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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56화 (56/236)

〈 56화 〉 [짐꾼] 예상 외의 일격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지금 이 자리에는 나, 세리아, 아린밖에 없었다.

용사랑 유니는? 설교 듣기 싫다고 손잡고 도망갔다.

뭐 사랑의 도피냐?

아린은 유니가 도망치면서 던진 “재미없다”는 폭탄발언에 충격을 먹었는지 굳어있었다.

정말 몰랐던 건가….

세리아도 선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어색한 자세로 있다가 슬그머니 앉았다.

그녀의 시선이 나한테 꽂힌다.

내가 이 상황에서 뭘 하라고 대체? 그런 건 용사한테 맡겨야지.

그는 이미 도망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럼 이제 들어가도 됩니까?”

“…그렇게 재미없나요?”

“어….”

나는 마땅한 대답을 못 찾고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렸다.

결국 나선 건 세리아였다.

“우, 우리는 교리 같은 거 잘 모르니까…! 좀 어려운 얘기였을 뿐이야!”

“어려운… 재미없는….”

아린의 어깨가 추욱 쳐졌다.

위로라도 해야 하는 타이밍인가? 근데 지금 타이밍이면 역효과일 거 같단 말이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히잇… 미, 미쳤어?”

갑자기 세리아가 속삭이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나도 모르게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나도 모르게 노예년 엉덩이나 만지고 있었다니.

슬쩍 앞을 보니 아린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 아린이 앞에 있잖아… 하지마…!”

세리아가 다급히 내 팔을 툭툭 쳐내면서 나한테서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물론 보내줄 생각은 없다.

“히익… 그, 그만… 알았어, 알겠다고!”

내가 그녀의 속옷 위로 계곡 틈새를 살살 문지르자 그녀가 내 손을 피해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결국 다시 나에게 왔다.

유혹하는 듯한 음탕한 춤사위였다.

“흐읏… 들키면 어쩌려고….”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면서 아린의 모습을 계속 흘끔흘끔 살피는 것이, 들키지 않는 이상 먼저 그만둘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흐흐, 거부감이 많이 약해졌군.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신호했다.

그러자 세리아는 나와 아린을 번갈아 살피더니 내 손을 깔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자세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익숙한 자세를 취했다.

여자들이 볼일을 볼 때 주로 하는 자세, 쪼그려 앉기다.

굳이 이런 자세를 시키는 건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이 편이 더 보지 쑤시기에 편한 자세기 때문이다.

세리아가 이 자세를 몹시 수치스러워한다는 점은 덤이다.

“흐읏… 읏….”

그녀는 부끄러움과 흥분이 반씩 뒤섞인 얼굴로 아린을 바라보고 있다.

아린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바로 들키고 말 것이다. 변명의 여지고 자시고도 없다.

그래. 변명의 여지도 뭣도 없었다.

애초에 안 들킬 리가 없지 않은가.

“…뭐하시는 거죠?”

고개를 돌린 아린과 세리아의 시선이 맞았다.

세리아의 표정이 참 가관이었다.

“아, 아니, 그, 이건, 그게 아니라….”

“섹스 준비중입죠.”

하도 덜덜 떨길래 대신 내가 말해줬다.

“뭐, 뭐라구요?”

아린의 얼굴이 급속도로 빨개졌다.

“당신, 세리아한테 손 안 대기로 했….”

“하으윽♥”

그녀가 화를 내며 나한테 성큼성큼 다가오길래 나는 세리아를 확 껴안으며 그녀가 좋아하는 곳을 만져주었다.

아린은 세리아의 생생한 신음소리에 당황하며 우뚝 멈춰 섰다.

“세, 세리아?”

“하윽… 보, 보지마아….”

세리아는 자기도 부끄러운 걸 아는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린은 그야말로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그야 그럴 것이, 지금 상황은 누가 봐도 그녀가 거절하기는커녕 매달리는 모양새가 아닌가.

분명 그녀를 끌어당긴 건 나다.

그러나 그 뒤에도 계속 내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려 있는 건 세리아였다.

“아… 그 약속 말인데, 전 어긴 적 없습니다?”

“무슨 뻔뻔함으로 대체 그런 소리를…!”

“그치?”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대 두드렸다.

“히윽! …그, 그게… 으읏, 그만… 아, 알았어요… 마, 맞아….”

“…협박 같은 걸 당하는 거라면….”

“아, 아니야… 내가… 내가 부탁했어….”

질척하게 그녀의 애액이 내 손가락에 묻어나왔다.

아직 속옷을 벗기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속옷 안은 어떨지 안 봐도 상상이 간다.

“당신… 당신… 어떻게….”

주먹을 꾹 쥔 아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나를 죽여 버릴 듯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제가 손 댄 거 아닙니다. 이년이 먼저 달라붙은 거죠. 저 같이 약한 놈이 마법사를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다, 당신… 용사님이 가만히 내버려둘 거 같아요?”

그녀는 차마 행동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만 반복하고 있었다.

성직자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같은 인간에게는 평등과 자애를.

그것이 그들의 신념 아니던가.

나한테만 자애의 주먹을 날린다면 그건 평등이 아니었다.

그러고 싶으면 세리아한테도 한 방 먹여주던가.

“뭐,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우리 시골에서 가게나 차릴까?”

“흐읏… 아, 안 돼… 에릭한테 말하지 마….”

그녀는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건지, 미래를 상상해본 건지 울먹이며 아린을 바라보았다.

“세리아, 당신 대체….”

“미, 미아네… 흐응… 그래도, 말하지 마아….”

나는 순간, 아린의 눈에서 경멸의 시선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나도 확신을 못 가질 만큼.

“당신 도대체 세리아한테 무슨 짓을!”

“아니 전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요?”

“하으… 흐으… 거, 거짓말쟁이….”

세리아는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용케 내 말을 알아듣고 반발했다.

아니, 이 미친년이 맞장구를 쳐야지 여기선!

덕분에 그녀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저희 약속하지 않았나요?”

“아니, 난 정말….”

그녀는 나를 벌레 보듯 잠깐 쏘아보더니 선고하듯 말했다.

“정말 안 되겠네요.”

그러더니 그녀는 양 손을 공손히 모았다.

“…죄인에게 처벌이 아닌 교화를.”

어째 평소랑은 문구가 좀 다르다.

“…인륜과 도덕을 저버린 이가 다시….”

저 주문이 완성되면 많이 곤란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뭐, 근데 성직자는 공격 주문 같은 거 안 쓰잖아?

그럼 됐다.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그녀의 기도가 끝났다.

그리고 아린은 나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에게 무슨 짓이든 했겠지?

그래도 몸에 이상은 없는 것으로 보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이상이 없다면 아무 문제없다.

나는 이 자리에서 갑자기 죽어버리는 게 아닌 이상, 어떤 상황이든 나에게 유리하게 끌고 올 자신이 있었다.

만약 죽는다면 어차피 내 삶은 거기까지인 거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라면 어떻게든 되돌릴 방법은 있다.

본인의 손으로 직접 해제하게 만들면 된다.

그래. 아린 이년도 한 마리 암컷으로 추락하는 그 때, 나에게 무슨 짓을 했던 그 배로 갚아줄 뿐.

안되면? 걍 뒤지지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히죽 웃었다.

“사람의 감정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좀 더 직접적인 수단이 필요한 모양이군요.”

“…응?”

감정? 대체 무슨 소리를….

“흐으… 왜,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세리아가 나한테 앵기면서 귓가에 속삭인다.

더럽게 왜 이래?

변태같이 달라붙는 그녀의 고개를 밀면서 떨어뜨렸다.

그녀의 성기를 쑤시던 손가락이 축축해서 기분 나빴다.

내가 대체 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었지?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짓거리를 그저 내 성욕 따위를 만족시키기 위해… 어라?

“당신의 성욕을 마비시켰습니다. 성범죄자 같은 중범죄자가 아닌 이상 함부로 쓰지 못하는 저주계열의 축복이지만, 당신은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군요.”

“뭐… 뭐라고?”

그러니까… 내가 이제 안 선다고?

당황해서 내 성기를 바라보니 축 늘어져있었다. 아까까지 빳빳하던 게 거짓말 같다.

그런데도 분노보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게 옳은 것이니까.

번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만족을 위한 성적 욕구는 불필요한 것이다.

…아니 시발, 이게 뭔 개소리야.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 맞냐?

내 당황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스스로 그녀에게 손을 대고 싶은 욕구도 안 들겠죠. 당신이 세리아에게 무슨 마법을 걸었는지는 몰라도, 불필요한 짓입니다. 해제하세요.”

“어…? 아린, 무슨 소리야…?”

그 말에 당황한 건 내가 아니라 세리아였다.

갑자기 자기를 밀쳐낸 나를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바라보던 그녀는 아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걱정 마세요, 세리아. 곧 저 남자가 스스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마법을 풀어줄 거예요.”

“어?”

…뭘 하라고?

나는 눈만 끔뻑였다.

내가 그녀에게 했던 짓에 대해 굉장한 죄책감이 몰려오긴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뭐, 살이라도 파서 문신을 지울까?

그런다고 그녀의 변태 같은 성욕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나?

아니, 되돌아온다는 표현부터 이미 틀렸다.

그녀는 이미 처음부터 변태였으니까.

“스스로의 죄를 반성하고 싶으시지 않나요?”

“…네.”

나쁜 짓이었다.

그건 이해하고 있다.

뭐 그렇다고 앞으로 나쁜 짓에 전혀 손대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별 쓸모도 없는 성욕을 위해 이런 짓을 벌일 필요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이거 분명 이상한데.

분명 이상하다는 건 알지만, 너무나도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날 죽이지는 못할 거라는 판단에 내 좆, 아니 성기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다.

“그럼 어서 그녀에게 했던 모든 짓을 사과하세요.”

“미안.”

“응?”

여전히 당한 게 병신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한 건 맞지.

나는 괜히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세리아는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나와 아린만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제 그녀에게 건 마법을 전부 해제하세요.”

“그런 거 없는데요?”

“네?”

이젠 그녀가 놀랄 차례였다.

아니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시나. 사실인데.

“…세리아?”

“아, 아하하…. 무슨, 무슨 말이지이?”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아린이 세리아를 무섭게 바라보았다.

세리아는 당황해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하, 그런 거군.

그제야 나도 이해했다.

아린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해인지 아니면 그리 믿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쨌든 아린은 내가 세리아를 발정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세리아와 내가 교접한 날, 그 때 이 문신… 아니, 문양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서로가 몹시 큰 쾌감을 얻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우리 둘에게 마약처럼 강력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이제 괜찮지만.

세리아가 이렇게 망가진 건 분명 내 의도이긴 하나, 이미 되돌릴 수는 없었다.

“당신 설마 진심으로 이런 남자랑….”

“아, 아니야! 나는, 나는 에릭을….”

세리아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설득력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린은 대놓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지, 진짜야….”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세요.”

자기의 사랑을 의심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세리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린을 바라보았다.

글쎄, 그렇게 다른 남자한테 매달려놓고 그런 말을 하는 건 내가 보기에도 설득력이 없는데.

세리아는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결국 터덜터덜 텐트로 돌아갔다.

“당신도… 하아. 대체 세리아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뭐, 처음부터 저렇던데요.”

“…세리아도 참.”

그녀는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에 비해 확연히 경계도가 낮아진 모습이 보였다.

이젠 자기나 동료들이 위험해질 일이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이 이제는 없었다.

아니, 시발 없으면 안 되잖아.

이거 돌아버리겠네.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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