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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66화 (66/236)

〈 66화 〉 [용사] 그녀의 방

내 생각과 달리 그녀의 방은 깔끔했다.

저번에는 분명 여기저기에 온갖 종이뭉치가 날아다니던 풍경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견디다 못한 아린과 유니가 내 방으로 대피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구조는 내가 머무는 방과 똑같아서 큰 위화감이 들진 않았다.

다른 것이라고는 책상 위에 있는 빈 접시들 뿐. 내 것보다는 확실히 그 양이 많았다.

“아, 그… 무슨 일이야?”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세리아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맞다. 세리아, 혹시 문양 좀 보여줄 수 있을까?”

“…어?”

별 것 아닌 요구에 그녀는 눈에 띠게 당황했다.

무언가를 찾는 듯이 좌우를 불안하게 둘러보더니 살며시 셔츠 목덜미를 위로 잡아당긴다.

“…그, 그건 왜?”

“요즘 내 문양이 이상해진 것 같아. 이거 봐.”

난 그렇게 말하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세리아는 내 팔을 의아한 듯 바라보고선 할 말을 잃었다.

“이, 이 장미….”

“응. 세리아의 장미야.”

세리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린이랑 유니 장미는 똑같은데 세리아, 네 장미만 점점 작아지길래… 혹시 뭔가 아는 거 없나 해서 왔어.”

“…미, 미안. 잘 모르겠어.”

세리아는 내 시선을 피하며 사과했다.

뭐, 그럴 것 같았다.

알고 있었다면 나한테 말해줬겠지.

쉽게 알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문도 모른 채 점점 작아지는 장미를 바라보기만 있는 건 힘든 일이었다.

무언가라도 행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리아, 혹시 네 문양에도 변화가 생겼나 싶어서….”

“나, 나는 그대로야. 작아졌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내 시선이 그녀의 어깨 쪽으로 향했지만 그녀는 깃을 더욱 추켜세우며 나에게 문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세리아의 얼굴은 창백하면서 동시에 어두웠다.

“그, 에릭… 조금 부끄러워서….”

“아, 미, 미안.”

하긴, 문양을 보여달라는 건 결국 몸을 보여달라는 소리니까.

수치스럽게 느낄 수도 있는 것 같다.

눈으로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녀가 그렇다고 하니 분명 그대로일 것이다.

세리아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 없으니까.

“저기, 에릭.”

“응?”

“……어, 어떨 때 작아졌어?”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까보다 훨씬 더 한 떨림이 느껴졌다.

세리아 쪽을 바라보니 그녀는 양 손으로 치맛자락을 꾹 붙잡고 있었다.

“세리아?”

“…괜찮으니까, 말해줘.”

나는 내가 확인했던 사실을 전부 하나씩 말해주었다.

문양이 생긴 그 날부터 이상하게 조금씩 작아졌던 일. 그 땐 확신이 없어 착각으로 여겼다.

도플갱어를 쫓던 날 장미에서 이상하게 피가 나왔던 사실도 말해주었다. 세리아는 그 말을 듣고 주먹을 꾹 쥐었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을만큼 줄어든 것이 우리 둘이 관계를 맺었던 그 날이라고 대답하니, 세리아는 더 이상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처연하게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응. 이미… 늦어버린 거구나.”

“세리아?”

왠지 불안한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세리아, 뭔가 알고 있는 거야?”

“…….”

“세리아.”

그녀의 모습이 마치 체념한 사람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았다.

왠지 이대로 두었다가는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세리아도 고민이 있는 거야? 그런 거라면 말해줘. 들어줄게.”

그녀의 고민은 이 문양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런 거라면… 문양이 작아진 것에 그녀의 책임이 있어서일까.

문득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각인마법의 대부분은 ‘감정’을 매개로 작용한다고.

그녀의 마음이 나를 떠난걸까?

하지만 세리아는 나를 미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 날 실수를 한 건 아닐까?

이 쪽은 왠지 그럴싸했다.

듣기로 성교란 남자 혼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애정을 바탕으로 같이 기분 좋아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때 나는 어땠는가?

그저 성욕에만 정신이 나가 혼자서 원숭이처럼 허리를 흔들었을 뿐이다.

기분 좋았으니까.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래서 그녀를 배려하지도 않고 나 혼자만 즐긴 것인가?

생각해보니 행위를 마친 뒤의 세리아도 만족한 표정이 아니라 어딘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그래서였구나.

나는 그제야 눈치를 챘다. 멍청하게도.

“미안. 그 땐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지.”

“…응?”

세리아가 순간 의아해하는 목소리를 냈다.

“저, 저번에는… 나 혼자만 기분 좋아져서… 미안해!”

눈을 질끈 감고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이런 일로 그녀에게 미움을 받고 싶진 않았다.

“…크흡.”

어디선가 익숙한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착각일 것이다.

여기엔 아무도 없으니까.

“에, 에릭… 그러지 않아도….”

“아냐. 지금 생각해보니 세리아 너를 배려하지 못했어. 너도 기분 좋게 해줬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야!”

“…그, 그건 에릭 잘못이 아니라….”

“아냐, 내가 좀 더 잘 했어야 했어!”

그래. 왜 이걸 깨닫지 못했지?

나는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그렇다고 이걸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겠는가?

세리아 성격상 부끄러워서 차마 말로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속에 묻어둘 생각이었으리라.

그래선 안 된다.

이 문양을 위해서라도, 세리아의 감정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둘 순 없었다.

“아,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해, 에릭.”

“아냐! 내가, 내가 더 잘했으면 문양이 이렇게 될 일도…!”

“에릭!”

세리아가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 미, 미안.”

“하아… 너무 흥분했어.”

“으, 응.”

머리에 피가 너무 쏠렸던 걸까?

나도 모르게 또 흥분하고 말았다.

“에릭, 지금 좀 흥분한 건 알겠는데. 심호흡 좀 하고 진정해봐.”

세리아는 침대 위에 걸터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덩달아 자리에 앉았다. 그녀 침대 위에 앉을 수는 없었으니 물론 바닥에 앉았다.

“진정했어?”

세리아가 다리를 꼬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바닥에 앉아서 그런지,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는 자세였다.

왠지 좀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방금 또 이상한 짓을 할 뻔했던 나는 얌전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응.”

“그래. 일단… 음, 내가 맞게 이해한 건진 모르겠는데, 에릭은 그 때 그 일을 사과하고 싶은 거야?”

“응. 너무 나만 생각하며 즐겼던 거 같아서….”

“…에릭은 싫었어?”

세리아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냐! 좋았어! 엄청!”

“그럼 그걸로 된 거잖아.”

“그, 그렇지만 세리아도 기분 좋아졌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 한 거 같아서….”

내 말에 세리아는 잠시 고민하며 머리카락을 꼬았다.

“있잖아, 에릭. 나는 네가 기분 좋았다면 그걸로도 충분해.”

“그래도….”

“나는 네가 기분 좋아하는 것만 봐도 행복해.”

“세리아….”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다.

정말로, 정말로 괜찮은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사과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난 에릭한테 고마운걸.”

“고마워?”

“응… 덕분에… 난 지금 무척 행복해.”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쑥쓰러워서 세리아와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 그렇구나….”

“응, 그러니까, 으읏… 그만… 흡… 앞으로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왠지 중간에 말이 끊겼는데, 괜찮은 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옷이 살짝 구겨져있었다.

“세리아, 옷이….”

무심코 손을 뻗어 고쳐주려다가 좀 실례인 것 같아 잠시 망설였다.

“에릭, 나 대신 해줄래?”

“…괜찮겠어?”

“응. 에릭이 해주면 좋을 거 같아.”

나는 쭈뼛거리며 그녀의 옷에 손을 댔다.

갑자기 왜 구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옷을 조금 잡아당겨 펴주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몸에 손이 닿았다.

“하아… 흐응… 조, 조금만 더 해줄래…?”

“어? 응….”

사과하려고 했지만 왠지 그녀는 내 손길이 기분 좋은 듯 했다.

신체적인 접촉을 원하는 걸까?

“어, 어깨라도 주물러줄까?”

“…그래줄래?”

말해놓고 아차 싶었는데 그녀는 내 제안을 반기는 것 같았다.

세리아를 위해서라면야 못해줄 것도 없지.

아까 너무 흥분해서 놀래켰던 것도 미안하고 하니, 겸사겸사 세리아의 기분을 좀 풀어줘야겠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해줄게.”

“응… 부탁할게.”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침대 위로 올라갔다.

왠지 그녀와 같은 침대에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얼굴이 빨개지고 흥분됐다.

아니, 흥분하지 말자.

지금은 그냥 세리아에게 안마를 해줄 뿐이다.

세리아 뒤로 돌아간 나는 그녀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시, 시작할게?”

“하아… 응. 언제든지 좋아.”

주물주물.

그녀의 어깨를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적당한 강도로 주물렀다.

“어때?”

“하앗… 흐읏… 조, 좋아아….”

그녀는 다리를 벌린 채 내 쪽으로 몸을 기댔다.

조금 상스러운 자세가 아닌가 싶었지만, 뭐 내가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도 몸이 풀어질만큼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니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하응… 읏… 더, 더 세게….”

“더 세게? 알았어.”

이러고 있으니 왠지 용사가 아니라 세리아의 전속 안마사가 된 느낌이다.

“하악! 흣… 하아… 흐윽….”

“이,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는걸.”

그녀가 몸을 떨면서 자꾸 내 쪽으로 기대며 몸을 비볐다.

나한테 딱 달라붙은 바람에 어깨를 주무르는 자세가 요상해졌지만, 아무튼 이걸로도 그녀는 좋아해주는 것 같다.

“하으으… 애, 애태우지 말고….”

“어? 더 세게 해줘?”

더 세게 하면 아파할 거 같은데.

“하아… 흐으….”

그녀의 몸에서 더욱 힘이 빠진다.

내 가슴에 있던 그녀의 머리가 밑으로 내려가 배에 도착했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것 같다.

누가 봤으면 남자가 넣어주기만을 기다리는 여자의 자세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녀와 접촉해있으니 아무래도 좀 흥분한 모양이다.

애태우지 말라는 그녀의 부탁대로 조금 더 힘을 주며 추잡한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꾸욱!

“아, 아, 아파!”

“앗! 미안!”

세리아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길래 황급히 두 손을 그녀의 어깨에서 뗐다.

“…그, 그렇게 세게 안 해도 돼.”

“미, 미안. 더 세게 해달라는 뜻인 줄 알았어.”

그러자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마땅한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제 됐어. 고마워….”

“응. 세리아가 만족했다니 다행이다. 그, 마지막은 미안.”

마무리를 망친 것 같아 좀 민망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나를 위로해주려는 듯 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아냐, 덕분에 즐거웠어…. 이제 나는 좀 쉬어도 될까?”

“아, 그럼 이만 가볼게.”

너무 오래 방해하기도 미안하니까.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혀주고 그대로 문을 나섰다.

“……빨리.”

문을 닫기 전 세리아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한데, 너무 작았으니 아마 잘못 들었으리라.

나는 별 의심없이 문을 닫았다.

잠만, 그런데 내가 이러려고 왔나?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얻은게 없었다.

아니, 세리아 어깨를 주물러줬으니 됐지.

귀중한 경험이긴 했다.

살짝 내 팔을 바라보자 착각인진 몰라도 세리아의 장미가 아주 조금 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미한 차이라 나 빼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 수 있다.

분명 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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