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신관] 무희
“이, 이건….”
“후후.”
나는 당황하며 변명했지만, 그녀들은 웃기만 할 뿐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계속 보렴.”
아니,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별로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 분위기에 나도 다시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한 몸인 것처럼 춤을 추는 그녀들.
예쁘다.
동시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그녀들의 안무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녀들이 새기는 궤적이 머릿속에 꽂히듯 들어온다.
여기서는 손님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지?
무슨 생각을 하며 이들을 바라보고 있지?
정신없이 바라보다 보니 그녀들의 화려한 무대가 끝났다.
나는 그동안 자꾸만 내 손이 이상한 곳으로 빠지려는 걸 열심히 막아야만 했다.
내 손이 대체 왜 이러지?
아까부터 내 손이 남의 손인 것만 같다.
가슴이 진정되질 않는다.
쿵쿵거리는 게 마치 전력으로 달리기를 한 것 같다.
“…흥분했구나?”
“아, 아니에요!”
한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렇지만… 이건, 이건 마치 진짜로 내가 흥분….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자, 이제 네 차례야. 보니까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그녀들이 내 등을 떠밀었다.
나가라고? 정말로?
문 앞에는 이미 한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말없이 내가 문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된다.
이대로 나가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발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막내야 파이팅!”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녀들이 내 뒤에서 응원한다.
나는 막내도 아니고, 굳이 잘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지금 나가는 건… 그래. 정보를 얻어야 하니까.
이건 그가 제안한 거래다.
몸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잠깐 내 몸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뿐.
그냥 그것 뿐이다.
여신님… 여신님이 나를 보면 경멸하실까?
아니, 어차피 지금은 연결도 끊어졌잖아.
그 분은 지금 나를 보고 있지 않다.
그럼 여기에 있는 건, 나밖에 없네?
두근.
심장이 아까보다 더 세차게 뛴다.
아무도… 몰라?
이걸 아는 건 나와, 세리아 뿐.
아, 세리아.
그녀는 지금 어딨지?
“아린.”
내 앞에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스태프를 든 채 내 앞에 서있었다.
“세리아….”
“후후, 얘기는 잘 끝마쳤나보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쇄골을 스태프로 툭 쳤다.
“자. 마법으로 가려뒀어. 이제 아무도 네 문신을 보지 못할거야.”
“문신…? 아, 문양 말인가요? 그치만 왜….”
멍하니 내가 묻자 그녀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누군가 알아볼지도 모르잖아.”
누가?
여기 알아볼 사람이 우리말고 누가 또 있단 말인가?
“그렇네. 괜한 걱정이었나봐. 그보다 그가 공연이 끝나면 알려주겠다고 그랬지?”
“네, 네에…. 세, 세리아. 지금 상황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문득 내 이성이 그렇게 물었다.
이 상황,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왜 내가 이런 무대에 나서게 되었지?
한 시간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아니. 하나도 안 이상한데?”
세리아가 단호히 말했다.
“이건 거래잖아. 공연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정보를 받는 것뿐. 이상할 거 없지?”
“거래….”
쇄골이 살짝 쑤시듯 아프다.
“그런… 가요.”
“그런거지.”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살짝 안았다.
“잘 하고와. 특등석에서 보고 있을게.”
“…….”
세리아는 그 말을 마치고선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기대하셨을, 대망의 신입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이야, 저도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그녀가 이 아세일라의 새로운 ‘여왕’이 되리라는 사실을!”
밖에서 누군가가 시끄러운 소리로 외쳤다.
나에게 명함을 건네줬던 그 남자다.
그는 내가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사실 그녀는 오늘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네, 다른 가게에서도 활동한 적 없는, 진짜 신인이죠! 쇼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지만 열정만큼은 우리 에이스에게도 지지 않는, ‘에리’를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자, 시간이다.”
묵묵히 서있기만 하던 남자가 내 등을 떠밀었다.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갔다.
내 앞에는 커튼이 있다.
커튼 뒤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내려다 본 내 몸은 천박하기 짝이 없다.
옷이라고는 팔목과 다리에 감싼 천조각이 전부고, 온 몸에 장신구가 둘둘 감겨있다.
움직일 때마다 짤랑짤랑거리는 감촉이 낯설다.
촤르륵!
그리고, 마침내 커튼이 걷히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와아아아!”
“에리! 에리! 에리!”
에리…?
아니, 난 아린이잖아.
그들의 뜨거운 시선이 내 몸에 닿자 순간 내 머리가 차가워졌다.
이건, 이건 지금….
“히이익!”
미친 것 같다.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몸을 수그리고 말았다.
이건 무희가 취할 좋은 태도가 아니겠지.
아마 다들 나를 욕할 거다.
똑바로 하라고, 창녀주제에 몸을 사린다고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휘이익! 처녀, 처녀구만!”
“이걸 보려고 온 거지! 좋아, 좋아!”
이, 이 사람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읏, 으읏….”
그리고 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왜, 왜 몸이 뜨겁지?
마치 이 상황을 반기는 것만 같다.
일단 일어나자.
돌아가든 앞으로 나아가든, 일어서야 무엇을 할 것 아닌가.
내가 몸을 일으키자 다시 환호가 쏟아진다.
그들의 눈. 수십쌍의 눈동자가 내 온몸을 핥고 있다.
내 긴 머리부터 팔목, 가슴, 배, 그리고… 그리고 그 밑까지.
“…아핫.”
그들의 시선은 마치 세리아의 마법처럼, 열기를 띠고 있었다.
시선이 닿은 부위마다 따뜻하게 열이 오른다.
사람들이 내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그럼 그들의 기대를 맞춰줘야겠지?
지금의 나는… 신관이 아니라, 무희니까.
아까봤던 그들의 동작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우선 팔을 내민다. 있는 힘껏.
내 격렬한 움직임에 가슴이 푸릉 떨렸다.
환호.
그들이 내 작은 몸짓 하나에 반응해주고 있었다.
앞으로 내민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자, 그들의 시선이 내 겨드랑이로 몰린다.
살짝 땀에 젖었는데, 그들이 이걸 볼 수 있을까?
다음 동작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음악에 맞춰, 그들이 했던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한 바퀴 돌고, 귀족 아가씨처럼 우아하게 인사하고.
당연히 옷을 입지 않으니 가슴이 밑으로 축 처진다.
추잡한 시선이 온통 내 가슴에 몰린다.
재밌다.
그들의 시선이,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인다.
팔을 들면 내 겨드랑이로,
격렬하게 움직이면 내 가슴에.
이상하리만치 다른 무희들은 가랑이를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이게 그녀들의 비결인 걸까?
나도 따라해봤다.
그들의 시선은 내 다리와 허벅지에 온통 쏠리지만, 결코 더 깊숙이 들어오는 일이 없다.
보고 싶어도, 그들은 보지 못한다.
내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읏.”
고양감.
춤을 추니까 땀도 난다.
더.
아직 더 출 수 있다.
여기는? 여기는 어떤가요?
제 몸이 그렇게나 신경쓰이나요?
도발적으로 허리를 한 번 흔들어주자 벌떡 일어난 남자들 때문에 술병이 몇 개 깨졌다.
저런, 물어내셔야겠네.
손님들을 하나씩 훑어봤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짐승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발정기가 온 숫캐같다.
찌릿찌릿하다.
저들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나에게 달려들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그 때 저항할 수 있을까?
예컨대, 저 남자.
가장 비싸보이는 자리에서 다른 여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저 남자가 나를 덮친다면?
아니면, 그 옆의 남자는…….
“……어?”
저 남자는…….
그는….
“용사님?”
음악이 그쳤다.
***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무대는 내려간 뒤였다.
왠지모르게 기뻐하던 무희들의 칭찬세례를 받은 뒤, 그 남자는 나를 다시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대단히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이야아, 정말 좋았네! 정말 훌륭했어! 역시 내가 눈여겨본 보람이 있구만 그래!”
그는 박수를 치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자네는 보석이야! 다이아몬드! 이 도시의 진정한 여왕이 될 수 있을 걸세!”
과도한 기대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아니, 애초에 원하지도 않는 자리다.
“저기… 이제 질문에 대답을….”
“아, 그렇지! 그래, 맞아! 그래서 찾아왔던 거지, 참.“
그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연신 손뼉을 두드렸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문을 열었다.
아마 그곳은 그의 사무실인 것 같았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비싸보이는 가구들로 가득차 있었다.
가장 안 쪽에는 그의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그 앞에는 손님을 위한 낮은 의자가 몇 개 비치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들 중 하나에, 그가 앉아있었다.
“오, 공연 잘 봤습니다. ‘에리’ 씨.”
“…히익.”
제렌 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