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용사] 두 사람은
“어떻게… 마법을?”
많고 많은 의문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이거였다.
다른 건 묻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아,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그는 자기 스태프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선 시선을 다시 나에게 향했다.
기분나쁜 시선이다.
여지껏 그는 나를 바라볼 때 마치 포식자를 앞에 둔 초식동물처럼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그가 포식자라도 된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마법에 눈을 떠버렸습니다.”
뭐라고?
나는 내가 잘못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마법 말입니다. 갑자기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세리아 아가씨께 여쭤보니, 마법이 후천적으로 발현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마법사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마법사인 것이 아닌가?
원래부터 그에게 마법의 재능이 있었는데, 자신도 모르고 있다가 이 순간에 깨달은 걸까?
내가 잠시 할 말을 잃고 머뭇거리자 그는 세리아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렇죠, 아가씨?”
“흐읏… 으, 응… 마법사는 선천적으로 마력을 보는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와… 후천적으로 눈에 트이는 두 경우로 나뉘어… 후자는… 거의 없지만.”
“이야, 그렇답니다. 저도 참 운이 좋군요.”
그의 입가는 귀에 걸릴 듯 했다.
하루아침에 마법을 쓸 수 있는 몸이 되었다면, 누구라도 저렇게 기뻐하겠지.
그러나 그의 기쁨이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건 내 착각일까?
그보다 세리아.
왜 그렇게 그 남자랑 붙어있는 거야?
“세리아.”
그럴싸한 핑계를 생각하기도 전에 내 손이 먼저 나갔다.
“에, 에릭?”
나는 그녀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이쿠. 오해를 산 모양이군요. 우연히 만나 도플갱어를 쫓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지 뭡니까.”
“…….”
“에릭….”
나는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거짓말.
나는 더 이상 그를 신용할 수가 없다.
세리아는 얼떨결에 내 품에 안겨 놀랐는지, 새빨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안…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 후 아린과 유니가 도착하면서 나는 그 남자에 대한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인 도플갱어를 처리하기로 했다.
하필이면 그가 도플갱어를 죽여 버린 바람에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는 자신이 이미 다 얘기를 들었으니 걱정 말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유니의 정령이 도플갱어를 계속 추적했는데, 도플갱어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틈이 있었을까?
그런 내 질문에 그 남자는 자기가 마족의 편인 것처럼 거짓말을 쳐 도플갱어의 정보를 전부 빼냈다는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이미 진위를 증명해줄 도플갱어는 죽고 없는 상황.
떨떠름하지만 우린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주에게도 곧 이 이야기는 전해졌다.
나는 이 전말의 신빙성이 낮다는 사견을 추가해 전달했지만, 그가 영주군을 풀어 대대적으로 빈민가를 박살낸 결과 그의 말에 들어맞는 증언들이 다수 수집되었다.
결국 또 틀린 건 나였고, 쓸데없는 질투심으로 진실을 외면했던 것도 나였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영주의 눈에 그 남자가 들어버렸다.
영주는 그에게 여기에 남지 않겠냐고 제의를 한 모양인데, 하필이면 그는 우리 파티에 남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를 내쫓을 수가 없다.
의도한 건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부터?
이 세상을 지키고 싶다던가, 대의를 위해 힘을 쓰겠다던가, 그가 하는 말은 보나마나 전부 핑계다. 거짓말이다.
아니, 슬슬 진실을 받아들일 때가 오지 않았는가?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진실…….
정말 전부 내 착각이란 말인가?
생각해보면 항상 심증뿐이었다.
그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다던가, 실제로 무슨 짓을 했다던가, 의심되는 정황은 있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다.
반대로, 그는 이번 사건에서 굳이 우리를 도와줄 의무도 없으면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고, 영주가 내려주는 포상도 전부 마다했다. 용사의 마왕토벌을 돕고 싶다면서.
그럼… 그는 그냥 좋은 사람이 아닐까?
내가 속이 좁아 괜한 오해를 하는 걸까?
요즘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아린도 딱히 둘이 사귀는 사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세리아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건, 어쩌면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요즘 그가 수상하게 보이는 것도, 전부 내가 그를 의심하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닐까?
나는 세리아를 흘긋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시선을 향하며 머리카락을 꼬고 있는 그녀.
이렇게 보면 평소와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장미꽃 향기, 붉은색의 머릿결과 옷. 스승님이 물려주신 소중한 스태프.
전부 그대로다.
어쩌면, 그녀가 더렵혀졌다는 것도 그저 내 상상…….
“미안, 늦었어!”
유니가 우당탕거리며 자기 방에서 내려왔다.
“괜찮아요. 얼마 안 기다렸으니까요.”
아린의 말대로 사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 전에 잠시 쉬고 내려오라고 했던 게 애시당초 나니까, 뭐라고 할 생각도 없다.
아무튼 이걸로 다들 모였다.
나와 세리아, 아린, 유니…… 제렌까지.
본래라면 그는 발언권이 없지만, 이번 공로가 제법 컸기 때문에 대놓고 내치기가 좀 껄끄러웠다.
아니지, 이유 없는 적개심을 품지말자.
전부 내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 정말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그에게 사과를 해야 할 판국이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 별 얘기 안하겠지.
“자, 이제 우리 다음 행선지를 정해보자.”
“다른 사천왕이 어딨는지는 아직도 모르는 거지?”
유니가 묻자 아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지금 상황으로서는 아무 정보도 없어요. 이렇게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조금 고민되네요….”
사천왕이 있는 곳에서 멀어질수록 퇴치가 늦어진다.
결국 죄 없는 사람들이 받는 고통만 늘어나는 셈.
“마왕성 방향으로 가는 건 어때? 어차피 우리의 최종 목표는 마왕이니까.”
그 전에 사천왕을 잡는 게 우선이긴 하지만, 어차피 갈 곳이 없다면 마왕성 근처로 가는 것이다.
우리가 원래 향하던 방향이기도 했고, 사천왕이 그들의 영토 밖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다면 당연히 마왕성 근처에 있지 않겠는가?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그럼 다른 의견이 없다면, 마왕성으로 향하는 것으로 하고 회의를 종료….
“잠깐만요.”
그 남자가 말을 끊었다.
해산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래… 일단 들어보자.
“수도는 어떨까요.”
수도?
왕국에서 가장 큰 도시.
하지만 거길 가려면 조금 돌아서 가야한다.
“그럼 마왕성이랑은 멀어지지 않아요?”
갸웃거리는 유니.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 아닙니까? 그런 거라면 전국 각지의 정보가 들어오는 수도로 가는 편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일리가 있네요. 게다가 선대용사에 대한 자료도 왕궁자료실에는 있을지도 모르구요.”
아린은 그의 말을 곰곰이 따져보더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선대용사의 기록도 우리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
그들이 썼던 장비가 지금 우리 손에 있으니, 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당장 아린의 경우, 신관복에 부여된 축복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 아닌가.
내 검이나 세리아의 스태프, 유니의 목걸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모르는 효과가 있다면 반드시 알아둬야 했다.
이렇게 들으니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역시 그닥 내키지가 않는다.
이것도 그가 낸 의견이라서인가?
이런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서야 용사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
나는 괜히 불편해지려는 내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수도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10일. 영주가 다른 도시로 갈 거라면 마차 정도 빌려주겠다고 그랬잖아.”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세리아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여전히 시선은 창밖에 고정된 채다.
10일.
게다가 수도행이라면 마차도 빌릴 수 있다.
그러면 여행이 더 편해질 것이라는 것쯤은 말할 필요도 없지.
역시 마차 얘기가 나오니 아린과 유니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하루 종일 걷는 것과 마차 타고 편하게 여행하는 건 비교할 수도 없지.
그녀들의 얼굴을 보니 이미 답은 정해진 것 같다.
“그럼 내일 출발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회의를 파했다.
결국 우리는 수도에 가기로 했다.
수도라, 용사로 임명받고 딱 한 번 들러본 적이 있다.
한 왕국의 수도가 얼마나 대단한 도시인지, 그 때 처음 알았다.
사실 좀 두근거리기도 한다.
그 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구경도 못했으니까.
여전히 살짝 거부감이 남아있지만, 내가 참아야겠지.
나는 먼저 그녀들보다 먼저 일어났다.
“다들 내일보자.”
“나도 이만 먼저 가볼게.”
먼저 방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세리아도 마찬가지였는지 벌떡 일어났다.
“응. 우리는 좀 이따 올라갈게.”
세리아는 손을 흔드는 유니에게 적당히 대답해주고선 내 옆에 딱 달라붙었다.
“세, 세리아?”
“…올라가자.”
그녀의 향기가 내 코를 간지럽히고, 그녀의 온기가 내 팔을 따뜻하게 덥혔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기분 좋은 감촉이라 나도 모르게 얼굴에 피가 쏠렸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는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할 것 같아 얌전히 기다렸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2층에 올라온 순간,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졌다.
“에릭.”
나에게서 정확히 두 걸음 떨어져 있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의 그녀는 마치 새벽녘의 바다처럼 고요했다.
그녀의 내면에 타오르던 불꽃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날 안아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