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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40화 (40/236)

〈 40화 〉 [용사] 문 너머

왜 도망치는 거야?

나는 그녀를 쫓아 계속 뛰었다.

골목을 돌고, 다시 또 돌고.

그녀는 마치 나를 어딘가로 유인하려는 듯 계속 거리를 유지한 채 도망가고 있다.

다시 또 돌았다.

어디로 도망가는 거야? 대체 왜?

그녀를 쫓아 골목길을 다시 돌았으나, 그곳에 세리아의 모습은 없었다.

…어디 갔지?

“요, 용사님!”

“에릭!”

내가 우두커니 서있자 그녀들이 나를 쫓아왔다.

“세리아가 사라졌어!”

“용사님….”

내가 당황하며 외치자 아린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건 세리아가 아니에요.”

“뭐?”

하지만, 분명 그 얼굴은… 복장은… 세리아였다.

“저희가 무엇을 잡으러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도플갱어.”

그랬지.

우린 지금 도플갱어를 잡으러 왔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세리아일 수가 없었다.

그래. 그녀가 우리를 두고 도망갈 리가 없잖아.

“미안. 또 흥분했네.”

“아니야, 에릭. 상황이 상황인 걸.”

지금쯤 세리아는 어떻게 됐을까.

도플갱어가 저렇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곧 세리아 그녀가 제압당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면 세리아가 도플갱어를 쫓고 있어야 하니까.

걱정된다. 마족에게 붙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는지, 소문으로나마 조금 들어본 적이 있다.

그다지 상상하고 싶은 소문은 아니었다.

그 장면처럼, 남자에게 강제로….

고개를 저어 불길한 상상을 털어냈다.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잠깐 신경을 못 썼는데, 어느새 정령의 시야가 끊어져있었다. 너무 멀어서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잘 됐다.

자꾸 보고 있으면 흥분과 함께 가슴 속 어딘가를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드니까.

“어쨌든 도플갱어를 잡아야한다는 우리의 목표에는 변함이 없는 거지.”

“그렇죠.”

그럼 잡자.

분명 아직 근처에 있을 것이다.

“에릭.”

정령을 부른 유니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손가락으로 어느 한 집을 가리키는 그녀.

저곳에 숨어있다는 걸까?

정령으로 알아봤겠지. 정말 다재다능한 능력이다.

아린에게도 눈짓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아직 들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천천히 다가가서 한 번에 잡아야지.

우리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쾅!

그러자 문이 박살날 듯 거세게 열리더니 왠 키 큰 남자가 우리들을 밀치고 도망쳤다.

“큭! 거기 서!”

저 녀석이다!

“축복을!”

아린이 우리에게 축복을 걸었다.

덕분에 발걸음이 빨라진 것이 느껴진다.

콰르륵.

돌무더기가 솟아나더니 순식간에 도플갱어의 발을 잡았다.

“잡았어!”

유니가 소리쳤다.

좋아! 잡았다!

그러나 내 기대가 무색하게, 도플갱어는 자기 몸을 작은 쥐로 바꿔서 잽싸게 도망쳤다.

“어?”

하긴, 인간으로만 변하라는 법은 없구나.

“쫓자!”

유니가 얼떨떨한 상태에 빠진 나를 치면서 먼저 앞으로 뛰어갔다.

그녀의 정령이 붙어있다면 추적은 그리 어렵지 않겠지.

나도 그녀의 뒤를 쫓았다.

“하아, 하아….”

가장 먼저 지친 건 아린이었다.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유니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아직 쌩쌩했으나 그녀들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잠시 쉴까?”

어차피 유니의 정령이 계속 그를 쫓고 있다.

그가 이 도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놓칠 일은 없다.

그 녀석도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 도시에 왔을 테니, 도망가지는 않겠지.

“하아… 죄송해요 용사님. 자꾸 짐만 되네요.”

“아니야, 아린! 아린의 축복 덕분에 빨리 올 수 있었잖아!”

잡지는 못했지만.

물론 유니의 위로에 초를 칠 마음은 없었으므로 나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아직 세리아도 못 찾았어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으음….”

세리아. 대체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유니. 혹시 정령에게 물어서 찾아볼 수는 없을까?”

“응… 전부터 정령을 붙여뒀다면 모를까,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찾기는 힘들어. 정령들은 세리아가 누군지 모르잖아.”

역시 그렇겠지. 아니라면 벌써 유니가 세리아를 찾았을 것이다.

“하아.”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는다.

상황은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도플갱어의 꼬리를 잡은 이상, 이제 우리는 언제든지 그를 추적할 수 있다.

우리끼리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면 영주군과 협력해도 된다.

이미 사건은 해결한 것과 마찬가지.

다만 세리아가 문제다.

세리아. 그녀는 대체 어디 있는가?

그 지도는 우리를 기만하기 위한 속임수였을까?

도플갱어가 돌아다니는데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협력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

수상한 인물…….

자연스레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그는 적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간의 적인 마족에게 협력할 그런 사람은 아니다. 아마도.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세리아와 아린을 감옥에서 꺼내주지 않았는가?

만약 그가 도플갱어의 협력자라면 굳이 꺼내줄 이유가 없겠지.

그래, 이건 전부 내가 그를 안 좋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 말자.

나 개인의 감정보다는, 마왕의 손아귀로부터 이 세계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괜한 억측을 해선 안 된다.

생각을 떨쳐내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자꾸 조금 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움찔.

분명 아까 사정까지 했는데, 다시 서버렸다.

안돼. 이런 모습,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했다간 큰일이다…….

“어머머.”

그러나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 법.

에릭은 굳어버린 채 고개만 슬쩍 돌렸다.

아린이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하복부를.

고개를 든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크, 큰일 났다….

아린 성격 상 분명 놀리려 들 텐데.

“…….”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시선을 피했다.

웬일로 이렇게 조용하지?

“응? 뭐야?”

유니만 무슨 일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별 거 아니에요. 그보다 슬슬 출발하죠.”

아린은 빨개진 얼굴로 말을 무마하며 벌떡 일어섰다.

나도 계속 추궁당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장단에 맞추어주었다.

“응! 빨리 도플갱어도 잡고, 세리아가 어딨는지도 물어봐야지!”

“지금은 어디있어?”

“으음… 어? 이쪽으로 오는데?”

이쪽으로 온다고?

갑자기 왜?

“아직 좀 멀리 떨어져있긴 한데… 어쩌지?”

“아무튼 이쪽으로 오고 있다면 잘 됐네. 가자.”

무언가 비장의 한 수라도 생긴 것일까?

조심해서 가야겠다.

우리는 유니의 안내를 받으며 도플갱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걷다보니 왠지 주변 풍경이 점점 익숙하게 느껴진다.

“으음… 여기 처음에 저희가 왔던 곳 아닌가요?”

아린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반쯤 부서진 돌담. 분명히 기억에 있다.

지도에 표시되어있던 바로 그 부근이다.

저 멀리 있는 집부터 문을 두드리며 세리아를 찾았었지.

도플갱어를 쫓다가 한 바퀴 크게 빙 돈 것 같다.

혹시 일부러 그렇게 도망친 걸까?

“도플갱어가 멈췄어. 골목을 돌아서 바로 앞이야!”

이 앞의 골목을 돌아?

거긴 우리가 처음에 쪼개져서 세리아를 찾던 바로 그 곳인데.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던 곳이기도 하다.

갑자기 그들을 생각하니 부끄러워졌다.

설마 아직도 하고 있진 않겠지?

“어?”

갑자기 정령의 얘기를 듣던 유니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왜 그래?”

“생명반응이… 사라졌다는데?”

생명반응이 사라졌다.

그럼… 죽었다는 뜻 아닌가?

무슨 꿍꿍이로 도시에 잠입했는지도 아직 못 들었다.

세리아가 어디있는지도, 못 들었는데.

이렇게 죽게 내버려둘 순 없어!

나는 냅다 뛰었다.

“가, 같이가!”

“용사님!”

여기서, 여기서 죽어버리면 어떡해!

대체 왜? 누가?

나는 평소보다 급한 마음으로 유니가 가르쳐준 곳에 뛰어갔다.

그리고 골목을 돌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녹아내린 인간의 형체가 보였다.

“어…….”

그리고 그 앞에는 두 남녀가 서있다.

더 이상 달아오를 수 없을 만큼 새빨간 얼굴로 허벅지를 오므리면서 치마를 꾹 누르고 있는 여자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자 옆에 붙은 채 두 뼘 남짓의 작은 스태프를 들고 있는 남자.

“세리아랑… 제렌…?”

의문투성이인 광경이었다.

둘이 같이 있는 것도 이상하고,

세리아의 반응도 이상하고,

대체 왜 그가 스태프를 들고 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 용사님! 제가 잡았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남자는 이를 씩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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