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마법사] 어둠을 밝히는 빛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분에 못 이겨 혼자 동굴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야 우리 둘이 아무런 관계가 아닌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못을 박을 필요까진 없었잖아.
물론 그의 본심이 아닌 건 안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말실수겠지. 그 짐꾼이랑 말하고 있었던 걸 보면 안 봐도 뻔하다.
분명 그놈이 또 이 상황을 유도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날 협박할 때부터 그랬다.
그 놈은 항상 교묘하게 주변을 속아 넘겼다.
이것도 나름의 재능이라면 재능인 걸까.
죽여버리고 싶은 재능이지만.
“…바보.”
쫓아오지도 않는 거야?
이 어두운 동굴 속에 나 혼자만 남아있다.
그래도 날 뒤쫓아서 바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전부 착각인가?
어쩌면 그말은 에릭의 본심이 아니었을까?
나랑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에게는 소꿉친구 유니가 있다.
예쁜데다 성격도 좋고, 정령사라는 희귀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
성격도 나쁘고,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나 같은 사람과는 다르다.
오래 지낸 만큼 에릭과 가장 가까운 사이기도 하고.
내가 그녀를 이길 수 있는 부분이 떠오르질 않는다.
아린은 또 어떤가?
예쁘고, 자애의 여신처럼 느껴질 정도로 착하고 상냥하다.
긴 머리가 좋다는 에릭의 한 마디에 필사적으로 머릿결을 관리할 만큼 저돌적인 면도 있다.
솔직하지도 못한 나랑은 전혀 다르다.
나… 정말 아무 것도 없구나.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진다.
마탑에 있을 때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는데.
우물 안 개구리라고 했던가? 정말 딱 그 꼴이었다.
바깥세상에서 나는 건방지고 자존심만 센 2류 마법사였다.
다리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자 눈물이 뚝뚝 흘렀다.
또 이러네.
운다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데.
바보…….
한참을 그러고 있자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에릭이구나.
너무 늦잖아, 멍청아.
그래도 반가움에 고개를 들었더니,
“윽…!”
에릭이 아니라 짐꾼, 그 남자가 서있었다.
“너,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벌떡 일어나자 그가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용사가 아니라서 실망했나?”
“다, 닥쳐!”
내 생각이 읽힌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면서, 또 우리 모두를 속였구나!
역시 항상 거짓말뿐.
이 녀석이 하는 말은 단 한 마디도 경청할 가치가 없다.
“또,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나타난 거야!”
펠라치오니 파이즈리니 또 그런 걸 시키려고 나타난 거겠지?
아니면 오늘이야 말로 끝까지 가버릴 생각일지도 모른다.
긴장감에 스태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지금 내 손에는 스태프가 있다.
이, 이런 녀석, 전혀 두렵지도 않아…!
“용사도 참 못됐군. 자기 동료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두다니.”
“에릭을 욕하지 마!”
정말 내 마음이라도 읽고 있는 건가?
괜히 찔려 더 예민하게 반응해버렸다.
아니야. 내가 생각보다 깊이 들어와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지금쯤 오고 있는 중이겠지.
“이, 이대로면 너 들킬 걸? 도망가는 게 좋지 않겠어?”
“용사가 오길 기다리는 건가?”
그는 무엇을 믿는지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당연하다. 우린 시련의 동굴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동굴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아니. 용사는 오지 않아.”
나는 순간 충격으로 스태프를 떨어뜨릴 뻔 했다.
오지… 않는다고…?
“거짓말하지마!”
거짓말. 그럴 리가 없다.
“찾던 게 이 동굴이 아니라는군. 자기는 먼저 갈 테니 나보고 데려오라고 했어.”
에, 에릭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에릭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아니라면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겠어? 입구가 바로 저 앞인데.”
그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동굴 밖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고작…… 이정도 밖에 안 들어온 거야?
바로, 바로 앞이잖아…….
동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가버린 거야?
나를 내버려두고?
“그, 그럴 리…….”
“아까 들었잖아. 용사는 너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그가 나지막히 속삭인다.
말하지마. 닥쳐.
그건 에릭의 본심이 아니야.
“결국 버려졌군. 내가 말했지? 버려질 거라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분명 착각이야….
무언가 급한 일이 생겨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던 거야….
분명 그런 것이다.
“널 찾아주는 건 나밖에 없군. 안 그래?”
“너, 너 같은 게 에릭에 비할 거 같아?”
설령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딴 놈과 에릭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나밖에 없어. 너를 찾아주는 건 나밖에 없다고.”
“너 같은 거 필요 없어! 꺼져!”
스태프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인정할 수 없다.
저 자식이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다.
“정말 필요 없나?”
“꺼져! 너, 너 같은 건 없어도 그만이야!”
“크크, 그래. 그럼 혼자 그 어둠속에 갇혀 있어라.”
그러더니 그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놈마저 사라지고 나니, 동굴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온통 캄캄한 어둠. 정말 나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둡다.
마치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은 감각.
불을 밝히려고 스태프를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어디갔지?
스태프가 없으면, 마법을 쓸 수 없어.
혹시 떨어뜨렸나 싶어 바닥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바닥도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잃어버렸나?
내 소중한, 스태프…….
스승님한테 받은 소중한 스태프인데.
이게 없으면 난 마법도 제대로 쓰질 못하는데.
마법도 못 쓰는 마법사 따위, 에릭의 파티에 있을 자격이 없잖아.
안돼. 찾아야 해.
그렇지만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내 힘으론 무리인 걸까?
일단 나가자.
나가서 에릭을 찾자.
나중에 다 같이 들어와서, 찾아보자.
나 혼자보단 그게 더 낫겠지.
그런데 에릭이 도와줄까?
먼저 가버린 걸 보면 그는 화가 나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괜히 먼저 트집 잡고 화를 내버렸으니까.
당연하지. 화내는 것도 당연한 거다.
사과하자…….
에릭을 만나면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
안 받아줄지도 모른다.
그래. 화가 났으니까 당연한 거야.
그럼 받아줄 때까지 계속 사과하자.
내, 내가 잘못한 거니까 어쩔 수 없어…….
미안해 에릭.
내가 전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줘.
입구를 향해 뛰어가지만 가까워지질 않는다.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다.
왜? 왜 나가지 못하는 거야?
빨리, 빨리 나가야 하는데!
에릭에게 사과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버려지고 말거야!
“에릭…! 에릭!”
제발 날 두고 가지 말아줘!
“유니! 아린!”
아무도 없는 거야?
누가 날 좀 도와줘!
“……제, 제렌……!”
그 더러운 남자라도.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여기서 나가게 해줘!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어둠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앗, 세리아!”
무슨… 일이지?
갑자기 어둠에 금이 가더니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그 대신 내 눈에 보이는 건 밝은 동굴.
거대한 보물 상자 앞에 모두들 모여 있었다.
아린, 유니, 그리고 에릭까지.
“세리아! 정신차려요!”
아린이 계속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린….”
“괜찮아요. 마왕은 이제 없으니까. 전부 환상이었어요.”
마왕?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무슨… 말이야?”
“여기가 시련의 동굴이잖아. 우리 모두 환상을 본 거야!”
유니가 호들갑을 떨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뭔가 위화감이 있었다.
그래.
그녀는 지금 내가 마왕을 만났다는 전제 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다들 똑같은 환상을 봤다고 하더라구! 진짜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지 뭐야.”
“…….”
“그래도 세리아는 강하니까 어쩌면 싸우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치?”
유니가 에릭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었더라면.
“……으, 응. 그래…….”
에릭은 무언가 끔찍한 것이라도 보고 온 듯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유니가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눈치를 줬지만, 제대로 반응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나 무서운 마왕이었던 걸까.
다들 그런 걸 보고 온 건가?
그럼 왜 나만……?
“그래도 정말 무서웠어.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괜찮아요. 저희도 더 강해질 수 있어요.”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무언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어차피 환상이라며.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는 거 아니야?”
“아 그게….”
아린은 말을 하다 말고 벽면을 가리켰다.
상자 위로 짧은 글귀가 벽면에 새겨져있었다.
시련을 통과한, 혹은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여.
그대들은 마음 속 불안과 마주했다.
통과한 이들은 그 강인한 마음으로,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불안 속에서 찾아낸 답으로,
정진하라.
마음 속 불안…….
내 마음 속에 있던 불안은 에릭에게, 모두에게 버려지는 것이었구나.
평소보다 마음이 불안정했던 것도 전부 그래서인 듯싶었다.
그럼 나는 시련을 통과한 걸까.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했으니까 아마도 실패겠지.
그럼 내가 찾아낸 답이란?
유니도, 아린도, 에릭도 내 필사적인 외침에 응답하지 않았다.
환상이 언제 깨졌지?
누구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내 부름에 응답한 건…….
“아, 아니야…….”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문양이 새겨진 왼쪽 어깨가 불에 타듯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