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용사] 마물 탐색 작전
세리아는 마침 마기를 탐지할 수 있는 인원이 둘이니, 그 둘을 중심으로 인원을 반으로 나누자고 했다.
마침 우리 파티도 넷이니 딱 적절한 배분이었다.
……제렌 그 남자는 이번 임무에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이 일은 철저히 우리 넷이서만 진행할 것이니.
어차피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으니, 우리가 어떤 작전을 세우는지도 모를 터.
그는 임무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우리 파티에서 나가있는 셈이었다.
그래. 이 임무가 끝나면 짐꾼을 새로 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혹시 모르니 여성 짐꾼으로…… 아니, 여성 짐꾼이 있을 리 없구나.
아무튼 좀 안전한 사람으로 골라보자.
세리아가 잘 알 테니 그녀와 함께 다니면서 알아봐야겠다.
그래, 이걸로 그와는 안녕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다들 찬성인거지?”
세리아의 물음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일은 어떻게 나눌래?”
“세리아, 내일은 저랑 같이 가시지 않겠어요?”
내가 뭐라 얘기를 하기도 전에 아린이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원래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나랑? 나는 상관없어. 유니는?”
“어? 그러면 나야 고맙지!”
“…이튿날에는 교대야.”
그녀들이 속닥였다.
아무튼 나로서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설마 그가 이 넓은 도시에서 무슨 짓을 하지도 않을 테고, 설령 그렇더라도 아린이라면 잘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동의했다.
그렇게 내일 계획을 짜고 난 후, 우리들은 다시 아침에 보기로 약속하며 각자 방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나는 각방이다.
그야 그녀들과 같은 방을 쓸 수는 없으니 당연하지만.
영주님이 비용을 지불한다고는 해도, 모두가 각방을 쓰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으므로 항상 그랬듯 나와 여자들 방으로 2개를 잡았다.
그는…… 알아서 숙소를 잡겠지.
대금은 필요한 만큼 줬을 테니 거기까지 우리가 신경 쓸 이유는 없다.
일찍 잘까 고민하던 찰나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용사님, 저에요.”
“아린? 들어와.”
그녀는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았는지 신관복을 입은 채였다.
아니, 조금 다르다. 같은 신관복인데, 무언가…… 달랐다.
“어, 어때요?”
아린은 그렇게 말하더니 부끄러운 듯 노출된 부위를 슬쩍 가렸다.
그제서야 나는 이 옷의 정체를 알았다.
그 옷은 시련의 동굴에서 얻은 그녀의 새 신관복이었다!
전체적으로는 비슷했지만 허벅지가 조금 더 파여 있고 가슴골이 살짝 드러나는, 신관이 입기에는 조금 부적절해 보이는 복장이었다.
“어, 으, 응…. 예쁜 것 같아.”
그렇다고 옷이 좀 이상하다는 소리를 할 수는 없으니 무난하게 칭찬했다.
아니, 대체 저번 용사 파티의 신관님은 왜 저런 옷을 입고 다녔던 거지?
“고마워요…. 그런데 부끄러워서 역시 입고 다니긴 좀 힘드네요….”
그녀는 용기를 내서 입긴 했지만 노출이 부끄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
“무리해서 입고 다니지 않아도 돼. 원래 입고 다니던 옷도 아린한테는 소중한 것이잖아. 나는 편한 걸 입는 게 좋다고 생각해.”
“역시 용사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슬며시 웃었다.
“이 옷은… 용사님에게만 보여드리는 거랍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슬쩍 허벅지 쪽의 패인 옷자락을 살짝 걷어올렸다.
“와앗! 무, 무슨 짓이야!”
“……후, 후후.”
나는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호기심에 슬쩍 손가락 사이로 바라보자, 그녀도 홍당무가 된 채로 손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무, 무리해서 그런 짓 하지 않아도….”
“휴우…. 알아요. 그냥 장난이었어요. 저도 부끄러워서 다신 못하겠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선 옷자락을 다시 놓았다.
그러더니 아린은 내 근처로 다가와 살며시 앉았다.
“아린?”
“제가 설마 이거 하나 보여드리려고 찾아온 줄 아셨나요?”
그, 그럼…… 아직도 더 남았다고?
꿀꺽.
난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후후…… 용사님, 귀여우셔라. 무슨 상상을 하고 계신 걸까요?”
“나, 나는 아무 생각도 안했어!”
그녀가 손을 내 얼굴로 뻗었다.
나는 얼굴을 붉힌 채 얼음처럼 굳어있었다.
딱!
그녀는 내 콧잔등을 살짝 쳤다.
“엉큼한 생각을 한 벌이에요.”
“어, 어?”
내가 당황하자 그녀는 재밌다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역시 용사님과 있으면 항상 즐겁네요. 하지만 유감이에요. 저는 정말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온 거랍니다.”
“얘기라니?”
지금까지는 다 그녀의 장난이었던 모양이다.
장난인 걸 알았지만…… 그래도 좀 두근두근했다.
그녀의 찰랑이는 긴 금발 머릿결이 내 손을 간지럽힌다.
만져보면 실례겠지.
꾹 참았다.
”아무튼 용사님. 세리아와 그 남자 말인데요…….”
“……뭐?”
그녀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녀에게, 확실히 내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긴 했다.
세리아와 그 짐꾼의 관계가 수상해보인다고.
그러나 그녀는 어디까지나 종교인으로서 내 고민을 들어준 것이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들은 모든 내용을 잊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연히 모른 체 할 줄 알았는데…….
“물론 저는 그 당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자력으로! 둘을 관찰한 것뿐이에요!”
아린은 그렇게 말하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그렇구나.
그녀 나름대로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던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정말 그녀가 잊어버렸을 리 없으니, 티 나지 않게 조금씩 관찰했으리라.
내 바보 같은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그녀가 고마웠다.
“그래서 말인데요.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한 것 같아요.”
“여, 역시…!”
역시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계속 조마조마했는데, 그녀에게서도 이런 대답을 들으니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그 둘은……!
“하지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어요. 저도 용사님의 말을 듣고 둘을 관찰… 아니, 어디까지나 제 스스로…! 으윽, 이게 아닌데….”
그녀는 당당하게 말하면서 순간 말실수를 해 버벅거렸다.
“괘, 괜찮아 아린! 계속 말해줘!”
“으읏….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나에게 실망한 적이 많기 때문에 그 느낌은 잘 안다.
“아, 아무튼 계속할게요. 어쨌든 지금의 저희로선 아무런 증거가 없어요. 그렇죠?”
“그렇지….”
“그리고 저도 솔직히 믿기지가 않아요. 세리아는 절대 그런 짓을 할 친구가 아닌데….”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 긴 교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세리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절대…… 그런 남자와…….
“용사님!”
아린이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덕분에 정신이 돌아왔다.
“아…. 고, 고마워.”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그녀에게도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 그렇지?”
그녀 말대로다.
아직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 일은 기회일지도 몰라요.”
“그래?”
“네. 그 남자도 없고, 저와 세리아가 단 둘이 있을 시간이 생겼잖아요.”
그 남자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도시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나눠서 돌아다닐 거라고는 생각 못하겠지.
“제가 내일 세리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물어볼게요.”
“고, 고마워 아린….”
사실 내가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일 때문에 묻기 조금 거북한 것이 사실이다.
세리아와 친한 아린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고맙기는요. 저도 세리아가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용사님. 저희는 동맹이에요!”
“도, 동맹?”
그녀는 붙잡은 내 팔을 눈높이까지 올리며 그렇게 외쳤다.
“네! 세리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뭉친 용사님과 저의 동맹!”
“어차피 우리는 같은 파티원이잖아? 굳이 이러지 않아도 우린 한 편….”
내가 의아해서 그렇게 묻자 그녀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그럴 땐 그냥 그렇다고 해주세요, 용사님….”
“어? 미, 미안….”
잘 모르겠지만 실망한 것 같아 사과했다.
진짜로 실망한 건 아니었는지 그녀의 표정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럼, 용사님. 제가 내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올 테니, 저만 믿고 기다리세요!”
“고마워 아린!”
“네! 용사님은 마음 놓고 유니랑 즐겁게 데이트를 하시다 오시면 된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손을 살짝 긁었다.
“데, 데이트라니…. 이건 어디까지나 조사잖아, 아린.”
“후후, 그렇죠.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걱정? 뭐를?”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그럼 용사님. 오늘은 푹 쉬세요.”
“응. 아린도 잘 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문을 나섰다.
“아참, 용사님도 제 꿈꾸세요.”
그녀는 문이 닫히기 전 고개만 빼꼼 내밀어 그렇게 말했다.
탁.
“어, 어?”
용사님‘도’라니?
그, 그 말은 그녀는 내 꿈을 꾸고 있다는 말인가…?
왠지 부끄러워져 얼굴이 빨개졌다.
이, 이만 자자…….
자꾸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는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으려고 옷을 벗던 중, 내 시선이 문득 왼쪽 팔목에 닿았다.
덩굴에 휘감긴 왼팔. 여전히 붉은 세 장미가 당당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어라? 왠지 하나가 작은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