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용사] 검은 개
아세일라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우리 고향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시골 마을이었다.
조금 더 시설이 좋은 곳으로 가려면 며칠이나 더 걸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이 사태를 알리기 위해 그냥 이 마을에 들리기로 했다.
“들개 말입니까?”
“예, 그것도 보통 들개가 아니랍니다. 덩치가 무슨 사람만 하다는군요. 벌써 마을 사람들이 반이나 죽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뭐, 이건 과장이겠지만 그만큼 많이 다치거나 죽었단 말이겠죠.”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필이면 이 마을에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최근 그 마을에 들개가 한 마리 출몰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고작해야 들개 한 마리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상인들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의 말을 조합하면 이 문제의 들개는 사람만큼 거대하고 생긴 건 무슨 악마처럼 검고 붉은 눈을 지녔으며, 나무도 단번에 베어버릴만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였다.
아세일라 영주에게도 토벌을 요청했지만 들개라는 말에 비웃음만 사며 쫓겨났다고 했다.
“너무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마.”
세리아가 멀어져가는 상인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으응? 왜?”
“저 상인도 직접 보고 한 얘기가 아니잖아. 어느 정도 과장된 채로 얘기가 돌고있을 가능성이 높아. 애초에 상인들 말대로라면 들개라기보단 몬스턴데, 그랬으면 처음부터 들개라고 부르지는 않았을걸.”
나도 궁금했던 부분을 유니가 대신 물어봐준 덕분에 나는 티도 안 내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세리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상인들의 묘사대로라면 그것과 마주했을 때 몬스터라고 생각하지 들개라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그런 들개가 어딨다는 말인가?
“그리고 목격담도 거의 없어. 인명 피해나 기물파손 같은 간접적인 정황이 대부분이잖아. 아마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심이 붙어 더 과장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지.”
“그럼 이대로 쭉 가도 문제 없다는 거지?”
중요한 건 이거였다.
그래서 이 수상한 소문이 도는 마을에 들리느냐 마느냐.
세리아는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면서 우리를 안심시켰다.
“어쩌면 들개가 아니라 마물일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겸사겸사 마물도 잡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아린은 마을 사람들이 걱정되는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양손을 모은 채 가슴에 꾹 누르고 있었는데, 그때문에 옷이 눌려 가슴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작은 흔적이 둘 보였다.
“…으, 응. 괜찮은 것 같아. 유니 생각은 어때?”
대체 요즘 왜 저러는 거지?
처음에는 착각이겠거니 싶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쯤 되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아무래도 아린은 요즘 속옷을 안 입고 다니는 것 같다.
하필이면 시기도 시기인지라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거기서 공연을 하고 새로운 성벽에 눈을 떴다던가….
아니, 아린은 그 누구보다도 신실한 신관이다.
그녀에게 그런 이상한 취향이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분명 무언가 종교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래, 분명 그런 거겠지.
사실 아린에게 직접 물어보면 해결되는 문제지만 막상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누가 대신 물어보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나 빼고는 다들 눈치를 못 챘는지 아무도 그녀의 복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우리도 전에 마을 한복판에 들개 무리가 나타나서 곤란한 적 있었지?”
“응? 그렇지.”
유니는 옛날 생각이 났는지 대답 대신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 때도 어른들이 겨우 내쫓았잖아. 저 마을도 비슷한 상태 아닐까?”
“아, 그랬지 참.”
몇 살 때더라? 비슷한 일이 우리 마을에서도 있었다.
유니는 그 기억에서 소문 속 마을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럼 가는 걸로 결정이지?”
“응.”
모두가 동의했으니 그대로 간다.
우리는 임시회의 끝에 발걸음을 마저 옮겼다.
“오오, 용사님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 어서 이리로 오시죠!”
“크흑… 드디어 살았다! 용사님이야! 용사님이 해결해줄거라고!”
“용사님! 제발 저희 마을을 살려주세요!”
마을 안은 우리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 같았다.
우리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수십 쌍의 눈동자가 우리를 향하더니, 정체를 밝힌 뒤로는 이모양이다.
“자, 자! 용사님들에게 방해되니까 이만 물러나게! 아이구, 이리로 오시죠. 안으로 뫼시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은 놓으셔도….”
한창 아저씨에서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나잇대의 남자 하나가 우리한테 깍듯이 인사하며 자기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안그래도 고향의 촌장님이 자꾸 생각나는데, 이렇게 극진하게 대우해주니 더 부담스럽다.
“아이고, 어떻게 제가 감히 용사님과 그 일행분들에게 말을 놓겠습니까! 저희 마을을 구해주실 분인데! 자, 자. 누추한 곳이지만 들어오시지요.”
우리는 그 들개를 잡겠다고는 한 마디도 안 했지만, 그는 우리가 마을을 구해주러 왔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듯 했다.
“일부러 저렇게 말하는 거야. 우리 아빠도 가끔 저러시거든.”
유니가 귓가에 속삭였다.
역시 촌장들은 어느 마을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우리는 그와 그의 부인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마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접이겠지만, 솔직히 왕궁과 아세일라의 제일 좋은 숙소에서 묵고 온 우리들에게는 한참이나 부족한 대접이었다.
물론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그는 아니나 다를까 이 마을의 촌장이었고, 우리에게 그 들개를 제발 잡아달라고 사정사정했다.
이미 우리는 그러기로 어느 정도 마음먹고 있었지만, 그가 어찌나 집요하게 부탁하는지 오히려 반감마저 들 정도였다.
세리아는 대놓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어서, 유니와 아린이 그녀를 열심히 달랬다.
“으음… 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흐흑, 감사합니다! 이 개새끼 때문에 저희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이런 말씀 드리기는 괴롭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 놈을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제는 정말 마을의 존속이 걸린 문제입니다!”
“네, 네. 저도 잘 압니다. 그러니 일단 진정하시고….”
“그 빨간 눈! 거대한 몸집! 세상에, 그건 분명 사악한 마물입니다! 분명 동네 들개에 사악한 마물이 들러붙은 것이 분명합니다! 왜 하필이면 이런 가난한 마을에….”
“네, 네에….”
결국 제렌 씨가 실수를 가장하고 테이블을 걷어차며 간신히 상황을 정리했다.
덕분에 촌장 부부가 겁에 질린 것 같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행동에 감사했다.
안 그랬으면 얼마나 더 이러고 있었을지 모르니까.
우리는 그제야 촌장에게 우리 사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촌장의 도움을 받아 아세일라에서 일어났던 일을 상세히 적은 보고서를 왕궁과 교회에 보내고 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쉴 수 있었다.
“하아….”
나는 홀로 남은 방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변변찮은 여관 하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다른 집에 머물고 있었다.
우선 급한 일은 다 해결했다지만 이 마을 사람들의 과도한 기대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이러다가 그 들개를 놓치기라도 하면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순식간에 뒤집힐 게 뻔했다.
일단 밤 시간대에 주로 출몰한다니까, 그 때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경비라도 서던가 해서 어떻게든 대책을….
쾅쾅!
“요, 용사님! 빨리 와주십시오! 그, 그놈이 또…!”
다급한 목소리로 촌장이 소리쳤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터졌다는 걸 깨달은 나는 급히 뛰쳐나가 사정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 희생자가 나왔다고 한다.
밤 시간대에 출몰한다기에 안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제길, 내가 조금만 더 철저했으면 이럴 일은 없었는데!
나 때문에 희생자가 나온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에릭! 여기야!”
사건현장으로 뛰어가니 이미 나를 뺀 다른 파티원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건 어느 한 가정집이었는데, 반쯤 무너지고 너덜너덜한 상태를 보니 더 이상 집이라 부르기는 힘들어보였다.
“으흑… 존…!”
“빌어먹을, 정말 이사라도 해야 하나?”
마을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저마다의 슬픔을 표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똑바로 못 해서….
“에릭.”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는지, 유니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유니….”
“일단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보자.”
“응….”
유니는 내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도 바깥에서 보던 것과 다를 바는 없었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집안 곳곳을 헤집어뒀는지 여기저기 베인 자국이 난무했다.
“생각보다 크기가 큰 것 같은데….”
미리 안에 들어와 있던 세리아는 벽에 평행하게 난 자국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무인데도 선명하게 보이는 자국들이 섬찟했다.
“아, 용사님.”
아린이 우리 둘을 보고 반겼다.
그녀가 우리에게 상황을 더 자세히 설명해줬다.
촌장이 아까 설명해주긴 했지만, 그는 사건이 터진 것만 보고 허겁지겁 뛰어와서 그런지 자세한 정황까지는 몰랐다.
이 집에서 존이라는 청년과 늙은 노모 둘이 살고 있었는데, 살아남은 노모의 증언에 따르면 갑자기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더니 곧 집이 무너질 듯 크게 흔들렸다고 한다.
급히 뛰쳐나오니 이미 집은 이 모양이 나있었고, 저 멀리 검은 개가 유유히 마을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한다.
그리고 아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피가 없어.”
“뭐라고?”
혹시 뭐라도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집 안을 뒤적거리던 우리들에게, 세리아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집안을 봐. 이렇게 다 망가졌는데도 핏자국 하나 없어.”
듣고 보니 그 말대로였다.
집 안이 난장판이 되었음에도 격렬한 사투의 흔적이나 핏자국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작극인 걸까요?”
아린이 불안한 가능성을 한 가지 떠올리며 물었다.
“그럴지도. 그 노모 말고 목격자가 없는 것도 좀 이상해. 마을 밖에서 온 거라면 누군가 본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자작극이라고?
왠지 골치 아픈 사건에 휘말린 것 같아 머리가 아팠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야. 다만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조금 높다는 거지.”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나를 바라봤다.
“일단 그 검은 개를 쫓아야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어? 그… 렇겠지?”
벌써 마을 밖으로 도망친 것 같던데, 잡을 수 있을까?
우리가 그 개를 쫓는 사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누군가는 마을을 지켜야할 것 같아요. 저희 모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시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린이 내가 생각하던 고민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개도 쫓아야하고, 마을도 지켜야한다.
파티 인원을 또 쪼개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고, 문제는 누구를 어디로 보내냐의 문제인데.
“에릭. 나는 마을에 있을게.”
유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정령들과 시야를 공유하면 마을에 그 들개가 들어오는지 감시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여기는 아세일라가 아니니까 이제 유니도 다시 정령술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유니 혼자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무리 아닐까?
“에릭. 너도 정령술을 쓸 수 있잖아. 유니랑 같이 남아있는 건 어때?”
세리아의 제안이었다.
나도 그녀의 힘을 빌리면 정령술을 쓸 수 있으니, 그녀 혼자서 마을을 지키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하리라.
“그럼 아린과 세리아는 그 개를 쫓는 거야?”
“응. 그리고 제렌 씨도.”
“…….”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세리아와 아린을 그와 함께 보낸다고?
그건… 그건 좀 내키지 않는다.
“그럼 이렇게 하자. 에릭이 정령으로 우리를 따라와줘.”
“정령으로?”
“어차피 우리만으로는 흔적을 읽기 어려우니까, 흙의 정령을 활용하면 개가 남긴 흔적 쯤은 금방 찾을 수 있지 않겠어? 우리는 그걸로 흔적을 따라가볼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정령이랑은 시야도 공유할 수 있지 않는가.
정령에 대해 미숙하던 시절에는 조금만 멀어져도 연결이 끊겼지만, 지금은 유니에게 이것저것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금방 끊기지 않는다.
집중만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쉽게 끊길 일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나를 속이고 세리아나 아린에게 못된 짓을 하고 있다면, 내가 없을 때야말로 그 적기가 아니겠는가.
나는 흘끗 제렌 씨를 바라봤다.
그는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만약에 이번에 증거가 나온다면….
나는 남들이 못 보게 살짝 주먹을 쥐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나는 내 속마음을 감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