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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09화 (109/236)

〈 109화 〉 [짐꾼] 인간이 개가 되는 마법

“그럼 옷부터 벗어볼까.”

“흐읏….”

아린은 부르르 떨며 눈을 감았다.

손가락이 자꾸 옷자락 주변에서 머뭇거리자 나는 소리 나게 회초리를 휘둘렀다.

휘익!

“얼른.”

“으읏….”

아린은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옷을 벗기 시작했다.

세리아는 뒤에서 히죽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으으… 앗, 세, 세리아?”

속옷을 안 입고 있어 신관복만 벗고 곧장 알몸이 된 아린은 옷을 뒤에 내려놓으려다 세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세리아가 웃는 모습을 보고 다른 쪽으로 상상을 한 건지 벗은 옷으로 가슴을 가리며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그러니까, 내 쪽으로 다가왔다는 말이다.

“꺄아악! 보, 보지 마요, 이 변태!”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야?”

음, 미안하다 세리아.

나는 속으로 세리아에게 사과하며 내 눈 앞에서 흔들리는 그녀의 엉덩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때려달라는 듯 엉덩이를 내 눈앞에서 살랑거리며 흔들고 있었다.

다음에는 회초리가 아니라 손으로 때려볼까.

꽤 손에 착착 감길 것 같은데.

나는 자꾸만 드는 생각을 저편으로 쫓아냈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내 쪽으로 도망쳤다는 건 적어도 세리아보다는 나를 더 신뢰한다는 말 아닌가.

그녀의 이상성욕을 내가 채워준 탓인지 아니면 그만큼 세리아에 대한 오해가 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긍정적인 신호였다.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얼른 이리와. 그래야 마법을 쓴다니까?”

“여… 역시 제 알몸이 보고 싶었던 거죠…! 으읏, 저, 저를 보고 자위 소재로 쓰려고…!”

“뭐? 뭔 헛소리야?”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본 나는 적당한 시점에서 대화를 끊었다.

“장난 그만하고 슬슬 출발하자.”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아린이 슬며시 자기 가슴을 가리며 주변을 살폈다.

“…저기, 방금 든 생각인데 그냥 도착하고 나서 벗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미리 벗고 가는 편이 더 기분 좋잖아?

나는 그렇게 한 소리 하려다가 말았다.

“아린 너는 벗고 가는 걸 더 좋아하잖아.”

그러나 세리아는 나와는 달리 자제라는 것을 할 줄 몰랐다.

“무, 무슨…! 저는 어디까지나… 당신을 구하려… 구, 구하….”

“푸흡, 진심으로 하는 소리 아니지?”

안 그래도 새빨간 아린의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자, 출발하자, 아린. …음, 그러고 보니 이름도 하나 필요하겠네. 사람들 앞에서 아린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세리아는 잠시 멈춰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름이라, 확실히 필요하긴 하지.

그냥 개라고 부르기는 좀 아쉽다.

“에리는 어떨까?”

“아, 안 돼요!”

세리아가 장난스럽게 묻자 아린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에리라고 지으면 용사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챌 지도 모르지.

“생각나는 게 딱히 없는데, 그냥 멍멍이라고 부를게. 이거면 됐지?”

“그것도 좀….”

“그거 아님 에리야.”

“…마음대로 하세요.”

아린은 체념한 듯 고개를 홱 돌렸다.

“근데 말이야, 아린.”

“…왜요?”

세리아는 아린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재밌는지 계속 말을 걸었다.

“왜 두 발로 걷고 있어?”

“아….”

“슬슬 보인다. 저기 봐, 아린. 아참, 아린이 아니라 멍멍이였지?”

“…….”

아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입을 열 때마다 세리아가 사람 말 하면 들킨다고 구박을 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이상의 존엄성을 포기하느니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고 느낀 모양이다.

뭐, 이미 네 발로 걷는 시점에서 존엄성이고 나발이고 남아있지도 않지만.

어쩌면 들키지 않게 벌써부터 조심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엉금엉금.

그녀는 세리아의 움직임에 맞춰 양손과 무릎을 이용해 거친 돌바닥을 기어가듯 나아가고 있었다.

사실 상처는 어떡하나 살짝 걱정했는데, 이 문제는 아린이 스스로 자기 몸을 강화시켜 해결했다.

다칠지도 모르니까 그만둘까? 하고 살짝 언질을 주자, 당황하며 은근슬쩍 해결책을 제시하는 꼴이 퍽이나 우스웠다.

이쯤이면 누가 우리를 추궁하더라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아린이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멍멍아, 왜 아무 말도 안 해?”

“…….”

“후후, 사람인 걸 들킬까봐?”

세리아는 자기 손에 쥔 줄을 슬쩍 잡아당겼다.

꽈악!

내 허리띠가 아린의 목을 졸랐다.

“케헥! 아, 아파요…!”

“그럼 그만둘까?”

“…….”

세리아의 말에 아린은 곧장 입을 다물었다.

사실 지금 아린의 상태는 누가 봐도 발정난 암캐 그 자체였다.

젖꼭지는 지면을 향해 발딱 서있고, 가랑이 사이는 이미 축축해진 상태.

마음만 같아서는 마구 주무르고 싶지만 그녀와 한 약속이 있어 난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런 걸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조, 좋아하는 거 아니….”

“쉿, 정말 다 왔다. 이제 진짜로 사람 말하면 안 돼.”

마을 중앙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까지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는지 아린의 목에 땀이 흘렀다.

“뭐, 입 다물고 시키는 것만 얌전히 따라하면 별 일 없을 테니 안심하고.”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그녀의 기분을 생각해서 한 마디 해주었다.

“하앗, 하아….”

얼굴이 빨간 걸 보니 오히려 더 흥분한 것 같은데.

괜히 말해줬나.

“사람들이 볼 생각하니까 벌써 흥분한 거야? 진짜, 이런 추잡한 여자일줄 누가 알았겠어.”

“…흐으읏….”

아린은 소리 죽여 신음했다.

세리아는 그녀의 가슴을 살짝 괴롭히려 했지만 내가 눈짓하자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러니까 오해가 안 풀리지, 이 모자란 년아.

마을입구까지 기면서 다가간 아린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십 쌍의 눈동자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흐, 흐읏… 하악….”

바닥을 짚은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몸을 가릴 그 어떤 의복 하나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목에 걸린 내 허리띠 뿐.

누가 아린의 정체를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그 땐 정말 사회적인 자살이다.

내 허리띠를 가지고 진짜로 목을 매달아버릴지도 몰랐다.

나는 세리아의 충성심만큼이나 그녀의 마법도 신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안함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긴장하고 있는 건 아린만이 아닌 것이다.

“후후… 착하지. 저기까지 가서 쉬자, 응?”

그러나 세리아는 정말 일말의 불안도 없는지 아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모두에게 들릴 성량으로 말했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아린은 이 순간, 인간에서 개로 전락해버렸다.

그녀의 시선이 마을 사람들을 하나씩 훑다 용사와 마주친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용사.

그를 바라보던 아린의 손이 슬그머니 자기 가랑이 사이로 내려갔다.

“멍멍아.”

“케흑….”

세리아가 줄을 살짝 잡아당겨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자신도 모르게 야외 한복판에서 자기위로를 하려고 했던 아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무릎을 땅에 대고 몸을 일으켰다.

“흐읏… 후읏… 나, 나는 사람… 나는 사람….”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길래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린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녀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다.

나도, 세리아도.

우리가 보기에 아린은 그저 인간을 포기한 암캐일 뿐이었다.

마침내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의 말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조용….”

“…더러운 똥개….”

그녀를 비난하는 말이 들릴 때마다 그녀의 다리가 떨렸다.

그것이 흥분한 신호임을 눈치 채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욕을 들으면서 흥분하는 건가.

이미 지금 상황도 그녀에게 충분한 자극 같은데.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허리에 힘이 빠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손이 근질거리는 걸 애써 참았다.

“으음… 이 개가 그….”

촌장이 살짝 미심쩍은 눈을 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긴, 원래보다 조금 더 작긴 하지?

그렇지만 존이란 남자보다 아린이 더 작으니 어쩔 수 없다.

뭐, 그 정도야 우리가 우기면 되니까.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확인할 건가?

“흐음… 그렇군요….”

세리아가 대충 둘러대자 촌장은 별 의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처럼 쉽게 납득하진 못한 모양이다.

“그냥 죽여버리면 되잖아.”

“…들개 한 마리 따위….”

아린은 진심으로 느껴지는 살기에 다시 한 번 부르르 떨었다.

이번에는 흥분이 아닌 공포였다.

“흐읏….”

“걱정마, 멍멍아. 우리가 있잖아.”

세리아는 겁에 질린 아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아린의 표정은 다소 풀어졌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 괜찮은데.

정말 오늘 일은 앞으로 그녀의 운명을 크게 좌우하는 대사건이 되겠지.

나는 확신했다.

“여러분. 잠시 주목해주세요.”

세리아는 손뼉을 치며 마을 사람들의 입을 닫았다.

이목을 집중시킨 세리아는 사전에 상의한대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개를 죽인다고 죽은 놈이 돌아오겠는가? 사실 이 개도 일종의 피해자니까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자.

우리 모두는 착한 인간이니까 그 쯤 말하면 알아서 알아듣겠지.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나쁜 인간들이었는지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표정에서부터 지랄 말고 그 개 이리 내라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흐읏….”

“…….”

아린이 겁먹고 더욱 움츠리자 세리아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음, 이건 정말로 화난 표정이군.

설마 여기서 마법을 갈겨버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랬다가는 내 앞으로의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니 제발 좀 참아줘.

세리아는 마법을 갈기는 대신 조금 더 세련된 방식을 썼다.

바로 협박이다.

그녀가 얌전히 스태프를 쓰다듬자 사람들이 공손해졌다.

“…흠흠, 뭐, 그렇긴 하지….”

“마, 마법사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야….”

역시 협박이 최고라니까.

나한테 잘 배웠군.

세리아는 마을 사람들을 가볍게 제압한 뒤, 준비해왔던 그 대사를 꺼냈다.

“받아들이시기 어려우면 한 번 확인해보실래요?”

“…확인?”

누군가가 멍청하게 세리아의 말을 되풀이하자 세리아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네. 이 개는 지금은 무척 온순하답니다. 사람 말도 잘 듣죠. 이 개가 정말 위험한지 아닌지, 여러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세리아는 더욱 짙어진 미소로 아린을 돌아봤다.

아린은 바닥에 엎드린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세리아는 아린을 내려다보며 한 손에 그녀의 목줄을 쥔 채, 다른 한 손을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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