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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83화 (83/236)

〈 83화 〉 [용사] 밤의 도시

안그래도 별 소득도 없는데, 왠 이상한 아저씨가 끼어들어 방해하는 바람에 괜히 지금 상황만 서로 어색해졌다.

“음, 오늘은 그냥 들어갈까?”

우리는 세리아의 말에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이 방식대로는 조사가 불가능할 거 같다.

돌아가면 다 같이 한 번 얘기해봐야지.

숙소에 들어오자 제렌 씨가 숙소 주인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찍 오셨군요. 일이 잘 안 풀리셨나보죠?”

그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반응이다.

“뭐, 그렇게 됐네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의 말을 받았다.

사실이라서 딱히 덧붙이거나 반박할 말도 없다.

“에릭, 우린 이따가 저녁 먹을 때 쯤 다시 내려올게.”

“어? 응.”

세리아는 나를 툭툭 치며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올라갔다.

“아린, 뭐해? 올라와.”

“네? 저도요?”

아린은 내 옆에 앉으려다가 세리아가 부르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따라 올라갔다.

“그럼 나도 올라가야지!”

유니가 둘을 따라 계단을 오르려하자 세리아가 살짝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 미안한데, 조금 있다가 올라와줄래? 잠시 아린과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뭐야, 비밀이야기야?”

유니가 삐진 척을 하며 입술을 비죽이자 세리아가 어쩔 줄을 몰라했다.

“흥, 됐어. 그럼 난 에릭하고 있을 테니까 얘기 나누고 와.”

고개를 홱 돌리며 불만스럽다는 듯 툴툴거리지만 사실 별로 화가 난 건 아니다.

유니는 정말 화가 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도 지금까지 딱 한 번 봤는데 그 땐 정말 무서웠다.

“금방 돌아올게요, 유니.”

아린이 그녀를 살짝 달래며 세리아를 따라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는 거지?

“흥, 흥!”

유니는 둘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팔짱을 끼고 화난 척을 하고 있었다.

아, 이거 달래주라는 뜻이구나.

“유니, 이리와.”

“에릭이 와.”

그럼 내가 가야지.

나는 자리를 옮겨 그녀의 옆으로 이동했다.

내가 그녀의 옆에 앉기 무섭게 유니는 내 팔을 살짝 끌어앉으며 헤실헤실 웃었다.

“히히, 사실 화 안 났어.”

“그런 거 같더라. 그러면서 갑자기 왜 그랬어?”

내 말에 유니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글세…? 그냥 뭔가 느낌이 이상했어.”

“이상해?”

“응.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

예감?

뭐라고 판단하기가 어려운 얘기였다.

그렇지만 여태껏 그녀가 감이 좋았다거나 그랬던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이게 유니의 변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도 세리아랑 아린은 정말 네가 화낸 줄 알고 당황했잖아. 내려오면 오해는 풀어줘.”

“응…. 알았어.”

유니는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흘긋 바라봤다.

“에릭.”

“왜?”

“여기 어떤 거 같아?”

어떻냐라.

솔직히 같은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교회가 좀 과민반응하는게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오고나니 교회의 반응은 오히려 조용한 편이 아니었을까 싶을정도로 많이 당황스러운 도시였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창관을 영업하는 도시가 또 어딨단 말인가?

“그거 알아? 여기 정령들이 없어.”

“…정령이 없다고?”

정령은 자연발생하는 존재.

편의상 무슨 속성을 띠고 있느냐에 따라 종류를 나누기는 하지만, 원래 정령들은 다 비슷한 존재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자연의 마나가 뭉쳐 미약한 의사를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저번에 유니한테 들었다.

따라서 자연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나 정령은 존재한다.

물론 도시보다는 숲 속에 정령이 더 많긴 하나, 제 아무리 사람이 많이 살고 인공적인 건축물이 잔뜩 들어선 곳이라도 정령이 없는 곳은 없다.

“처음에는 다들 부끄러워서 숨은 줄 알았는데, 어딜 가도 안 보여.”

“…그건 확실히 좀 이상하네.”

그러고보니 여기는 다른 곳보다 조금 대기가 텁텁한 느낌도 든다.

이것도 정령이 없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스승님이 말해주셨는데, 이 세상에 정령이 없는 곳은 딱 한 군데밖에 없대.”

“어딘데?”

배를 타고 바다 위로 올라가면 보인다는 전설의 얼음대륙?

아니지, 그곳에도 물의 정령 같은 건 있을 거다.

“마계.”

그 말을 들은 나는 순간 긴장감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마계.

마왕과 마물들이 건너온 세계를 흔히 그렇게들 부른다.

정말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건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 대륙에서 나타났다고 보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존재가 많기 때문이다.

그 존재유무도 아직 확실하지 않은데, 유니의 스승님은 마계를 갔다오시기라도 한 걸까?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계시지?

“나도 스승님이 왜 그런 걸 아시는지는 모르겠어. 얘기 안해주셨거든.”

“으음… 그 분을 의심하려는 건 아니지만 믿을 수 있는 거 맞아?”

유니의 스승이라면 나도 일면식이 있다.

내가 용사로 선정되고, 그녀가 나를 따라나서기로 한 며칠 뒤, 우리는 무턱대고 출발한 여행길 한복판에서 그녀와 만났다.

사실 스승이라고 부를만큼 많은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이틀이었나? 그정도 같이 다녔을 뿐이다.

마침 우연히 그녀도 정령사였기 때문에, 그녀는 이제 막 정령사로서 개화한 유니에게 여러 조언을 주었다.

얼마 못가 목적지가 달라 다시 헤어지긴 했지만, 그 선배 정령사에게 이것저것 배운 유니는 그녀를 꼬박꼬박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지금 스승님을 의심하는 거야?”

“아, 아야야, 미안미안!”

유니가 째릿 나를 노려보며 내 볼을 잡아당겼다.

유니가 이러는 것도 참 간만이네.

어릴 때는 하도 많이 잡아당겨서 볼이 늘어나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 땐 나도 장난치시는 줄 알고 그냥 듣고 넘겼는데, 여기 오니까 딱 그 생각이 나더라고.”

“그럼 미리 말을 해주지 그랬어.”

“어딘가 숨어있을 줄 알았지. 수도도 거리 한복판에는 정령이 없었단 말이야.”

확실히 이건 좀 많이 중요한 정보 같은데.

여기가 마계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마계와 가까운 곳으로 변했다거나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그랬다면 우리끼리 해결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일단 세리아랑 아린이 내려오면 얘기해봐야겠다. 어쩌면 우리가 손댈 일이 아닐지도 몰라.”

“역시 그렇겠지? 으으… 저번같은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루엘라에게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던 그런 경험은 나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내가 조금 더 노력하는 수밖에.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 우리 뒤로 한 여자가 지나갔다.

인기척에 문득 뒤를 돌아봤던 나는 그녀의 투명하다시피 한 옷감에 흠칫 놀라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에릭… 저런 게 좋은 거야?”

“어? 아, 아냐!”

유니가 살짝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부정했지만, 하필이면 옆에서 제렌 씨가 끼어들면서 상황이 난감해졌다.

“하하! 뭐, 용사님도 남자니까 어쩔 수 없죠.”

“에릭….”

“아, 아니라니까! 제렌 씨도 무슨 소리세요 갑자기!”

이러면 내가 이상한 사람 같잖아!

“오, 오해야, 유니…!”

“아가씨, 모든 남자는 저런 옷을 좋아합니다. 아니라는 사람들은 전부 거짓말쟁이죠.”

“아, 아니….”

사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볼 때마다 두근거리니까.

그렇지만 그걸 차마 유니 앞에서 그대로 밝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유니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야…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마…!

“풋, 흐히히… 에릭 지금 표정 엄청 웃긴 거 알아?”

“하하, 용사님이 많이 당황하셨군요, 이거 죄송합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둘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 걸 보니 꽤나 우스꽝스러웠나보다.

유니는 깔깔 웃더니 장난이었다면서 나를 달래주었다.

아린한테 배운 건가? 후,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그렇게 잠시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 둘이 다시 내려왔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린의 얼굴에는 다 감추지 못한 부끄러움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들이 자리에 앉자 나는 유니가 했던 얘기를 다시 그녀들에게 들려주었다.

“그 얘기, 확실한거죠?”

“응. 3일간 돌아다니면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교회에도 알려야겠네요.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요.”

아린은 역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세리아도 표정을 굳히며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세리아는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방식을 바꿔야할 거 같아.”

“방식? 어떻게?”

“그냥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대상을 미리 정하고 가는 거지. 여기 사람들 대부분은 이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알 것 같은 사람을 찾아가자는 거야.”

“예를 들면?”

세리아는 아린을 잠깐 바라보고는 우리에게 세 손가락을 내밀었다.

“영주, 지역 사제, 그리고… 아린에게 명함을 줬던 그곳 사장.”

앞의 둘은 이해가 간다.

이 도시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사람들이니까, 분명 무언가를 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마지막은 왜?

“거기가 제일 큰 곳이랬잖아. 그런 곳의 사장 정도면 이 도시의 유흥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그들이 그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을테니 위에서는 모르는 정보를 이들이 알고 있을 수도 있어.”

듣고보니 이해는 간다.

그렇지만… 아린에게 그렇게나 노골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정말 괜찮은 걸까?

“영주한테는 에릭하고 유니가 가줘. 유니가 정령사니까 직접 가면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줄지도 몰라. 우리는 교회랑 그 가게에 가볼게.”

“…아린을 데리고 거길 가겠다고?”

그건…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무언가 가슴이 답답하다. 그녀를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제는 당연히 아린이 만나야할테고, 제… 렌 씨에게 들었는데 가게도 거기 근처래. 그럼 한 번에 들렸다 오는게 좋잖아?”

“…그, 그래도….”

세리아와 아린 정도면 어디가서 쉽게 힘으로 밀리지는 않겠지.

그래도… 그래도 자꾸 불안함이 엄습힌다.

“에릭 너도 빨리 끝내고 여기서 나가는 편이 좋잖아. 마음은 이해하지만 내가 무슨 일 안 생기게 지킬테니까 걱정마.”

“…….”

세리아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안감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아린, 너도 한 마디 해줘.”

“네? 제, 제가 말인가요?”

“응. 같이 가는 거잖아.”

아린은 세리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우물쭈물하며 나에게 말했다.

“…저, 정말로 대화만 나누고 올게요. 여기도 교회가 있는 곳인데, 설마 성직자에게 손을 댈 생각은 못할 거에요.”

정말 이대로 그녀들을 보내도 괜찮은 걸까.

“그렇다네. 그럼 에릭도 괜찮은 거지? 지금 갔다올게.”

“자, 잠깐만!”

세리아가 곧장 출발하려고 하자 나도 모르게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는 순간 싸늘한 표정을 지었는데, 너무 순간적이라 내가 잘못 본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왜?”

“그, 그래도 이건 좀….”

뭐라고 해야하지?

나도 모르게 유니를 바라봤다.

유니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잠시 나와 세리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으음… 잘 갔다와?”

망했다.

아무래도 유니는 내 불안감을 이해못한 것 같았다.

세리아와 아린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는 건가?

그럼 그 말은 곧 내가 둘의 능력을 못 믿는다는 소리 아닌가.

“후… 정말 별 일 없을 거라니까. 우리를 못 믿어?”

“그, 그건 아니지만….”

“용사님, 저는 괘, 괜찮아요. 금방 올테니 너무 걱정마시구요.”

아린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불안감이 조금씩 섞여있었다.

그 얼굴을 보면, 더 걱정할 수밖에 없잖아.

내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세리아는 아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제렌 씨가 불안해하는 나에게 한 마디 위로를 해주었다.

“뭐, 그녀들을 좀 믿어주시죠. 이것도 용사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걱정마, 에릭. 어디 가서 맞고다닐 애들은 아니잖아!”

“아니, 싸우러 가는 거 아니잖아.”

유니가 엉뚱한 소리를 했지만 덕분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며 불안감도 조금 줄었다.

이걸 노린걸까?

설마 유니가 그렇게까지 머리를 쓰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녀 덕분에 조금은 편해졌다.

“그래. 우리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가자, 유니.”

세리아는 여태까지 잘못된 판단을 내린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분명 옳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나는, 세리아를 믿으니까.

“죄송하지만 영주님은 현재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영주성을 찾아간 우리는 다소 당혹스러운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럼 언제쯤 오시죠?”

“아마 해가 진 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선 너무 늦다.

“혹시 어디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음… 그런 건 말씀드리기가….”

대리인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쉽게 대답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는 용사입니다. 그리고 옆에는 제 동료구요. 저희는 영주님께 아주 긴급한 소식을 전하려 찾아온 겁니다. 어디계신지 말씀해주세요.”

“으음… 그래도….”

남자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유니가 덥석 그의 손을 잡고는 눈망울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물었다.

“저기… 정말 급한데에…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유니?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운거야.

또 아린인가?

“어, 그… 워, 원래는 알려드리면 안 되는데… 에휴, 영주님은 지금 ‘천의 얼굴’에 계십니다.”

“천의 얼굴?”

그는 우리 둘 다 거기가 어딘지 모르는 눈치자 유니를 바라보곤 이렇게 덧붙였다.

“그…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스트립쇼가 열리는 곳입니다. 오늘 신입이 들어온다길래 그걸 보러가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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