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짐꾼] 사랑의 매
생각보다 반응이 격렬하다.
나도 순간 당황했지만, 여기서 머뭇거리다간 기껏 만들어놓은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속행했다.
짜악!
“히응!”
아린은 쫙 폈던 손을 급히 구부리며 움찔거렸다.
거의 헐벗은 옷으로 저러고 있으니 마치 날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은 의식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빨리 손 펴십쇼. 아직 안 끝났습니다.”
“흐읏… 그, 그렇죠… 아직 벌을 더 받아야….”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나는 더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정말 순수한 목적에서 그녀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그러나 그와 반대로 내 머리는 팽팽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그녀가 너무 고분고분하다.
혹시 문양에 내가 모르는 다른 효과가 있는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리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았다.
…세라가 무슨 짓을 했나?
이 쪽은 좀 그럴싸한 것 같다.
아니면, 그녀가 원래 이런 것에 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강제로 밀어붙이면 싫어하다가도 결국은 따라오는 유형의 인간.
그 중에는 도리어 그런 것을 은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배해주길 바라는 사람들.
아린도 그런 인간인가?
이건 여기서 고민한다고 나올 답은 아닌 것 같고, 나중에 세라에게 물어봐야할 것 같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눈 앞에 집중하자.
지금의 나는 그녀를 체벌하는 선생이다.
“손바닥 더 펴시고, 그렇지. 신관님, 자기가 왜 맞고 계신지는 알고 계십니까?”
“…읏.”
그녀는 내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내가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손바닥을 스태프로 툭툭 치자 아린은 다시 손바닥을 쭉 펼쳤다.
“으읏… 이, 이 상황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잠시 분위기가 식어서 그런지 아린이 제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안 되지, 안 돼.
나는 스태프를 위협적으로 허공에 휘두르며 그녀의 정신을 다시 돌려놓았다.
휘익!
“딴 소리 하지 마십쇼. 지금 신관님이 그런 말 할 입장입니까?”
“무, 무슨 입장인가요?”
그러게.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난 잠시 머리를 굴리고 대답했다.
“당신은 배신자입니다.”
“…배신자요?”
에이씨, 모르겠다. 일단 지르고 생각해봐야지.
“당신이 믿는 종교를 배신하고! 제 믿음까지도 배신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당신이 배신자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입니까?”
“저, 저는 그 분을 배신한 적….”
짜악!
“흥읏…!”
그녀가 눈을 꾹 감고 부르르 떨었다.
“자꾸 말대답하지마십쇼. 알겠습니까?”
“저, 저는 그 누구보다 신실한….”
짜악!
“흑…! 자, 잠시만 제 얘기를….”
짜악!
“아, 아파요, 그만….”
짜악!
“흣….”
짜악! 짜악!
나는 그녀가 얌전해질때까지 스태프를 후려쳤다.
아니, 이제는 슬슬 스태프가 아니라 회초리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배신자에요.”
“아, 아닌….”
내가 다시 회초리를 높이 들자 그녀가 시선을 피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걱정하지마십쇼. 제가 믿음을 되찾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달라진 모습을 저에게 보여주세요.”
“…….”
그녀는 입을 우물거렸지만 뭐라고 말을 하진 않았다.
좋아. 우선 입은 봉인시켰다.
“그리하면 당신의 그 엇나간 욕구도 교정될 것이고, 제 신뢰도 회복할 수 있죠. 그렇죠? 알겠으면 고개를 끄덕이세요.”
아린은 아무 반응 없이 슬그머니 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겠지.
맞는 것이 기분 좋아서 스스로에게 변명까지 해가며 나에게 손바닥을 맞는 그녀였지만, 적어도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감지한 것 같았다.
이럴 땐 정신없이 몰아붙이는게 최고지.
나는 다시 회초리를 내리쳤다.
짜악!
“대답.”
“흐읏….”
그녀가 나를 살짝 억울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나는 대답대신 회초리를 들었다.
짜악!
“힉…! 죄, 죄송해요!”
“뭐가 죄송하다는 겁니까. 제가 언제 사과를 하라고 했습니까? 아무래도 상황을 이해못한 것 같군요.”
짜악!
“햐악…! 마, 맞는 말이에요!”
“제가 말로 대답하랬습니까?”
짜악!
“흐읏….”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정신없이 몰아붙이니까 슬슬 그녀의 머리가 멍해지는 것이 보인다.
사실 평소의 그녀라면 아마 도망갔을 것이다.
아니면 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했겠지.
그렇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죄책감과 내 기대를 배신했다는 미안함이 그녀의 발목을 칭칭 감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그녀를 정신없이 몰아세우니까 슬슬 여기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잊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되겠군.
나는 확신했다.
“자, 한 대 맞을 때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얘기하는 겁니다. 아시겠죠?”
아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뭐부터 나오는지 볼까.
짜악!
“흐윽… 이, 일부러 가슴을 보여주고… 그 반응을 즐겼어요….”
“실망이군요. 당신이 창녀입니까? 아니, 창녀도 이유없이 가슴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당신은 창녀 미만이에요, 아린.”
“읏… 흐읏….”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완전히 울음을 터뜨려버리면 곤란하므로 적당히 완급을 조절했다.
“하지만 걱정마세요. 이거 맞고 앞으로는 자제하면 되니까. 그럼 다음.”
짜악!
“흐읍…! 추, 추잡한 가게에서… 제 몸을 드러내고 춤을 췄어요….”
“천의 얼굴 말이죠. 이젠 가지 않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다음.”
짜악!
“햐윽…! 소, 속옷도 안 입고 용사님한테 가서 은근히 드러냈어요…!”
“후, 앞으로는 저 말고 다른 남자한테 그런 짓 하지 마세요.”
“네? 그게 무슨….”
아차, 실수.
“말대꾸.”
짜악!
“흐윽…! 죄, 죄송해요!”
“자, 다음.”
짜악!
“읏…! 흐읏… 모, 몰래 도색서적을 봤어요…!”
이건 처음 듣는데.
사실 내가 아는 것도 이 위에까지가 전부다.
더 때리면 내가 모르는 얘기가 더 나올까?
문득 궁금해졌다.
한 대 더 치려던 찰나, 나는 문득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붉은 줄이 그녀의 손바닥 곳곳에 새겨져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손은 무척이나 연약해보여, 몇 번 더 내리쳤다가는 손바닥이 피범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눈을 꼭 감고 회초리를 기다리던 그녀는 아무런 통증도 안 느껴지자 살며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후우….”
“끄, 끝인가요?”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
그 안에 담긴 것이 불안인지 아니면 아쉬움인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더 했다가는 다치겠군요.”
“아….”
그제야 아린은 자기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볍게 주먹을 쥐어보려다가 따가웠는지 곧장 다시 펼쳤다.
“연고라도 발라드리죠.”
“괘, 괜찮아요… 이 정도는 축복으로….”
어색한 표정으로 사양하는 그녀에게 나는 한사코 연고를 발라주었다.
뭐 뒷골목 출신들이 구할 수 있는 약이 얼마나 쓸모가 있겠냐만은, 어차피 정말 치료 목적이라기보단 그녀에게 성의를 보이기 위한 것이니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정도 흔적은 그녀의 축복 한 번이면 곧장 말끔해진다.
그래도 나는 성의를 보임으로써 내가 흑심을 가지고 있던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나는 손가락에 연고를 묻혀 그녀의 손바닥을 문지르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아, 이거는 봐주는 겁니다?”
“…무슨 말이죠?”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나는 농담 식으로 가볍게 말했다.
“신관님께 손 안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아….”
저번에 그녀와 약속했다.
함부로 먼저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아린도 그 생각이 났는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이런 건 예외죠. 생각보다 꼼꼼하시네요, 그런 것도 아직 기억하시고.”
“그야 사람과 사람 간의 약속인데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먼저 신관님께 손을 댈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지요.”
나는 그녀의 손바닥을 살살 문질러주었다.
아린은 따가워서 그런지 간지러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움찔움찔하며 내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죠. 약속은 중요하니까….”
문득 따끔거리는 통증이 내 어깨에서 느껴졌다.
“흣….”
“아프십니까?”
“아, 아뇨… 뭔가 살짝 따끔해서….”
아린은 자기 어깨를 바라보며 갸웃했다.
이거, 혹시….
살짝 기대감이 들었지만 여기서 티를 내진 않았다.
모르는 척하자.
확인은 돌아가서 하면 되니까.
“자, 이정도면 됐군요. 별로 좋은 약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야 나을 겁니다.”
“아…. 고, 고마워요.”
그녀는 손을 어색하게 늘어뜨린 채 내 시선을 피했다.
방금 달아올랐던 분위기도 차갑게 식고,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이거, 바쁘신 신관님을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자, 잠시만요.”
어색함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나빠질 것 같아 우선 물러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나갈 채비를 하자, 아린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네?”
“그….”
아린은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괜찮습니다. 말해보세요.”
“그게, 저….”
우물쭈물거리는 아린의 모습.
어느샌가 이미 가릴 생각도 안 하는 그녀의 가슴은 이미 팽팽할 정도로 젖꼭지가 서서, 톡하고 치면 금방이라도 푸르르 떨릴 것 같았다.
얇은 천으로 만든 그녀의 바지도 아랫부분이 살짝 축축했다.
흐음…. 그런거구만.
나는 태연함을 가장한 채 말했다.
“저는 다시 한 번 신관님을 믿어보겠습니다. 이번 일은 잠깐의 탈선이라고 여길테니까요. 그렇지만 만약…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저는 다시 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 그, 그렇죠…! 네….”
아린은 내 말에 고개를 휙 들더니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 오늘은… 그… 감사했어요….”
큭, 크흐흐….
세상에 여자를 때리고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받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아까부터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몸을 휙 돌리고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웃지말자.
나갈 때까지 웃어서는 안 된다!
***
“크흐흐흐….”
“축하드려요, 주인님.”
세리아가 어깨를 주무르며 내 등에 볼을 비볐다.
“그래, 어디 있다고?”
“여기. 제 장미 밑에 있네요.”
쿡, 하고 그녀가 내 등의 한 곳을 찔렀다.
대략적으로 세리아의 장미가 새겨진 곳보다 살짝 밑이다.
정확히는 조금 왼쪽으로 치우친 밑부분.
“근데 아직 작네요… 역시 나중에는 저처럼 커지는 걸까요?”
“그렇겠지.”
세리아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할 정도로 작았다.
아린도 이대로 밀어붙이다보면 조금씩 커지겠지.
세리아는 가만히 내 등을 쓰다듬었다.
자꾸 아린의 장미가 자라기 시작한 부위만 쓰다듬는 걸 보니 무언가 신경쓰이는 모양이다.
“세리아. 질투하지마라.”
“읏, 네에….”
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축처진 그녀를 내버려두고 나도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렇게 사는 생활도 나쁘진 않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게 유지될까?
용사가 진짜 용사라면, 슬슬 무언가를 보여줘야할 시간이다.
이대로 더 머뭇거리면 용사마저 타락하기 시작할 터.
그렇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흠, 궁금하네.”
“네? 뭐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뭐, 그건 용사가 알아서 할 일이지.
설령 지더라도 설마 마물들이 우릴 죄다 죽이기라도 하겠는가?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이 있겠지.
이렇게 쓸만한 노예도 있으니 말이야.
나는 세리아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일어났다.
“주인님?”
“슬슬 저주를 풀 때가 된 것 같군.”
나는 내 자지를 내려다보았다.
이전보다 조금 더 까맣게 변한 채 축 늘어져있는 자지.
이를 되살릴 시간이다.
“어떻게… 아, 아린의 힘을 쓸 생각이신가요?”
그래. 그녀가 건 저주를 풀려면 결국 그녀의 힘으로 풀어야하는 법.
사실 이렇게 쓰면 티나서 걸릴지도 모르지만, 이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시발 내가 고자될 수는 없잖아!
이런 쬐그만한 장미로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살짝 불안하다.
그러나 내가 세리아의 마법을 처음 썼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도 지금보다 장미는 작았지만 힘이 딸리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후우….”
“제가 아린의 상태를 보고 올까요?”
“아니, 됐어.”
자칫하다가는 의심만 커질지도 모르지.
나는 그녀를 가만히 앉혀두고선 정신을 집중했다.
자, 생각하자.
그녀가 어떻게 나에게 저주를 걸었는지.
뭐라고 막 주문을 외웠지.
근데 이거 풀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구제받은 죄인에게 다시 아침의 햇살을.”
낯익은 목소리에 홱 고개를 돌리니 초대한 적 없는 손님이 방 안에 들어와있었다.
“세, 세라!”
세리아가 다급히 자기 스태프를 쥐고 그녀를 겨눴다.
“와아, 너 마법사지? 흐응… 똑같네.”
그녀는 재밌다는 듯 세리아를 바라보고선 나를 쳐다봤다.
“자, 따라해. 구제받은 죄인에게 다시 아침의 햇살을.”
“…어떻게 들어왔지?”
“그게 중요해? 그거 고자되기 전에 빨리 풀어야지, 안 그래?”
그렇긴 한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분명 문은 잠궜는데.
그렇지만 어차피 상대는 이 도시를 사실상 지배한 마왕의 사천왕.
굳이 이런 시시콜콜한 일로 놀랄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후우. 해제 주문인가?”
“맞아. 난 수녀니까. 그 어린 신관보다도 계급이 높았다구.”
세라가 은근슬쩍 신경쓰이는 소리를 했다.
설마 이제와서 날 속이려는 건 아니겠지.
어차피 우리 둘이선 이기지도 못할 거 같고, 난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녀의 주문을 따라했지만, 축 쳐져있던 내 자지는 여전히 맥아리가 없었다.
“그야 지금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니 그렇지. 저 여자가 한 번 빨아주면 다시 설 걸?”
나는 세리아를 바라봤으나 그녀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세라에게 스태프를 겨누고 있었다.
“설마 이거 하나 말해주려고 온 건 아닐테고, 무슨 일이지?”
“맞는데?”
세라가 태연하게 답하자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 얼빠진 표정을 본 그녀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네가 아니라 다른 쪽에 볼일이 있던 거라. 그냥 온 김에 들렸어.”
“다른 쪽?”
용사를 말하는 건가?
여기에 나와 대비되는 인물이 있다고 한다면 용사밖에 없겠지.
“후후, 궁금해?”
그녀는 나에게 고개를 쑥 내밀며 물어봤다.
“붙지말고 떨어져!”
세리아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이참, 질투심도 많긴. 안 뺏어가.”
그녀는 귀여운 아이를 보듯 세리아를 보며 실실 웃었다.
“그거 꽤 성가신 저주니까, 혼자서는 절대 못 풀 거 같아서 지나가는 길에 알려줬지.”
그렇게 말한 세라는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얘기 했는지 궁금해? 궁금하면 장본인에게 물어봐. 난 간다?”
그러더니 세라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서 평범하게 문으로 나갔다.
소리소문 없이 들어오길래 순간이동 같은 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세리아는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도 불안한지 계속 주변을 경계했다.
“후우….”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알 수 없는 년이다.
사천왕이라면서 뭔가 루엘라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우리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생각없이 재밌는 것만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골빈 년 같은데.
그래도 설마 사천왕이라는 년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을테니 분명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으음….”
잠시 그녀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이걸 왜 내가 고민하지?
고민은 용사가 해야지.
“세리아, 이리와.”
내가 할 일은 노예랑 노는 것뿐이다.
내 부름에 세리아가 다다다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래, 고생해라 용사.
뭘 하든 상관없지만 나한테 피해만 안 오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