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용사] 사천왕과 힘
대망의 작전 당일.
나는 두근거리며 일어났다.
당연히 설렘이 아니라 긴장감으로 인한 두근거림이다.
오늘 나는 사천왕을 죽이러 간다.
실패하면 죽는 건 내가 되겠지.
여신님의 신탁을 받았을 때 이미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눈앞에 닥치니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지만, 용사로서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 방을 나섰다.
“앗, 에릭!”
유니가 로비에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옆에는 아린도 있었다. 어째 조용하다 싶더니 생각에 잠겨있는지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아린?”
“네, 네? 앗, 요, 용사님! 좋은 아침이에요!”
내가 그녀를 부르자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나를 보고 깜짝 놀라 인사했다.
“왜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에요! 별 거 아니에요!”
어쩐지 좀 이상한 태도였지만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서 안심했다.
혹시 그녀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아니. 이러지 말자.
나는 고개를 저어 불안한 상상을 떨쳐냈다.
“미, 미안. 늦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세리아도 내려왔다.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둘둘 감으면서 계단을 내려오던 세리아는 아린을 보더니 어색하게 눈을 피했다. 아린도 마찬가지였다.
“응?”
뭐지 이 어색한 분위기는?
마치 굉장히 부끄러운 것을 들키거나 본 사람들의 반응 같았다.
“으응?”
유니도 이상하다는 듯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 다 왜 그래?”
“아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응. 별 일 아냐.”
둘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하고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오려고 노력 중이었다. 여전히 행동 곳곳에서 서로를 거북해하는 게 느껴졌다.
오늘은 중요한 날인데.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게 아무래도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데론 성의 병사들이 총공격을 단행하는 것은 점심을 먹고 난 뒤의 오후 1시경.
지금으로부터 약 5분 후다.
우리들은 성문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서 나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비밀통로의 존재가 들킬 수도 있었기에 그러지 않았다.
물론 내가 그 꺼림칙한 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병사들과 함께 나가기로 했다.
물론 같은 문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고, 성문 바로 옆의 작은 출입구를 사용한다.
전령이나 급한 사정이 있을 때 임시로 사용하는 이 문은, 말을 탄 기사도 지나가고 남을 넓은 대문과는 달리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만큼 작았다.
당연히 눈에도 잘 띠지 않기 때문에, 마왕군의 눈에 띠지 않고 나가기에는 딱 좋은 문이었다.
성문지기가 대문과 이 쪽 문을 동시에 열면 투명마법을 건 우리들이 빠르게 밖으로 나와, 사천왕이 있는 곳까지 침투하는 것이다.
“준비됐지?”
세리아가 우리들을 돌아보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문 앞에서 세리아, 나, 유니, 아린의 순서로 서있었다.
제렌… 씨는 여기에 없다.
이번 임무는 위험하기도 하고, 그가 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실패하면 여유롭게 짐을 챙길 틈도 없을 테니,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좋았다.
성공하면…… 다시 여기로 돌아올 테니 만나겠지.
어쩌면, 다시 만나지 않는 편이…….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임무를 실패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사적인 감정은 접어둘 때다. 우선은 성공시키는 것만을 생각해야했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으니 투명마법을 걸게. 문이 열리면 지금 정한 순서대로 나가는 거야. 알겠지?”
우리가 끄덕이자 그녀가 주문을 영창하며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몸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함성소리.
모든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성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저들에게 남은 건 칼 한 자루밖에 없다. 화살도, 기름도,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저들이 전멸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최대한 빨리, 사천왕을 죽여야 한다.
5초.
문이 열리고 5초가 지났다.
세리아는 이미 밖으로 나왔을 테니, 나도 재빨리 문을 통과했다.
성 밖으로 나오자 병사들이 재빠르게 해자 앞으로 달려 나와 진을 치고 있었다.
선두가 방패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며 남은 병사들이 빠져나오길 기다린다.
일렬로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긴 그랬다가는 대열이 너무 길어 중간에 끊기겠지.
그러나 지금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이젠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했다.
“다 나왔지?”
“응!”
“네.”
세리아의 목소리.
함성소리가 거셌지만, 문 바로 앞에 서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어쩌면 서로의 소리가 더 잘 들리게 세리아가 마법을 쓴 것일지도 몰랐다.
다들 말을 할 때마다 주변의 함성소리가 잠시 작아졌으니까.
“이동하자.”
병사들이 해자 위의 다리를 가득 메우기 전에 이동해야했다.
우리는 다리 끝에 붙어서 조심스레 해자를 지났다.
역시 아무도 우리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리를 건넌 뒤부터는 조심해야했다.
여기서부터는 화살의 사정거리에 닿기 때문이다.
어차피 마족 진지 주변까지만 가면 눈 먼 화살이 날아올 일도 없으니, 그 때까지만 세리아의 방어마법에 의존하기로 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어떻게든 그녀를 붙잡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우리는 마족진지까지 이동했다.
우리 쪽으로 날아오면 방어마법에 튕기는 모습이 보일 것이므로 최대한 병사들에게서 멀어졌다.
어차피 사천왕이 있을 것으로 파악되는 천막은 후방이다.
진지에 가까워질수록 바삐 움직이는 마왕군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지각색의 종족들이 서로 비슷한 갑옷을 입고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사실 갑옷이라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방어구지만, 마왕군은 이미 병력 그 자체가 방패였다.
새삼스레 성의 병사들이 걱정된다.
저들이 전부 덤비면, 대체 얼마나 버틸 수 있는 걸까?
내 손에 힘이 꾹 들어가자 세리아가 그 감촉을 눈치 챘는지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래. 내가 세리아를 믿듯이 그녀도 나를 믿는다.
할 수 있다.
가끔 달려가는 병사들과 부딪힐 뻔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무사히 천막까지 도착했다.
영주는 사천왕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천막이라고만 했지만, 이 천막은 이미 사이즈부터가 일반 천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천막 위로는 다른 천막들과는 다른 깃발이 꽂혀있었다.
금이 간 두개골. 그려진 해골은 인간의 두개골이다.
아마 사천왕의 깃발이겠지.
고약한 센스였다.
천막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로 세리아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소매나 옷 일부를 잡고 움직이던 우리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여기야. 생긴 걸 보니 맞는 것 같네.”
“이곳에 사천왕이…….”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군요.”
고위신관인 아린의 말이니 틀림없으리라.
이 안의 사악한 기운을 가진 자, 사천왕이 있었다.
“에릭. 이제 네 차례야.”
세리아가 나를 향해 말했다.
보이지도 않지만 그녀의 표정이 눈에 잡힐 듯 선명했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해. 그를 동정할 생각하지 마.”
“……걱정마. 그럴 일 없어.”
비록 고블린도 제대로 못 죽이는 추태를 동료들에게 몇 번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생명을 해치는 매 상황마다 일일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내 손속이 지나치게 자비로워지는 것은, 그들이 약자라고 느껴질 때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전시상황.
이런 상황에서까지 강대한 사천왕을 상대로 동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용사님에게 여신님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에릭. 힘내.”
아린과 유니의 응원.
세리아는 내 손을 양손으로 맞잡았다.
“에릭. 잘할 거라고…… 믿지만, 혹시 잘 안 되면 도망쳐. 네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죽지만은 말아달라는 세리아의 말.
그녀가 걱정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 담긴 염려와 걱정을 나는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응. 그렇지만 너희를 버리고 도망치는 일은 없을 거야.”
“용사님…….”
아린이 내 말에 반응했다.
“실패할 일 없을 테니까 괜찮아. 자, 그럼 맡길게!”
세리아가 내 등을 탁 쳤다.
적절한 긴장. 과하면 몸이 굳고 덜하면 반응이 둔해진다.
이정도면 딱 좋다.
천막 안은 조용했다.
세리아의 말에 따르면, 사천왕이라는 존재는 우리 인간들의 장군과는 다른 개념의 존재라고 한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전장을 휩쓰는 존재도 아니고, 천재적인 지능으로 온갖 전략전술에 능한 존재도 아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마족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신관이 내리는 축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상 넝마자락을 걸친 오합지졸 마왕군이 이렇게까지 정예병을 몰아붙일 수 있는 것도, 전부 사천왕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천왕은 그저 전장에 존재하는 것으로 족했다.
세세한 작전을 세우고, 선봉에서 인간들과 싸우는 것은 그 밑의 부하들이 할 일이었다.
그러니 이 천막이 사천왕의 것이 맞다면, 그 안에는 사천왕과 몇몇 시종만이 있을 터였다.
무엇을 하고 있든, 투명인간의 습격을 대비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펄럭.
그 순간 천막을 걷으며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양 손으로 양피지 무더기를 안은 채 이족보행하는 염소.
사천왕의 시종일 것이다.
기회다!
나는 천막이 닫히기 전에 안으로 슬쩍 들어갔다.
밖에서 볼 때도 상당히 넓구나 싶었는데, 안에 들어오니 훨씬 더 넓어보였다.
안이 거의 비어있기 때문일까.
천막 중앙에는 모래를 깔고 그 위에 장작들로 불을 지핀 모닥불이 있었고, 그 뒤에는 얌전하게 명령을 기다리는 시종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는, 양피지에 적힌 글을 읽고 있는 해골이 있었다.
해골?
인간의 해골이었다.
새하얀 뼈밖에 남지 않은 인간의 해골이, 텅 빈 눈으로 양피지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아니, 그보다 어디를 찔러야하지?
생명체라면 당연히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장기들이 있다. 뇌라던가, 심장 같은 장기가.
그런데 해골은?
해골은 어디가 약점이지? 두개골? 갈비뼈?
설마 사천왕이 해골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해,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흐음……. 다음은 엘프들이 사는 숲인가.”
서늘하고 낮은 목소리가 그의 얼굴에서 흘러나왔다.
입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소리가 나오는 거지?
“저항이 무척 거셀 것으로 예상됩니다. 불편하시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천막에서…….”
“상관없다. 이 몸에 안식 따위는 필요치 않으니.”
시종의 말을 끊은 그는 양피지를 대충 구겼다.
“그런데.”
그의 두개골이 나를 향했다.
설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가?
“웬 잡것들이 기어들어왔군.”
세, 세리아….
안 들킬 거라며…!
어쩌지. 일단 찔러볼까?
“크흐흐. 당황했군. 안 들킬 거라는 자신이라도 있었나보지? 마법인가?”
해골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는 별로 크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정도일까.
앙상한 해골밖에 없어 조금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죽은 시체가 움직인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인간 시절의 육체를 버리고서야 깨달았지. 생물은 참으로 따뜻한 존재라는 걸. 이 차가운 몸뚱아리로도 느껴진다, 너의 체온이…!”
온도로 눈치 챘다는 건가?
이, 이런 경우는 상정 안했는데…!
타다닥.
주변의 시종들이 내가 있는 위치로 달려온다.
그들도 나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사천왕의 시선을 쫓을 뿐인가?
나는 입구 쪽을 막고 있는 시종 하나를 몸으로 밀치고 천막을 빠져나왔다.
어리둥절해하는 시종의 반응을 보니 그들은 나를 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천막 밖으로 구르듯 뛰쳐나가자 당황한 그녀들의 소리가 짧게 들렸다.
“들켰어!”
“무,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소리치자 세리아가 당황한 듯 받아쳤다.
“오, 온도로 눈치 챘다는데?”
“그걸 느끼는 놈이 있다고…?”
세리아가 황당한지 중얼거렸다.
나도 안 믿기지만 어쨌든 그 해골은 이미 눈치를 챘다.
“옹기종기 모여 있군. 영주가 보낸 자객인가? 양동치고는 형편없어.”
천막을 걷어 올리며 해골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두개골의 새카만 눈동자가 정확히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뺀 나머지 셋이 모여 있는 곳이다.
“큿…. 온도라니… 말도 안 되잖아…!”
세리아의 분한 목소리로 외치자 해골이 턱을 덜그럭거렸다.
“크흐흐. 네 년은 마법사인가? 마법사들은 항상 그렇지. 자기가 틀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그게 너의 한계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정면승부밖에 답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신관에, 정령사인가. 암살자치고는 특이한 조합이군.”
척.
시종 중 하나가 해골에게 무릎을 꿇으며 검을 건넸다.
상당히 낡은 검이었다. 검집 전체가 갈라지고 헤져 제구실을 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몸은 살아있을 적에도 수많은 암살자들을 격퇴했지.”
스릉.
해골은 검집에서 칼을 뽑았다. 상당히 낡은 검집과 손잡이와는 달리, 날카로운 예기가 감도는 칼날이었다.
“자아, 너희의 힘을 보이거라. 직접 칼을 뽑는 건 참으로 간만이구나.”
“축복을!”
아린의 다급한 외침. 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쿠르륵.
해골 주변의 흙이 솟아오르더니 그의 발목을 단단하게 묶었다.
“잔재주군.”
그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퍼엉!
뒤를 이어 세리아가 뜨거운 열기를 쏘아 보냈다.
해골은 아무런 방어 자세도 갖추지 않고 그 열기를 정면에서 얻어맞았지만, 그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 정도 온도로는 녹일 수 없다…! 너희와 같은 뼈라고는 생각지 마라!”
뿌득!
그가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내딛자 흙무덤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강하다.
동료들에게 다가가기 전에 내가 어떻게든!
그에게 달려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채앵!
그러나 그는 가볍게 내 칼을 튕겨내더니 앙상한 발로 나를 걷어찼다.
“검술을 배운 적은 있나 애송이?”
“크윽!”
근육도 없을 텐데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나는 그에게 얻어맞고 뒤로 쭉 밀려났다.
“에릭!”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프다. 정말 이게 뼈밖에 없는 자가 맞는가?
“고작 이정도로 나를 죽이려했는가? 오만하기 짝이 없군.”
흙이 솟아 그의 다리를 묶고, 뜨거운 열기가 그를 몇 번이고 강타했지만 아무것도 그의 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추, 축복을…!”
“마, 막을 수가 없어!”
이대로는… 다들 위험해진다…!
“크으윽!”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달려갔다.
챙!
그러나 그가 휘두른 낡은 칼에 내 혼신의 일격은 허망하게 막혀버렸다.
내 손아귀를 벗어난 칼이 인식범위를 벗어나 모습을 드러내며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한심하다… 한심하기 짝이 없어…!”
그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더니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은 왼손으로 내 목을 붙잡았다.
“끄흑!”
상상 이상의 악력이 내 목을 거침없이 짓눌렀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그대로 목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에, 에릭!”
“그거 놔!”
퍼엉! 펑!
그의 등 뒤로 마법이 계속해서 터지고, 정령들이 흙이나 바람으로 그의 손을 붙들어보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끄흐윽!”
점점 숨쉬기가 괴로워진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이렇게 허망하게?
파티원들의 비명과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그러나 그 무엇 하나 지금의 상황을 바꾸지는 못한다.
“너희의 실수다. 고작 그 정도의 힘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상대라고 착각한 너희들의 실수고 곧 그것이 너희의 죄악이다.”
우리의 실수…….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도 약하니까.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여신님…….
당신은 도대체 저에게서 무엇을 보고, 이런 사명을 내리셨습니까.
여신의 용사.
허울뿐인 이름이었다.
무력한 용사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음?”
내 시야의 밑에서부터 새하얀 빛이 솟구친 건 바로 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