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짐꾼] 쌓이는 오해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물어보는 아린.
벗는다고 했으면 다 벗어야지, 대체 이게 뭐하자는 짓인가?
나는 아린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려다가, 그냥 내버려뒀다.
생각보다 그녀의 반응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세, 세리아… 그렇게 바라보지 마요.”
“왜? 그러면 연습이 안 되잖아.”
손으로 열심히 가린 채 머뭇거리는 아린.
차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자꾸만 애꿎은 창문을 바라본다.
나는 연습이란 핑계로 그녀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뒤 찬찬히 그녀의 몸을 감상했다.
신관들도 의외로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쓴다.
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걔네들도 사람이니 신경을 안 쓸 순 없겠지.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아린은 특히나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머리 관리를 할 정도이니 말 다했지.
그런 그녀의 열정은 폼이 아니었는지, 아린의 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굳이 손으로 가릴 필요도 없을만큼 가슴이 빈약한 걸 빼면, 잘록한 허리도 그렇고 둥근 골반도 그렇고 정말 흠 잡을 곳 없이 다 좋았다.
원래 신관들은 다 이정도로 관리를 하나?
이 년 말고 다른 신관의 알몸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아린, 다른 신관들도 다 너처럼 관리를 해?”
“네, 네? 그… 그런 게 왜 궁금하죠?”
아린은 내가 빤히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자 더 부끄러워진 모양이다.
자기 몸을 더 가리려고 노력하면서 아린은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 아마… 저만큼은 아닐거에요….”
“역시 에릭 때문이야?”
“으읏… 알면서 물어보지 마세요.”
아린은 새빨간 얼굴을 하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참으로 대단한 정성이다.
그 정성에 내가 희생당하지만 않았어도 참으로 인상깊었을텐데 말이지.
“그럼 이제 속옷도 벗어보자.”
“네? 구, 굳이 거기까지….”
아린은 움찔하며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당연히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뭘.
“아린 지금 흥분했어?”
“아뇨….”
“그럼 아직 연습이 안 됐잖아. 그러니 더 벗어봐.”
“으으….”
아린은 울상을 지으며 다시 나보고 뒤돌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거 나도 좀 봐야겠다.
아까 기대하면서 뒤돌았더니 손해봤잖아.
“싫어. 내가 보는 앞에서 벗어줘.”
“왜, 왜요?”
“내가 보는 걸로 흥분할지도 모르잖아.”
“…제가 그런 변태로 보이시나요?”
기가 막힌다는 듯 묻는 아린.
미안하지만 이미 너는 변태가 맞아.
용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이미 들어서 다 알고 있다.
아마 그녀는 옷을 다 벗어야 비로소 반응을 보여주지 않을까.
다만 걱정되는게 하나 있다면 내가 그녀의 눈에는 같은 여자인 세리아로 보이기 때문에, 흥분을 할지 안할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과연 동성을 상대로도 흥분할 것인가?
아니면 동성애자가 아니라 흥분을 안하나?
내가 딱히 노출증을 갖고 있지는 않아서 그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장본인인 아린은 아직 자신의 성적 취향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니 그녀에게서 답을 구할 수도 없고.
결국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내야하는 것이다.
뭐, 어느정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하지만.
아린은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더니, 내 고집을 꺽을 수는 없겠다고 판단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어요….”
내가 무심코 티를 내며 기뻐하자 아린이 살짝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혹시 세리아… 그런 성향인 건 아니죠?”
“응? 무슨 성향?”
“아, 아니에요….”
아린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난 그녀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뭔데?
그렇지만 그녀가 곧 자기 속옷에 손을 올리자 나는 방금 전의 고민을 깔끔히 잊어버렸다.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세리아가 알아서 잘 하겠지.
“으읏… 사람 앞에서 이게 무슨….”
그녀는 순간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려봤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물리지는 않을 거 아냐?
나는 그저 여유롭게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톡.
그녀가 가슴에 차고 있던 브래지어를 풀었다.
그러자 등 뒤로 묶여있던 끈이 바닥을 향해 추욱 늘어졌다.
아직 어깨에 매달린 채 그녀의 가슴을 가리고 있는 브래지어.
아린은 그걸 그대로 남긴 채 팬티에 손을 올렸다.
얘 좀 이상하게 벗네.
보통 둘 중 하나를 완전히 벗고 다른 걸 벗지 않나?
아린이 팬티를 서서히 내리자, 앞으로 숙인 상체와 함께 어깨에 걸린 브래지어도 더 이상 가슴을 가리지 못하고 밑으로 늘어져 내렸다.
음, 가슴이 컸으면 좀 볼만했을 텐데.
아쉽지만 뭐 없는 걸 어쩌겠나.
가슴을 키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자, 아린이 팬티를 벗다말고 수상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정말 아니죠?”
“뭐가?”
아까부터 대체 뭘 걱정하는 거지?
“저, 저는 세리아를 믿어요.”
“대체 무슨 얘기야?”
아린은 잠시 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곧 그럴 리 없지 하면서 알아서 납득하더니 마저 옷을 벗었다.
이 쯤 되니 좀 궁금해지는데,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겠다.
“다… 다 벗었어요. 이제 입어도 될까요?”
“잠깐만.”
왜 그렇게 성급해?
나도 감상 좀 해야지.
내가 침대에 앉아있다보니 내 시선에서 가장 잘 보여야 하는 곳은 그녀의 다리 한 가운데.
그러나 현재 그곳은 아린의 손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손 좀 치워봐.”
“가… 같은 여자 걸 봐서 어쩌시려구요….”
여자?
아, 나 지금 세리아였지 참.
나를 세리아라고 속이고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까지는 깊게 생각을 못했다.
하긴 같은 여자가 이러고 있으면 충분히 이상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
그럼 아까 그 이상한 질문도 다 그런 뜻이었구만?
“왜 그렇게 의식하는 거야? 난 딱히 별 생각 안 드는데.”
“네? 그, 그게… 이, 이상하잖아요!”
“뭐가?”
“으읏… 여, 여자끼리 이러는 건… 잘못됐어요….”
남자랑 여자가 이러는 건 아무 문제 없다는 거지?
그럼 됐네.
“너무 의식하는 거 같은데, 아린? 혹시 이런 걸 좋아하는 거 아냐?”
가볍게 던진 내 말에 아린이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무, 무슨 그런 말을!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저에게는 용사님이…!”
“그럼 그냥 누가 네 알몸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는 거네?”
“…읏.”
그녀는 필사적으로 가리려고 하고 있었지만, 이미 손가락 사이로 비치는 그녀의 자국에서는 물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치우고 계곡 사이를 손가락으로 살짝 훑었다.
“흐읏… 마, 만지지 마요….”
“이거 봐, 벌써 축축하네.”
이걸로 확실해졌군.
그녀는 그냥 누가 자기 몸을 본다는 생각만으로 흥분하는 것이다.
평소에 노출이 적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그래서인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서?
“흐음.”
나는 그녀의 애액으로 축축해진 양 손가락을 떼었다 다시 붙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손가락 사이로 애액으로 만든 다리가 세워졌다 무너지는 걸 보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린이 부탁했다.
“그, 그런 거 하지마세요 세리아… 부끄러워 죽을 거 같아요….”
“알았어.”
난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배에 손가락을 스윽 문질렀다.
“햐읏! 뭐하는 거에요…!”
“이불에 닦을 순 없잖아.”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도리어 할 말을 잃은 아린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다고 배에다가….”
“말랑말랑하네.”
감촉이 좋아서 배를 꾹 잡고 문질러봤더니 아린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히야악! 세, 세리아!”
“아, 미안.”
역시 이건 너무 노골적이었나.
그렇지만 생각보다 너무 부드러워서 참지 못했다.
딱히 살 찐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부드럽지?
세리아도 이렇게까지 감촉이 좋진 않았다.
“으, 으으… 역시 당신… 그런 거군요!”
응?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아린은 급하게 자기 신관복으로 자기 몸을 가리며 소리쳤다.
“세리아 이… 이 변태! 남자도 모자라 여자한테까지…!”
이거 왠지 굉장한 오해를 산 것 같은데.
“오해야, 아린.”
당연히 오해다.
왜냐면 난 시발 남자한테는 관심 없거든!
“오해는 뭐가 오해에요! 자꾸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나 하고! 매, 맨날 밤마다 이상한 짓 할 때부터 알아봤어요! 요즘 저희랑 같이 안 씻는 것도 저한테 흐, 흥분해서 그런 거죠?”
아린은 부끄러움과 화가 반씩 섞인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워낙 순하게 생겨서 그런가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네.
“으, 으읏… 더럽혀졌어….”
나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음… 이거 내가 아무래도 세리아 이미지를 완전히 십창내버린 것 같은데.
“그, 아린? 난 정말 너를 도와주려고….”
“아, 알았으니까 일단 나가주세요.”
그녀의 눈에는 이미 불신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이대로 뒀다간 세리아가 자위중독 양성애자로 남게 될 것 같다.
오해를 좀 풀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오해를 풀어야할지 감도 안 잡힌다.
사실 나라고 밝힐 수도 없잖아.
“음, 그, 다음에 보자!”
결국 내가 선택한 건 도주였다.
몰라 시발, 세리아가 알아서 잘 하겠지.
“다, 당신 같은 변태에게 맡기는 게 아니었어요…!”
아린이 옷으로 대충 가린 채 쪼그리고 앉아 외쳤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뭐라도 집어던질 것 같다.
나는 후다닥 그녀의 방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아, 주인님. 잘 풀리셨나요?”
그녀의 방에서 나오자 세리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어, 그… 미안하다, 세리아.”
나는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솔직히 이건 세리아 잘못도 좀 크다고 본다.
얼마나 이미지가 안 좋았으면 고작 이런 걸로 그런 의심을 품겠는가!
“네?”
세리아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못하고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