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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9화 (19/236)

〈 19화 〉 [용사] 둘의 관계

“내일?”

갑작스런 제안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혹시 무슨 마법과 관련된 활동에 어울려달라거나 뭐 그런…….

아니, 사실 알 것 같다.

누가 봐도 지금 우리 둘 사이에는 어색함이 감돌고 있다.

세리아도 알 것이다. 아니, 본인부터가 나를 조금씩 피하고 있었으니 절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 이건 일종의 화해의 제스처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지.

……싸운 것도 아닌데 화해라니, 조금 우스웠다.

“응. 좋아.”

사실 내일도 수련을 할 생각이었지만, 하루 빼먹는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을 테고 그런 것보다는 그녀와의 관계 개선이 더 급한 문제였다.

“아, 저, 정말? 그,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올게!”

그녀는 내가 승낙한 게 의외인지 살짝 놀라더니 얼굴을 붉히더니 후다닥 도망쳤다.

평소 그녀에게선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대로 그녀와도 다시 평소처럼 지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수로에서 있었던 일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기를.

세리아는 아침 일찍부터 내 방을 찾아왔다.

“이, 일어났어……?”

문 앞에서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너무 작아서 못 들을 뻔했다.

“아, 응. 방금 일어났어.”

왜 이렇게 작게 말하지?

다른 동료들이 깰까봐 걱정하는 건가?

조금 의아했지만 계속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미안해서 급하게 씻고 나왔다.

“그럼 출발하자.”

세리아는 왠지 다급해보였다.

무언가에 쫓기는… 아니, 그보다는 도망가는 사람 같았다.

“세리아?”

“이, 일단 나가자.”

그녀는 내 팔을 붙잡고 여관 밖으로 황급히 나왔다.

“왜 그래?”

여관 밖에서 내가 묻자 세리아는 그제야 변명을 생각하듯 우물쭈물거렸다.

“딱히… 별 거 아니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일단은 맞춰주자.

묻는 건 그 다음에 해도 상관없겠지.

나는 세리아의 뒤를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세리아도 무언가 계획을 잡아두지는 않았는지 우린 목적지 없이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원래라면 나름대로 볼거리가 많은 활기찬 마을이었겠지만, 마왕군이 도시를 포위한 며칠 사이 도시의 생기가 모조리 빨려나가기라도 했는지 지금은 황량한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와 세리아도 할 말이 없어 조금 난감해졌다.

안 그래도 서먹해진 사인데, 같이 얘기를 나눌 화제도 없다.

보이는 건 예쁜 거리와 신기한 먹거리가 아니라 부서진 거리와 텅 빈 가게뿐이었으니.

“정말…… 아무 것도 없네.”

세리아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아린이 나를 끌고 갔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라서 제대로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둘러보니 상상이상으로 상황이 안 좋았다.

텅 빈 도시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지경.

이 주변에 살아있는 것이라곤 누더기를 걸치고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몇몇 거지들뿐이었다.

“하아…….”

세리아는 예상대로 되지 않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빈 가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물론 주인도 없으니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정말 텅 비었네.”

뭐라고 말을 걸어야겠지만 할 말이 없어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세리아는 잠시 주변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에릭….”

“응?”

좀처럼 말을 꺼내질 못하고 망설이길래 잠시 기다려주었다.

“미안해.”

한참을 고민하다 나온 첫 마디는 사과였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가?

“요즘, 그냥 이것저것 좀…….”

내가 그녀와 거리를 두었듯, 그녀도 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서로를 미워하는 게 아닌데도 그렇게 되어버렸다.

“딱히, 에릭이 싫어졌다던가 그런 건 아닌데…….”

그녀는 좀처럼 본론을 꺼내지 못하고 말을 빙빙 돌렸다.

그녀답지 않았다.

대체 그녀는 무엇을 그토록 고민하는가?

세리아는 나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물어봐야했다.

그러니 제발 대답해줘, 세리아.

“세리아……”

“와! 진짜 있네!”

그러나 내 필사적인 목소리는 다른 소리에 묻혀버렸다.

“……유니?”

익숙한, 유니의 목소리였다.

왜 갑자기…… 아니,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앗, 내가 혹시 방해한 거야?”

유니가 우리 둘을 살피더니 당황하며 입을 가렸다.

이미 말은 나온 뒤지만.

“제가 그래서 조심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제렌?

그를 본 순간 내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왜, 왜 그가 여기에 있지?

“용사님, 마법사 아가씨. 안녕하십니까.”

그가 정중하게 꾸벅 인사했다.

아무것도 거리낄게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흣…….”

세리아가 당황해 말을 삼켰다.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던 것 같다.

“유, 유니…… 무슨 일로……?”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유니가 활기차게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도 수련이야!”

“수련……?”

내가 되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운차게 말을 쏟아냈다.

“어제 정령들이랑 교감을 해봤는데 느낌이 좋아서 오늘도 해보려구. 그런데 제렌 씨도 마침 볼일이 있다시지 뭐야. 위험한 곳이니까 겸사겸사 호위해주신다길래 같이 나왔지, 히히. 그런데 내가 더 강하지 않아요?”

“하하, 그건 그렇지만 이곳에선 아무도 아가씨를 모르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래봬도 제법 이 도시에서 얼굴이 팔렸거든요. 괜히 이상한 놈이 꼬일 일은 없을 겁니다.”

“오오, 굉장하시네요 제렌 씨!”

둘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진정하자.

우연히 둘이 밖에 나올 일이 있어 같이 나온 것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와 마주친 건…… 그냥 우연인 걸까?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온 거야?”

내가 슬쩍 묻자 유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냥 제렌 씨 가는 방향으로 따라왔어! 나는 흙이 많은 곳이면 어디든지 딱히 상관없으니까!”

“저는 볼 일이 있어 이쪽으로 온 것뿐인데. 설마 두 분이 계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 어떻게…….”

당황한 세리아. 아니 오히려 겁에 질린 것 같았다.

……겁에 질려? 그녀가?

“하하, 우연입니다. 우연.”

그는 멋쩍게 웃었다.

세리아는 조금 겁을 먹은 듯한데, 정작 그에게서는 어떠한 위협이나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리아… 대체 왜….

“앗! 맞다 에릭!”

갑자기 유니가 나에게 도도도 달려왔다.

“어? 왜?”

“이거 두고 갔어!”

유니는 나에게 아주 익숙한 것을 넘겨주었다.

……여신님의 성물.

당황해 목 언저리를 만져보니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이런 걸 두고 가면 어떡해, 에릭.”

“어, 어?”

내가 왜 이걸 두고 나왔지?

아니, 그보다 대체 언제?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일단 목걸이는 받았다.

목걸이를 걸고 나니 익숙한 감촉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이걸 두고 오다니.

확실히 요즘 제정신이 아닌가보다.

“응?”

유니가 문득 이상하다는 듯 내 어깨 너머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녀를 따라 뒤를 돌아보니 등을 돌린 채 서있는 세리아가 보였다.

왜 세리아밖에 없지?

“제렌 씨는 어디 갔어, 세리아?”

유니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 응…… 먼저, 먼저 갔어…….”

왠지 어색한 대답이었다.

먼저 갔다니, 그 짧은 시간에?

“그래? 그럼 나도 이만 가봐야겠다. 안녕!”

유니도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낀 것 같았지만 딱히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시 정령이랑 교감을 하겠다며 건너편 공터로 뛰어갔다.

“…….”

그렇게 다시 둘이 사라지자 침묵만이 남았다.

“정말, 간 거야?”

“……그 새, 아니, 사람?”

세리아가 내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왠지 그녀는 주변을 불안하게 살피더니 조심스레 대답했다.

“응….”

왜 주변을 살피지?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사람이라면…… 벌써, 갔어…….”

치마를 꾹 누르며 세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왜 그래?”

불안한 상상이 떠올랐다.

제발 아니기만을 바라는, 그런 상상을.

“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그보다 빨리 가자.”

세리아는 빠르게 그 자리를 떴고, 나도 그 곳에 더는 남아있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를 따라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세리아는 내내 불안한 얼굴로 자꾸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초조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태도 때문에 나까지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곤두세운 채 다녔다.

빈말로도 즐거운 외출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채, 왔던 길을 서서히 돌아왔다.

그리고 숙소 앞에서, 세리아는 발걸음을 멈췄다.

“세리아?”

그녀는 나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미안해 에릭…….”

“…….”

어느 정도 기대를 했던 만큼 실망감도 컸지만,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다.

세리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괜찮아. 내일은 작전 실행 당일이니까, 힘내자.”

“읏…….”

세리아의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섞여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서 곤혹스러웠다.

“세리아…….”

“나, 나는 정말… 바보야…. 멍청이… 병신….”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손을 그녀에게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들었다.

“……에릭.”

그녀의 눈동자에서 다양한 감정이 느껴진다.

초조, 분노, 슬픔…….

그러나 다른 그 어떤 감정보다도 불안감이 가장 컸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것.

……내 추측이 맞는지 틀린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싫어하게 될까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세리아.”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 편이야.”

나는 절대 그녀를 배신하지 않는다.

……설령 그녀가 나를 배신하더라도.

바보 같아보일지는 몰라도, 그건 내 진심이었다.

“나, 나는…….”

세리아가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더듬었다.

“괜찮아. 무리하지 않아도 돼.”

묻고 싶다.

지금이라도 물어서, 진상을 파악해서, 어떻게든 해주고 싶지만…….

그건 그녀를 상처 입히는 일이었다.

나는, 내 앞에서 울기 시작한 세리아에게 더 이상의 진실을 캐묻기를 포기했다.

“기다릴게.”

그렇다면 기다리자.

그녀가 나에게 말해줄 때까지.

“에릭…….”

그녀가 물기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막아주고 싶었지만,

나는 바보였다.

더 이상 세리아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내 선택이 그녀를 더 괴롭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리아를 믿는다.

“나는, 세리아를 믿으니까….”

“읏……!”

그러자 그녀의 몸이 흠칫 떨렸다.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

“…….”

나는 세리아를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마워.”

한참 뒤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울어서 그런지 힘없는 목소리였다.

그녀를 놓아주고 살펴보니 더 이상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다만 어두운 얼굴이었다.

……역시 위로가 부족했던 걸까?

“나는… 이만 들어가볼게.”

“세리아.”

“내일… 열심히 하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선 몸을 휙 돌려 먼저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세리아…….”

나는 기운 없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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