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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28화 (28/236)

〈 28화 〉 [용사] 마물 탐색 작전

그 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다들 시련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사과하자 별 말 없이 넘어갔다.

심지어 제렌 그 남자도 이해한다며 나를 용서했다.

그 사실이 더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날 욕해줬으면 더 마음이 편했을 것을.

***

시련의 동굴은 아인스트에서 하룻밤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불침번을 설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절대 그 둘을 붙여두고 싶지 않았다.

형평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둘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첫 순번을 세리아에게 줬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자는 척을 하면서 혹시 그 남자가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까 감시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코까지 골아가며 푹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샌가 나도 긴장이 풀려 잠이 들고 말았다.

아인스트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최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사실 전부 내 착각이고 둘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지금 나에게는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는가.

그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둘의 관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믿겠다고 해놓고선, 나는 그녀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고작 그 환상 때문에?

……내가 생각해도 좀 한심해 보였다.

마침내 도시 어귀에 도착하자 경비병이 나를 알아봤다.

“엇, 혹시 용사님 맞으십니까?”

“네? 아, 네. 제가 용사입니다.”

혹시 내 명성이 퍼진 것인가 싶어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주님이 찾으십니다. 영주님께 기별을 보낼 테니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위에서 명령이 내려와 알아봤을 뿐인 것 같아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영주가 나를 찾는다는 사실을 위안삼기로 했다.

“영주님이 무슨 일로 저희를 부르실까요?”

“혹시 여비 같은 거라도 지원해주는 거 아닐까?”

아린과 유니는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즐거워보였다.

나는 말이 없는 세리아 쪽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어제보다는 기분이 풀린 것 같았지만, 딱히 지금 상황에서 입을 열고 싶지는 않아보였 다.

“세리아.”

“…응.”

왠지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무심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이라도 사과해야할까?

시련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그녀에게 사과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제 와서 사과하는 것도 좀 그랬지만, 그렇다고 사과하지도 않고 넘기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어제는 미안했어.”

“……응.”

그녀가 대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시간 들여 나온 대답도 썩 깔끔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녀는 내 사과를 받아준 것인가? 아니면 대충 흘려들은 것인가?

“사, 사과를 받아준 거야?”

“……응.”

여전히 아리송한 대답.

세리아는 긍정을 표했지만, 정작 말을 하고 있는 그녀는 그다지 내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아보였다.

“정말로?”

“그렇다니까. 자꾸 묻지 말아줘.”

“미, 미안….”

너무 귀찮게 해버렸나.

역시 아직 조금은 화가 나있는 모양이다.

“…화난 거 아니니까 그렇게 기죽지마. 시련 때문에 생각이 복잡해서 그랬을 뿐이야.”

내 표정이 너무나도 처량해보였는지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시련.

그래, 그런 거였구나.

그녀도 시련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마왕을 상대할 전략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겠지.

환상으로나마 그를 마주하면서 일종의 경각심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럼, 그녀는 어떤 마왕을 만난 것일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를 저택 안으로 안내할 하인이 나타나는 바람에, 더 이상 자세한 것을 묻지는 못했다.

기회는 언제든지 있을 테니, 다음에 물어보면 되겠지.

우선은 영주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마족이 도시 안에?”

“그렇다네. 마을 구석구석에 사악한 마기가 감돌고 있어. 이건 결코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현상이 아니야. 마을 어딘가에 마물이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숨어든 걸세.”

영주의 얘기는 조금 놀라웠다.

마족이 오래 머문 자리는 그 자리에 마기가 남는다. 일반인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신관 정도가 되면 그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데, 이 도시의 신관들이 그것을 찾아낸 모양이다.

인간에게서는 결코 마기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은 곧 이 도시 어딘가에 마물이 있다는 소리와도 같은 말이었다.

“마, 마물이 도시 안에 숨어들다니… 불가능해요!”

아린이 절대 그럴 일 없다는 듯 소리쳤다.

예절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영주는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그런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우리 모두를 알현실로 부른 것부터 그런 예절을 별로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사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리아가 알려준 사실이다.

“그대는… 신관인가. 그대도 시내를 돌아다니면 느낄 수 있을 걸세. 도시 곳곳에 미약하게나마 마기가 남아있어.”

“그, 그럴 리가….”

마족과 인간은 다르다.

외형은 이전에 그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개중에는 제법 인간과 비슷한 개체도 있는 모양이지만, 직접 마주하면 결코 헷갈릴 수가 없다.

인간의 도시에 숨어들었다한들, 그 마족과 마주하는 모든 인간들이 그의 정체를 금세 깨달을 수 있을 터.

마족이 인간의 도시에 잠입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그러나 지금 이건 현실일세. 나로서도 믿기지 않지만.”

“혹시 무언가의 이유로 인간에게서 마기가 묻어나온 게 아닐까요? 감염이라던가, 그런….”

세리아도 이상하다는 듯 영주에게 물었다.

“글쎄, 그건 자네 동료가 더 잘 알 것 같군.”

“세리아. 그건 불가능해요. 인간은 선천적으로 마기를 몸에 쌓을 수가 없어요.”

“나도 알고는 있지만….”

이 파티 내에서 마족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아린과 세리아 뿐이다.

나와 유니는 마족이 우리의 적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유니를 흘끗 바라보자 그녀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로 눈이 마주쳤다.

배시시 웃으며 유니가 살짝 윙크했다.

왠지 혼자가 아니란 느낌이 들어 살짝 미소가 나왔다.

“아무튼. 마법사 자네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다만 신관들의 의견으로는 고대의 마물… 도플갱어가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보고 있다네.”

“도, 도플갱어?”

“그런 게 어떻게!”

아린과 세리아가 경악했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력한 마족일까?

“그래. 그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변장할 수 있다더군. 변장한 사람의 기억까지도 일부 흡수할 수 있다는 전승으로 보았을 때, 그것들이라면 내 도시 안으로 충분히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있지.”

“그렇지만, 도플갱어는 분명 멸종했을 텐데…….”

아린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할 수 있다니. 듣기만 해도 끔찍한 마물일 것 같았다.

“그렇게 치면 마왕이 부활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나도 믿고 싶지는 않지만, 영주되는 입장에서 이런 일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영주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이미 사병들과 신관을 보내 조사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부랑아 떨거지들이 잘 협조하질 않는다는군. 아마 그들 사이에 섞여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참 곤란한 일이야.”

부랑아…….

도시 사람들은 집이 없는 자들을 그런 식으로 부르곤 했다.

우리가 살던 작은 마을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지만, 이런 도시에는 이처럼 집도 없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나는 그들이 왜 집 없이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보통 부자들과 사이가 안 좋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저희보고 수사를 도와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들도 마족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걸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세리아의 물음에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여신님은 이 땅의 모든 마족들을 몰아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왕이 죽으면 자연스레 그들의 힘도 약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마물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작은 마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존재 자체가 허락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여신님의 뜻이 그러하니, 나는 따를 수밖에.

그러니 이 임무도, 용사로서 마땅히 맡아야할 임무였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마물을 찾아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다음 사천왕이 있는 장소도 아직 모른다.

우리는 사천왕을 기다리며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있을 마물을 격퇴하기로 했다.

영주는 그 마물을 잡을 때까지 드는 모든 비용을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원활한 조사를 위해 빈민가 근처에 있는 숙소를 잡아 그곳을 거점으로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영주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마기가 느껴지는 장소뿐.

다 같이 이동해 확인해봤는데, 정말 그곳에는 마기가 남아있었다.

이런 탐지는 신관인 아린의 역할이었지만, 놀랍게도 나도 그 기운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 정확하게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무언가가 바닥에 뭉쳐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아린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런 것까지도 느낄 수 있게 된 걸까?

능력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은 나름의 수확이었다.

그러나 정작 도시 안에 숨어든 마물에 관해서는 별 다른 소득이 없었다.

“이런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어.”

결국 그날 저녁 세리아는 그렇게 선언했다.

저녁을 먹던 우리는 세리아에게 집중했다.

그녀는 식탁 위를 정리해 공간을 확보하더니 그 위에 영주에게서 받은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도시의 나름 자세한 구조와 마기가 발견된 장소가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걸 봐, 반경이 너무 넓어. 거의 도시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단 말이야.”

그녀 말대로 마기가 남아 있는 장소는 특정 구역이 아닌 정말 도시 곳곳에 퍼져있었다.

어쩌면 마물이 한 마리가 아니라던가?

그러나 마물은 제각기 고유한 마기를 가진다.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확인한 마기는 전부 동일한 성질의 마기였다.

결국 마물 한 마리가 도시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단 뜻이었다.

“그런데 잠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이런 마기가 남지 않잖아? 분명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했겠지. 그리고 그건 지금도 진행 중이고.”

우리는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새로운 흔적을 찾는 건 영주군에게 맡기자. 어차피 이 도시를 우리가 전부 돌아보는 건 불가능해. 그러니 우리는 대신 마족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알아야해.”

역할을 나누자는 얘기였다.

영주의 말을 들어보았을 때, 영주군은 주변 빈민가 사람들을 상대로 꽤나 고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 영주는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마물까지 죽여 버릴 위험이 있었다.

물론 마물을 죽이는 것이 목표이긴 하지만, 그 전에 마물이 이 도시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목적을 알지도 못하고 죽여서야 진정한 해결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끼리 돌기에도 좀 많아보이는 걸요?”

아린이 지도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확실히 오늘 우리끼리도 몇 군데 돌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씩 조사했다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응. 그러니 둘로 나누자.”

“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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