!”

카앙!

나는 검을 들고 상대가 내지른 무기를 막았다.

몸집이 사람만한 오크들은 다른 인간들을 죽이고 온 길인지 날카로운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축복을!”

아린의 축복을 받자 몸에 힘이 솟기 시작했다.

나는 오크를 압도하는 힘으로 그의 검을 쳐내고 칼등을 오크의 목에 세게 휘둘렀다.

“꾸에엑!”

충격이 제법 컸는지 오크 하나가 비틀거렸다.

내가 검을 다시 회수하려던 찰나, 옆에서 다른 오크가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퍼엉!

타이밍 좋게 세리아의 마법이 터져 그 오크를 태워버렸다.

“고마워, 세리아!”

“아, 나 아니야.”

“응?”

고개를 돌려 세리아에게 인사를 했지만 그녀는 다른 오크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상대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것 같은데, 오크는 하체가 반쯤 녹았는데도 아직 살아있었다.

“크, 크에엑… 키엑….”

저쯤 되면 그냥 죽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잔인한 모습에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내 뒤에는 제렌 씨가 스태프를 들고 서있었다.

“조심하셔야죠.”

“…고마워요.”

그가 들고 있는 스태프에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세리아가 들고 있던 스태프. 이걸 왜 그가 들고 있는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세리아가 그에게 줬기 때문이다.

이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속이 부글부글 끓는 기분이었지만,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그를 전력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세리아의 말에 딱히 틀린 점은 없었다.

그런데 그 스태프는 스승에게 받은 소중한 거라면서.

이렇게 가볍게 타인에게 넘겨도 되는 것인가?

나는 그 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릭! 아직 더 있어!”

한 눈을 판 나에게 유니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읏!”

제길, 방심했다!

나는 다급히 몸을 앞으로 돌렸지만, 이미 내 근처까지 오크 두 마리가 접근한 상태였다.

둘은 동시에 상대할 수 없는데…!

그래도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이 휘두르는 망치를 막았다.

쿠웅!

“크흑!”

막기는 했지만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머리가 어지럽다.

아직 한 마리가 남아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검을 휘두를 수가 없는 상황!

“꾸에에에엑! 꾸에에… 엑?”

그 순간 나를 향해 괴성을 지르며 뛰어오던 오크의 움직임이 멎었다.

“꾸, 꾸엑?”

일단 그 오크가 자신이 원해서 멈춘 건 아니었다.

오크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자기 몸을 움직이려고 애를 썼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휴우… 다행이네요. 용사님, 무사하세요?”

내 등 뒤에서 아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린? 이걸 아린이 한 건가?

“이따가 얘기해드릴게요. 우선은 눈 앞에 집중해주세요!”

“으, 응!”

그렇지. 우선은 눈앞의 이놈이 먼저다.

나는 유니의 정령술로 놈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아린의 축복을 빌려 오크를 기절시켰다.

화르륵!

결국 기절한 시체들은 세리아가 마무리를 지었다.

“하아… 아직도 못 죽이는 거야?”

“미안….”

“됐어.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뭘.”

세리아는 그런 내가 조금 한심해보였는지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나도 내가 극복한 줄 알았는데….

요즘 너무 강한 상대들만 만나서 그런지, 이런 일반 마물들과 상대하게 되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방금 전처럼 방심만 하지 않으면 다칠 일도 없고.

그러다보니 다시 그들의 숨통을 끊기 전에 주저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세리아가 이들을 처리하니 이러나저러나 저들이 죽는 건 똑같은데 정작 내가 죽이고 싶진 않다니.

내가 생각해도 우습기 짝이 없는 마음가짐이었다.

“생명을 존중하는 것, 그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에요, 용사님.”

내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아린이 다가와 위로했다.

“응, 고마워…. 그렇지만 마물을 죽이는 게 내 역할인데….”

“그렇게 고민하는 게 당신이 상냥하다는 증거랍니다.”

아린은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으며 생긋 미소지었다.

“하하… 그런가? 고마워.”

그렇게 잠시 쉬던 나는, 문득 아까 들었던 의문을 물어보았다.

“아까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오크가 못 움직이던데.”

“아, 그거 말인가요? 사실 세라 씨, 아니, 그 사천왕한테 배웠어요.”

그녀는 소곤소곤 나에게 비밀 얘기를 하듯 고백했다.

“아, 사람들을 조종하던…?”

“거기까지는 아니지만요….”

아린은 아세일라에서 그녀에게 축복의 더 정확한 운용법을 배웠다고 했다.

신관들의 거는 축복은 결국 상대의 육체를 강화시켜 주는 것, 이는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상대 육체의 통제권을 일부 가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까… 음, 그 때 봤던 것처럼 악용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상대의 움직임을 묶는 식으로도 쓸 수 있다는 거죠.”

“굉장하네, 그런 능력인 줄은 몰랐어.”

“…저도 몰랐어요.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아마 이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어떻게 이런 걸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요?”

“으음… 그러게.”

“그녀가 도시를 떠나기 전 저희에게 했던 인사를 기억하세요?”

아, 그 때 그건가.

잘은 모르지만 뭔가 굉장히 격식을 차린 듯한 인사였지.

“저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지만, 그건 굉장히 오래된 종교예법이에요.”

“그래?”

“네. 자신과 동등하거나 혹은 약간 더 높은 상대에게 하는 인사죠.”

사천왕인 그녀가 그런 걸 왜 알고 있지?

“아마 그녀는 옛날 사람이 아닐까요.”

“옛날 사람….”

아린은 조심스레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옛날 사람이라.

사실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그럼 사람이 마물이 된 거야?”

어디서부터 얘기를 들었는지 유니가 갑자기 고개를 쏙 내밀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유, 유니! 놀랬잖아요.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요?”

“히히, 처음부터?”

“마,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깜짝이야.

가끔 그녀는 이렇게 귀신 같이 나타나곤 했다.

올 때 인기척이라도 좀 내주면 좋을 텐데.

아린은 조금 당황했지만 그녀의 의문에 순순히 답해주었다.

“그럴 지도 모르죠. 어쩌면 마을에서 그 남자가 개로 변했다 죽은….”

“죽은?”

“…주, 죽을 뻔했던 것도… 비슷한 일이지도 몰라요.”

아린은 유니가 그녀의 말실수를 지적하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을 고쳤다.

그녀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는지 잠시 고민하면서 말했다.

“사람이 다른 존재로 변한다… 사실 그 개도 마물에 가까워 보이긴 했죠. 어쩌면 그들은 사람을 마물로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는 걸까요?”

“으음….”

듣기만 해도 끔찍한 소리다.

사람이 마물로 변하다니?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 전황이 더욱 불리해지는 것 아닌가.

“확실히 큰 위기네요. 이번 사건도 보고할 필요가 있겠어요.”

생각을 정리한 아린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녀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한시라도 빠르게 대처해야한다.

그런데 그녀들의 그 느긋한 태도.

…어쩌면 이미 실험은 끝난 게 아닐까?

아니, 아닐 거다.

그러면 이미 우리에게 승산은 거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최악의 상상을 떨쳐냈다.

“다들 뭐해? 밥 안 먹어?”

세리아가 멀리서 우리를 불렀다.

“아, 응. 갈게!”

나는 그녀의 말에 반응하며 뒤를 돌았다가 순간 움찔했다.

세리아 바로 옆에 제렌 씨가 서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가깝지 않나?

그의 한 손이 세리아 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으응… 우리 둘이 준비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올래?”

세리아는 아마도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둘이서?

나는 왠지 울컥해서 소리쳤다.

“아냐, 지금 갈게!”

“…알았어.”

세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텐트 안에 들어가 숙면을 취했다.

물론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니 이번에도 불침번을 세웠다.

평소라면 내가 항상 정중앙에 서지만, 이번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껴 배치를 조금 바꿨다.

제렌 씨, 나, 아린, 유니, 세리아 순이다.

그가 내 동료들에게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가장 앞에 배치하고, 그 다음 순번을 내가 서기로 했다.

세리아는… 왠지 그와 거리를 두게 하고 싶었다.

내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했으면 좋겠지만.

불침번 순서를 발표하자 그와 세리아가 비슷한 표정을 지은 것도 괜히 신경쓰였다.

덕분에 그가 불침번을 서는 첫 시간대에도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보냈다.

신경이 쓰여서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이런, 깨어계셨군요. 괜찮습니까?”

“아, 괜찮아요…. 그냥 잠이 안 왔을 뿐이라….”

나는 나를 걱정하는 그에게 가볍게 손을 저으며 그와 교대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부 내 기우에 불과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유니가 피운 모닥불 앞에 앉아 사색에 잠겼다.

그렇게 5분, 아니 10분 쯤 지났을까.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여자 쪽 텐트에서 누군가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린?”

“용사님.”

살짝 놀란 얼굴을 보니, 지금이 누구 차례인지 알고 나온 건 아닌 듯 싶었다.

아마도 잠깐 볼일이라던가,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난 듯한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를 급히 다듬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우연이네요, 용사님. 용사님이 깨어계신 시간인 줄 몰랐어요.”

나 다음은 그녀인데, 내가 있는 줄 알고 나온 게 아니라면 제렌 씨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건가?

왠지 기분이 살짝 상했다.

“잠든지 얼마 안 지난 줄 알았거든요.”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나는 내가 괜한 의심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린은 그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줄 알았다는 투로 한 말이었는데, 내가 괜히 확대해석한 것이다.

나는 왠지 부끄러워져 나뭇가지로 괜히 불가만 콕콕 찔렀다.

“후후, 이렇게 된 거 같이 얘기나 좀 할까요?”

아린은 내 옆에 앉아 얼굴을 내 근처로 바짝 내밀었다.

바로 옆에서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때문인지, 내 얼굴에 열이 올랐다.

“어, 응….”

“고마워요.”

나는 나도 모르게 시선을 살짝 내렸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정말 모르나?

고개를 내린 내 시선은 무척이나 익숙하게 그녀의 가슴을 향한 상태였다.

역시.

그녀의 신관복 아래 아린의 젖꼭지가 속옷 없이 슬쩍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용사님? 어딜 보고 계시는 거죠?”

“아, 아냐! 미안!”

나는 부정과 사과를 동시에 하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린은 내 얼빠진 대답을 듣더니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용사님, 그거 아세요? 요즘 용사님 시선이 무척 엉큼하다는 걸….”

“…미, 미안….”

역시 다 알고 있었던 걸까.

가끔씩 몰래 훔쳐보긴 했는데, 역시 그녀는 다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럼요. 용사님을 바라보면 가끔 당황한 얼굴로 급히 고개를 돌리는 걸요.”

“윽….”

그녀에게 정곡을 찔리자 나는 뭐라 변명할 말이 없어 얼굴만 붉혔다.

“…궁금하신가요?”

“뭐?”

그녀는 대화와 대화 사이에 생기는 잠깐의 틈을 찌르고 들어왔다.

“제 가슴이… 그렇게 궁금하신가요?”

“…….”

당황해 반사적으로 부정할 뻔 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보고 싶다.

그렇지만 그 말을 어떻게 아린 앞에서 하겠는가.

변태라고 뺨을 맞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그럼… 보실래요?”

아린은 슬쩍 신관복 밑자락을 걷어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멍청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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