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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05화 (105/236)

〈 105화 〉 [용사] 검은 개

“생각보다 얌전한데?”

“거, 다 저주 때문이었다잖아. 이젠 그냥 똥개지, 똥개.”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한 소리씩 했다.

느릿느릿하게 걸어 들어오는 검은 개.

속은 사람이라고 했으니, 저 말도 다 들리겠지.

나라도 저런 말을 들으면 상처 받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밝히면 안 되는 걸까?

문득 그 개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

개가 눈에 띄게 머뭇거렸다.

“착하지. 저기까지 가서 쉬자, 응?”

세리아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긋 웃었다.

아니, 속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사람이 아니라 정말 개 취급하는 듯 한 모습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저, 저리 보여도 사실은 사람이란 거지? 으음… 조금 그렇다.”

유니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들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마을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끝까지 개인 척을 하는 수밖에.

…그렇지만 정말 이게 맞는 걸까?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도무지 사라지지를 않았다.

세리아의 말을 들은 개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 동작 하나하나가 개보다는 사람에 가까워보였다.

“으음… 이 개가 그 문제의 개인 건 맞습니까?”

너무 얌전한 탓일까, 마침내 중앙 광장에 도착한 촌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세리아와 제렌 씨에게 물었다.

“그럼요. 저희가 직접 싸웠는데요.”

“흐음… 정말 소문과는 많이 다르군요. 이게 다 저주 때문이라니….”

촌장의 표정은 비교적 덤덤했다.

그에 비해 마을 사람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발길질이 나갈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과, 관심어린 눈동자로 개를 바라보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아마 전자는 개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 후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 정도가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개가 된 그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어쩌면 이건 그 나름대로의 속죄 같은 것이 아닐까.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결국 사람들을 죽인 것은 그가 맞으니까.

자기도 피해자라는 동정을 받기 보다는 순순히 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거나, 뭐 그런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대단해보였다.

“으음…?”

개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니가 이상하다는 듯 소리를 냈다.

“왜 그래?”

“그 존이란 사람… 남자 아니야?”

“그렇겠지?”

이름부터 남자 이름이고, 그 노모도 자기 아들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남자 아닐까?

굳이 이런 걸 묻는 유니의 의도를 모르겠다.

“그런데 왜… 아냐. 생각해보니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래?”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혹시나 싶어 자세히 봤지만 딱히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는 검은 개였고, 지금 무척이나 겁에 질려있었다.

“…그냥 죽여 버리면….”

“어차피 들개 하나 따위….”

주변에서는 이런 얘기까지 돌고 있는 판국이었다.

아마 그도 이 얘기를 들어서 이렇게 겁에 질려있는 것이리라.

“여러분. 잠시 주목해주세요.”

세리아가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다.

마을 사람들의 눈동자가 그녀와 그녀 옆의 개에게 쏠리자, 개는 끼잉거리며 주저앉았다.

“이 개는 저주를 받고 괴물이 되어 여러분들의 마을을 덮쳤어요. 여기 그 피해자들도 많으실 텐데 당연히 밉겠죠. 그렇지만 생각해보세요. 이 개를 죽인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요?”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물론 좋은 쪽은 아니고, 굳이 표현하자면 ‘지가 뭐라고 우리 일에 참견이지?’ 하는 얼굴에 가까워보였다.

그래, 생각해보니 우리가 설득한다고 쉽게 말을 들을 사람들은 아닐 텐데.

어차피 우린 외부인 아닌가.

무언가 좋은 생각이 있는 거겠지, 세리아?

갑자기 아린 생각이 났다.

어쩌면 아린이라면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신관이 하는 말이라면 사람들도 조금 더 진지하게 고려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개의 정체가 비밀이라 마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다.

어?

근데 애초부터 아린이 데리고 들어왔다가 나가면 되는 문제 아닌가?

잠깐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세리아가 그런 사실도 모를 리 없으니 아마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세리아가 어떻게 하려나 살짝 걱정이 됐는데, 그녀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굳이 더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슬쩍 자기 스태프를 손에 쥐었을 뿐이다.

“…흠흠, 뭐, 그렇긴 하지….”

“마, 마법사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야….”

아니, 이거 협박 아니야?

나는 살짝 황당해져 그녀를 바라봤는데, 세리아는 살짝 웃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불안해하시는 것도 이해해요. 믿기 어렵겠죠.”

세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한 번 확인해보실래요?”

“…확인?”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세리아의 입가에 멀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네. 이 개는 지금은 무척 온순하답니다. 사람 말도 잘 듣죠. 이 개가 정말 위험한지 아닌지, 여러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말한 세리아는, 고개를 돌려 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

개가 잠시 세리아를 바라봤다.

세리아는 생긋 웃으며 다시 말 했다.

“손.”

개가 계속 머뭇거리다가 세리아가 다시 입술을 달싹일 때 쯤 황급히 자기 손을 세리아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오오… 정말 사람 말을 알아듣는구만….”

“그래도 이런 걸로는….”

마을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아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영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이다.

세리아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가까이 와서 확인해보시죠. 얼마나 말을 잘 듣는데요.”

그래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세리아는 한 명을 직접 지목했다.

그녀는 인파 속에 서있는 한 청년을 가리키려는 것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방향을 살짝 틀어 그 옆에 서있는 여성을 가리켰다.

우연히 그 타이밍에 맞춰 제렌 씨가 헛기침을 한 것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을 것이다.

상관없겠지?

“이리 와서 확인해보시겠어요?”

“어? 저, 저요?”

어리숙하게 생긴 여인 하나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옆에 있던 청년은 남편인지 연인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개에 다가가는 것이 불안한지 주먹을 꾹 쥐고 있었다.

“아무거나 시켜보세요. 말을 잘 듣는 아이니까.”

그러자 개가 세리아를 바라봤다.

“할 수 있지?”

개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와 유니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아무 거나 시켜봐요.”

“그, 그럼… 손!”

세리아가 눈치를 주자 그 여성은 주저하다 쪼그려 앉아 세리아와 똑같은 걸 시켰다.

개는 아까보다는 더 빠르게 그녀의 손바닥 위에 손을 올렸다.

“와, 와아….”

“잘하죠? 다른 쪽도 해볼래요?”

“네, 네에… 손!”

살짝 자신감을 얻은 그녀가 한 번 더 소리치자 개는 남은 앞발도 그녀의 다른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일어나 봐요.”

세리아의 말에 그녀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자연스레 개도 같이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켰는데, 도중에 세리아가 쥔 목줄의 길이가 짧아 덜컥하고 개의 목이 걸렸다.

패앵!

“어머, 미안.”

세리아는 순순히 사과하며 줄을 풀어주었다.

“와, 와아….”

“어떻게 저렇게 안정적으로 서있을 수 있지?”

“허어… 이것 참 신기하네.”

그들은 뒷발로 무게를 지탱한 채 꼿꼿이 서있는 개가 신기했는지 감탄을 표하기 시작했다.

“어떠신가요?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하시지는 않나요?”

세리아의 그 말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은 하나둘 그 개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시키기 시작했다.

“엎드려봐!”

엎드리라고 하면 개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구, 굴러봐!”

구르라니까 데굴데굴 한 바퀴 구르기도 했다.

“오, 오오….”

사람들은 슬슬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가끔 손을 대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인지는 몰라도 그런 경우는 제렌 씨가 엄격하게 제지했다.

그들이 개와 재밌게 노는 동안, 세리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때? 이정도면 잘 먹힌 것 같지?”

“아, 세리아… 그, 고생했어.”

일단은 그녀에게 위로를 건넸다.

아무튼 저 개와 싸웠던 건 그녀 아닌가.

“응, 고생했어 세리아!”

“저기, 그런데 아무래도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습을 곁눈질하며 말을 흐렸다.

그들은 개를 둘러싸고 재롱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옆에서는 제렌 씨가 팔짱을 끼고 그들이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나 감시했다.

누군가 개에게 손을 뻗으려하면 말렸는데, 특히 배를 만지려고 하거나 꼬리를 만지려는 사람들이 주된 제지 대상이었다.

꼬리는 사람으로 치면 엉덩이 쪽이려나.

존이라는 사람도 남이 그렇게 자기 몸을 만져대면 수치스러워할 테니 그러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에릭도 한 번 확인해볼래?”

“어? 나는 됐어…. 사, 사람이잖아.”

뒷말은 소곤거리며 말했다.

세리아는 그말을 들으니 웃음을 터뜨렸다.

“아, 미안. 그렇지 참. 괜찮아. 각오한 일일 테니까. 멍멍아, 이리와!”

그 말을 들은 개가 움찔했다.

“여러분, 이제 확인은 이쯤하면 됐겠죠?”

세리아가 방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아마 또 그녀가 스태프에 손을 올리고 있어서가 아닐까.

…어째 용사의 동료라기보다는 악당 같은 모습이다.

개는 눈치를 보더니 내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자, 에릭이랑 유니도 해봐.”

“으음….”

나와 유니는 시선을 교환하며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그렇지만 세리아는 우리가 무언가 할 때까지 계속 기다릴 것만 같은 분위기라 결국 유니가 먼저 나섰다.

“그럼 나도… 소, 손.”

흠칫.

그동안 사람들 앞에서 잘만 재롱떨던 개가 지금은 왠지 망설이는 것 같다.

“후후, 유니랑 에릭 앞에서는 부끄럽나봐.”

세리아는 지긋이 개를 바라봤다.

그러자 개는 세리아의 시선을 피하더니, 마지못해 한 손을 탁 올려놓았다.

“으음…? 뭔가 감촉이 익숙한데.”

“착각이겠지. 그보다 에릭도 얼른.”

“…손?”

순간 나와 개의 시선이 맞았다.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자, 멍멍아. 얼른.”

세리아가 채근했다.

그 개는 한참 동안이나 나를 바라보더니, 마침내 턱하고 남은 앞발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잘했어. 머리라도 쓰다듬어줘.”

나는 그녀의 말에 홀린 듯 개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개가 좀 놀란 듯 했지만, 내 시선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스윽스윽.

머리를 만져주자 왠지 개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개라서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왠지 그러고 있는 것 같았다.

“크흡… 흐흣… 아, 미안.”

세리아는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애써 웃음을 참았다.

“멍멍아, 너도 인사해야지. 멍! 해봐.”

“아, 아니, 세리아, 그런 것까지는 안 해도….”

나는 당황해서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시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못 들었네.”

“혹시 문제가 있나?”

그러자 주변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확실히 개는 마을 어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걸 문제 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감정이 풀린 것 같았고, 풀리지 않은 사람들도 세리아의 스태프를 보고서는 아무 말 안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들은 그냥 궁금해 할 뿐이었다.

정말 평범한 개라면 짖을 줄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안 짖으면 이상하잖아. 그치?”

세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아니라 개한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개는 애처롭게 나와 세리아를 바라보더니 마침내 눈을 감았다.

“…멍.”

“아핫, 이거 봐. 말도 잘 하네, 그치?”

“어, 응….”

나는 왠지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그 개는 마을을 떠났다.

누군가의 배웅과, 누군가의 미움을 받으면서.

아린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10분이 지난 뒤였다.

그녀는 꼭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목에 쓸린 상처를 매만지고 있었다.

어찌된 거냐고 물어도 그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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