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용사] 착한 사람에게는 보인다
“아, 이… 이건, 그… 그게 아닌, 으읏….”
아린은 마치 범죄라도 저지르다 걸린 사람처럼 말을 더듬으며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나도 좀 부끄럽긴 했다.
아무리 옷을 입고 있더라도 여자의 소중한 부위를 관찰하는게 평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아린, 그런 취미가 있었어?”
“아, 아니에요….”
아린이 울상을 지었다.
이대로두면 또 울어버릴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세리아! 그, 오해야…! 아린은 그냥, 보여줄게 있다고….”
“그런 곳에?”
“드레스에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있는데….”
“와악! 요, 용사님! 됐어요!”
아린을 위해 그녀가 했던 말을 다시 들려주려고 했는데, 왜인지 그녀가 기겁을 하며 나를 말렸다.
세리아는 가만히 선 채로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더니, 다시 우리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렇구나…. 알았어.”
뭘 알았다는 거지?
나는 불안한 느낌이 들어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며 아린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은 참으로 복합적이었는데, 그래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수치심이었다.
세리아가 키득 웃자, 아린이 움찔하며 팔로 자기 몸을 가렸다.
“세리아… 이, 일단은….”
“아, 그렇지. 유니부터 불러야지.”
세리아는 깜빡했다는 듯 손뼉을 짝 치면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너무 당황해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그녀도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세리아의 이미지에 딱 맞는 정열적인 붉은 드레스.
꽁꽁싸맨 아린의 드레스와는 달리 살짝 파여있는 것이 어른의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가 동년배 친구였다면, 지금은 마치 고고한 귀족 영애를 보는 것만 같다.
“…드레스 예쁘다, 세리아.”
무심코 던진 내 말에 세리아가 잠시 우뚝 멈춰섰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슬쩍 웃었다.
“고마워.”
그러고는 다시 유니의 방을 향한다.
유니의 방은 나와 아린의 더 뒤쪽에 있다. 복도의 거의 마지막 방.
세리아는 나를 스쳐지나가며 아린 몰래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야. 이 변태.”
그 말을 들은 나는 귓가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숨결에 흠칫 떨었다.
“…읏!”
“아하하!”
그녀는 기분좋게 웃으면서 아린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아린? 당당하게 있어.”
“…으읏, 괴롭히지 마요, 세리아.”
“미안, 미안.”
요즘 느끼는 건데 왠지 세리아 성격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심술궂은 말을 종종 던지곤 했지만, 지금은 약간 거만이랄까 왠지모를 여유가 느껴진다.
위에 선 자가, 밑의 것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아니, 세리아가 그럴 리 없지.
덜컹!
“짜잔, 유니 등장!”
세리아가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먼저 문이 활짝 열렸다.
“깜짝이야, 놀랐잖아 유니.”
“헤헤, 밖이 시끄럽길래 날 찾는 거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지.”
유니가 배시시 웃으며 방 밖으로 나왔다.
수수한 드레스였다.
비싼 옷감으로 만들어 그런지 귀해보이는 티가 나긴 했지만 옷 자체도 그렇고 입은 사람도 유니라서 그런지 도시의 귀족 아가씨라기보단 어느 지방의 영주 따님 같은 느낌이었다.
“어때, 에릭?”
“응, 예쁘다. 잘 어울려.”
“이히히.”
유니는 내 칭찬이 맘에 드는지 볼을 감싸고 히죽거리며 웃었다.
“아린은 왜 그러고 있어? 앗, 그보다 그거 고쳤구나! 역시 세리아야, 대단해!”
“네? 아, 아아… 그, 그렇죠! 세리아가 수선마법으로 고쳐줬어요!”
유니는 아린에게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한 번 찢어졌던 드레스인가?
“실수로 아린의 드레스가 찢어졌거든. 내가 마법으로 고쳐줬어.”
“오… 그런 마법도 있구나.”
무슨 원리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마법이 있다면 확실히 편리할 것 같았다.
모험 중 수풀에 옷이 찢어져도 다시 고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혹시 방어구에도 적용이 된다면 어지간해서는 수리를 맡길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러게. 나도 몰랐어.”
“응?”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해하자, 세리아는 킥킥 웃었다.
“아냐, 아무 것도.”
“음, 에릭도 멋져! 영주님 만나러 가는 우리 아빠 같아!”
유니는 나와 세리아의 대화가 잠시 끊어지자 재빨리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 그런데 이거 칭찬인가?
내 머릿속에 어울리지도 않는 비싼 옷을 입고 당당하게 영주성으로 향하던 촌장님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거 칭찬이지?”
“뭐? 지금 우리 아빠가 별로라는 거야?”
“어? 아, 아냐! 그, 그런 의도로 한 말이…!”
내가 당황하며 변명을 하자 세리아와 아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평소같은 모습이다.
실없는 농담을 하고, 별 것도 아닌 걸로 웃는 화기애애한 파티.
그것이 우리 파티였다.
“새벽의 여신님이 축복하신 새벽의 대행자, 용사 에릭과 그 일행 입장합니다!”
시종 하나가 문을 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덕분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죄다 이쪽으로 쏠렸다.
“히, 히이익….”
“아린, 진정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의외로 사람 많은 곳이 익숙치 않은지 아린이 앓는 소리를 냈다.
세리아는 그런 아린을 진정시키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건 아린이 더 익숙하지 않았나?
제아무리 아린이라도 왕궁은 무리였나보다.
하긴, 나도 지금 손바닥에 땀이 잔뜩 맺혀있다.
세리아의 말을 듣고도 진정하지 못했던 아린은, 세리아가 귓가에 뭐라고 속삭이자 귓불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화들짝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아, 아… 아니에요!”
“쉿, 들리겠다.”
우리는 사전에 안내받은 대로 문이 완전히 열리고 나서야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힌다.
하나 같이 비싼 옷, 비싼 장신구를 걸친 사람들 뿐이다.
아직 음식은 차리지 않았는지 긴 테이블 위에는 수저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으나, 시선이 지나치게 모이니 당황해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여기는 공식석상이 아니니 그렇게 굳어있지 않아도 좋네, 용사여.”
한가운데에 앉아있던 이가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젊은 걸 보니 왕자일까?
“왕태자십니다.”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귀족 하나가 귀띰해줬다.
어, 그보다 지금 나한테 존댓말을 쓴 건가?
“자, 다들 굳어있지 말고 들어오게. 일주일간 이 답답한 궁에 갇혀있느라 고생들 했겠어. 보상이라 생각하고 편히들 먹고 가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격식없이 대해도 되는 건가?
조금 당황스러워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런가?
분위기를 맞춰 빈 자리에 가 앉자, 음식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 기대되는군. 사천왕 중 하나를 잡았다지? 그래, 직접 만나보니 어떻던가?”
왕태자는 호쾌하게 웃으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어떻게든 무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이야기를 풀다보니 음식과 술이 들어와 조금씩 분위기가 편해졌다.
한 30분쯤 지날 무렵에는 거의 완벽하게 녹아있었다.
“호오, 정령사라. 대단히 희귀한 직업이군. 내가 아는 정령사는 나이든 영감탱이밖에 없는데,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정령사라는게 믿기지가 않아.”
“전하, 여기에 그의 아들도 앉아있습니다.”
“이런, 하하! 기분이 상했다면 미리 사과하지!”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는지 왕태자도 가볍게 사과했고, 당사자도 웃으며 넘어갔다.
귀족과 왕족이 모인 만찬회라길래 되게 걱정했는데, 막상 참가해보니 그냥 친목파티 같은 느낌이었다.
평민이라고 무시하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곳의 귀족들은 우리에게도 존댓말을 써주며 용사와 그 동료라는 지위를 인정해주었다.
지방의 귀족들이 용사보다는 평민이라는 내 출생을 더 우선시했다면, 여기 귀족들은 평민보다는 용사라는 내 지위를 더 우선시하는 것 같았다.
지방보다 독실한 신자가 많아서 그런가?
이런 복잡한 사정은 잘 모르겠다.
슬쩍 아린을 보니 그녀는 머리에서 김이라도 날 것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설마 술이라도 마신걸까?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몸을 슬쩍 가린다.
아까부터 왜 자꾸 저러지?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보니까 우리파티에서 열심히 떠드는 건 나 정도인 것 같고, 나머지는 가끔 말을 거는 귀족들에게 적당히 대답하는 수준으로만 응대하고 있었다.
유니랑 세리아는 제법 그 대답이 자연스러웠는데, 이상하게 아린만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젊은 나이에 대신관의 자리까지 올라가시다니, 신앙심이 투철하신가봅니다.”
“…네에, 가, 감사해요.”
“하하! 이런 자리는 어색하신가? 하긴, 교인들은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니 이런 호화스러운 곳이 어색하기도 하겠군.”
“아, 아닙니다….”
이상하게 대화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더 빨개지는 것 같다.
그런데 착각인가?
아린은 마치 자기 몸이 드러나있기라도 한 듯 자꾸만 손으로 몸을 가렸는데, 그런 그녀의 몸짓과는 반대로 아린의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가….
순간 그녀의 옷이 사라졌다.
당황해서 눈을 깜빡였더니 아린의 옷은 그대로였다.
착각인가?
이상한 생각을 하니까 내 눈도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 같았다.
“음?”
그녀와 대화하던 귀족 아저씨도 이상한 걸 봤는지 눈만 껌뻑였다.
“이런, 눈에 이상이 생겼나….”
나도 이상이 생겼나보다.
정신 차리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커헉!”
“읏…!”
그러나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나는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비명소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윽… 이건!”
“마, 마비독이다!”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 쓰러졌다.
어? 뭐야?
“요, 용사님!”
“에릭!”
나는 아직 멀쩡한데?
다행이 그녀들도 무사했다.
“아니, 어떻게…?”
왕태자도 난감한 듯 뻣뻣한 동작으로 팔을 조금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크읏… 혀도 점점 굳어가는군…. 용사여…! 부타….”
한가로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릭, 조심해. 어쩌면 너를 노린 것일 수도 있어.”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낯선 스태프를 손에 쥐었다.
“세리아, 너 그거….”
“그냥 더 좋은 스태프를 쓰기로 했어.”
시련의 동굴에서 받은 스태프였다.
그래도 스승님이 주신 것이 더 소중하다며 예비용으로 들고다니지 않았던가?
아니, 그보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스태프가 없었는데?
“에릭, 누군가 오고 있어.”
유니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경고했다.
우리 넷은 왕태자 옆에서 동그랗게 모여 굳게 닫힌 문을 주시했다.
이런 상황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아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했지?
대부분의 귀족들은 자리에 앉은 채 눈동자만 또륵 굴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왕태자 또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동자는 마치 ‘부탁하마!’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말도 못하고 눈동자정도만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완전한 독살은 아니라는 점이 또 이상했다.
“이상해요, 용사님. 문 밖에 경비병들이 있을텐데 너무 조용해요.”
유니의 말대로라면 누군가 이곳에 접근하고 있다는 소린데, 그렇다면 당연히 경비병들이 막아설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건, 문 밖의 인물이 경비병들도 잘 아는 인물이라거나 아니면 그들이 무력화되었단 소리겠지.
우리 모두 긴장한 채 문을 바라보고 있자, 잠시후 그 의문의 침입자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청녹색 머리카락을 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루에 교수님?”
세리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루에 교수? 세리아에게 각인마법에 대해 알려줬다던 그 사람?
그런 사람이 왜?
“어머, 역시 다들 무사하네요. 이런 기능까지는 필요없다고 말했는데, 참.”
그녀는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러면서 반쯤 가려져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그건 인간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교, 교수님… 이게 무슨….”
스태프를 겨눈 세리아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저는 루에 교수도 맞지만, 그런 인간식 이름보다는 이 이름을 더 좋아해요.”
루에 교수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루엘라. 마왕님의 지팡이.”
마왕의… 지팡이?
“용사님… 저 여자의 말이 맞다면, 그녀는 사천왕 중 하나일 거에요.”
“…뭐라고?”
그 말을 들은 루에, 아니 루엘라가 빙긋 웃었다.
“역시 신관이라 그런가? 눈치 하난 빠르네요. 맞아요. 그렇게들 부르죠. 솔직히 좀 부끄러운 이름이지만.”
“교, 교수님… 이거 장난이죠…?”
세리아는 루엘라를 겨눈 스태프를 내렸다가, 다시 애써 올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후후… 제가 이런 위험한 장난을 칠 것처럼 보이나요?”
“그, 그치만… 마족이라면 왜….”
루에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려고 했는데, 유니와 아린이 내 등 뒤를 받쳐주었다.
“에릭, 괜찮아. 우리 다 모여있잖아.”
“어떻게보면 기회일지도 몰라요. 이건 마왕의 힘을 크게 줄여놓을 찬스에요.”
그 말을 들은 루엘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바보로 보이시나요? 이미 당신들에게 승산이 없는 걸 아니까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거랍니다.”
“큭… 다, 닥쳐라 마족!”
나는 최대한 용기를 내 그녀에게 외쳤다.
“후후, 욕할 줄도 모르는 촌부 애송이가 기고만장하기는…. 뭐, 좋아요. 세리아, 왜라는 것은 무엇을 물어보는 거죠? 왜 순순히 정체를 드러냈는가? 아니면 왜 이런 짓을 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왜 적인 당신을 도왔는가?”
“…전부야.”
나는 전신을 떨고 있는 세리아를 진정시켜주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유니와 아린과는 달리 나와 살짝 거리를 둔 상태였다.
손은 닿지 않았다.
“음… 제가 말해드릴 이유가 있나요? 사실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당신들이 예상외로 활약을 잘 해주셔서 좀 곤란해졌거든요.”
그러더니 루엘라는 나를 바라봤다.
“뭐, 그 쪽은 아무것도 안했지만.”
“…윽!”
도발이다. 넘어가면 안 된다.
알고 있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무기도 없는데, 지금 그녀를 이길 수 있을까?
“후우… 그거 아시나요? 도플갱어를 되살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지.”
“흥, 귀한 걸 그렇게 험하게 굴리니까 망가진 거지. 만나보니 지능도 좀 많이 모자라던데?”
세리아는 겁먹은 것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비아냥을 날렸다.
“텅 빈 당신 자궁처럼 말이죠? 슬슬 ‘주인님’께 채워달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윽! 주, 죽여버릴 거야!”
갑작스런 성희롱에 세리아가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세, 세리아! 진정해요!”
아린이 그녀를 말렸다.
그걸 본 루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리아, 당신 재밌는 마법을 쓰고 있네요.”
“…네?”
“하, 하지마!”
루엘라가 아린에게 손을 뻗자 세리아가 당황하며 아린을 감싸려들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쩌억하고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새카만 막대기가 틈새 밖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숨기지말고 모두에게 보여주지 그래요? 변태 신관 아가씨.”
무언가가, 깨졌다.
“…아, 아아?”
그리고 아린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흐아아악!”
나는 사람이 그렇게 큰 비명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세리아 뒤에 쪼그리고 주저앉은 그녀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