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짐꾼-85화 (85/236)

〈 85화 〉 [신관] 무희

꿈이다. 이건 전부 꿈이다.

꿈이어야만 한다.

“와아아아!”

“에리! 에리! 에리!”

수십쌍의 시선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

추잡한 욕망에 휩싸인 눈동자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벌레처럼 기어다닌다.

“아, 아아….”

여신님, 제발.

이 모든게 꿈이라고 말해주세요.

그러면 분명 이 흥분도 꿈의 일부일 테니까.

***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그 남자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황당해서 뭐라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곧 남자 둘이 내 어깨를 붙잡고 무대 안 쪽으로 날 데려갔다.

“자, 잠깐만요! 저기요!”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교회에 들릴 때까지만 해도 세리아와 나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 낡은 교회에는 사제와 수녀 각각 한 분만이 계셨고, 교회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그 폐허 속에서 사제님은 우리에게 비통하기 짝이 없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곳은 이미 몽마가 지배한 땅이라고.

왜 이 사실을 교회에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자기도 이미 늦었기 때문… 이라고 밝혔다.

세리아가 제 때 마법을 쓰지 않았다면 그 남자에게 덮쳐졌을 지도 모른다.

수녀는 이미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이 교회조차 이미 오염된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린 돌아갔어야했다.

돌아가서 사태의 심각함을 알리고, 교회와 왕국에 이 사실을 전달해야했다.

그렇지만 세리아는 아직 들려야 할 곳이 남았다면서 우리를 이 가게에 데려왔다.

천의 얼굴.

이름부터 꺼림칙한 이 가게는 어제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열심히 나를 유혹하던 그 가게였다.

왜 내가 세리아의 말을 순순히 따랐을까.

그녀는 보다 더 정확한 보고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건 핑계였다.

나는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그녀의 말을 따랐다.

왜?

나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 때 내가 속에 품고 있는 감정은 결코 신관의 것이 아니었다.

“신입이다. 한 시간 뒤에 첫 공연이니 도와주도록.”

나를 거의 반쯤 납치하다시피 끌고간 두 남자는 나를 여자들로 가득한 공간에 집어넣었다.

“어머나, 얼굴 하얀거 봐.”

“얘 너 그 옷 진짜야?”

그녀들은 거의 헐벗다시피 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팔목과 다리만 가릴 거면 대체 옷을 왜 입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여자들은 마치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나를 둘러싸고 내 얼굴이며 옷을 만지작거리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저, 저기….”

“꺄악! 목소리 곱다!”

“진짜 신관이야? 응? 진짜로?”

세상에.

그녀들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얘들아, 진정해. 애가 떨고 있잖니.”

그녀들 뒤에 가려있던 한 여자가 그리 말하자, 다들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미안해요, 언니.”

“응. 조용히 할게.”

그러더니 다들 우르르 몰려왔던 것처럼 우르르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제야 나는 이들을 진정시킨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빨간 머리. 세리아처럼 새빨갛다.

다만 그녀보다 머리카락은 더 길었는데, 뻐끔거리며 담배를 피는 그녀는 다른 여자들처럼 자기 상반신을 훤히 내놓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살짝 어두운 유륜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피어스가 훤히 눈에 들어왔다.

“반응을 보니 정말 신입이 맞네. 이게 얼마만이래?”

“1년! 1년이야 언니!”

한 여자가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드디어 신입이 왔어! 나 이제 막내 아니지? 그치?”

“막내야. 누가 허락 없이 입을 열랬니?”

“합!”

막내라 불린 그 여자는 빨간 머리 여자의 한 마디에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얼굴이 싱글벙글한게 여간 기쁜게 아닌 듯 하다.

“그래. 이름은?”

“…아, 아린이요.”

“본명이야? 여기선 본명 쓰지마.”

그녀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에리. 넌 오늘부터 에리야.”

“네?”

내 당황한 표정을 본 그녀가 연기를 훅 내뿜으며 다시 물었다.

“여긴 어쩌다 왔어?”

그렇지.

지금 상황이 너무 정신 없어서 그럴 겨를이 없었지만,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

“무,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요…! 전, 전 이러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닌데….”

“너 어제 사장님한테 직접 명함 받았던 년 아니야?”

“사장님…? 바, 받기는 했는데….”

“어제 재능 있는 년을 낚았다고 좋아하던데. 이미 스케줄 다 짜놨어.”

“네…?”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뭔가 잘못 생각한 거 같은데… 여기 들어온 순간 넌 이미 신입이야. 한 시간 뒤에 단독무대가 있을거고.”

“네? 노, 농담이시죠?”

뭔가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다.

세리아. 세리아는 어딨지?

“저, 저기 아무나 좀 불러주세요! 뭐라 얘기를….”

난 정말 다급했는데, 그녀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깔깔 웃었다.

“얘 반응이 꼭 세리 처음 왔을 때 같네.”

“어머, 언니도 참. 내가 언제 저랬어.”

“너도 첫날에는 막 납치되었다는 둥 속았다는 둥 그랬잖아.”

“그랬나?”

태평한 소리로 끔찍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저기, 전 정말….”

“네가 무슨 일로 여기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아들여. 이미 넌 우리 가족이야.”

“가, 가족…?”

도망쳐야한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려고 하자 누군가가 내 뒤에서 어깨를 붙잡았다.

“우리 동생, 벌써부터 돌아가려고? 안 되지.”

“놔, 놔주세요!”

한 명이 아니다.

여러 명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흠, 일단 옷부터 갈아입히자. 보니까 이 상태로는 말도 안 들어주겠네.”

“아, 아무나! 도, 도와… 읍!”

누군가는 내 입을 막고, 또 누군가는 내 옷을 마구잡이로 벗겼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 혼자로는 그녀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어머, 언니 이거 봐.”

“예쁜 문신이네. 누가 새겨줬어?”

“읍, 으읍! 읍!”

그녀들은 내 쇄골에 새겨진 문양을 보며 웃었다.

“보기만 해도 야한데, 언니?”

“와, 이렇게 천박한 문신을 하고 다닌단 말이야? 신관은 아닌가봐.”

이건, 고작 이 여자들의 웃음거리로 치부될 만한 것이 아니다.

여신님이… 여신님이 내려주신 신성한 문양. 결코 값싼 창녀의 문신 따위가 아니다.

그녀들은 내 옷을 강제로 벗기더니, 어디선가 그녀들과 똑같은 옷을 가지고 왔다.

옷도 아니다. 이건 그냥 천조각이다.

“읍, 읍읍!”

“얘, 좀 진정해봐. 이거 쓰고 나면 너도 이해할 걸.”

하지만 내 발버둥은 고작 옷을 입기 싫어서가 아니다.

저 옷.

저 옷에서는 무척이나 불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저 옷을 결코 입어서는 안 된다.

“자… 일단 팔부터.”

“으읍! 읍!”

그렇지만 그걸 알면 무엇하겠는가?

혼자서는 도망칠 힘도 없는데.

축복? 아까부터 계속 시도하고 있지만 아무런 힘도 나지 않는다.

무언가가 나와 여신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내 기도가, 내 외침이 그분께 닿질 않았다.

“읍! 으읍!”

내 저항이 무색하게, 곧 내 왼팔에 천조각이 하나 씌워졌다.

하나가 들어가고 나니 나머지는 순식간이었다.

순식간에 나는 그녀들과 똑같은 복장이 되고 말았다.

“어때, 좀 침착해졌지?”

“네에….”

옷을 입고나니 당황스러웠던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내 이성마저 빼앗기진 않았다.

이건 저주.

아주 미약한 저주다.

“자, 그럼 이제야 좀 얘기가 통하겠네. 다시 한 번 소개를 해줄래?”

“…제 이름은 아린이에요. 제 동료 세리아와 함께 가게 주인분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찾아왔는데, 저만 따로 불러내더니 갑자기 여기로 납치당했어요.”

아마 저항력을 상실시키는 종류의 저주인 것 같다.

그렇게 강력한 종류는 아니다. 여신님과 다시 이어지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제할 수 있다.

그분과 연결이 끊어진건 아마 이 건물 내에 있는 무언가의 장치 탓이겠지.

이건 명백한 이단행위.

정황을 전달만 하면 관계자 모두가 사형되고도 남을 대사건이다.

이럴 때 곁에 세리아가 있었더라면….

세리아, 당신은 대체 어디있죠?

“흐음, 그러니까 같이 온 동료가 있는데 우리 사장님이 널 따로 불러내더니 다짜고짜 여기로 데려왔다고?”

“네, 네! 맞아요!”

내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자 사방에서 아쉬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쳇, 일회용인가.”

“막내 탈출인 줄 알았는데….”

뭐지 이 반응은?

아까랑은 또 사뭇 다르다.

“그럼 한 번만 하고 보내주겠네. 사장님이 너한테 뭐 약속하지 않았어?”

“약속?”

그러고보니, 그 남자가 사람들을 부르기 전에 이런 얘기를 했다.

‘궁금해하시는 거 전부, 이따가 알려드리죠.’

설마 공연을 해야 알려준다는 뜻이었던 건가?

“가끔 그러시거든, 우리 사장님. 가능성은 보이는데 안 들어올 거 같은 애들한테는 딱 한 번만 해달라고 그래. 그 뒤로는 안 건드려. 진짜로.”

“그, 그런가요…?”

그럼 다행… 아니지, 애초에 이런 걸 해야하는 것 부터가 말이 안 된다!

“뭐… 그 뒤에 제 발로 직접 찾아오면 별개지만 말이야.”

“그, 그럴 일 없어요!”

말도 안된다. 뭐가 좋아서 이런 데를 스스로 찾아오겠는가?

“곧 공연이다, 준비해!”

갑자기 밖에서 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너무 놀았네.”

“나갈 애들은 준비해.”

“네 언니.”

날 데리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그녀들은 그 말을 듣더니 순식간에 분주히 화장이나 복장 등을 점검하면서 분주히 움직였다.

“어… 뭐죠?”

“우리 끝나면 네 차례니까, 준비해.”

“네?”

아,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아니, 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잠시 뒤 그 많은 여자들 중 셋이 복장과 화장을 모두 갖추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 그러고 나가는 거에요?”

“응. 당연하지.”

경악스러웠다.

저 입으나마나한 옷과 수많은 장신구들만 차고 나간단 말인가?

밖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후후, 이게 우리 무희야. 잘 기억해두렴.”

빨간 머리의 여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중한 머리카락이라 화를 내고 싶었지만,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곧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준비를 마친 셋을 데리고 나가더니, 문을 열어둔 채 그래도 나갔다.

“잘 봐.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여자들 중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녀들의 화려한 춤을.

화려했지만 음란했다.

부끄럽지도 않은지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더 많은 남자들에게 자신의 예쁜 몸을 내민다.

더러운 시선, 끈적한 시선이 그녀들의 몸에 꽂힘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왜 웃고 있는 거지?

자기를 더러운 성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 거지?

동등한 인격체로도 보고 있지 않은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왠지 이해가 될 것만도 같았다.

“어머, 역시 너 재능이 있구나.”

누군가의 말을 듣고서야 눈치챘는데, 내 손은 자연스레 하복부를 향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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