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용사] 수도로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세리아는 당황하며 급히 속옷을 다시 갖춰 입었다.
“아, 아니야… 이건, 그….”
“미, 미안!”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휙 돌렸다.
세상에, 세리아가 자위를 하고 있다니.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애써 잊으려 했지만 자꾸 그 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창부처럼, 자기 몸을 나에게 바치려던 그녀의 모습이….
이런 게 세리아일 리 없어.
세리아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
그럼 지금 대체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현실은 자꾸 나에게 왜곡된 세리아의 상을 받아들이라고 나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이, 이제 됐어….”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살짝 뜨며 그녀를 돌아봤다.
얼굴을 붉힌 채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빼면 영락없는 평소의 세리아였다.
“저, 저기….”
“미안해.”
내가 뭐라도 말을 하려고 겨우 입을 열었는데, 세리아가 먼저 나에게 사과를 했다.
왜?
이건… 내 잘못이잖아.
“이런 여자라… 미안해….”
“어?”
왜 사과를 하는 거지?
이런 여자라니?
“아, 앞으로는 더 참아볼게…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참는다니? 그리고 버리는 건 또 무슨 말이지?
내가 이런 모습을 봤다고 자기를 버릴 거라 생각하는 건가?
“흐읏… 괜찮아, 에릭… 이길 수 있어… 버틸 수 있어….”
“세리아?”
그녀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이 눈을 감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미안한데 먼저 돌아가 줄래 에릭?”
“그, 저기… 알았어.”
무언가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서 고집과도 같은 무언가가 느껴졌기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녀도 부끄럽겠지. 괜히 이 얘기를 더 하면 그녀를 놀리는 꼴밖에 더 되겠나.
나는 그녀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 그럼 먼저 가볼게… 너무 늦지 않게 와.”
“……응.”
뭐랄까, 제대로 사과를 못한 게 좀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그녀가 없던 일로 치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 장단을 맞춰주는 것도 나름의 사과겠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얌전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뒤 모습을 드러낸 세리아와 함께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쳤다.
잊으려고 해도 쉽게 잊을 수가 있는 풍경이 아니라서 나는 스튜를 먹으면서도 계속 그녀를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그녀는 아까 있었던 일이 전부 거짓말인 듯 유니와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자꾸 중간 중간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나를 바라보는 걸까?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닌 척 시선을 다시 돌렸다.
“용사님, 오늘 불침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와앗! 아, 제렌… 씨.”
갑자기 내 등 뒤에서 그가 말을 거는 바람에 놀라 그릇을 떨어뜨릴 뻔했다.
세리아만 바라보느라 내 바로 뒤에 있던 그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놀래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아, 아뇨…. 제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지난 삼 일간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적대감은 많이 옅어진 상태였다.
물론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적어도 표면상 그는 성실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불침번 말이죠, 음….”
“제가 용사님 다음 번을 맡아도 되겠습니까?”
“제 다음이요?”
나는 항상 가운데. 그렇다면 그가 네 번째를 맡겠다는 것일까.
딱히 큰 문제가 있는 배치는 아니다.
“크흐흐, 오늘 못 다한 얘기를 나누어야죠. 이런 건 역시 새벽에 해야 제맛 아니겠습니까.”
“…윽!”
나도 모르게 주변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듣지 않은 것 같았다.
“그, 그런 애기는 역시 좀….”
“에이, 그렇게 재밌게 들어놓으시고 이제와서 무슨 발뺌이십니까. 자위중독인 변태년을 개따먹은 얘기, 마저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흠흠… 그건 그….”
부정하고 싶지만 슬프게도 나도 남자였다.
그는 아무래도 출신이 출신인지라 성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개방적인 사내였다.
나도 딱히 내가 그런 측면에서 폐쇄적이라는 생각은 한 적 없지만, 그의 얘기들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오늘 들은 얘기는 더욱 그랬다.
조금밖에 듣지 못했지만, 남자 앞에서 스스로 자위를 보여주는 귀족 아가씨라니 솔직히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분명 거짓말이겠지만 왠지 그의 이야기에서는 묘하게 현실감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푹 빠져버리는 것이다.
시찰 나온 영애의 식사에 최음독을 풀었더니 자기 앞에서 자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안 들을 수가 있겠는가?
함부로 이런 얘길 했다간 모가지가 잘려도 할 말 없는 소리지만, 어차피 여기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크흐흐, 그 때 생각을 하니 또 흥분되는군요. 그럼 용사님, 불침번 서실 때 저도 같이 깨워주십쇼. 도중에 한 발 빼러 가셔도 이해해드리겠습니다.”
“크흠… 그런 얘기는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야기를 억지로 마쳤다.
절대 듣다가 흥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애써 잊으며 불침번 순서를 머릿속으로 짜기 시작했다.
뭐… 딱히 그의 이야기를 의식한 건 아니지만, 순서상으로도 나 다음에 그를 넣는 것이 맞을 것 같다.
***
“아,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흐흐, 놀랍지만 진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새벽.
우리는 마차 마부석에서 대화에 열중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후,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마는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은 법이더군요.”
“말도 안 돼….”
나는 내 귀를 의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에 돌멩이로 자위를 하는 여자가 있다고?
아무리 그라도 거짓말이 좀 과한 것 같다.
“글쎄 불로 달군 돌멩이를 자기 보지 속에 몇 개고 집어넣더니, 알을 낳듯 하나씩 빼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귀족 여식이 무슨 몬스터도 아니고 그런 짓을 할 리가….”
“크흐흐… 귀족이든 마법사든 몬스터든 결국 다 암컷인 법이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박하게 웃었다.
좀 추잡스러운 얘기였지만, 솔직히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어차피 거짓말일 테니 속는 셈 치고 얘기를 계속 들었다.
“용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저요?”
자연스레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본다.
물론 나였다면 애초에 귀족 영애의 식사에 몰래 최음독을 탈 일도 없겠지만, 아무튼 내 앞에서 누군가가 돌멩이산란자위… 이름부터 천박하기 짝이 없다. 어쨌든 그런 짓을 하고 있다고 가정을 해봤다.
그런…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정말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본 여자들 중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애초에 여자가 자위하는 모습도 본 적이…….
생각이 거기에 미친 순간, 자연스레 그가 이야기하는 귀족 여인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세리아로 치환되기 시작했다.
“크흐흐, 바로 협박해서 대딸을 시켰죠.”
“…뭐, 뭐를요?”
경악하는 나를 내버려두고 그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 풀기 시작했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결국 그의 협박에 넘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의 자지를 손에 쥐었다고 한다.
세리아가… 세리아가 그런 짓을?
“크읏….”
“어이쿠, 괜찮으십니까?”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건 세리아의 얘기가 아니잖아.
나도 모르게 세리아가 그런 짓을 했다고 상상하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이건 우리 얘기가 아니다.
상대는 귀족 여식이라지 않는가. 약혼자까지 있는.
“아, 처음으로 그년한테 펠라치오를 시켰을 때도 정말 재밌었습죠. 약혼자란 놈이 자기 옆에서 약혼녀가 제 자지를 빠는데도 눈치를 못 채지 뭡니까? 흐하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눈치 못 챌 사람이 세상에 어딨다고….”
“푸흐흐, 그러게 말입니다… 윽!”
그는 나를 보며 낄낄대며 웃다가 갑자기 움찔하며 자기 허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용사님. 벌레가 문 것 같… 아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그는 손을 내저었지만, 다시 벌레가 그를 문 것인지 그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하여간 앙탈하고는… 꺼져있어.”
그가 빈 허공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벌레… 쫓는 거 맞죠?”
“응? 아, 그럼요. 모르셨습니까? 사람 피를 빠는 모기는 전부 암컷이라더군요. 남자가 그리워 달라붙는 암캐 같은 년들이죠.”
“그, 그랬군요….”
뭔가 벌레를 쫓는 동작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보였지만… 그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흐흐… 처녀 따먹은 얘기도 들어보시겠습니까?”
“돼, 됐습니다….”
재밌는 이야기였지만 들을수록 왠지 좀 불편했다.
펠라치오 얘기를 들으니 괜히 데론 성의 지하수로가 생각나서 영 꺼림칙했다.
뭐 세리아가 그런 짓 할 사람도 아니고, 약혼자도 있는 귀족 영애라니까 전혀 다른 사람이겠지만… 아니, 애초에 실존인물인지도 의심스럽다.
아무리 상대가 마조히스트 변태라고 해도 그렇지, 평민에게 자기 처녀를 바치는 귀족 영애가 어디 있겠는가?
허풍도 정도껏 쳐야지, 너무 과하니까 거짓말 티가 너무 많이 나서 조금 실망감마저 들었다.
“슬슬 시간이 된 거 같으니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 불침번 시간은 이미 지났다.
잠시 얘기를 듣느라 자리에 더 묶여있었지만, 흥도 깨졌고 슬슬 내일을 위해 자야할 시간이다.
“아, 용사님. 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봅시다.”
“뭐죠?”
나는 마차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그의 말에 멈춰 섰다.
“방금 말한 여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만약에… 용사님 곁에 그런 변태 같은 년이 있다면, 어떨 거 같습니까?”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걸 눈치 챘는지 그가 별 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아,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역시 기분 나쁘죠?”
“음…… 글쎄요. 좀… 그럴 거 같긴 하네요, 하하.”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그런 여자가 있을 리가 없잖아.
“크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럼 이만 들어가십쇼. 저도 불침번이 끝나면 들어가죠.”
나는 그의 인사를 들으며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낮에는 자기들이 쓰고 있으니까, 적어도 밤에는 우리들이 쓰라며 양보한 마차.
마차는 굉장히 넓고, 또 조용했다.
안에 있으면 밖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분명 밖에 있는데도 마치 숙소 안에 있는 듯한 편안함.
기회가 되면 전용 마차를 하나 구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정비된 길이 아니면 별 쓸모도 없는데다가, 마차를 사기에는 우리 자금이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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