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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24화 (24/236)

〈 24화 〉 [용사] 얻는 것과 잃는 것

데론 성에서 며칠 쉰 우리들은 다시 여로에 올랐다.

우리들의 목표는 마왕을 잡는 것이지만, 지금의 우리들로선 마왕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사천왕을 먼저 물리치는 것이다.

사천왕이 전부 죽고 나면 마왕의 힘도 약해질 테니까.

그러나 지금으로선 다른 사천왕에 대한 정보가 없다.

마왕성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마왕군 부대에 숨어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간간히 소문은 들려오지만 하나같이 믿음이 안가는 그런 허황된 소문뿐이었다.

마왕은 아무래도 장기전을 노리고 있는 듯해, 자신의 여력을 한 번에 쏟아내질 않았다.

그래서 전투가 벌어지면 항상 아슬아슬하게 결과가 갈리곤 했다. 우리가 겨우 이기기나, 아니면 그들이 간신히 이기거나.

사람들은 만약 마왕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침공했었다면 벌써 이 땅의 전부가 그에게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천천히 정복을 시도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이 땅의 주민들 중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마왕은 낯선 존재였다.

“에릭, 정말 이런 곳에 있는 거 맞아?”

유니가 주변을 휙 둘러보며 의심쩍다는 듯 물었다.

“으음, 여기 근처라고 들었는데….”

나도 확신은 없었기에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흐렸다.

분명 여기가 맞을 것이다.

이 산 속 어딘가에 선대 용사가 만들어둔 시련의 동굴이 있다.

우리는 이 시련의 동굴을 통과해 더욱 강해져야했다.

그 동굴 끝에 잠들어있는 용사 파티의 장비가 필요했다.

사실 좀 더 일찍 들를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사천왕에 대한 신빙성 있는 소문이 돌기에 먼저 데론 성을 들렸다.

이제 사천왕도 잡았고, 급하게 먼저 들릴 곳도 없으니 동굴을 찾기에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냥 물려주면 될 걸 왜 이렇게 찾기 어려운 곳에 숨겨뒀대?”

주변을 둘러보던 유니의 입이 댓 발 나왔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라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왜 굳이 이런 곳에 숨겨뒀을까?

설마 전대 용사씩이나 되어서 후배들 골려주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 무언가 의도가 있다고 짐작하는 게 맞겠지.

“흩어져서 찾는 게 더 빠를 거 같지 않아?”

세리아가 더운지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그렇게 제안했다.

“앗, 바람 빌려줄까?”

“고마워 유니.”

그 모습을 본 유니가 바람의 정령을 불러 우리 모두를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정말 다재다능한 능력이다. 이 문양을 쓰면 나도 똑같은 기술을 쓸 수 있겠지만….

이 능력을 쓰는 건 여전히 좀 꺼림칙했다.

남의 것을 베끼는 듯한 기술 스타일도 그렇고, 원 주인에게 무리가 간다는 점에서도 별로 쓰고 싶지 않다.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최대한 자제해야지.

난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다.

“좋은 생각 같아요. 먼저 발견한 쪽이 신호하기로 하죠.”

아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그럼 다들 흩어져서 찾는 걸로 하자. 주변에 몬스터도 없는 거 같으니.”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동의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질 생각이었는데, 제렌… 씨가 은근슬쩍 세리아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제렌 씨, 저와 같이 가시지 않으실래요?”

“물론이죠, 용사님.”

제렌 씨는 아무런 미련 없이 곧장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과민반응이었을까?

“세리아, 저랑 같이 이쪽으로 가지 않으실래요?”

“어, 어? 아, 응…. 상관없어.”

아린은 세리아랑 같이 다니려는 것 같았다.

뿔뿔이 흩어지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뭐 상관없겠지.

“그럼 나만 혼자야?”

“저는 여러분께 위치를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요. 따돌리는게 아니랍니다.”

유니가 삐진 티를 내자 아린이 그녀를 달랬다.

그녀도 진심으로 삐진 건 아니었는지 금세 표정이 풀려있었다.

“용사님, 저희도 그럼 출발하죠.”

“아…… 그러죠.”

우리는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나는 차마 꺼내질 못하고 있었다.

세리아를 믿기로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를 추궁하는 건 세리아 몰래 뒷조사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혹시 물어봤다가 의심이 더 이상 의심이 아니게 된다면…….

그도 딱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말이 많았던 최근 모습이 이상했던 거지, 이게 평소의 그였다.

묵묵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옅은 존재감.

이러고 있으니 그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어보였다.

“엇, 혹시 저거 아닙니까 용사님?”

그를 관찰하느라 잠시 주변을 못 보고 있었는데, 그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꽤 큰 동굴이 저 멀리에 보였다.

“맞는 것 같은데… 한 번 가보죠.”

의외로 동굴 앞까지 길도 잘 뚫려있어 이동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길이 있는 걸 보면 역시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동굴 앞에 서서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래도 정답 같았다.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문양이 주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여신님의 문양이다.

직선 위에 그려진 원. 일출을 상징하는 새벽 여신의 상징이다.

“맞습니까?”

“네, 그런 것 같네요. 다들 여기로 불러야겠어요.”

그런데 뭐로 부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검술밖에 없는데…….

“그 마법으로 부르면 되겠군요.”

“마법? 아….”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에겐 다른 방법도 있었다.

내 손에 새겨진 용사의 징표.

이걸로 마법을 써서 알리면 된다.

“그, 그렇죠…. 이걸로….”

그래도 왜 마법을 쓰기가 꺼려지는 것일까?

나도 그녀도 약간의 고통을 받으니까? …아니면 이걸 제안한게 그라서?

솔직히 그가 좋게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선의로 제안해준 것이 아닌가.

이런 나쁜 마음을 먹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다.

“제 생각에는 그 신호마법이면 될 것 같습니다.”

“신호마법… 그렇죠.”

신호마법.

밝은 빛을 머리 위에 띄워 동료들에게 내 위치를 알리는 마법이다.

다른 몬스터들의 눈에도 잘 띈다는 단점이 있어 자주 쓰는 마법은 아니지만, 이렇게 안전한 곳에서는 쓰기 좋은 마법이다.

“그, 그럼….”

내가 팔의 소매를 걷자 팔 전체를 휘감은 넝쿨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좀 불길한 모습이다.

나는 잡념을 털어버리고 눈을 감고 집중했다.

집중하자…….

갑작스레 따끔할 세리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도 이해해주겠지.

나는 그녀가 신호마법을 쓰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모습을 흉내냈다.

파앗!

“으윽!”

내 팔목을 누가 찌른 것처럼 따끔한 감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 위로 환한 빛이 솟구쳤다.

“호오… 역시 대단하군요 마법은.‘

“그, 그러네요….”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우리는 잠시 바닥에 앉아 그녀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

“무언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무심코 그를 바라보자 그가 의아한 듯 물었다.

잠시 세리아와 그의 관계에 대한 고민에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포기를 못한 걸까?

약속 하나 못 지키는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든다.

“요즘 고민이 많으신 것 같군요.”

“네? 아… 하하, 들켰나요?”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그가 자연스레 말을 이어갔다.

이런, 너무 티가 많이 났나.

“저 때문입니까?”

“윽……!”

그가 갑자기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자 순간 당황해버렸다.

어, 어떻게 알았지?

“요즘 왠지 시선이 자꾸 저를 향하시는 것 같더군요. 제가 이런 시선에는 좀 민감한 편이라.”

“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난 이런 감정을 숨기는 것이 많이 미숙한 모양이다.

“제가 세리아 아가씨와 함께 있을 때 주로 그러시던데… 하하, 놀라신 표정이군요. 당사자라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겁니다. 아, 딱히 용사님을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내 행동을 그에게 전부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당연히 안 들켰을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그럼 세리아도 눈치를 채고 있던 걸까?

“그, 아무튼… 죄송합니다. 용사님.”

“네, 네?”

갑자기 그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왜, 왜 이러지?

“두 분이 그런 사이인 줄도 모르고… 그런 거라면 충분히 신경 쓰이고도 남을 테지요. 제가 좀 부주의했습니다.”

“어…… 네? 아, 아니, 그건…….”

그, 그런 사이라니?

설마 우리 둘을 연인 관계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가?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하도록 하죠.”

“저, 저랑 세리아는 딱히….”

“딱히?”

그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나랑 세리아는 딱히…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연인인 것도 아니고, 그냥… 같은 파티원일 뿐이다.

물론 그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알고, 나도 그녀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 특별한 관계가 생기진 않았다.

언젠간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만 아린과 유니도 분명…….

셋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나는 선뜻 발을 내딛을 수가 없었다.

어느 한 쪽을 고르면 분명 나머지 둘은…….

“제가 착각했던 겁니까?”

그가 다시 물어본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저, 저랑 세리아는 같은 파티원일 뿐입니다.”

“이런, 그럼 연인관계가 아닌 겁니까?”

“아… 아닙니다….”

그런데 왜지?

그에게 이 대답을 하는 것이 굉장히 망설여졌다.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은 조금…….

“이상하네요, 두 분께서는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이셨는데.”

“……그건.”

그렇게 보였나?

나는 셋 모두에게 똑같이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하하, 혹시 부끄러워서 그러신 거라면 괜찮습니다. 어디에 말하고 다닐 것도 아니니. 그냥 제가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정말 아닙니다.”

왠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말은 하시고, 사실은 저희 모두에게 비밀로 두 분이서 몰래…….”

“지, 진짜로 아닙니다!”

그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길래 왠지 울컥해서 외쳐버렸다.

분명 틀린 말은 하지 않았는데, 왠지 이상한 죄책감 같은 무언가가 자꾸 내 가슴을 쿡쿡 찌르는 느낌이었다.

“어허, 그럼 정말 두 분은 아무런 관계가 아닌 겁니까?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저, 정말이라니까요! 세리아와 저는 그냥 같은 파티원일 뿐입니다!”

“그럼 딱히 두 분 사이에 특별한 감정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군요?”

“그, 그렇죠!”

잠깐, 뭐라고?

방금 흥분해서 말을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은데.

“그렇군요…….”

그가 내 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을 끌었다.

……내 뒤?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렇지만, 애써 용기를 품고 돌아본 그 곳에는,

“아…….”

“요, 용사님….”

충격을 받은 듯 한 세리아와, 당황한 아린의 모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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