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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07화 (107/236)

〈 107화 〉 [짐꾼] 인간이 개가 되는 마법

아니,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반쯤 무너진 집을 조사하던 세리아는 그게 무척이나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지, 으스대면서 옆에 있던 용사를 설득했다.

우리의 멍청한 용사는 또 그녀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날 의심하는 상황에서도 저 말을 믿는단 말이야?

도대체 어디까지 멍청해지려는지….

얘기를 마친 세리아가 나가면서 나한테 신호를 보냈다.

할 말이 있다는 뜻.

“여기 화장실은 못 쓰겠죠?”

“음… 그냥 나갔다 오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그럼 잠시 갔다 오겠습니다.”

나는 적당히 화장실을 간다는 변명을 대면서 세리아를 따라 나섰다.

그래, 뭐라고 하는지 좀 들어볼까.

“에릭은 저희를 감시할 생각이에요.”

“뭐?”

내 얼굴을 보자마자 세리아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이 년, 타이밍 하나 잘 잡는군.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이러면 궁금해서 안 들을 수가 없네.

나는 순순히 그녀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줬다.

어차피 그녀는 이미 다 잡은 물고기나 마찬가지.

이제 와서 사소한 걸로 벌을 주네 마네 할 단계가 아니다.

“저번에 유니한테 들었는데, 정령이랑은 오감을 공유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그 힘을 빌리는 에릭도 똑같은 짓이 가능할 테고, 안 그래도 요즘 에릭이 주인님과 아린 사이를 의심하는 거 같아서….”

“이번 기회에 몰래 확인하려고 들 것이다?”

“네, 아마도요….”

흐음, 어쩐지 순순히 넘어간다 싶더니 그런 의도가 숨어있었나.

용사치고는 제법 머리를 굴렸다.

세리아가 미리 알고 있지만 않았더라도 그대로 그 놈에게 당했겠지.

“그래서, 왜 내가 그 개를 잡아야 하는데?”

“아, 아무래도 저희들과 다니는 걸 더 선호하실 거 같아서… 죄, 죄송합니다!”

세리아가 안절부절 못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그녀 생각이 딱히 틀린 건 아니다.

아직 손도 못 댄 유니나 용사 놈과 같이 있는 것보다는 둘과 다니는 게 훨씬 나으니까.

아마 내가 그 개를 안 봤으면 나도 그렇게 판단했을지 모르겠다.

그런 근육덩어리 괴물이랑 싸우고 싶진 않은데….

“괘, 괜찮아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주인님은 뒤에 빠져 계세요!”

“빠져 계세요? 내가 쓸모없는 새끼란 거야?”

“아, 아앗… 그런 뜻이 아닌데… 죄송해요!”

괜히 심통이 난 나는 세리아를 놀려주다 돌아왔다.

그래, 어차피 싸우는 건 둘이 알아서 하겠지.

이런 건 내 전문이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위로 삼으며 본격적인 수색에 참여했다.

***

“방향을 보십쇼. 아까도 말했지만, 이놈은 지금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어딘가 목적지가 있다는 말이죠.”

사실 모른다.

대충 적당히 그럴싸한 말을 뱉어내는 중이니까.

발자국으로 추적?

내가 사냥꾼도 아니고 그런 전문적인 기술을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이 대화를 용사가 음습하게 숨어서 듣고 있을 테니, 일하는 척을 하는 것뿐이었다.

“와아, 그렇군요.”

아린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순수하게 감탄한 듯 보였다.

하긴, 교회에만 틀어박혀 책만 봤을 이년이 뭘 알겠는가.

머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사회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아린은 그럴싸하게 말만 꾸며내면 쉽게 속아 넘어갔다.

의심을 품더라도 강하게 밀어붙이면 어쩔 줄 몰라하며 결국 받아들이고 만다.

처음 스트립쇼를 시켰을 때도 그랬고, 체벌할 때도 그랬다.

아마 선천적으로 마조히스트 끼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지만, 그녀의 본성이 순진하고 꼬드김에 약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후, 이럴 때 더 구워삶아야 하는데.

빌어먹을 용사 놈이 몰래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럼 누군가가 그 개를 기르고 있는 걸까요?”

“으음….”

몰라, 묻지 마.

우리가 지금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건, 마지막으로 납치당했을 것이라 추측되는 존이라는 남자의 노모가 너무 시끄럽게 굴었기 때문이다.

그 꼬맹이가 말해주던 존이란 놈과 아마 같은 사람이겠지.

꼬맹이 의견 같은 건 상관없지만 시체라도 발견하면 잘 묻어줄 생각이었다.

뭐, 나도 완전히 쓰레기는 아니니까.

가끔은 착한 짓도 해야 더 나쁜 짓을 해도 괜찮을 만큼의 덕이 쌓이는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세리아의 조언을 구하려고 무심코 시선을 뒤로 돌렸다.

찌꺽찌꺽.

그녀는 치마를 내리고 아린 몰래 자위 중이었다.

“…….”

맞다, 얘 바쁘지.

“참, 세리아라면 뭔가 알지도 모르….”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죠! 이걸 보시겠습니까?”

나는 세리아에게 시선이 돌아가려는 아린의 시야를 다시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후, 이래서야 누가 상전인지.

내가 허락했다지만 참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었다.

에릭이 지금 사용하고 있을 정령의 시야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시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인간처럼 세밀한 구분은 못 한다고 했던가. 잘 이해는 안가지만 다르긴 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그 시야는, 당연히 우리한테는 안 보여도 열심히 흔적을 찾아주고 있는 우리 옆의 정령에게서 빌린 시야다.

쑤욱!

우리의 걸음에 맞춰 그 개가 지나간 흔적들이 천천히 위로 솟아올랐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반대다.

위로 솟아오른 흔적들을 따라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이다.

수색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우리 셋이서 어떻게 도망친 개를 찾겠는가.

당연히 흙의 정령을 사용해서 대신 흔적을 찾는 수밖에.

용사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우리 옆에 정령을 붙여둔 뒤, 시야와 청각을 공유해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서 세리아는 자기가 대신 시선을 끌겠다고 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물어봤더니, 자위로 시선을 끌겠다는 참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세리아다운 대답이라 픽 웃으면서 허락해줬다.

얼핏 보니 저번에 말했던 용사 노예화 계획을 진심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를 응원하며 나는 다시 정신을 앞 쪽에 집중해 타이밍을 쟀다.

아까보다 흔적이 발견되는 간격이 늦어지고 있다.

정령이 제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용사가 정령으로 딴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세리아가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신관님.”

“네, 네?”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속옷… 안 입으셨군요.”

“힉….”

그녀는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움찔하더니 볼을 살짝 붉혔다.

들켰다고 좋아하는 것 봐라.

이미 신관이라기 보단 변태에 더 가깝다.

“또 벌을 받고 싶으신 겁니까? 대체 왜 그렇게….”

“죄, 죄송해요….”

물론 표정은 전혀 죄송한 표정이 아니다.

은근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데, 내가 이걸로 벌을 줄지 안 줄지를 가늠하는 표정이다.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하죠. 지금은 일에 집중해야하니.”

“……네에.”

어딘가 아쉬워 보이는 표정으로 아린은 대답했다.

그렇게 더 걷다보니 우리는 마침내 그 검은 개와 조우하는데 성공했다.

뭐, 목적지? 주인?

그딴 건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자기 혼자 바닥에 쭈그려 앉아있는 채였다.

“제, 제렌 씨… 저게 그….”

“아마 맞을 겁니다.”

하여간 더럽게 크네.

좀 전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다.

나는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그 압박에 살짝 떨었다.

제길… 왜 이렇게 떨려?

“일단 세리아를….”

번뜩!

아린이 세리아를 부르려는 순간, 그 개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히익…!”

아린은 당황하며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고, 그 행동은 아무래도 이 개를 자극시킨 것 같았다.

다다다닷!

개가 적의를 보이며 순식간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나는 급히 그녀를 밀치고 나도 옆으로 피했다.

“조심해!”

“꺄앗!”

쿠웅!

“주, 주인님…!”

세리아가 당황해 나를 큰 소리로 부르고 말았다.

이런 멍청이! 여기서 그런 호칭으로 부르면 어떡해!

“어, 음…?”

아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세리아의 말을 문제 삼을 틈이 없었다.

개의 흔적을 나타내던 솟아오른 흙무더기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정령이 사라졌나…?

“감히!”

세리아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스태프를 그 개에게 겨누었다.

“크르르….”

개는 자기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세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위협적으로 짖었다.

몸집이 사람만하다보니 생각보다 무서웠다.

“감히… 이 개 같은 게…!”

세리아는 분노가 눈에서 흘러나올 듯 거센 표정으로 주문을 영창했다.

타다다닷!

개는 다시 그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러면 늦을 거 같은데?

나는 급히 스태프를 꺼내 개를 조준했다.

“저, 정화를!”

그러나 나와 세리아가 주문을 다 마치기도 전에 아린이 다급히 소리쳤다.

“키, 키르륵…!”

주르륵.

그녀의 짧은 기도가 마치자, 개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역시…! 이거 저주에요!”

아린은 자기가 일으킨 결과를 보고 본인도 놀랐는지 벌떡 일어났다.

“새카맣길래 혹시 싶었는데…! 상대의 모습을 강제로 변형시키는 저주에요! 사악한 이교도들의 주술이죠!”

“끼잉… 낑… 아, 으윽….”

주르륵, 주륵.

개의 몸은 뼈가 보일 정도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개의 뼈는 하얀 색이 아니라 살색….

“어?”

“앗?”

여자 둘이 얼빵한 소리를 냈다.

“뭐야.”

아니, 이젠 셋이다.

우리 셋은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린 채 개 사이에 들어있던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사람만큼 거대했던 개의 정체.

그건 다름 아닌 진짜 사람이었다.

“…어?”

아린은 할 말을 잃고 눈을 깜빡였다.

남자 같아 보이는 그 사람은 녹아내린 개의 물웅덩이 위에 기절하듯 쓰러져있는 상태였다.

“…죽었네요.”

세리아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 생사여부를 확인했다.

“주, 죽었다구요?”

아린은 당황하며 그 시체와 세리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응. 형체는 남아있지만 피부가 흐물흐물한데? 정화 성능 좋네, 아린. 안에 있던 사람까지도 녹여버리고.”

“네…? 그, 그럴 리가….”

세리아가 은근히 비꼬자 아린은 소스라치게 놀라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도 슬쩍 다가가 봤는데, 사람 피부가 뱀 허물마냥 흐물흐물했다.

“개가 죽을 때처럼 주르륵하고 흘러내리는데? 이거도 네 정화인가 뭔가 하는 그거 때문 아니야?”

“아니에요! 그건 사람에게는 아무 효과 없다구요!”

아린은 세리아의 말에 버럭 화를 냈지만, 그녀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녹아내린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이, 이게 무슨…. 끔찍한 저주에 당한 것 같네요.”

그리고 그녀가 내린 결론은 그 남자는 인간일 때도 무언가 저주에 걸린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냥 자기 실수를 변명하고 싶어서 하는 소리가 아닐까 싶었지만, 여기서 그녀보다 이런 저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자기 몸이 괴물로 변해가는 저주를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이 그 존이란 분이겠죠. 오늘까지만 해도 그를 본 사람이 있었으니, 아마 사람과 괴물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린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흠, 그러니까 결국 그 개한테 납치당한 것 같다던 그 남자가 사실 범인이었다는 거 아냐.

뭐야, 별 거 없네.

뭔가 더 얽혀있는 것 같지만, 그건 내 역할도 아니고 아무튼 개는 잡았으니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그렇지?

“…그런데.”

아린은 잠시 그 시체를 더 바라보다 우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한테 하실 말씀들 있지 않나요?”

세리아가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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