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신관] 무희
꿈이다. 이건 전부 꿈이다.
꿈이어야만 한다.
“와아아아!”
“에리! 에리! 에리!”
수십쌍의 시선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
추잡한 욕망에 휩싸인 눈동자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벌레처럼 기어다닌다.
“아, 아아….”
여신님, 제발.
이 모든게 꿈이라고 말해주세요.
그러면 분명 이 흥분도 꿈의 일부일 테니까.
***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그 남자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황당해서 뭐라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곧 남자 둘이 내 어깨를 붙잡고 무대 안 쪽으로 날 데려갔다.
“자, 잠깐만요! 저기요!”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교회에 들릴 때까지만 해도 세리아와 나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 낡은 교회에는 사제와 수녀 각각 한 분만이 계셨고, 교회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그 폐허 속에서 사제님은 우리에게 비통하기 짝이 없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곳은 이미 몽마가 지배한 땅이라고.
왜 이 사실을 교회에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자기도 이미 늦었기 때문… 이라고 밝혔다.
세리아가 제 때 마법을 쓰지 않았다면 그 남자에게 덮쳐졌을 지도 모른다.
수녀는 이미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이 교회조차 이미 오염된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린 돌아갔어야했다.
돌아가서 사태의 심각함을 알리고, 교회와 왕국에 이 사실을 전달해야했다.
그렇지만 세리아는 아직 들려야 할 곳이 남았다면서 우리를 이 가게에 데려왔다.
천의 얼굴.
이름부터 꺼림칙한 이 가게는 어제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열심히 나를 유혹하던 그 가게였다.
왜 내가 세리아의 말을 순순히 따랐을까.
그녀는 보다 더 정확한 보고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건 핑계였다.
나는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그녀의 말을 따랐다.
왜?
나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 때 내가 속에 품고 있는 감정은 결코 신관의 것이 아니었다.
“신입이다. 한 시간 뒤에 첫 공연이니 도와주도록.”
나를 거의 반쯤 납치하다시피 끌고간 두 남자는 나를 여자들로 가득한 공간에 집어넣었다.
“어머나, 얼굴 하얀거 봐.”
“얘 너 그 옷 진짜야?”
그녀들은 거의 헐벗다시피 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팔목과 다리만 가릴 거면 대체 옷을 왜 입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여자들은 마치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나를 둘러싸고 내 얼굴이며 옷을 만지작거리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저, 저기….”
“꺄악! 목소리 곱다!”
“진짜 신관이야? 응? 진짜로?”
세상에.
그녀들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얘들아, 진정해. 애가 떨고 있잖니.”
그녀들 뒤에 가려있던 한 여자가 그리 말하자, 다들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미안해요, 언니.”
“응. 조용히 할게.”
그러더니 다들 우르르 몰려왔던 것처럼 우르르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제야 나는 이들을 진정시킨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빨간 머리. 세리아처럼 새빨갛다.
다만 그녀보다 머리카락은 더 길었는데, 뻐끔거리며 담배를 피는 그녀는 다른 여자들처럼 자기 상반신을 훤히 내놓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살짝 어두운 유륜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피어스가 훤히 눈에 들어왔다.
“반응을 보니 정말 신입이 맞네. 이게 얼마만이래?”
“1년! 1년이야 언니!”
한 여자가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드디어 신입이 왔어! 나 이제 막내 아니지? 그치?”
“막내야. 누가 허락 없이 입을 열랬니?”
“합!”
막내라 불린 그 여자는 빨간 머리 여자의 한 마디에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얼굴이 싱글벙글한게 여간 기쁜게 아닌 듯 하다.
“그래. 이름은?”
“…아, 아린이요.”
“본명이야? 여기선 본명 쓰지마.”
그녀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에리. 넌 오늘부터 에리야.”
“네?”
내 당황한 표정을 본 그녀가 연기를 훅 내뿜으며 다시 물었다.
“여긴 어쩌다 왔어?”
그렇지.
지금 상황이 너무 정신 없어서 그럴 겨를이 없었지만,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
“무,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요…! 전, 전 이러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닌데….”
“너 어제 사장님한테 직접 명함 받았던 년 아니야?”
“사장님…? 바, 받기는 했는데….”
“어제 재능 있는 년을 낚았다고 좋아하던데. 이미 스케줄 다 짜놨어.”
“네…?”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뭔가 잘못 생각한 거 같은데… 여기 들어온 순간 넌 이미 신입이야. 한 시간 뒤에 단독무대가 있을거고.”
“네? 노, 농담이시죠?”
뭔가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다.
세리아. 세리아는 어딨지?
“저, 저기 아무나 좀 불러주세요! 뭐라 얘기를….”
난 정말 다급했는데, 그녀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깔깔 웃었다.
“얘 반응이 꼭 세리 처음 왔을 때 같네.”
“어머, 언니도 참. 내가 언제 저랬어.”
“너도 첫날에는 막 납치되었다는 둥 속았다는 둥 그랬잖아.”
“그랬나?”
태평한 소리로 끔찍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저기, 전 정말….”
“네가 무슨 일로 여기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아들여. 이미 넌 우리 가족이야.”
“가, 가족…?”
도망쳐야한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려고 하자 누군가가 내 뒤에서 어깨를 붙잡았다.
“우리 동생, 벌써부터 돌아가려고? 안 되지.”
“놔, 놔주세요!”
한 명이 아니다.
여러 명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흠, 일단 옷부터 갈아입히자. 보니까 이 상태로는 말도 안 들어주겠네.”
“아, 아무나! 도, 도와… 읍!”
누군가는 내 입을 막고, 또 누군가는 내 옷을 마구잡이로 벗겼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 혼자로는 그녀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어머, 언니 이거 봐.”
“예쁜 문신이네. 누가 새겨줬어?”
“읍, 으읍! 읍!”
그녀들은 내 쇄골에 새겨진 문양을 보며 웃었다.
“보기만 해도 야한데, 언니?”
“와, 이렇게 천박한 문신을 하고 다닌단 말이야? 신관은 아닌가봐.”
이건, 고작 이 여자들의 웃음거리로 치부될 만한 것이 아니다.
여신님이… 여신님이 내려주신 신성한 문양. 결코 값싼 창녀의 문신 따위가 아니다.
그녀들은 내 옷을 강제로 벗기더니, 어디선가 그녀들과 똑같은 옷을 가지고 왔다.
옷도 아니다. 이건 그냥 천조각이다.
“읍, 읍읍!”
“얘, 좀 진정해봐. 이거 쓰고 나면 너도 이해할 걸.”
하지만 내 발버둥은 고작 옷을 입기 싫어서가 아니다.
저 옷.
저 옷에서는 무척이나 불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저 옷을 결코 입어서는 안 된다.
“자… 일단 팔부터.”
“으읍! 읍!”
그렇지만 그걸 알면 무엇하겠는가?
혼자서는 도망칠 힘도 없는데.
축복? 아까부터 계속 시도하고 있지만 아무런 힘도 나지 않는다.
무언가가 나와 여신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내 기도가, 내 외침이 그분께 닿질 않았다.
“읍! 으읍!”
내 저항이 무색하게, 곧 내 왼팔에 천조각이 하나 씌워졌다.
하나가 들어가고 나니 나머지는 순식간이었다.
순식간에 나는 그녀들과 똑같은 복장이 되고 말았다.
“어때, 좀 침착해졌지?”
“네에….”
옷을 입고나니 당황스러웠던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내 이성마저 빼앗기진 않았다.
이건 저주.
아주 미약한 저주다.
“자, 그럼 이제야 좀 얘기가 통하겠네. 다시 한 번 소개를 해줄래?”
“…제 이름은 아린이에요. 제 동료 세리아와 함께 가게 주인분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찾아왔는데, 저만 따로 불러내더니 갑자기 여기로 납치당했어요.”
아마 저항력을 상실시키는 종류의 저주인 것 같다.
그렇게 강력한 종류는 아니다. 여신님과 다시 이어지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제할 수 있다.
그분과 연결이 끊어진건 아마 이 건물 내에 있는 무언가의 장치 탓이겠지.
이건 명백한 이단행위.
정황을 전달만 하면 관계자 모두가 사형되고도 남을 대사건이다.
이럴 때 곁에 세리아가 있었더라면….
세리아, 당신은 대체 어디있죠?
“흐음, 그러니까 같이 온 동료가 있는데 우리 사장님이 널 따로 불러내더니 다짜고짜 여기로 데려왔다고?”
“네, 네! 맞아요!”
내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자 사방에서 아쉬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쳇, 일회용인가.”
“막내 탈출인 줄 알았는데….”
뭐지 이 반응은?
아까랑은 또 사뭇 다르다.
“그럼 한 번만 하고 보내주겠네. 사장님이 너한테 뭐 약속하지 않았어?”
“약속?”
그러고보니, 그 남자가 사람들을 부르기 전에 이런 얘기를 했다.
‘궁금해하시는 거 전부, 이따가 알려드리죠.’
설마 공연을 해야 알려준다는 뜻이었던 건가?
“가끔 그러시거든, 우리 사장님. 가능성은 보이는데 안 들어올 거 같은 애들한테는 딱 한 번만 해달라고 그래. 그 뒤로는 안 건드려. 진짜로.”
“그, 그런가요…?”
그럼 다행… 아니지, 애초에 이런 걸 해야하는 것 부터가 말이 안 된다!
“뭐… 그 뒤에 제 발로 직접 찾아오면 별개지만 말이야.”
“그, 그럴 일 없어요!”
말도 안된다. 뭐가 좋아서 이런 데를 스스로 찾아오겠는가?
“곧 공연이다, 준비해!”
갑자기 밖에서 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너무 놀았네.”
“나갈 애들은 준비해.”
“네 언니.”
날 데리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그녀들은 그 말을 듣더니 순식간에 분주히 화장이나 복장 등을 점검하면서 분주히 움직였다.
“어… 뭐죠?”
“우리 끝나면 네 차례니까, 준비해.”
“네?”
아,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아니, 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잠시 뒤 그 많은 여자들 중 셋이 복장과 화장을 모두 갖추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 그러고 나가는 거에요?”
“응. 당연하지.”
경악스러웠다.
저 입으나마나한 옷과 수많은 장신구들만 차고 나간단 말인가?
밖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후후, 이게 우리 무희야. 잘 기억해두렴.”
빨간 머리의 여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중한 머리카락이라 화를 내고 싶었지만,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곧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준비를 마친 셋을 데리고 나가더니, 문을 열어둔 채 그래도 나갔다.
“잘 봐.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여자들 중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녀들의 화려한 춤을.
화려했지만 음란했다.
부끄럽지도 않은지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더 많은 남자들에게 자신의 예쁜 몸을 내민다.
더러운 시선, 끈적한 시선이 그녀들의 몸에 꽂힘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왜 웃고 있는 거지?
자기를 더러운 성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 거지?
동등한 인격체로도 보고 있지 않은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왠지 이해가 될 것만도 같았다.
“어머, 역시 너 재능이 있구나.”
누군가의 말을 듣고서야 눈치챘는데, 내 손은 자연스레 하복부를 향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