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신관] 멍멍이
이건 정신 나간 짓이다.
이건 미친 짓이다.
나는 내 생각보다는 훨씬 더 이성적인 상태였다.
그렇지만 이성적이기 때문에 더욱 괴로웠다.
지금 이 상황이, 전부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억지로 내 머리에 쑤셔 넣기 때문이다.
“손.”
세리아가 내게 말한다.
손.
마치 개를 훈련시키듯, 내가 그녀의 손 위에 손바닥… 아니, 앞발을 올려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녀는 생긋 웃고 있지만 가늘게 휜 눈매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은 차갑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다.
더럽고, 비천한 것을 보는 눈….
같은 동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다.
그녀의 속마음이 느껴진다.
음란하고, 변태 같은 년.
너 같은 게 신관을 자칭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세리아가 그럴 리 없다.
이건 내 착각이다.
자기혐오에 지나지 않는다.
“손.”
그녀가 딱딱한 목소리로 다시 말한다.
나에게 인간을 포기하고 개처럼 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개….
예배 시간만 되면 신도들이 나를 보며 머리를 숙이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되리여 그들 앞에서 개처럼 굴게 생겼다.
사실 그런 것보다는 용사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흐읏….”
왜, 왜 괴로운데 이렇게 기분이 좋지?
나는 홀린 듯 그녀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마치 얌전한 강아지처럼.
“오오… 정말 사람 말을 알아듣는구만….”
“그래도 이런 걸로는….”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댔다.
내 몸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나를 품평하고 있다.
말 잘 듣는 개, 얌전한 개, 순종적인 개.
다리 사이가 떨린다.
내 손을 그 사이에 넣고 진정시키고 싶다.
누가, 누가 제발 이 떨림을 가라앉혀줘…!
탁.
따뜻한 손길이 내 머리 위에 얹혔다.
“잘했어.”
나한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
세리아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맨날 성서를 외우라며 닦달하던 수녀님도, 내가 할 일을 다 해내면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포근함. 안심.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그럼 지금도? 지금도 나는 틀리지 않았는가?
슬쩍 고개를 드니 용사님이 보였다.
미묘한 얼굴.
마치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너 같이 더러운 년이 우리 파티에 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고개를 돌린 반대편에서 보이는 것은 제렌 씨.
용사님을 농락하고, 세리아를 타락시킨 장본인이다.
용사님의 적.
그렇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잘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마.
나를 보고 웃지마.
“아무거나 시켜보세요. 말을 잘 듣는 아이니까.”
세리아의 말이 내 정신을 다시 현실로 불러왔다.
그래, 지금의 나는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그녀 옆에는 모르는 사람이 서있었다.
마을 주민 중 하나겠지.
순수한 얼굴을 한 그녀가 나를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요, 당신은 저 둘과는 달리 나를 정말 개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위해, 나는 잠시 내 인간성을 접어두기로 했다.
“그, 그럼… 손!”
탁.
나는 그녀가 내민 손 위로 내 손을 겹쳤다.
“와, 와아….”
그녀가 기뻐한다.
나를 보고 잘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잘하죠? 다른 쪽도 해볼래요?”
“네, 네에… 손!”
탁.
다시 손을 올렸다.
어때요, 잘하죠?
그러니 저를 칭찬해줘요.
세리아가 그녀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나보고 뒷발로 서라는 건가요?
그 정도는 어렵지 않죠.
나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뒷발로 쪼그려 앉은 채 일어섰다.
원래 개가 두 발로 서는 것은 힘들지만, 내 앞발을 그녀가 쥐고 있으니 괜찮겠지.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패앵!
“어머, 미안.”
잠시 잊고 있던 그 남자의 짧은 허리띠가 순간 목을 졸랐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했지?
나에게 뒷발이 어디 있는가. 그냥 두 발이지.
개가 두 발로 서는 게 힘들어? 사람이 두 다리로 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왜 내가 정말 개처럼 행동하는 거지?
“와, 와아….”
“허어… 이것 참 신기하네.”
당황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그들의 감탄이 나를 옭아맸다.
조, 조금만….
조금만 더 해보자.
저들은 나를 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면 안 되잖아?
“어떠신가요?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하시지는 않나요?”
세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나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내 몸이 온통 낯선 이들의 그림자도 뒤덮혔다.
“정말 아무거나 시켜도 듣나?”
“누가 빨리 뭔가 시켜봐!”
그, 그렇게 흥분하지 않으셔도…
“엎드려봐!”
누군가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땅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렸다.
으, 으읏….
이러니까 기분이 이상한데….
“굴러봐!”
데굴데굴.
누운 채로 한 바퀴 굴렀다.
등이 따갑지만, 신체를 강화해뒀으니 상처는 남지 않으리라.
오히려 다칠 일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살짝 세게 굴렀다.
등을 짓누르는 뭉툭한 돌멩이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오오….”
“털도 부드러워 보이는데?”
누군가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남자. 모르는 남자가 나를 만지려고 한다.
“으, 으읏…!”
“만지지 마십쇼.”
탁!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제렌 씨가 그 낯선 이의 손을 걷어냈다.
“아….”
“잘 모르는 사람이 만지면 조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 그래…?”
“흠, 흠흠….”
나는 슬며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햇살을 등지고 있어서 그런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손을 뻗는다.
아, 날 쓰다듬어 주려는 거구나.
나는 살며시 그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지만, 따뜻한 감촉이 내 머리를 덮어주는 일은 없었다.
“크흠….”
의아해 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이고 있었다.
왜?
아직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는데?
아.
나 때문이구나.
내가 그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나한테 손을 대지 않기로 했으니까.
…이럴 때도 굳이 지킬 필요는 없는데.
살짝 아쉬웠다.
아니, 아쉬워?
내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에릭도 한 번 확인해볼래?”
사람들에 둘러싸인 와중에도 그녀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어? 나는 됐어….”
“괜찮아. 각오한 일일 테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양심이 콕콕 찔리는 것을 느꼈다.
용사님은 내가 그 죽은 남자인줄로만 알고 계실 것이다.
그 사람은 죽고 사실은 내가 그인 척 하고 있는데.
옆의 유니의 눈빛이 무언가 묘했다.
왠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한….
“멍멍아, 이리와!”
나는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갔다.
개는 두 발로 걸을 수 없으니까 네 발로.
“자, 에릭이랑 유니도 해봐.”
세리아는 마치 자기 개를 소개시켜주듯 둘에게 나를 선보였다.
아니, 딱히 틀린 건 아닌가.
지금의 나는 세리아와 제렌 씨의 개니까.
둘 다 난처한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저 둘은 적어도 눈 앞의 존재가 개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
내가 아린이라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나도… 소, 손.”
마침내 유니가 용기를 내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친구가 나에게 내리는 첫 명령.
아니, 명령을 내리는 관계를 친구사이라고 볼 수 있는가?
지금 나와 유니는 친구가 아닌 상하관계에 놓여있었다.
인간에게 복종하는 개와 개에게 명령을 내리는 인간.
지금의 나는 그녀보다 낮은 존재였으므로 그녀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후후, 유니랑 에릭 앞에서는 부끄럽나봐.”
세리아가 옆에서 쿡쿡 웃었다.
내 생각이 그대로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는 빨개진 얼굴을 가릴 생각도 못한 채, 얌전히 개처럼 앉아만 있었다.
“으음…? 뭔가 감촉이 익숙한데.”
“착각이겠지.”
그녀가 내 손을 만지며 의아하게 중얼거리자 나는 순간 들킨 줄 알고 도망칠 뻔했다.
이, 이런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미 세리아랑 제렌 씨는 알고 있지만…….
“에릭도 얼른.”
“…손?”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용사님.
저의 용사님.
당신마저 저를 개로 보시는군요.
당연히 들키면 안 되지만, 들킬 일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랬다.
“자, 멍멍아. 얼른.”
그렇지만 나는 아린이 아니라 멍멍이였다.
용사님, 용사님, 용사님….
그러나 그는 어색한 자세로 손을 내밀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 못 알아채는 게 정상이지.
그리고 그 편이 더 낫다.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면, 그건 용사님이 지금의 내 음탕한 모습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뜻이니까.
“흐읏….”
다리 사이가 떨렸다.
이렇게 축축한 걸 보니, 내 몸에 비라도 내린 걸까?
나는 여전히 유니에게 한 손을 붙잡힌 채, 다른 한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잘했어. 머리라도 쓰다듬어줘.”
그러자 용사님은 내 머리로 손을 뻗었다.
아….
스윽스윽.
아까 제렌 씨가 하지 못했던 것을, 용사님이 대신 해주고 있었다.
이걸로… 약간의 아쉬움을 달랬다.
“크흡… 흐흣….”
세리아가 나를 보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어지간히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녀는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왠지 울컥한다.
솔직히 그녀도 별로 잘난 건 없지 않는가?
맨날 자위나 하는 주제에… 아직도 우리들한테 들킨 줄은 모를 테지.
용사님을 배신하고 그 남자에게 알랑거리기나 하고.
정작 자기가 제일 열심히 그를 괴롭혔던 주제에.
그의 곁에 세리아 같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멍멍아, 너도 인사해야지.”
아.
그녀가 나를 부른다.
“멍! 해봐.”
“…….”
“안 짖으면 이상하잖아. 그치?”
나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빨리 개처럼 짖으라고.
꼴사나운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끝까지 개인 척을 하라고.
나는….
나는…… 아직 사람이다.
“…멍.”
“아핫.”
세리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건, 개의 울음소리를 흉내낸 것이 아니다.
그냥 개의 울음소리와 무척 비슷할 뿐인 인간의 말이다.
***
“수고했어, 아린. 다들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던데?”
그녀가 나를 일으켜세우며 싱글벙글 웃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게 끝나고 나니 죽을만큼 부끄러웠다.
“뭐, 고생 많았다.”
그는 어제부턴가 나에게 반말을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왠지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 나는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네.”
“흐응, 내 말은 무시했으면서.”
세리아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딱히 더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녀가 내 목을 감은 허리띠를 풀어주었다.
“콜록.”
“아팠어? 역시 허리띠는 조금 힘든가 보네.”
그녀가 내 목을 살살 문질렀다.
“흐읏… 돼, 됐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녀는 여자에게도 흥분을 느끼지 않던가!
설마 지금의 나를 보고 흥분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자, 옷 여깄다.”
“고, 고마워요….”
난 제렌 씨가 내민 옷을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와 그녀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굳이 숨어서 입고 싶진 않았다.
이미 둘 다 볼 거 다 보지 않았는가.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기도 했고.
다 입고나니 목이 따가워서 살짝 그 부위를 매만졌다.
역시 조금 쓸린 걸까.
하긴, 그렇게 대충 만든 허리띠가 목 같이 예민한 부위에 적합할 리가 없다.
다음에는 더 좋은 가죽으로….
“다음에는 더 좋은 가죽으로 준비해두지.”
“으읏….”
그가 내 마음을 읽은 것 같다.
“아, 이거 또 하고 싶은 거야?”
“아, 아니… 거든요….”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우물거리며 사이좋게 걸어가는 둘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