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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06화 (106/236)

〈 106화 〉 [짐꾼] 인간이 개가 되는 마법

“내일 탈출한단 말입니까?”

아세일라에서 용사의 탈출 계획을 들은 건 아린과 두 번째 체벌 시간을 갖고 숙소로 돌아온 이후였다.

그녀와 나의 관계를 슬슬 의심하기 시작했는지 용사의 눈동자에서 적의가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순순히 계획을 나에게 설명해준 건 나도 일단은 동료로 취급해주고 있다는 말이겠지.

“네. 사실 좀 더 일찍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그랬다가는 들킬 위험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용사가 시선을 슥 피하며 그렇게 변명을 했지만, 이미 나 빼고 다른 년들한테는 미리 말했다지 않았는가.

결국 나에게 미리 알려주기 싫었다는 말이다.

내가 좀 밉긴 했나보네.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래도 이 용사 성격 상 나를 완전히 무시한다거나 없는 사람 취급은 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 직전에라도 알려줬겠지.

자기도 찔리는 건 아는지 시선을 피하고는 있는데, 이걸 건드려볼까?

뭐, 여기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흐음… 조금 갑작스럽네요. 그래도 뭐, 용사님의 판단을 믿겠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으셨겠죠.”

“…고마워요.”

“뭘요. 그래서 정리하면 내일 그 수녀 사천왕이 와서 우리를 얌전히 내보내주는 거 맞습니까?”

사실 이게 제일 이해가 안 갔다.

왜 우릴 그냥 보내주지?

같은 사천왕인 루엘라는 우리를 붙잡아두려고 안달이던데, 왜 이 년은 몰래 풀어주려 하는가?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누가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제안이었지만, 이 파티는 그런 제안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창살 없는 감옥.

이대로 더 갇혀있다가는 평생 여기에 뿌리내린 채 살아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뭐,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용사는 그런 꼴을 절대 못 참겠지.

“음, 그래서, 그… 내일 바로 나갈 건데, 혹시 해야 할 일이 있다거나… 오늘도 늦게 오신 걸 보니 뭔가 일이 있으신 것 같던데….”

뭐라는 거야?

갑자기 그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자꾸 나를 흘끔 거리며 바라보는 게 무언가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물어보십쇼. 뭘 그렇게 말을 돌려합니까?”

“…그, 딱히 이상한 의도에서 묻는 건 아니지만… 호, 혹시 뭐하다가 오셨… 나요?”

크흐흐, 그렇군.

내가 아린이랑 뭘 하다가 같이 들어왔는지 궁금했던 모양이지?

엉덩이 찰싹찰싹 때리고 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뭐… 아린 아가씨를 만난 건 정말 우연입니다만, 저는 섹스하다 왔죠.”

“…네?”

“여기 널린 게 창녀들인데, 안 해보셨습니까? 질펀하게 박아대다 보니 그냥 하루가….”

“와악… 돼, 됐어요!”

이런 얘기를 못 견디는 건 아린이랑 똑같군.

나는 그렇게 은근슬쩍 화제를 넘기며 아세일라에서의 마지막 밤을 넘겼다.

루엘라가 도시를 잠시 비운 틈을 타 세라가 우리 모두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내보낸다.

그럼 우리는 열심히 도망쳐서 이 도시의 진상을 바깥에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득밖에 없는 그녀의 제안.

나뿐만 아니라 다들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숙소에 나타난 세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후후… 다들 내려왔으니 출발하죠.”

나는 늦잠을 자다가 용사가 깨워 내려왔기 때문에 다소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아침에 날 부르려면 적어도 세리아가 직접 와서 깨워야할 것 아닌가?

내가 세리아를 슬쩍 바라보자 그녀가 미안한지 고개를 슬쩍 숙였다.

“너무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 마요. 용사가 그녀를 막고 올라온 거니까.”

출발하려고 다들 어수선한 틈을 타 세라가 속삭였다.

“당신을 의심하는 거 같던데… 괜찮아요?”

“흐, 이 정돈 의심의 축에도 못 끼지.”

세리아를 처음 뺏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귀여운 축이다.

나한테 막 소리까지 고래고래 지르지 않았던가.

그 뒤로 겨우 의심을 좀 풀었나 싶더니만 역시 자기 여자 뺏기는 일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게 빠르다.

그렇게나 예민한 자기 직감을 본인이 못 믿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문제지만.

“후후, 역시… 남자라면 이 정도 대범함은 갖춰야죠.”

“갈아탈 거라면 언제든지 받아주지.”

“어머, 당신보다는 마왕님이 더 대범하거든요.”

세라는 키득거리며 자리를 떴다.

그나저나 이 여자와도 여기서 이별인가.

내 여자가 될 년은 아니지만, 나름 재밌긴 했다.

그 속마음을 좀 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뭐,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

그녀가 사천왕으로 남아있는 한 언젠가는 용사와도 대적하게 될 테니.

지금은… 글쎄, 왜 우리 편을 드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녀에 대해서는 결국 도시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약간의 힌트는 얻었다.

잠든 공주.

도시 앞에서 세라까지 속이고 우릴 기다리던 루엘라에게, 세라는 잠든 공주를 위해서라고 루엘라를 설득했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막으려고 기다리던 루엘라가 군말 없이 보내준 걸로 봐서는 둘과 꽤 깊은 관련이 있는 년 같단 말이지.

혹시 다른 사천왕이라던가?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내 추측을 들은 세리아는 헥헥 거리는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어지간히 무거운가보지?

나는 그것보다 몇 배나 더 무거운 짐을 하루 종일 들고 날랐다.

이 정도는 약과야, 임마.

“그렇게나 적대적이었던 루엘라가 저희를 그냥 보내줬으니, 그 말은 곧 루엘라 입장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일 테고. 마왕에게 충성하던 그녀의 태도를 봤을 때 아마 마왕 측 인물일 확률이 높겠죠. 저도 그 외의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는 걸요.”

힘들어하는 것 치고는 말이 술술 나오는데?

아직 덜 힘든 모양이다.

“그래? 알았다. 하는 김에 이것도 좀 들고 와.”

“…네?”

“체력 기른다 생각해.”

“네….”

세리아는 무거워진 짐에 울상을 지었다.

그러게 평소에 잘했어야지.

이게 다 업보다.

***

아세일라에서 탈출해 다음으로 들린 마을.

그 곳은 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어느 촌동네였다.

세리아 말로는 아세일라의 진상을 최대한 빨리 전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마을로 잡았다는데, 세상에 그런 큰 도시와 가장 가까운 마을이 이런 촌구석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 이쪽으로 오세요….”

다람쥐가 생각나는 쪼그마한 여자애가 덜덜 떨면서 날 자기 집으로 안내했다.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구만.

딱 오해받기 쉬운 모습이지만, 사실은 그냥 여기가 시골이라 변변찮은 숙소 하나 없어서 이런 거다.

손님인 우리가 머물 곳이 필요는 하니까 그냥 방 남는 집에 우리를 한 명씩 배정한 것.

이름도 모르는 이 여자의 집은 참 허름했다.

이런 집에 용케도 방이 남네.

“아… 동생이 며칠 전에 죽어서 방이 비거든요….”

“…그, 그래.”

시발 괜히 물어봤네.

분위기만 존나 어색해졌다.

“그, 그래도 용사님들이 잡아주러 오신 거죠?”

“응?”

뭐를?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 촌장이 뭐라뭐라 했던 거 같은데.

사실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 같아서 안 들었다.

“음, 그렇지.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좀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해주겠어?”

“네, 네!”

다행이다.

생긴 것만큼이나 멍청해서 잘 넘어가는군.

어차피 용사가 이런 일을 그냥 지나칠 리도 없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잡을 것도 아닌데, 뭐 어때.

그녀가 말하기를, 요즘 이 동네에 검은 개 한 마리가 사람들을 물어죽이고 있단다.

자기 동생도 그 개에게 당했다고.

고작 들개 한 마리 가지고 이 난리인가? 싶었지만 그녀의 말로는 그냥 개들과는 다르다고 했다.

“지, 진짜로 커요! 막 근육도 이따만 하고….”

역시 애는 애인 모양이다.

하긴, 애한테는 충분히 개도 커 보일 수 있지.

“용사가 고작 개 한 마리한테 질 리 없잖아. 안 그래?”

“그, 그렇죠, 역시! 그런데도 존 오빠는 막 아니라고….”

“그게 누군데?”

얘기 나누다보니 좀 귀엽네.

그렇게 어린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을 주고받다보니 무슨 꼬맹이랑 대화하는 것 같다.

“옆집에 사는 오빤데, 자꾸 막 저한테 도망치라는 둥 이상한 소리만 해요!”

“크흐, 고작 개한테 겁먹고 너 같은 어린 애한테 도망치라고 한다고?”

“저, 저 애 아니에요! 그리고 진짜 무섭다니까요!”

“그래, 그래.”

그렇게 적당히 애랑 놀아주며 뭐 할지를 고민하던 중, 집 밖에서 우당탕 거리며 무언가 박살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아… 또 저러네요. 존 오빠네 집인데, 요즘 자주 저래요.”

저게 일상이라고?

아니, 누가 들어도 존나 이상한 소리 같은데.

나는 그대로 앉아있긴 좀 찜찜해서 문을 살짝 열고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지끈!

그와 동시에 옆집의 문이 박살나더니 집이 그대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니, 뭔…”

집을 반쯤 박살내고 뛰쳐나온 것은 검은 개, 그것도 무척이나 큰 검은 개였다.

아니… 뭔 놈의 개가 사람만 해?

그 전에 이걸 개라고 부를 수 있나?

개라기보다는 늑대… 아니, 동물보다는 몬스터에 가까운 놈이었다.

사람만큼 큰 몸집에 저 위압적인 근육. 한 대만 맞아도 바로 골로 간다.

눈동자도 피처럼 새빨간 게 꼭 눈동자가 아니라 핏물이 뭉친 것 같았다.

“크르르….”

그 개는 나를 바라보더니, 별 관심이 없었는지 도시 밖으로 재빨리 도망갔다.

순간 무서워서 쫄았지만, 그건 평생 비밀이다.

“무, 무슨 일이에요?”

그제야 이 멍청한 년이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고 고개를 내밀었다.

“꺄악! 지, 집이…!”

“놀라는 건 이따가 하고 일단은 촌장인지 뭔지한테 빨리 얘기하고 와.”

툭.

내가 그녀를 집 밖으로 툭 밀자 그녀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촌장 집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음. 좋아.

나는 그녀가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의자에 앉았다.

이제 촌장은 용사한테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빌겠지.

그럼 용사는 어쩔 수 없이 그 괴물을 잡으러 나갈 것이다.

뭐 나야 평소처럼 뒤에서 숨어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설마 사천왕도 잡은 용사가 고작 이딴 놈한테 지겠는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불쾌했지만, 이미 그 정도는 익숙해진지 오래다.

어차피 이건 피할 수 없는 일.

용사란 놈 주변에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면 그게 용사겠는가?

나는 잠깐의 휴식을 음미하며 잠시 쉬기로 했다.

쉬고 있다가 용사가 출발하면 그 때 따라가야지.

언제나처럼 그 뒤에 숨어서 안전하게 말이다.

“그럼 아린과 세리아가 그 개를 쫓는 거지?”

그래야 했는데.

“응. 그리고 제렌 씨도.”

나는 왜 들어가는데?

난데없는 세리아의 배신에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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