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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33화 (33/236)

〈 33화 〉 [짐꾼] 함정

“응?”

세리아와 아린도 멍청히 밑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봐도 여기에 있으면 안 될 비싼 장신구.

둘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자, 잠시만요!”

직원이 황급히 달려오더니 장신구를 줍고 확인했다.

“이건 우리 가게 상품이 맞는데….”

변태 같이 생겼던 점원이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신고하겠습니다.”

***

세리아와 아린은 자신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열심히 호소했지만,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 점원은 자기 동생을 불러 순찰병에게 신고하게 했는데, 무력으로는 그녀들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차마 무고한 일반인을 위협할 수는 없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도중에 세리아가 진범이 어쩌구하면서 내 마법을 풀려고 할 땐 솔직히 좀 쫄렸는데, 아린이 점원을 겁주지 말라며 막아주었다.

아마 개인적으로는 아린이 용사님을 번거롭게 할 순 없다고 말한 게 세리아에게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누가 봐도 유죄인 상황이지만, 그녀들은 그다지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건 저 둘이 각각 마탑과 교회 소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탑은 몰라도, 아무튼 교회는 신뢰로 먹고 사는 집단이 아닌가?

고위 사제인 아린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무죄를 주장할 자격이 있었다.

그리도 무엇보다 둘 다 뒷배가 매우 큰 세력이다.

영주군 입장에서도 함부로 건들기 어렵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아마 적당히 경고나 좀 듣고 풀려날 것이다.

정말 더러운 사회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나한테 일어났다면?

감옥에서 곰팡이 냄새나 맡고 있겠지.

자기들이 감옥까지 갈 일은 없다고 여기는지 그 둘은 갑작스런 상황에 기가 막혀할 뿐, 크게 불안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세리아는 주변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나를 찾고 있었지만, 당연히 보일 리가 있나.

경비병들이 찾아오자 세리아와 아린은 그들을 따라 검문소까지 이동했다.

세리아는 왜 이런 쓸데없는 고생을 해야 하냐고 투덜거렸지만, 아린이 오해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녀를 달랬다.

물론 진범이 누군지 짐작이 갈 세리아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리라.

그래. 이건 중요한 분기점이다!

아마 세리아는 슬슬 내가 선을 지나치게 넘는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승부를 보려고 하겠지.

여기서 그녀를 다시 제압한다면 그녀의 반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릴 수 있다.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둘이 풀려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둘은 풀려나는 일 없이 바로 감옥에 갇혀버렸다.

어?

“자, 잠깐만요! 왜 저희를 가두시는 거죠?”

“내,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세리아와 아린이 각각 감옥 속에서 간수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제법 직위가 높아 보이는 놈이 다가와 설명했다.

“예. 두 분이 누구신지는 압니다. 영주님께 부름을 받은 용사님 일행이지요. 그런데 얘기를 들으셨을 테니 두 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뭐야, 무슨 얘기야?

“…도플갱어 말이야?”

세리아가 짚이는 게 있는지 금세 되물었다.

“네. 저희로서는 두 분이 정말 일행분인지 아니면 도플갱어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곧 신관을 불러 확인을 시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제, 제가 신관인데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구분할 능력이 없습니다.”

뭐야?

대체 무슨 소리야 이게?

“난감해졌네. 그 신관은 언제 오는데?”

“저희가 요청하면 바로 조사대가 파견될 겁니다.”

“하아… 살다살다 도플갱어로 의심받는 날이 오다니.”

세리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도플갱어가 뭔데!

왜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를 하는 거야?

도플갱언지 전갱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뭔지 모를 것 때문에 계획은 망한 것 같다.

이러면 좀 곤란해지는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단서가 필요하다.

나는 주변 병사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어차피 들킬 일도 없으니.

“정말 도플갱어일까? 어제 봤던 모습이랑 똑같은데.”

“모습까지 똑같이 바꾼다잖아! 혹시 또 모르지.”

“와, 그럼 진짜 밖에서 만나면 어떻게 구분하지?”

이게 뭔 소리야?

모습을 바꿔?

다른 놈들 얘기도 좀 들어봐야겠다.

“야, 방금 생각난 건데, 도플갱어가 남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마물이면 공주님으로도 변할 수 있는 거 아냐?”

“엉? 그야 그렇겠지.”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 병사가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자세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나도 다가가 몰래 귀를 기울였다.

“그럼 공주님으로 변한 도플갱어한테 박으면 사실상 공주님이랑 하는 거 아닌가?”

“미친새낀가 진짜. 모가지 잘리고 싶어?”

아니, 뭐야 이 또라이는.

아무래도 이놈들한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는 것 같다.

조금 더 돌아봤지만 딱히 쓸모 있는 얘기는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알게 된 건 그 도플갱어가 모습을 바꾸는 마물이라는 것 정도?

생애 처음 듣는 마물이지만 아무튼 그런 존재가 이 도시에 있다는 것 같다.

그리고 저 둘이 그 도플갱어일지도 모른다는 거고?

이게 대체 뭔 일이야.

일이 좀 많이 커진 거 같다.

어쩌지. 이거 냅두면 분명 용사랑 영주 귀에까지 들어갈 텐데.

제대로 사고 친 기분이다.

어떻게 적당히 매듭지을 순 없나?

내 머리가 쌩쌩 돌아갔다.

뇌… 뇌물이라도 먹여볼까.

세상에 돈 싫어하는 놈은 없으니.

그리고 관상으로 보아하니 저 놈 돈 좀 좋아하게 생겼다.

근데 뇌물이든 뭐든 일단 내 모습이 풀려야 해볼 텐데.

지금 세리아는 스태프도 뺏긴 채 감옥 안에 있다.

압수한 스태프는 무슨 물품보관함 같은 곳에 대충 들어있었는데, 보아하니 이쪽에는 큰 관심을 안 기울이는 것 같았다.

하긴, 누가 여기까지 와서 저걸 훔치겠는가?

저걸 세리아한테 가져가서 풀어달라고 해볼까.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여기 한 가운데서 뿅하고 나타나면 나까지 가둬버릴 거 같았다.

아이씨, 진짜 난감하네.

이걸 어쩌지.

도무지 답이 떠오르질 않아 물품보관함만 뚫어져라 째려봤다.

그런다고 뭐 답이 나오겠냐만은.

역시 도둑놈들이 많이 잡히는지 보관함에는 그 쪽과 관련된 물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단검이나 뭐 도둑놈들 마스크 이런 것들.

그거 말고는 칼 두 자루랑 세리아 것보다 작은 스태프가 한 자루 있었다.

스태프… 하나 더 있구나.

얘는 작아서 없어도 모를 거 같은데.

제길. 내가 마법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그럼 저 작은 스태프 하나 훔쳐서 마법이라도 풀어볼 텐데.

괜한 아쉬움에 입맛만 다셨다.

못할게 뭐있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엉? 뭔 바보 같은 생각이지.

내가 무슨 마법을 써.

갑자기 왜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바보 같은 생각.

그래…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린데.

한 번 그 생각을 하고 나니, 그 뒤로도 계속 머릿속을 떠다녔다.

아니, 당연히 못하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대체!

그런데… 왜 이렇게 자신감이 들지?

마치 스태프만 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한테 숨은 마법의 재능이 있다던가?

당연히 개소리지만… 왠지 모르게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제길. 그냥 한 번만 쥐어보자.

안 되면 마는 거지 뭐. 손해 볼 거 있나?

안 될게 뻔한데.

자꾸 머릿속에서 누군가 된다고 소리치는 기분이었다.

그냥 챙겨뒀다 팔아도 되는 거잖아.

그래. 안 해볼 이유는 없지.

나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 작은 스태프를 몰래 뽑아들었다.

내가 손에 쥐자마자 스태프의 모습이 같이 사라졌다.

당연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

나는 그걸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래. 이제 뭘 어쩌려고?

마법을 쓰려면 주문을 외워야하는데, 내가 아는 게 있나?

갑자기 이상한 충동이 들어 뽑고 말았지만, 역시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에휴 시발. 내가 좀 맛이 갔나보다.

스태프를 잠시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에 고통이 느껴졌다.

“윽!”

뭐야?

누군가 바늘로 쑤시는 느낌이다.

이 부위… 분명 저번에 이상한 반점이 생긴 곳인데.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반점이 있는 부위에서 살짝 빛이 나고 있었다.

뭐야 이게.

지금 내 몸은 투명해서 아무것도 안 보여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이 빛만큼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뭐지 이 빛은.

빛을 바라보다보니 왠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그래. 뭐든지.

예를 들면 마법 같은 거.

나는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그래. 지금 필요한 마법이라면 이거지.

투명 마법을 해제하는 주문.

주문 같은 건 모르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거 같단 느낌이 들었다.

나한테 마법의 재능은 없다. 그건 확실하다.

그런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딱히 근거는 없지만 알 것 같다.

이건… 내 마법이 아니니까.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정상적으로 돌아온 내 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법이 풀린 나는 스태프를 대충 숨겨두고 검문소 안으로 당당히 들어갔다.

병사들이 제지했지만 용사 일행이라고 대충 둘러대니 어제 성으로 들어올 때 내가 같이 있던 걸 기억하던 놈들이 있었다.

그걸 이용해서 여기 책임자와 만났다.

아까 그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그 놈이었다.

적당히 입을 좀 털면서 동전을 하나둘씩 쌓아주니 그는 내 말을 몹시 경청했다.

내가 같은 파티원이라 잘 아는데, 저 둘은 절대 도플갱어가 아니다.

용사 파티의 신용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처음에는 확신할 수 없다며 내 말을 듣지도 않았지만 그와 나 사이에 놓인 동전이 우리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으흠… 흠…. 하긴, 그 도플갱어란 놈이 어제 막 들어온 여러분들을 알 리가 없겠습니다만….”

“바로 그거죠. 게다가 저희가 그 놈을 잡으러 여기 온 거 아니겠습니까? 이럴수록 조사만 더 늦어지는 셈이죠. 넓게 보면 이것도 영주님의 뜻에 반하는 거 아닐까요?”

슬쩍 동전을 하나 더 쌓아주니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에휴 시발. 이년한테 받은 돈 다 날리겠네.

“흠흠. 확실히 영주님께 충성하는 입장으로서 조금 그렇긴 하군요. 그렇지만 저에게도 임무라는 것이 있는지라….”

결국 다섯 개를 더 쌓아주고서야 그는 둘을 풀어주기로 했다.

아까 뭐 조사대를 파견한다는 거 같아 슬쩍 물어봤는데, 아직 말도 안 꺼냈댄다.

그럴 줄 알았지. 내 평생 군인이란 놈들이 일처리를 빠릿빠릿하게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자기 부하들을 시켜 둘을 다시 풀어주었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아린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어쩌다 우연히 잡혀가시는 걸 목격해서 말입니다. 걱정돼서 좀 알아봤죠. 세상에,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할 수가 있답니까?

“그래도 분명 조사를 하고서 풀어준다고….”

“하하, 고결하신 신관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만의 해결책이 따로 있죠.”

그녀는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단 표정이었지만 내가 그녀를 풀어준 건 사실이었기에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뭐 이건 솔직히 예상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튼 좋은 소득이다.

이걸로 이미지가 조금은 개선됐겠지.

안 됐더라도 상관없다.

언젠가 이년을 따먹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너… 어, 어떻게….”

그리고 세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랄 수밖에 없겠지.

자기가 건 마법이 풀렸으니까.

그것도 자신의 마법으로.

그래.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왜 나에게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용사가 계속 숨기려고 하던 그 힘이다.

인연이 있는 상대방의 능력을 훔치는 힘.

훔치는 자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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