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짐꾼] 밑작업
아세일라에 도착한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밑작업이었다.
우선은 숙소부터.
이건 어렵지 않다. 여기서 아세일라에 방문해본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여긴 여전하구만.
도시 어귀에서부터 느껴지는 이 천박한 냄새.
한 번 발을 들였던 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냄새다.
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아린이 했던 말을 생각해보면 왠지 이것도 좀 수상하게 느껴진다.
혹시 이 냄새도 그 뭐냐, 음마 때문에 나는 거 아냐?
음마라, 솔직히 이름만 들어봤지 잘 모른다.
내가 음마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밑바닥 떨거지들끼리 천박한 농담으로 주고받던 얘기가 전부다.
음마는 조임도 좋을 거라는 둥 음마랑 하고 죽는 거라면 그리 나쁘지 않다는 둥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들이다.
들어오기 전부터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용사부터 시작해 그 동료년들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섹스 한 번 안해본 아다… 아, 용사는 이제 아니구나.
섹스 한 번밖에 안해본 명예아다와 처녀들한테는 다소 당혹스러운 풍경이겠지.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좀 보기 그렇긴 하다.
시발 이따구로 입고 다닐 거면 예쁜 년들만 입게 하던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꼬추 새끼들이랑 못생긴 년들이 헐벗고 돌아다니는 걸 봐야하지?
이건 사실상 고문이다.
탁!
“꺼져.”
왠 메주 같은 년이 치근덕거리길래 나도 모르게 걷어찰 뻔했는데, 다행히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세리아가 먼저 처리했다.
역시 잘 키운 노예 하나 있으니 든든하구만.
내가 노예와 예비 노예들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예전에 방문했을 때 신세졌던 숙소.
이 도시에서 제일 큰 스트립쇼 가게 ‘천의 얼굴’과 일종의 제휴관계에 있는 가게다.
이 놈들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숙박하면 가게 이용료가 일 할이나 싸진다.
물론 단순히 그거 하나 때문에 여기 머무르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용사 일행을 잠시 밖에 세워둔 뒤 가게 주인과 재빠르게 밀담을 나눴다.
뭐, 별 얘기는 안했다.
괜찮은 후보를 데려왔으니 사장에게 검증을 부탁하고 싶다.
그것 뿐이다.
이 사장이란 놈은 제법 특이한 구석이 있는데, 가게의 무희들을 자신이 직접 보고 선발한다.
남들과는 다른 감식안을 가졌는지, 그는 실제로 실력 좋은 무희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다.
난 그의 눈에 승부를 걸었다.
그가 아린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알아서 영업을 제안할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그 땐 다른 걸 알아보지 뭐.
어차피 여기는 밤의 도시.
아린을 유혹할 만한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관건은 잘 알지도 못하는 놈이 하는 말을 여관 주인이 믿고 전달해주느냐하는 점이다.
일단 의견이 전달만 되면 무조건 통과될 것이란 확신이 있다.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그 아린이다.
이미 얼굴과 몸매 만으로 통과하고도 남지.
여관주인이 귀찮아하는 티를 풀풀 내자, 나는 모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주는 마법의 도구를 꺼냈다.
“흠흠… 뭐 이런 것까지…. 원래는 이런 짓 안하는데, 거… 이번 만이오.”
그는 슬쩍 주변의 눈치를 보며 돈뭉치를 자기 뒷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익숙한 솜씨인 걸 보니 한 두 번 해본게 아니었다.
애초에 제휴를 맺을 때부터 천의 얼굴 주인은 이런걸 바라고 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이들이 여자들 사이에서 후보를 선출해 올려보내면, 그가 직접 판별하는 것.
그 사이에 약간의 뒷돈이 오가는 것 정도야 뭐, 이해하겠지.
내돈이었으면 좀 아까웠을텐데, 어차피 세리아 돈이니 상관없다.
이제 답장만 기다리면 되겠군.
용사 일행은 아무것도 모르고 숙소에 묵었다.
물론 그러면서 주인에게 아린을 슬쩍 소개시켜준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아린을 보더니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다.
약간의 흑심을 품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죽었다 깨어나도 이 놈이 아린을 맛볼 일은 없을 거다.
용사 일행은 또 저번처럼 대책없는 탐문조사에 돌입하기로 한 모양이다.
어차피 밑바닥 놈들 조져봐야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는데, 솔직히 말하면 시간낭비다.
물론 그들이 시간을 낭비할수록 나한테는 이득이니 굳이 그 사실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첫 조사를 떠난 날, 숙소에 남아있던 나는 곧 여관 주인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거, 일단 얘기는 전해뒀소. 내가 특별히 추천한다는 얘기까지 덧붙였으니 아마 우선적으로 검증에 들어갈 거요.”
“어이구, 이거 감사합니다.”
내가 살짝 비굴해보일 정도로 굽히고 들어가자 그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헛기침을 했다.
“흠흠, 뭐… 딱히 생색내는 건 아니지만, 잘 되면 그, 뭐냐… 뒷자리 한 번 쯤은….”
“어이구, 물론이죠. 그년이 합격하면 이게 다 나리 덕분 아니겠습니까.”
뒷자리.
단어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공연 뒤에 이어지는 일종의 뒷풀이 자리다.
보여줄 거 다 보여준 무희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밀실에 남녀 둘이 들어가서 뭘 할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당연히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아니다.
물론 내가 돌아버리지 않는 이상, 내 암컷노예가 될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단 입만 좀 털어두고, 적당한 선에서 잘라내야지.
“흠흠, 그래, 음…. 아마 사장님이 보시고 마음에 들면 명함을 건네줄거요. 보니까 재능은 있어보이던데, 아마 사장님도 흡족해하실 것 같군.”
나름 오랫동안 이 짓거리를 해온 그의 보증이다.
좀 썩어빠진 인간이긴 해도, 아무 능력도 없이 이 자리에 앉아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열심히 그의 비위를 맞추며 때를 기다렸다.
둘째 날부터 일행을 따라다니며 사장과 아린이 조우할 때를 기다렸지만, 그 빌어먹을 여관 주인이 구라를 쳤는지 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안 나오면 뒤집어 엎으려고 했는데, 셋째 날에 접어들자 수상한 남자 하나가 나처럼 용사 일행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둘째 날은 그냥 바빠서 못 나온 거였나?
난 용사 일행을 미행하는 그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대로 그가 일행에게 까이고 도망치는 그 순간을 기다려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이쿠, 깜짝이야! 뭐하는 놈이야?”
“반갑습니다, 사장님. 제가 누구냐면 저 파티원의 동료입니다.”
한 소리 하려던 그는 내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헛소리말고 비키게.”
“그녀, 보니까 어떻습니까?”
날 밀치고 제 갈길을 가던 그는 내 말을 듣더니 가만히 서서 날 뒤돌아봤다.
“쓸 만하더군.”
“흐흐… 대단한 재능 아닙니까? 제 동료지만 제가 봐도 놀랍습니다. 모험 따위보단 천박하게 허리나 흔드는게 더 어울리는 년이지요.”
“자네가 그에게 바람을 집어넣었나? 전례없는 천재니 뭐니 시끄럽더군.”
그 여관 주인이 그렇게 말했나?
제법 콩깍지가 끼었나 보군.
“그래보이지 않습니까?”
“흠. 확실히 재능은 있는데, 정작 본인이 할 의사가 없어서야 원.”
그래, 어차피 여기서 홀라당 넘어갈 것 같았으면 애초부터 소개도 안했다.
내가 바라는 건 나에게 충성하는 노예지, 모르는 남자들에게 허리나 흔드는 천박한 무희 따위가 아니다.
무희는 어디까지나 그녀를 요리하기 위한 밑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제가 데려오죠. 가서 스케줄이나 잡으십쇼.”
내 말을 들은 그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뭘 믿고?”
“그럼 그냥 포기할 겁니까?”
이 남자는 아세일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수전노.
그리고 동시에 인재 욕심이 엄청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기가 직접 무희를 뽑으러 돌아다니지.
한 번 눈독들인 인재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사업이라는 건 말이야. 신뢰 없이는 돌아가지 않거든.”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딴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부정하지 않고 이렇게 화제를 돌린다는 건 어느정도 마음이 있단 소리다.
다만 나를 믿을 수 없으니 이런 화제를 꺼낸 거겠지.
“이거면 되겠습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하나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냥 새벽교 목걸이 아닌가. 그게 뭐 어쨌… 아니, 잠깐.”
내가 꺼낸 건 루엘라가 나에게 줬던 바로 그 목걸이였다.
신성모독으로 잡혀들어가기 딱 좋은 것.
난 그걸 그에게 당당히 보여주었다.
“…자네 이런 걸 왜 보여주나?”
“안 오면 신고하십쇼.”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그는 할 말을 잃어버린 듯 했다.
이게 소문나서 교회에 들키기라도 하면 그날부로 내 인생도 끝.
말하자면 지금 나는 내 목숨을 걸고 신뢰를 확보하려는 셈이다.
“아니, 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그래서, 어떻습니까?”
그는 날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더니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내가 여기 관리들과 친하다는 사실은 아나?”
“거짓말하고 몰래 도망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죠.”
내 말에 그는 잠시 고민했다.
“언제까지 데리고 올 수 있지?”
“오늘 밤도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게.”
워, 이 사람 행동력이 장난아니구만.
돌아가자마자 바로 세리아 시켜서 데리고 오게 해야겠네.
어차피 대충 계획은 잡혀있었다.
슬슬 탐문 방식에도 변화를 줘야할 때니, 그걸 빌미로 하면 되겠지.
그 명함을 미끼로 정보를 캐자고 꼬시면 된다.
아린 이 년도 차마 인정은 안하겠지만 은근히 관심이 있어보이는 걸로 보아 적당한 핑계만 있으면 알아서 넘어오겠지.
“신입인 건 맞겠지?”
짧은 간이계약이 성사되고 돌아가려던 그가 다시 날 돌아보며 물었다.
신입처럼 안 보였던 건가. 그녀에게서 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징조다.
굳이 이걸 물어보는 이유는 별 거 없다.
가게 스타일이 원래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천의 얼굴에 소속된 무희들은 크게 두 부륜데, 하나는 날고 기는 베테랑 무희들.
당연히 이들을 위주로 쇼가 돌아간다.
그렇지만 결국 이런 춤이라는 게 몇 번 보면 금세 질리는 법이다.
다 거기서 거기 같고, 어느샌가 사람들은 춤은 뒷전이고 뒷자리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이 남자가 내놓은 대책이 바로 다른 한 부류, 신선한 초보 무희들이다.
공연에 대해 잘 모르는 여자.
제대로 배우지 못해 동작이 어색하고 수치심이 남아있는 여자.
그런 풋풋한 반응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는 뭐, 지금 이 남자가 앉아있는 자리가 반증한다.
“당연하죠.”
아린은 거기에 딱 맞는 무희가 될 것이다.
잠시동안만.
***
용사 일행이 돌아간 뒤, 나도 바삐 움직였다.
우선 세리아에게 상황을 전달한 뒤, 아린을 설득하고 용사 파티가 두 팀으로 나뉘어 탐문을 하도록 유도했다.
이 모든 고생은 세리아가 자진해서 도맡았다.
나중에 가벼운 포상이라도 내려줘야지.
급히 나온 아이디어 치고는 제법 괜찮은 발상이었다.
상층부를 공략하자며 에릭과 유니는 영주를, 자기와 아린은 교회와 가게를 조사하겠다는 방안.
어쩌면 굳이 내 명령이 없었어도 이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에게는 득이 되면 됐지 손해는 아니므로 잘 됐다.
그리고는 둘이 계획대로 잘 움직이는 걸 보고 미리 가게 안으로 들어와, 사장 사무실에서 대기했다.
지 취향인지 아니면 관리상 어쩔 수 없었는지는 몰라도, 사무실은 무대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아린의 공연을 보면서 “호오”하고 감탄하더니 나중에는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역시, 역시 대단해!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구만 그래!”
그가 좋아하는 걸 보니 아린의 가치가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
노예의 가치는 곧 주인의 가치.
아직 노예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는 희희낙락하며 아린을 맞이하러 몸소 나섰다.
후다닥 뛰어가려던 그가 돌연히 문고리를 잡고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크흐흐,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전속이 아니라는 건 좀 아쉽지만, 저 여자에게는 그러고도 남는 가치가 있지.”
고추 새끼의 미소는 필요없지만 웃는 낯에는 침 못 뱉는다고 나도 씩 웃어줬다.
“약속한대로만 잘 해주시면 됩니다.”
“크흐… 그래. 잘 되길 빌지.”
쿵!
그는 문을 닫고 나섰다.
이제 잠시 뒤 그가 아린을 데리고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나를 보고 당황하겠지.
그렇지만 곧 알게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아군이라는 사실을.
이 날을 위해 다져온 친분 아니겠는가?
나는 그녀를 도와줄 생각이다.
그래. 아린의 ‘전속계약’을 막아주는 건 충분히 좋은 일이지.
그녀가 고작 이런 가게에 발목을 잡힌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막아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제 발로 여기에 다시 돌아오는 일이 생긴다면.
여신이 내렸다는 시련에 아린이 굴복한다면.
아린은 자기가 했던 말을 어긴 셈이 된다.
본인의 입으로 뱉었던 교리를, 본인이 직접 어기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누군가 부족한 그녀에게 올바른 교리를 체득시켜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뿐인 년한테 행동으로 가르칠 그런 사람이 필요해진다.
그래. 예컨대 나 같은 놈 말이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끼익.
문이 열리고 두 남녀가 들어왔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아린은 곧 나를 보고선 새해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시작이다.
나는 살짝 실망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애써 그녀를 반기는 모습을 연기하며 말했다.
“오, 공연 잘 봤습니다. ‘에리’ 씨.”
“…히익.”
아린의 입에서 가느다란 비명이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