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용사] 데론 성에서
유니가 우리 모두를 깨우는 것으로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내가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파티원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특히 세리아는 물론이고 유니와 아린도 어제 컨디션이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아서 걱정이었다.
“용사님 좋은 아침이에요.”
“헤헤…….”
아린과 유니가 모닥불 근처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다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아린과 멋쩍게 볼을 긁적이는 유니.
나도 왠지 부끄러워져서 시선을 슬쩍 돌렸다.
“아! 지금 시선 피했어!”
“어머, 새벽에는 그렇게나 찰싹 달라붙어 계셨으면서.”
아린이 우리 둘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그녀의 긴 금빛 머릿결이 사르르 흘러내렸다.
오늘도 새벽부터 관리한 걸까. 유니와 같이 불침번을 서면서 머리를 관리했을지도 모른다.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아무튼 둘 다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다.
“세리아는?”
“세리아라면 먼저 개울가에 갔어요.”
씻으러 간 걸까?
아직 상태를 못 봐서 조금 걱정되지만 적어도 움직일 수는 있다는 뜻이니 다소 안심이 됐다.
“그러고보니 제렌 씨도 안 보이네.”
“제렌 씨도 아침 준비하는 거 돕겠다고 물 뜨러가셨어!”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구나.
왠지 부끄럽다.
“그럼 나도 가서 좀 도와줄까.”
식수도 확보해야 하고 요리도 해야 하니까 물은 많이 필요하다.
제렌 씨 혼자서는 조금 무겁겠지.
“앗! 그럼 우리 좀 도와줘!”
“재료 손질 좀 도와주시겠어요 용사님?”
음……. 이쪽도 바쁜 것 같다.
하긴 세리아도 개울가에 있다고 했지.
아무래도 세리아가 물 뜨러 가는 걸 제렌 씨가 같이 도와준 것 같다.
그럼 그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아침 준비를 해두자.
나는 아린, 유니와 함께 재료를 손질하며 그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세리아와 제렌 씨가 생각보다 늦다.
“무슨 일 있는 걸까요? 세리아가 늦네요…….”
아린이 걱정스럽다는 듯 개울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조금 이상하다. 약간 거리가 있기는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은 아닐 텐데.
정령들이 물도 원없이 떠다준다면 이렇게 기다릴 일도 없겠지.
그러나 아쉽게도 정령이 매일 만들어낼 수 있는 물의 양은 한계가 있었다.
보통 습한 곳에서는 더 많은 물이 나왔지만, 평균적으로 우리 넷과 그가 마실 수 있는 양이 나오지는 않았다.
결국 매일 누군가는 물을 채우러 가야하는 것이다.
그나마 정령들이 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니까 다행이지만.
이것만 끝나면 한 번 가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마침내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 미안! 조금 늦었네.”
뛰어왔는지 세리아의 얼굴이 조금 붉었다.
제렌 씨는 그 뒤에서 별 말 없이 따라왔다. 아마 말이 없는 건 들고 있는 물통이 무거워서겠지.
세리아도 물통을 들고 있었지만 제렌 씨가 들고 있는 것이 한 2배는 무거워보였다.
“고생했어, 세리아. 제렌 씨도요. 별 일은 없었지?”
내가 그녀의 물통을 대신 받으며 가볍게 물었다.
“으, 응. 아무 일 없었어. 무거워서 중간에 잠깐 쉰 것 뿐이야.”
그녀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며 말했다.
“제가 들겠다고 했는데 기어코 들고 가시더군요. 덕분에 덜 무겁게 왔습니다.”
순간 세리아가 잠깐 그를 돌아봤지만 딱히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냄비는 준비해뒀으니 아침을 먹고 출발하죠.”
아린이 식사 전 기도를 위해 손을 모으고선 그리 말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우리가 데론에 도착할 때까지 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리아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간간히 고블린의 습격이 있기는 했지만 별 피해 없이 넘어갔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마침내 도착한 데론 성은 우리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았다.
“저거… 마왕군이지?”
세리아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무수한 생물들.
비교적 인간처럼 생긴 개체부터 정말 생명체가 맞기는 한 건가 싶을 만큼 기괴한 모습을 한 마족까지 다양한 종족들이 데론 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화살의 사정거리 밖에 진을 치고 있어 생각보다는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그래도 데론 성을 포위하고도 남을 병력이었다.
“우리…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어?”
유니가 불안한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여신님의 인도에 따라 이곳에 도착했을 뿐. 여신님은 여기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가르쳐주시지는 않았다.
그래도 분명 방법이 있으니 나를 이곳에 인도하셨을 것이다. 생각하자.
“이래서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안에서 나올 수도 없겠네요. 성 안 사람들이 걱정이에요.”
아린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저렇게 포위가 지속되면 성 안 사람들이 모조리 굶어죽을 지도 모른다.
빨리 저들을 물리쳐야하는데…….
하지만 어떻게?
내가 고민에 빠져있자 세리아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성 안에 들어가지 않는 방법도 있어.”
“무슨 소리야?”
세리아는 조금 고민하더니 마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건, 여신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불렀기 때문이잖아? 솔직히 우리 넷이서 저 많은 병력을 상대할 있을 거라곤 도무지 생각이 안 들어.”
그 말대로다. 내가 지금보다 열 배, 백 배 더 강해진다 하더라도 저 많은 적들을 상대로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내 생각이지만 오기 전에 돌았던 소문을 생각해봤을 때, 우리는 사천왕을 잡아야 하는 거 아닐까?”
“사천왕…….”
“아마 여신님은 저 많은 마족들 중에서 사천왕을 우선적으로 죽이길 바라시는 것 같아.”
맞는 말처럼 들렸다.
설마 여신님이 우리 넷이서 저 많은 병력을 상대하라고 보냈을 것 같지는 않다.
사천왕을 잡는 것. 우리의 목표는 그것인 걸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적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똑같잖아.”
목표는 확실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임무였다.
내 불안한 심정이 드러났는지 세리아가 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말했다.
“걱정하지마.”
자신감에 찬 눈.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나는 언제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나에게 힘을 주는 그녀.
그녀의 강인함을 반만이라도 닮고 싶다.
“내 마법으로 잠시 모습을 감출 수 있어. 사천왕이라도 결국엔 똑같은 생명이니까 기습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야.”
기습.
조금 비겁해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최선의 수이기도 했다.
우리는 아직 약하다.
사천왕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지만 정면으로 이기기 어려운 상대임은 분명하다.
모두를 위해서라면 이렇게라도…….
“저기….”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건 제렌 씨였다.
“…읏.”
비장했던 분위기가 풀어진 탓일까. 세리아가 잠시 침음을 삼켰다.
“왜 그러시죠?”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저 포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고?
나는 당황해서 그를 채근했다.
“제가 이 도시의 뒷골목을 좀 압니다. 그 중에는 밀수품을 밤늦게 반입하는 비밀루트가 한 군데 있는데, 거길 사용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잠깐. 도시가 포위당했는데 어떻게 들어가겠다는 거야?”
세리아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왠지 조금 화가 난 것 같다.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사실 해자에 비밀통로가 있습니다.”
“해자에…?”
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물로 가득 찬 그 웅덩이는 현재 마왕군과 데론 성 사이를 가로막는 든든한 방어벽이었다.
“그치만 물이 차있는데?”
유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린도 뒤에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여전히 의문이다.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물이 통과하지 않는 통로가 하나 있습니다. 아마 마법의 일종인 것 같은데…….”
제렌 씨도 그 구조까지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으쓱했다.
마법이라……. 마법이라면 어쩔 수 없지.
잘 모르는 현상이 있으면 항상 마법 때문이다.
“마법? 왜 그런 게 해자에…?”
세리아는 이상하다는 듯 갸웃했지만 제렌 씨가 계속 말을 하자 일단 조용히 들었다.
“조금 전에 세리아 아가씨가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마법이 있다고 하셨으니 거기까지 가서 비밀통로로 안에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방법이!
확실히 세리아의 마법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수단이다.
역시 마법사가 있으면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세리아, 어때?”
“으음……. 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겠지. 이왕이면 영주의 협력을 받는 게 더 좋을 테니까.”
영주님의 협력을 받을 수만 있다면 양동작전으로 마왕군의 병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 작전도 훨씬 수월해지겠지.
성 안의 사정이 그렇게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정보도 얻고 싶고, 우선은 들어가보고 싶다는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정 상황이 안 좋아진다면 마찬가지 방법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을 테고.
“아린이랑 유니는?”
“저는 상관없어요.”
“으음…. 잘 모르겠으니 에릭 말대로 할게.”
나는 잠시 더 고민해봤지만 결국 들어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부탁드립니다, 제렌 씨.”
“맡겨만 주십시오.”
***
세리아의 마법을 통해 우리는 무사히 해자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빛의 굴절이 어떻고 공기의 흐름을 어쩌고 하면서 잠깐 원리를 설명해줬지만 솔직히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바로 옆에 있는데도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좀처럼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다들 있지?”
세리아의 목소리. 내 오른편에 있는 것 같다.
“응.”
“저도 도착했어요.”
유니와 아린.
“좋아. 다 온 건가?”
“좋습니다. 역시 수월하게 왔군요.”
나와 제렌 씨.
다들 도착했다.
그런데 소리만 들리니까 좀 허전한 느낌도 든다.
정말 다들 여기에 있는 게 맞을까?
소리가 들리니 여기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들이 나에게서 떠나간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자, 여기입니다.”
제렌 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모습이 안 보여서 모르겠다.
“이런. 그러고 보니 안 보였죠. 이 돌멩이가 떨어지는 쪽입니다.”
제렌 씨가 돌멩이를 줍고 바닥에 떨어뜨렸는지 갑자기 없던 돌멩이가 작은 소리와 함께 바닥에 생겼다.
세리아 말로는 몸 주변에 있는 것들 전부가 안 보인다고 했으니 제렌 씨는 거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을 것이다.
“우와, 왠지 신기하다.”
유니 말처럼 굉장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우리는 그 돌멩이 앞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서로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가까이 붙어있으니 누군가의 팔이 자연스레 닿았다.
누구 팔일까? 나도 모르게 살짝 건드려봤다.
“꺄악! 요, 용사님?”
아린이었구나.
그보다 왜 이걸 만질 생각을 했지?
“미, 미안.”
“요, 용사님이니까 봐드리는 거에요….”
고맙게도 아린은 내 사과를 바로 받아주었다.
“그럼 제가 한 분씩 안내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파티원들 중에는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유니는 마을 근처에 큰 강이나 바다가 없었고, 아린과 세리아도 도시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굳이 배울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수영이 가능한 건 제렌 씨뿐이었다.
그래서 제렌 씨가 우리들을 데리고 한명씩 차례대로 옮기기로 했다.
조금 답답한 방법이었지만 수영할 줄 아는 이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제 근처에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 누구죠?”
“저일까요……?”
“앗, 저인 것 같아요!”
아린과 유니가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더 가까운 건 유니 같았다.
이러면 유니, 아린, 나, 그리고 세리아 순일까.
“그러면 한 분씩 안내하겠습니다. 남은 분들은 혹시 모르니 주변을 경계해주세요.”
세리아의 마법인 만큼 나는 문제없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만의 하나를 대비해 주변을 경계하기로 했다.
“꺄앗!”
“죄송합니다. 잘 안보여서 그만.”
뭐, 뭐지?
옆에서 나는 소리가 신경 쓰인다.
“괘, 괜찮아요…. 안 보이니까, 응! 안 보이니까!”
“자. 세게 붙잡아주세요. 혹시라도 떨어지면 정말 큰일 납니다.”
세게…….
아니, 이상한 생각말자.
이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저대로 떨어지기라도 했다가는 수영을 못하는 우리로서는 큰일이다.
“헤헤, 제가 간지럼을 잘 타서 조금 간지럽네요…….”
“이런 허리였군요. 조금 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허리라고?
으윽……. 신경 쓰지 말자.
풍덩!
잠시 뒤 둘이 해자에 뛰어들었다.
혹시 소리 때문에 누군가 눈치 채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제법 거리가 멀어 들은 이는 없는 것 같았다.
“후우…… 역시 보이지 않으니 조금 불안하네요.”
아린의 목소리였다.
역시 그녀도 이런 낯선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게. 목소리는 들리는데 보이지 않는다니 좀 신기한 걸.”
“우리끼리만 보이게 할 수는 없는 거라서, 이해해줘.”
이번에는 왼편에서 세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었구나. 향기도 나지 않아서 몰랐다.
코가 좋은 마족이 있을지도 모르니 냄새까지 감추었다고 세리아가 말했는데, 정말 그대로였다.
“……저기, 에릭.”
잠시 제렌 씨를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세리아가 말을 걸었다.
“왜?”
“그게…….”
그녀답지 않게 머뭇거린다. 무슨 일이지?
“앗, 제렌 씨가 올라오나 봐요!”
아린의 목소리에 잠시 돌아보니 해자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촤악!
무언가가 물 위로 솟구쳤다.
“후우……. 오랜만이라 조금 힘들군요.”
제렌 씨가 올라왔다.
신기한 모습에 조금 정신이 팔렸던 나는 세리아가 있는 방향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미안, 세리아. 말이 끊겼네. 무슨 말 하려고 했어?”
“……아니야.”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 그녀는 이상하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물어보려던 찰나, 아린이 나를 불렀다.
“용사님, 거기 계신가요?”
“응? 응. 여기 있어.”
툭.
그러자 무언가 내 배에 닿았다.
만질만질.
아무래도 손인 것 같다. 아린의 손이겠지?
“후후, 여기 계셨군요 용사님.”
“무슨 일이야 아린?”
출발 전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용사님은 지금 제가 안 보이시죠?”
“응. 나도 아린이 안 보여.”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럼 여신님께서도, 지금은 저희를 못 보시는 걸까요?”
그녀에게서 신관이 한 말이라기에는 조금 당혹스러운 발언이 나왔다.
“딱히 신성모독 같은 걸 할 생각은 아니지만, 아마 평범한 방법으로는 우리를 관측할 수 없을 거야.”
세리아가 맞장구를 쳤다.
“후후…… 그렇군요.”
아린의 웃음.
그녀의 손이 더듬거리며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턱에서 멈춘 아린의 손길.
왠지 부끄러웠다.
“용사님.”
아린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쪽.
동시에 무언가가 내 볼에 닿았다.
“먼저 가볼게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생생하게 들렸다.
……무슨 일이지?
“아, 아린?”
세리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후후. 지금 일은 아무도 보지 못한 거예요.”
아린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나에게서 멀어졌다.
“자, 그럼 이제 가보도록 하죠.”
풍덩!
그리고 아린의 흔적이 사라졌다.
“뭐, 뭔데! 아린이 무슨 짓 했어?”
왠지 다급해 보이는 세리아의 목소리만이 그 자리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