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용사] 밝은 아침, 새로운 하루
“괘, 괜찮아…….”
세리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게나 얼굴이 빨간데 무슨 소리야! 안 되겠다. 다들 미안하지만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자!”
도무지 산을 더 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여기서 쉬면 일정이 촉박해지기는 하지만 동료가 아픈 상황에서까지 무리할 수는 없었다.
“난 정말… 하앗… 괜찮아!”
세리아가 항의했지만 내가 도무지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제렌 씨! 텐트 설치하는 것 좀 도와주세요!”
나는 제렌 씨와 함께 급하게 임시 텐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 세리아를 뉘였다.
“에, 에렌……. 나 정말 아픈 거 아니야…….”
세리아는 자꾸 자기가 파티에 민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지 문제없다고 말했지만,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그녀는 누가 봐도 환자였다.
제길! 파티원의 컨디션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다니.
파티장 실격이다.
부족한 나에 대한 자기혐오가 밀려든다.
“아린! 유니! 조금만 도와줘!”
반성의 시간은 나중에 갖자.
지금은 세리아를 쉬게 해주는 게 더 급했다.
“으, 으응…….”
“네에…….”
그런데 둘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의욕이 없는 것 같다.
“너희들 왜 그래? 빨리 가야한다는 건 알지만, 같은 파티원이 아픈데 잠시 쉬어가야지.”
“…그러네요 용사님!”
“…응! 지금 도울게!”
어쩐지 떨떠름해하는 둘과 같이 세리아를 간호했다.
열이 조금 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고, 딱히 아픈 곳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뭐지? 일종의 조작계 마법인가?
그런 고위 마법을 쓰는 놈이 근처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큰일이다.
어쩌면 마왕군 사천왕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쯤 되는 녀석이라면 이런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정찰을 하고 와야겠어. 주변에 사천왕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진지한 태도로 말하자 셋의 얼굴이 다소 당혹스럽게 변했다.
그래, 어쩌면 그녀들은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최대한 자세하게 지금 우리 파티에게 닥친 위협을 설명했다.
“저기, 에릭…… 미안한데 나는 그런 게 아니라…….”
세리아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나를 말린다.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이건 파티장으로서의 의무다.
“아니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세리아는 거기서 쉬고 있어.”
세리아가 당황하며 아린과 유니를 쳐다봤다.
“저, 용사님…… 아마 괜찮을 거에요.”
아린이 조심스레 말했다.
“맞아. 여기에 그런 무서운 녀석이 있을 리가 없잖아. 있다고 해도 지금은 상대도 되지 못할 거야.”
유니가 그녀의 말에 덧붙여서 말했다.
……그렇지. 맞는 말이다.
소중한 동료가 쓰러지는 바람에 잠시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나봐.”
“괘, 괜찮아요 용사님.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당황할 거에요.”
아린이 나를 위로했다.
고마워 아린. 유니.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
“그래. 다들 고마워. 그럼 같이 가자.”
“응?”
“네?”
당황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세 쌍의 눈동자.
나는 흥분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차분하게 설명했다.
“확실히 사천왕을 나 혼자서 잡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셋이라면, 적어도 나 혼자일 때보다는 나을 거야. 그러니 같이 확인해보자. 정 위험하면 도망가면 돼.”
셋 다 잠시 말이 없었다.
내 계획이 이상한가……?
“저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사님.”
그 때 뜻밖의 곳에서 원군이 나타났다.
“제렌 씨!”
제렌 씨가 모험 중에 말을 먼저 꺼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확실히 세 분께서 정찰을 가시면 이곳이 텅 비어버립니다. 적들은 어쩌면 그것을 노리는 것일지도 모르죠.”
“아니, 당신 무슨 소리를…….”
세리아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지만, 제렌 씨가 말을 끊었다.
“걱정마십시오.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큰 소리로 용사님을 부르겠습니다. 그러면 금방 오실 수 있겠죠.”
“핫!”
그렇다.
나는 바보였다.
셋이서 정찰을 나가버리면, 홀로 남은 세리아가 위험해지지 않는가!
나는 또 흥분해버린 나머지 중요한 사실을 놓칠 뻔했다.
그 점을 지적해준 제렌 씨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약점을 보완까지 해주는 그의 치밀한 면모에 나는 감탄했다.
정찰을 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위험한 상대가 근처에 있다면 상황을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너무 멀리 가지 않고 근처만 살펴보는 정도로도 충분하겠지.
그 정도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제렌 씨의 외침도 들을 수 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좋아! 아린, 유나. 가자!”
“저, 정말로요?”
“에릭, 내 생각에는 이거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아직 망설이는 그녀들.
하지만 제렌 씨가 나를 응원해주었다.
“갔다오십시오 용사님!”
그렇게 나와 아린, 유니는 셋이서 임시 텐트 주변을 정찰하게 되었다.
“조심해야해. 어떤 강적이 있을지 몰라.”
“하아…… 네.”
아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말아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아직 그녀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데론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이런 곳에 사천왕이 있다고?
나도 세리아만 아니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 주변에 몬스터는 없대…… 에릭, 이만 돌아가는 게 어때?”
유니도 걱정스럽다는 듯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제안했다.
정령의 힘을 쓴 것인가?
그녀의 정령들은 믿음직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안 좋다.
정말 사천왕이 그런 강력한 조작계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라면 정령의 감각까지도 왜곡할 수 있을지 모른다.
두렵다. 그런 상대를 나는 이길 수 있을까?
이겨야만 한다.
이런 곳에서 모두를 잃을 수는 없다.
그 때 유니가 발걸음을 멈췄다.
“뭐? 진짜? 에, 에릭! 적이래! 고블린 두 마리!”
“역시!”
적이 있다!
고블린 두 마리. 마법사가 없어 다소 불안하지만 정령사도 있고, 아마 괜찮을 것이다.
“좋아, 다들 도와줘!”
나는 전의를 불태우며 고블린들을 상대했다.
※※※
“후우…….”
지쳤다.
정찰하면서 고블린을 두 마리 발견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분명 더 적이 숨어 있을 텐데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이것도 사천왕의 계략인가?
우리들의 힘을 빼놓으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아린이 정말 울상이 된 채 돌아가자고 부탁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들도 오늘 그다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나 끌고 다니다니…….
“미안…….”
내가 사과하자 아린과 유니는 놀란 눈치였다.
“아니에요 용사님. 당신은 우리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한 것뿐이에요.”
“맞아! 아무도 에릭을 비난하지 않아.”
그녀들의 위로가 진심인 것을 알기에 나는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전부 내 잘못이다.
내가 더 똑바로 처신해야만 한다.
우울한 기분을 안은 채 텐트로 돌아오자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제렌 씨는 어디로 갔지?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제렌 씨가 텐트 안에서 나왔다.
“앗, 오셨군요 용사님! 사천왕은 있었나요?”
왜…… 그가 텐트 안에서 나오지?
“용사님?”
제렌 씨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야.
내 판단을 믿으면 안 된다.
조금 전도 그렇고 나는 너무 쉽게 흥분하는 것 같았다.
일단 얘기를 들어보자.
“텐트 안에 계셨군요……. 무슨 일로?”
“아, 세리아 씨가 약을 만들려고 하시기에 좀 도와드렸습니다. 제가 옆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가져다 드렸죠.”
역시.
함부로 의심하지 않기를 잘했다.
하마터면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를 할 뻔했다.
“그, 그렇군요……. 감사드립니다.”
“뭘요. 이 정도는 해야죠.”
제렌 씨가 당연한 일이라는 듯 그렇게 말해주셨기에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천막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자 후끈한 열기가 나를 덮쳤다.
윽! 뭐지?
“하아…… 하아…….”
세리아가 눈을 감고 침낭 위에 앉아있었다.
얼굴이 빨간 걸 보니 아직도 아픈 것 같다.
그녀의 옷이 좀 풀어져 있는 건 더워서 그랬던 걸까?
“세리아?”
“……어? 앗! 꺄아악!”
내가 들어온 것도 눈치 채지 못했나보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괘, 괜찮아?”
좀 당혹스러운 풍경이라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아,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괜찮아!”
세리아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무엇을?
“저기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괜찮으신가요?”
아린과 유니가 그 소리를 듣고 따라 들어왔다.
그녀들은 텐트 안을 가득 채운 열기에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무언가 아는 것이 있나?
물어봤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녀들은 끝까지 모른다고 부정하며 대답하기를 거부했고, 동료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은 나는 대답 듣기를 포기했다.
“아까보다 얼굴이 더 빨간 것 같아. 상태가 악화된 걸까?”
“아니,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세리아는 조금 전부터 계속 일관되게 문제없다며 나를 재촉하려 했다.
그렇지만 아픈 파티원을 끌고 가는 파티장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그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보였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