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짐꾼] 사랑의 매
“아, 으, 그게… 이건, 그… 신관복이 더러워져서… 세라 씨가 빌려줬는데….”
당황한 채 횡설수설하는 아린.
이야기를 대충 때려맞춰보자면 옷이 더러워져서 세라가 신관복대신 이런 천박한 옷을 그녀에게 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입었다 그겁니까?”
“그, 그렇죠! 더, 더러워진 신관복을 입을 순 없으니까….”
아린이 한 손에 든 신관복을 슬쩍 보여줬다.
그녀의 신관복에는 군데군데 하얀 무언가가 늘러붙어 있었다.
내가 눈을 찡그리자 그녀는 자기의 실수를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옷을 뒤로 감췄다.
“아, 아아… 이, 이건 그… 딱히 이상한게 아니라….”
“그 하얀 건 뭡니까?”
그녀는 자기가 대딸해준 게 나라는 사실을 모른다.
아린의 머릿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녀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 쯤의 위치일 것이다.
그런 스승이 사실은 남자 고추나 만지작거리고 이런 창녀 같은 옷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음탕한 여자였다?
그날부로 신관이라는 그녀의 직함에서 오는 명예는 바닥까지 추락한다.
“…우, 우유….”
“여기 목초지 없습니다.”
그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신관님. 분명 저한테 욕구는 여신님이 내리는 시련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신관님의 모습은 마치… 욕구에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아린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는지 한 층 밝아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여, 여신님은…! 딱히 옷을 벗고 돌아다니지 말라던가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어, 없죠…! 그리고, 그, 적절한 욕구분출은 오히려 도움이….”
이 얘기 뭔가 익숙한데.
생각해보니 내가 그녀를 꼬시면서 했던 말이었다.
그 땐 좀 더 노출에 익숙해지라는 의미에서 대충 던진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써먹네.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자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쫄리는 건 내가 아니라 이년이었다.
“그래서 이게 그 적절한 욕구분출입니까?”
“…….”
내가 그녀의 가슴을 빤히 바라보자 그녀가 슬쩍 가렸다.
“아깐 잘만 보여주더니 왜 그러십니까?”
“으, 으읏… 너, 너무해요….”
너무하긴 무슨.
먼저 가슴까고 다닌게 누군데.
아린은 대답이 막히자 눈물을 글썽거리며 동정심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후우… 저번에 자꾸 노출증 관련해서 캐묻길래 혹시했더니, 그런 거였습니까?”
“아, 아니에요….”
뱅글뱅글 돌아가는 그녀의 눈동자.
그러나 그녀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 이제 신관님이 하셨던 말을 못 믿겠습니다. 이런 사람을 한때나마 스승처럼 생각했다니…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읏, 으읏….”
그녀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해요!”
결국 백기를 먼저 든 것은 그녀였다.
아린은 변명… 본인 말로는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나를 자기 방으로 초대했다.
밖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들킬 위험성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이렇게 처음으로 그녀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이 술술 풀리니 웃음이 자꾸 새어나올 것 같아 조금 곤란했지만, 어떻게든 딱딱한 표정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뭐 숙소가 다 그렇듯 방은 내 방과 똑같았다.
다른 것이라고는 테이블 위의 성서 정도다.
내가 아린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부끄러워졌는지 다시 몸을 움츠렸다.
“왜 가리십니까?”
“그, 그게… 부끄러워서….”
“조금 전까지는 잘만 입고 다니셨으면서.”
“그, 그래서 사과했잖아요….”
이 여자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네.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계속 입고 계십쇼.”
“으읏….”
갈아입고 싶어도 내가 여기 떡하니 앉아있으니 갈아입을 수도 없다.
“설마 본인이 불러놓고 잠시 나가있으라고 쫓아내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그, 그치만….”
“또 제 믿음을 배신하실 생각입니까?”
그녀는 내 말에 움찔했다.
“어차피 전 지금 성욕도 없는 상태 아닙니까. 걱정마십쇼.”
그렇다.
우회하는데 너무 익숙해져서 까먹고 있었지만, 내 성욕은 지금 죽어있는 상태였다.
물론 완전한 건 아니다.
그 불경스러운 목걸이로 아린의 저주를 억누르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니까.
내 자지가 정말로 죽어버리기 전에 빨리 어떻게든 풀어버려야했다.
사실 요즘 자지가 살짝 까매진 것 같아 불길하다.
아린은 내 말을 듣고서도 여전히 좀 꺼려졌는지 머뭇거렸다.
뭐, 어차피 곧 가릴 겨를도 없어질테니 상관없다.
“신관님.”
“…네.”
내가 목소리를 깔고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기분 좋아서 한 거 맞습니까?”
“……맞아요.”
아린은 수치심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가 분명 약간의 노출 쯤은 괜찮지 않냐고 얘기를 하긴 했죠. 그렇지만 이 정도의 노출을 얘기한 건 아니었어요. 그렇죠?”
“……네.”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점점 더 쪼그라드는 그녀.
어설프게 변명하려던 것까지 그대로 걸려서 더욱 부끄러울 것이다.
“좋은 가르침 많이 주셨던 거, 감사하게 생각했지만 솔직히 이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네요. 다 거짓말이었던 거 아닙니까?”
“그, 그건 아니에요…!”
내 말에 황급히 고개를 들고 변명하는 아린.
덕분에 미약한 가슴골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본인이 했던 말도 못 지키는데 제가 뭘 믿고 신관님 말을 따르겠습니까? 안 그래요?”
나는 못 본 척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실제로도 지금은 목걸이가 없어 딱히 꼴리지도 않는다.
“저번에 스트립쇼에서 춤추던 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이건 뭡니까?”
아린은 내 말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말은 그렇게나 잘 해놓고서 정작 본인이 실천을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신관님이 말씀하셨죠. 사람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고. 더 강한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그, 그렇죠…!”
그녀를 혼내다 말고 아린이 나에게 해줬던 얘기를 그대로 돌려주니 그녀의 얼굴이 환해진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믿음을 가진 모든 형제자매는 친구이자 스승이라고도 하셨고요. 맞죠?”
“네, 네! 맞아요!”
예전에는 조금 더 위험한 말이었다던데 정치적인 분쟁 탓에 해석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그 자세한 얘기에는 별로 관심 없고, 아무튼 이 말의 핵심은 이단이나 이교도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는 나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린은 내가 그녀의 말을 잘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살짝 드러내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래, 자기 무덤을 본인이 파는구나.
“제가 보기에 아린 자매님은 믿음이 흔들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굳건한 믿음으로 이겨내야겠지요.”
“…네?”
아린은 순간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저희 아버지에게 배운 것 중에 좋은 말이 딱 하나 있었는데, 사람은 맞아야 안다는 겁니다.”
“……뭐라구요?”
아린은 멍청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하지만 들은 그대로가 맞다
“일어나십쇼.”
내가 그녀의 팔을 붙잡고 강제로 일으켜세우자 그녀는 무슨 일인지 이해를 못하고 내 손에 딸려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남은 한 팔로 자기 가슴을 가리는게 애처롭기까지하다.
“양 손바닥 쫙 펴세요.”
그녀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하시려고…?”
“이게 다 신관님이 해이해져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흔들리는 믿음을 바로 잡아드리죠.”
아린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 무슨 말을…!”
나는 그녀가 도망치기 전에 허리춤에 달려있는 스태프를 꺼냈다.
세리아가 준 그녀의 스태프가 아니라 예전에 훔쳤던 작은 스태프다.
짝!
당연히 제대로 맞을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손바닥을 때렸으니 생각보다 아플 것이다.
“흐윽! 미, 미쳤어요?”
아린은 얼얼한 손을 비비며 방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또 절 실망시키십니까? 지금 가시면 신관님은 평생 그대로일겁니다.”
“…….”
“인정하십쇼. 이미 신관님은 노출의 쾌락을 알아버리셨습니다. 평생 여기서 사실 건 아니잖습니까. 나중에 밖으로 나가면 그 때 가서 참을 수 있겠어요?”
“제, 제가 그 정도도 못할….”
아린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솔직하게 말해보십쇼. 정말 가능할 거 같습니까?”
“…….”
전적을 봤을 때 절대 못 돌아간다.
그녀는 진성 노출광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알몸을 보는 것만으로 흥분하는 구제불능의 변태.
사실 나한테도 이런 변태는 필요없다.
내가 바라는 건 나에게 충성하는 노예지, 아무한테나 다리를 벌리고 다니는 창녀가 아니니까.
“지금 부끄럽고 분한 거 압니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십쇼. 내가 잘 참으면 앞으로 이럴 일 없다고. 제가 신관님의 교정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결국 자기 좋을 대로 하려는 거 아닌가요.”
맞다.
나는 이걸로 그녀에게 예절을 교육시킬 생각이다.
내 허락없이는 함부로 옷을 벗어서도 안 되고, 체벌에 대한 공포도 심어 함부로 거스르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아린을 내 취향으로 서서히 물들여가는 것이다.
“저에게 건 저주 기억 안 나십니까? 보십쇼. 제가 흥분했는지 안 했는지.”
당연히 내 자지는 축 늘어진 그대로다.
그녀를 내 입맛대로 바꿔나간다는 즐거움은 그대로지만, 적어도 저주가 발동하는 한 그것이 성적인 욕구로는 나아가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걸 이제 피할 수 있지만, 아무튼 그녀 입장에서는 아직 아닌 셈이다.
“전 정말 신관님을 도와드리려고 이러는 겁니다. 단순무식하지만 젤 효과적인 방법이죠.”
“말하는 게 엉망진창이에요. 그런 엉터리 같은 말에는 아무도 안 넘어갈걸요.”
한참을 갈등하던 아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 그러니까… 이건 저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하겠어요.”
그러고선 눈을 꽉 감은 채 나에게 손바닥을 쫙 펼쳐 내밀었다.
흐, 흐흐….
성공했구만.
세리아와 함께 뒹굴면서 알아낸 사실이 있는데, 우리에게 새겨진 문신의 효과는 아무래도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종류의 것 같았다.
박을 때나 박힐 때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건 그 감각이 극대화되었기 때문.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비단 섹스에서만 통용되는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통에 있어서도, 주인이 주는 고통은 평소와는 다른 것이 된다.
회초리를 맞는 건 아프기만 하지만, 문신의 주인이 회초리를 들고 노예를 때리면 그건 아프면서 동시에 묘한 쾌락이 된다.
세리아 말로는 예민해진 감각이 고통을 너무 과도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정신이 망가지지 않도록 쾌락으로 치환하는 것 같다고 했다.
뭔가 어려운 얘기를 좀 더 했지만 요약하면 내 노예들은 주인이 때리는 것에서도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아린의 조교 방향을 노출과 피학으로 잡았다.
안 그래도 세리아와는 차별을 좀 두고 싶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재밌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올지는 좀 고민을 했는데, 세라가 좋은 기회를 줬다.
설마 알고 이런건 아니겠지?
자세히 살펴보니, 손을 달달 떨면서 회초리를 기다리는 아린의 젖꼭지가 뽈록 서있었다.
흥분한 것이다.
또 이렇게 변명하려는 건가.
자기에게 내리는 벌?
말은 좋지만 결국 미지의 쾌락을 다시 한 번 겪어보고 싶어하는 것 뿐이다.
지금은 순순히 그 변명에 속아넘어가겠지만, 언젠가 이 모든 사실을 인정해야할 때가 오리라.
자기가, 노출증에 맞는 것도 좋아하는 변태라는 사실을.
짜악!
“하읏… 흐읏… 짜, 짜릿짜릿하네요. 하지만, 벌이니까….”
쫙 핀 손바닥을 세게 내리치자 그녀가 다리를 비비꼬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