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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77화 (77/236)

〈 77화 〉 [마법사] 그리고 짐꾼의 신관교육

꼴사납게 주저앉은 용사를 내버려두고, 나는 방을 나섰다.

주인님과 같은 남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심하고 연약한 모습이었다.

바로 앞에 여자가 있는데 건들 생각도 못하고 혼자 자위나 하는 꼴이라니.

뭐, 건드렸으면 가만히 내버려두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혼자 흥분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자지를 훑는 모습은 퍽 우스웠다.

그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이 남자가 세상을 구할 영웅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리라.

그는 용사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수한 남성은 아니었다.

진정한 남성은, 우리 같은 암컷들을 지배하는 주인님 같은 분……

“흐읏….”

생각한 것만으로 조금 젖어버렸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살살 클리를 문지르며 달랬다.

내가 이상해졌다는 건 알고 있다.

지금의 나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칭호는 주인님의 노예 1호쯤 되겠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여전히 마탑의 천재 마법사다.

그러니까, 자기객관화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나는 미친년이다.

앞으로의 모든 찬란한 가능성을 포기하고 주인님의 노예로 살아가기로 했다.

드높은 학문적 성취도, 뭇사람들의 존경도 전부 필요없다.

오직 주인님의 총애, 그것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

“하앗, 하아….”

누가 오면 어떡하지?

시종 하나가 지나가다 보기라도 하면?

찔꺽찔꺽.

주인님의 노예라는게 부끄러운가?

아니. 전혀.

“하아… 어쩌다 이렇게….”

처음에는 죽여버리고 싶었다.

주제도 모르고, 주인님이 그저 비천하고 멍청한 짐꾼인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주인님께 처녀를 바쳤을 때,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인정해버렸을 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나는 그 분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루에 교수… 아니, 루엘라를 주인님과 함께 만난 날, 그 분은 나에게 요구하셨다.

나의 미래, 나의 꿈, 나의 가능성.

그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내가 선택해야 할 길은 오직 주인님의 노예로만 살아가는 것.

그 외의 아무런 선택도 주지 않은 일자택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머릿속에서는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모든 순간들이 되살아났고, 내 심장은 주인님과 함께했던 모든 즐거운 순간을 떠올리며 쿵쿵 뛰었다.

그렇지만 애초부터 나는 고민을 하러 화장실에 간 것이 아니었다.

버릴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마탑에서 꿈꾸었던 모든 미래를 버렸고,

그 다음에는 용사가 만들어준 추억을 버렸다.

용사와 함께하는 미래도,

동료들과 나눈 우정도,

전부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님의 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미래도 전부 버렸다.

행복? 어리석다.

나는 머릿속 어딘가에서 자꾸만 주인님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분과 함께 걷고 싶었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며, 사랑을 공유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처음에는 상대가 주인님이 아니라 용사였던가?

그런 사소한 건 이제 아무래도 좋다.

나는 이제 그 누구와도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되었으니까.

주인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다.

사랑이 아닌 복종의 대상.

노예에게 사랑은 불필요한 감정.

물과 함께 모든 걸 씻어내리고 나자 비로소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바늘로 찌르듯 아픈 왼쪽 어깨의 통증이, 내 판단이 옳았다고 긍정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 분의 종이 되었다.

“앗, 주인님♥”

“아린, 나야.”

“…세리아?”

수척해진 얼굴의 아린이 문을 열어주었다.

이틀간 방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다더니 과연 저런 몰골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세상에,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린이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들어가도 될까?”

“네, 세리아라면….”

아린은 그렇게 별 의심 없이 나를 방 안에 들였다.

약해졌구나, 아린.

아니면 방심하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일이 쉽게 풀리고 있었다.

“…세리아, 혹시 사과를 하러 온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사과? 무슨 사과?

생각지도 못한 말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녀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쉽게 알 수 있는 얘기였다.

“미안해. 내가 좀 더 주의했어야 하는데.”

“그게 왜 세리아 잘못이에요. 누가 그런 상황을 예측했겠어요? 따지고보면 전부 제가 옷을 찢어버린 것이 잘못이죠.”

그거 네가 찢은 거 아닌데….

하지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지.

“…사실 그것 말고도 할 말이 있어서 왔어.”

“할 말이요?”

아린은 이어질 말을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어디 그럼 한 번 투척해볼까.

“아린, 너 그 때 흥분하지 않았어?”

“……네?”

아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자각은 하고 있었나.

이러면 수고가 줄어서 좋지.

“무, 무슨 소리죠?”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

아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린, 난 딱히 널 책망하려고 온 게 아니야.”

“…차라리 책망을 해주세요.”

아린이 힘없이 대답했다.

“신을 섬기는 몸이면서도 이런 불건전한 행위에 기쁨을 느끼니, 세상에 이런 모순이 또 어디있을까요.”

그녀는 갈등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억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종교인으로서의 신념과, 노출을 좋아하는 여자로서의 자신.

아직 그녀는 스스로를 암컷이 아닌 종교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후자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왜 그런 걸 좋아하는 거야?”

“…읏, 분명, 시련이겠지요. 철도 두드리면 더 강해진다고 들었습니다. 저의 믿음은 끊임없는 시련을 겪으며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미 이 점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지 막힘없이 대답이 술술 나왔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노출이 왜 기분 좋은 거야?”

“…저에게 내려진 시련….”

“시련이라도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기분 좋게 느끼는 거 아니야? 난 잘 모르겠지만, 아린은 당사자니까 잘 알지 않아?”

아린은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알 리가 없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이런 성벽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은밀한 취향.

이제와서 쉽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그녀를 개화시켜주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잘, 잘 모르겠어요. 왜 하필이면 이런 행위에….”

아린의 얼굴은 진심으로 괴로워보였다.

스스로에게 이런 변태같은 취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부정하고, 또 부정하다가보면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온다.

그 때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자.

“그럼 말이야, 한 번 더 해볼까?”

“네? 지, 지금 뭐라고…?”

잘못 들었기를 바라며 아린이 당황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미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한 번 더 해보자구.”

“그,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어요…. 이건 옳지 못한 짓입니다. 마땅한 신앙심이 있는 자라면 당연히 피해야할 행위입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

아린은 대답이 궁해지자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녀가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계속 그녀를 몰아붙였다.

“적어도 그게 무엇인지는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 뭘 하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걸 그대로 묻어두기만 하면 분명 아린의 마음 속에 평생 남아있을 거야.”

“그, 그렇지만….”

“아린, 마법사가 마탑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뭔지 알아?”

아린이 알 리가 없지.

그녀는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걸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해.”

“…….”

“이것도 마찬가지야. 아린 네가 정확히 어떤 것에 흥분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대처가 가능해.”

“대처….”

그녀에게 희망을 주었다.

어쩌면 이 취향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응, 대처. 에릭이 이런 걸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를 위해서라도 이런 취향은 빨리 고치는 편이 좋지 않겠어?”

용사가 이런 걸 싫어하나? 잘 모르겠지만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린은 이런 걸 싫어하니까 용사도 싫어하지 않겠냐고 막연히만 던져줬다.

그녀는 이를 믿고 싶겠지.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 제 피부를 보일 수는 없어요….”

“그럼 나하고 둘이 있을 때만 하는 걸로. 어때?”

처음부터 다른 사람에게 피부를 보이는 건 거부감을 느끼겠지.

괜히 억지로 밀어붙였다가는 반감만 살 뿐이다.

그러니 천천히 적응시켜가자.

“그, 그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아린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보여주는게 좋은 거야?”

“네? 아, 아, 아니요! 그럴 리가!”

아린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의 필사적인 부정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무튼 이러면 이미 대답은 정해져있다.

“그치? 그러니 우선 나하고만 연습하자.”

“…세리아, 당신하고만?”

“응. 나하고만.”

이러면 부담도 많이 낮아지겠지.

어차피 서로 같이 씻기도 하던 사이였을텐데, 이제와서 뺄 리가 없다.

“…그 남자를 부르거나 하지는 않겠죠?”

갑자기 아린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응. 당연하지.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그만둬도 좋아.”

“후우… 여기서는 질문의 전제를 부정해줬으면 했어요.”

그래? 그런 의도였나?

내가 그런 말 속에 숨은 뜻을 어떻게 알아차리겠나.

세리아라면 몰라도, 나는 그런 짓 못한다.

씨익, 웃음이 새어나왔다.

“알았어요. 그럼… 잘 부탁해요, 세리아.”

그녀는 나에게, 아니, 세리아에게 인사했다.

자기 앞에 있는게 누구인줄도 모르고.

“응. 그럼 일단… 옷부터 벗어볼까?”

나는 세리아를 연기하며, 그녀에게 첫 명령을 내렸다.

환상마법을 통해 나를 세리아라고 인식하는 아린은,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일어났다.

“아무리 여자끼리라도… 조, 조금 부끄럽네요.”

“난 아무렇지 않은데. 역시 아린은 남의 앞에서 옷을 벗는 걸 좋아하는 거 아닐까?”

“아… 아니에요! 그, 그럴 리가….”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젓는 아린.

“…세, 세리아. 제가 부를 때까지 뒤돌아주실 수 있나요? 역시 아무래도 좀 부, 부끄러워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부끄러워하는 아린.

내 앞에서는 하나같이 보여준 적 없는 표정들 뿐이다.

크흐흐, 이거 못 참겠구만.

자기 앞에 앉아있는 건 같은 여자가 아니라 시커먼 남정네 하난데.

그녀는 내 말을 철썩같이 믿고 따르는 중이었다.

나는 순순히 그녀에게 등을 보였다.

환상마법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인식을 방해하는 마법이기 때문에, 상대가 이상함을 눈치채게 내버려둬서는 안 됐다.

내가 억지로 세리아의 말투를 흉내내고 있는 것도 이래서다.

지금도 내가 등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녀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자칫 마법 전체가 깨질 수도 있다.

“……다, 다 됐어요.”

드디어.

드디어 이 년의 알몸을 감상할 기회가 왔다.

정확히는 그 회장에서 한 번 보긴 했지만, 워낙에 정신없던 때라 제대로 보질 못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상은 지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서히 몸을 돌렸다.

“…너, 너무 빤히 보진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가슴과 보지를 가린 그녀는, 속옷 차림이었다.

“후우….”

“어? 왜,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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