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마법사] 둘의 관계
나를 믿는다.
나를 믿는다…….
에릭은 나를 믿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에릭을 속이고 있는데.
잠깐, 잠깐 기대했다.
에릭이 나를 위로해줬을 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기댈 뻔했다.
……나는 이미 자격이 없는데.
그가 나를 믿는 만큼, 내 더러움이 비치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래서 도망쳤다.
유니와 아린이 나를 보고 당황한 것 같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방으로 뛰어올라가 문을 잠궜다.
“흑…… 흐읏…….”
꾹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짜 바보구나. 뭘 잘했다고 우는 건데.
마음 속 어딘가에서 내가 그렇게 속삭였지만, 그래도 계속 눈물은 흘렀다.
아무에게도 내 연약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특히 에릭한테는 더.
그에게 이런 연약한 나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런데 이게 나라면…….
에릭에게 나는 필요 없는 거 아닐까?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내일 작전이고 뭐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잘한다.
이젠 또 자기가 제안한 작전마저 내버릴 생각이야?
정말 너무나도…….
“한심하긴.”
그래. 한심하…….
“누, 누구야!”
방금 건 내 목소리가 아니다.
이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더러운 목소리는…….
“제렌……?”
못 알아들을 리가 없다.
그 더러운 목소리를.
스태프를 든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떻게 여기에?
아니, 애초에 어디 있는 거지?
문득 오전의 일이 생각났다.
투명마법을 걸어달라고 했던 건, 지금을 위해서였나……?
에릭과 함께 있을 때 무언가 할까봐 긴장을 한시도 놓지 못했는데, 이렇게 방심한 틈을 타 그를 방 안에 들이고 말았다.
둘밖에 없는 좁은 공간에서!
실수했다.
아무 짓도 안 하길래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버렸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내 마법은 완벽하니까.
그 완벽한 마법이, 지금은 내 발을 잡고 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들었다던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분명 여기 있다.
이 방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휙!
내 스태프가 누군가의 힘에 의해 내 손아귀를 벗어났다.
“윽!”
내가 다급히 붙잡으려 애썼지만 그는 이미 저 멀리 스태프를 던져버린 후였다.
달려가서 잡아야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가 내 손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가만히 있어.”
“읏….”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흠칫 몸이 떨렸다.
……인정하긴 싫지만, 살짝 무서웠다.
그가 거칠게 자신의 성기를 나에게 쑤셔 박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강하다.
나는 그보다 약하지 않다.
저런 아무 능력도 없는 짐꾼 따위, 재도 안 남게 태워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왜 그러질 못하지?
친구가 많다고? 분명 거짓말이다.
에릭이 평생 의심할 거라고? 맞는 말이지만 계속 이상태가 지속되면 오히려 더 나빠질 뿐이다.
그런 궤변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그런데 왜 흔들리는 거지? 대체 왜?
“흐윽….”
그는 에릭을 빌미로 나를 협박하는 것 뿐.
고작 그것뿐인 협박이다. 그를 포기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다.
……그렇지만 에릭을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히익!”
무언가가 내 몸을 마구 더듬기 시작했다.
분명 그 남자다. 그가 더러운 손으로 내 몸을 만져대고 있는 것이다.
“그, 손 저리 치워!”
내가 비명을 지르자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히잇!”
“앉아.”
누, 누가 네 말을 들을 줄 알고!
그러나 그가 내 어깨를 힘으로 누르자 나는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어, 어째서…….
“흐흐, 말을 잘 듣는군. 좋아.”
아, 아니야. 난 네 말 따위…….
“잘됐군. 거기서 자위해라.”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당황하며 묻자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빨리 해.”
미쳤다고 내가 이런 놈 앞에서 그런 짓을…….
내가 완강히 저항하자 그는 내 손을 강제로 가랑이 사이에 끼우려고 했다.
“으읏! 하, 하지마!”
힘으로 저항해보지만 완력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스태프만 있었어도…….
움찔!
내 손이 클리에 닿자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이, 이런 거에 반응하지 마 제발……!
“크흐흐. 이런 상황에서도 가버렸나?”
“아,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놀랬을 뿐, 절대 그렇진…….
“히잇! 하, 하지마!”
그가 내 손을 붙잡고 거칠게 비볐다.
질구가 쓰릴 정도로 거센 손길이었다.
“이익!”
저항하려 했지만 그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두다가는 상처를 입을 것 같다.
그, 그럴 거면 차라리…….
“내, 내가 할 테니까! 그만둬!”
그러자 그의 손이 겨우 멈췄다.
“좋아. 그럼 해봐.”
그가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건방진 새끼…. 너 같은 건… 너 같은 건…!
“시발… 시발….”
나를 믿겠다는 에릭.
그렇지만 보다시피 나는 이미 그의 기대를 배신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리고 왜, 나는 지금…… 약간의 기대를…….
“읏….”
가볍게 옷 위로 질구를 문지른다.
어쩔 수 없다.
다, 다치면 안 되니까…….
“좋아. 계속해.”
닥쳐…. 닥쳐….
난 그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여기엔 나밖에 없다.
평소처럼… 평소랑 같은 거야….
“후우….”
질구를 문지르는 것은 말하자면 신호다.
자위를 시작하겠다고 몸에 신호를 주는 그런 느낌이다.
이 행위 자체로는 큰 쾌락을 얻을 수 없지만, 몸이 앞으로를 기대하며 조금씩 달아오르는 그 느낌이 좋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건 아니지만…….
“흐읏… 하앗….”
어느 정도 몸이 달아오르면 본격적으로 클리를 자극한다.
천 위로 문지르면 그 느낌이 덜하기 때문에 팬티를 살짝 옆으로 젖혔다.
질내를 직접 자극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클리를 자극하는 편이 더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질내가 가득 차는 그 압박감도 제법…….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대체.
지금 내 앞에는 그 새끼가 있잖아. 이, 이런 이상한 짓은…….
아니, 그는 없다.
없어. 없다고.
여기에는 나밖에…….
쿵쿵!
“세리아! 무슨 일 있어요?”
“힉!”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린?
지, 지금은…….
“멈추지마.”
그가 내 귓가에서 속삭인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계속해.”
“미, 미쳤…….”
콰악!
그가 내 엉덩이를 세게 쥐었다.
“히잇! 하, 하지마!”
“세리아! 괜찮아요?”
내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아린이 더 다급히 문을 두드렸다.
“오…… 읍!”
오지말라고 소리치려고 했는데, 그가 내 입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계속해.”
차가운 목소리.
그는 엉덩이를 쥐던 손을 풀고 내 손을 붙잡았다.
계속 자위를 하라고? 정말로?
그의 손가락을 세게 깨물었지만 그는 결코 내 입을 놓지 않았다.
그가 억지로 내 손을 움직여 클리를 자극했다.
“흐… 흐히므….”
내 입이 그의 손에 틀어 막혀 있어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찌걱찌걱.
내 손이 그의 뜻대로 자위를 하고 있었다.
멋대로… 잡지마…!
쾌감 따위는 없고 오히려 아프다.
그렇게 다루는 것이 아닌데. 여성의 자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난폭한 동작이었다.
“읍… 으읍….”
알겠으니까 제발 손 좀 놓으라고 소리쳤지만, 내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이상한 소음이었다.
내가 스스로 클리를 자극하자 그제야 그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내 손은 그에게 붙잡힌 채였다.
더러운 새끼…!
끝까지 나보고 하라는 거야?
질척.
애액이 묻은 손가락을 조심스레 질 내부로 집어넣었다.
후욱.
그러자 동시에 그가 내 목덜미에 대고 바람을 불었다.
갑자기 소름이 끼쳐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변태년. 이런 게 좋은 거냐?”
네가 시켰잖아!
소리치고 싶지만 입은 여전히 틀어 막혀 있었다.
누, 누가 이런 걸 좋아서…….
찌걱찌걱.
야속하게도 몸은 쾌락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세리아! 들어갈게요!”
아린의 다급한 외침.
안돼, 오지마.
“읍! 으읍!”
“용사한테서 버림받자마자 자위질이냐? 너 같이 천성이 음란한 년은 그 놈과 어울리지 않아.”
아, 아니야…….
그런 소리하지마…….
이, 이건 네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듣기 싫다.
기분 나쁜 말이다.
그런데 왜 내 손은 이렇게 기분 좋은 듯 움직이지?
찌꺽찌꺽찌꺽.
안 돼, 점점 올라온다.
이, 이런 상황에서…….
그만해야해.
제발, 멈춰줘……!
벌컥!
분명 닫아뒀을 문이 어째서인지 환히 열렸다.
“햐으으읏…♡”
내가 신음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당황한 표정을 한 아린과 눈이 마주쳤다.
“아…….”
침대 밑에서, 다리를 벌린 채 보지를 만지작거리며 가버린 년.
남자랑 헤어지자마자, 방에 돌아와 자위부터 하는 미친년.
누가 봐도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세, 세리아…?”
아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이건…….”
뭐, 뭐라고 말을…….
푸욱!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그가 내 손가락을 질내에 집어넣었다.
“하읏…!”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무, 무슨 짓이야…!
이러면 내가 동료 앞에서 자위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어, 그……. 이, 이건…….”
시선 둘 곳을 모른 채 방황하며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아, 아니야…….”
내, 내가 한 게 아니라 투명마법에 걸린 그 남자가 억지로…….
맨질맨질.
그가 내 손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흐윽……. 아, 아니야, 아린……. 이건……!”
“미, 미안해요 세리아……. 저, 저는 심각한 일인 줄 알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새빨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아니야. 이쪽을 봐줘!
이건 결코 내 의지가…….
“흐윽….”
“가, 가볼게요! 방해해서 미안했어요!”
쾅!
아린이 다급히 문을 닫았다.
“아…. 아아아….”
오해를 사고 말았다.
그녀의 앞에서 자위를 해버렸다.
나는 동료 앞에서 자위나 하는 미친년이 되어버렸다.
분명 그녀도 나와 에릭 사이의 이상한 분위기를 느껴서 찾아왔을 텐데.
그런데 내가 이렇게 자위나 하는 꼴을 보면…….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게다가 에릭에게 이 일이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아, 아아아아…….”
“크크크, 남자한테 버림받더니 이젠 같은 파티원을 보고 자위나 하는 거냐?”
그가 내 귓가에서 비아냥거렸다.
이, 이게 전부 누구 때문인데!
“이이익!”
그의 얼굴이라도 한 대 치려고 했지만, 허망하게도 그의 손에 막혀버렸다.
“푸흐흐. 자위나 하던 손으로 날 칠 수나 있겠어?”
“크읏……. 으윽!”
왜, 왜 이렇게 악력이 센 거야…….!
내 손은 보이지 않는 그의 손에 가로막혀 제자리에서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푸욱!
“히익!”
내 것이 아닌 손이 질내에 침입했다.
손이 멈춘 틈을 타 이런 짓을……!
남은 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빼려 했지만, 그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익숙한 손놀림으로 정확하게 내 약점을 자극했다.
찌꺽찌꺽찌꺽!
“히이이잇……! 히익……!”
자연스레 손에서 힘이 빠진다.
안 된다. 이러다간 그에게…….
“하앗… 호옥… 히익…!”
덜덜덜.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내 기분 따위는 하나도 배려하지 않는 거친 움직임.
쉴 시간도 없이, 그는 내 질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끊임없이 자극했다.
“히악…! 그, 그만… 흐윽…!”
들썩들썩.
내 엉덩이가 자꾸만 바닥에서 통통 튄다.
나도 모르게 곧추선 내 등이 쿵쿵거리며 침대에 부딪혔다.
“흐윽……하, 하지마…! 왜, 왜 이런 걸로…!”
이, 이딴 남자의 손에 가고 싶지 않은데……!
위험하다.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가버리고 만다!
“하, 하지마…! 제, 제발….”
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흐윽…. 흐읏…!”
점점 더 참을 수가 없다.
파도가 밀려온다.
참을 수 없는 쾌락의 파도가!
“하읏…. 윽… 읏… 하악…!”
안돼. 이제 무리다.
내 연약한 둑은, 몰려오는 파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햐아악♥ 하읏…♥”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건 겪어본 적도 없어……!
생전 처음 겪는 강도의 쾌락이 나를 무자비하게 덮쳤다.
부르르.
내 몸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쾌락을 느끼는 내 몸의 모든 부위가 이 낯설고도 기분 좋은 감각에 잠기고 있었다.
“하악…! 하으윽…♥”
쪼르륵.
다리에 힘이 풀리고, 따뜻한 액체가 요도를 타고 쏟아져 내렸다.
지, 지금 오줌 싼 거야……? 내가?
엉덩이와 허벅지가 축축해졌다.
“아… 아아….”
이, 이게 무슨…….
동료한테 자위하며 절정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준 걸로도 모자라, 이 더러운 남자 앞에서 오줌까지 싸버렸다.
“흐윽…♥”
그의 손이 가볍게 스치자 다시 몸이 떨렸다.
왜, 왜 이러는 거야……!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내 존엄은 저 밑바닥으로 처박혀버렸다.
“아… 아아….”
“좋은 구경을 했군. 오줌싸개 마법사님.”
터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더니 문이 조용히 열렸다.
“내일도 기대하겠어.”
그는 그 말만 남기고선 문을 닫았다.
간…… 건가?
그러나 나는 한참동안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