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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3화 (3/236)

〈 3화 〉 [용사] 밝은 아침, 새로운 하루

“으음…….”

햇살 탓에 저절로 잠이 깼다.

좋은 여관이긴 했지만 커튼이라도 달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직 어제의 피로가 남아있는지 몸이 찌뿌둥했다.

딱 하루만 더 쉬면 피로가 풀릴 것 같은데.

그렇지만 나는 용사. 그런 약한 소리를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여신님께서도 말씀하셨다. 한시라도 빨리 마왕을 토벌하라고.

내가 조금 힘들다고 빈둥거릴 수는 없다.

‘좋아. 빨리 준비하고 출발하자.’

갈 길이 멀다.

***

“응?”

가볍게 씻고 내려왔더니 1층에는 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용사님.”

“앗, 안녕하세요 제렌 씨. 혹시 제가 가장 먼저 내려온 건가요?”

제렌 씨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하더니 말했다.

“네 용사님이 가장 빠르셨습니다. 원래 지금쯤이면 다들 내려와야 하는데 이상하군요.”

“역시 그렇죠?”

흠. 역시 내가 시간을 착각한 건 아니었나보다.

그녀들이 자는 방에 올라가보기에는 좀 미안해서 우선은 아침이라도 먼저 먹으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주인아저씨! 여기 아침 하나만 차려주세요!”

“예에 곧 갑니다!”

아침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다보니 그녀들이 우당탕거리면서 급하게 내려왔다.

“미, 미안해요 용사님!”

“에릭 미안해애…….”

“조, 조금 늦잠 잤어.”

셋 다 헉헉거리는 걸 보니 급히 내려온 모양이다.

“걱정했잖아. 다들 머리가 엉망인 걸. 오늘은 조금 천천히 출발할 테니까 느긋하게 준비하고 내려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고 얼굴도 빨갛다.

분명 잠에서 깨자마자 급히 내려왔겠지.

이것도 어제 괜히 욕심을 부리다 무리한 내 탓이다. 파티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그녀들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결국 다시 준비하고 내려오기로 했다.

그녀들이 올라간 뒤, 옆에서 웬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리길래 돌아보니 놀랍게도 제렌 씨가 웃고 있었다!

“재밌는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아, 이거 죄송합니다 용사님. 허둥지둥 거리는 걸 보니 조금 우스워서요.”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파티원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비웃는 건 조금 빈정이 상했다.

“어제 제가 너무 무리한 탓입니다. 비웃으려면 저를 비웃어주세요.”

“제가 용사님 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군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아, 아뇨…….”

제렌 씨가 갑자기 사과를 하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래서야 마치 내가 그에게 빈정거린 것 같지 않은가!

사과해야하나?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할 말을 생각하는 사이 그녀들이 단장을 하고 다시 내려왔다.

“미, 미안해. 간만에 여관에서 자는 거라 너무 방심했나봐.”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카락을 꼬았다.

“괜찮아. 나도 오늘은 조금 늦었는걸.”

내가 가장 먼저 내려오기는 했지만 사실 엄밀하게 따졌을 때 먼저 도착한 건 제렌 씨였다.

역시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래도 내가 늦은 건 사실이니까. 이런 건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불편하단 말이야.”

세리아는 부끄러운 듯 고래를 홱 돌렸다.

“누구보다 성실해야 할 여신님의 몸종이 지각을 하다니…… 정말 면목 없습니다 용사님.”

드물게 침울한 표정을 지은 아린도 그렇게 말했다.

“우으…… 아침에 일어나는 거 너무 힘들어.”

유니가 투덜거렸다.

그녀는 마을에서도 항상 제일 늦게 일어나는 늦잠꾸러기였다.

평소에는 동료들이 깨워주지만 오늘은 사이좋게 다 같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일찍 못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다들 덜렁대고 분위기가 너무 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다들 진지할 때는 진지해질 줄 아는 좋은 동료들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좋은 동료들과 같이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럼 다들 아침 먹고나면 출발하자!”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우리는 마을을 나섰다.

사실 오늘도 갈 길이 조금 멀다.

우리는 얼마 전 마족의 습격을 받았다는 국경지대의 도시, 데론으로 향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곳에는 마왕군 사천왕도 있다고 한다.

과연 우리들의 실력으로 사천왕을 이길 수 있을까?

불안하지만, 믿는 수밖에 없다.

“앗, 근처에 고블린이야! 3마리!”

정령들의 보고를 받은 유니가 우리 모두에게 경고했다.

느긋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지며 다들 자세를 고쳐잡았다.

고블린이라. 고블린은 가장 대표적인 마물이었다.

이런 곳까지 돌아다니는 걸 보니 확실히 상황이 많이 안 좋기는 한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력한 마을들이 마족의 손에 유린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괜찮아요 용사님. 후우… 후우…. 당신은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아린이 힘을 꽉 준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더니 그렇게 위로했다.

그녀의 손이 평소보다 따뜻하다.

“고마워… 아린.”

나는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

아린의 얼굴이 빨개져… 아니, 이미 아까 전부터 빨간 채였다.

“그나저나 너희들 괜찮아? 다들 얼굴이 붉은데.”

사실 다들 조금씩 얼굴이 빨갰다.

감기가 아닐까하고도 의심했지만 딱히 기침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열도 경미한 수준이었다.

평소보다 체력이 떨어졌는지 도중에 자꾸 숨을 몰아쉬는 것이 유일한 증상이었다.

파티장으로서 당연히 걱정도 됐지만 솔직히, 그, 조금…… 야했다.

어쩐지 다들 평소보다 예뻐 보이고 몸짓 하나하나가 괜히 자극적이었다.

지금도 아린을 보고 조금 흥분해버렸다.

동료를 보고 흥분하다니 정말 최악이다.

그들은 아무런 사심 없이 이런 위험한 모험을 함께 하고 있는데 나란 놈은 그들을 보고 흥분이나 하고 있다니.

죄책감이 마구 몰려든다.

“하아… 괜찮아, 이 정도 쯤이야…!”

“으, 응! 그냥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은 것뿐이니까!”

세리아와 유니가 힘을 내며 말했다.

그래 일단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자.

부스럭부스럭.

수풀 사이로 작은 몽둥이를 든 녹색 피부의 괴물 세 마리가 걸어 나왔다.

인간보다는 조금 작지만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헐벗은 그들의 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블린의 힘은 상상이상이다.

나와는 달리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한 고블린들이 케케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레! 이레!”

“이레!”

그들은 자기들 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좋은 뜻 같지는 않았다.

“케케케!”

한 놈이 허리를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옷을 입지 않은 그놈의 특정 신체부위가 덜렁거렸다.

“……읏.”

뒤에서 누군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제길 이 징그러운 자식들!

“얘들아! 시작하자!”

그런데 뒤쪽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얘들아?”

뒤를 돌아보니 그녀들의 시선이 그 흉물스러운 괴물의 그곳에 가있었다.

“아, 응! 나한테 맡겨!”

세리아가 화들짝 놀라 스태프를 들고 주문을 영창했다.

스태프 끝에 이글거리는 열기가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고! 이고!”

고블린들은 그런 뜻 모를 소리와 함께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추, 축복을!”

아린이 재빠르게 나에게 축복을 걸어주었다.

발걸음이 빨라진 게 느껴진다.

유니는 땅의 정령을 소환해 고블린 중 하나의 발을 묶었다.

“쿠엑!”

꼴사나운 소리와 함께 한 녀석이 나자빠졌다.

“하아앗!”

나는 기합소리와 함께 나에게 달려드는 고블린에게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렸다.

“키익!”

고블린이 비틀거리자 나는 주저 없이 방향을 틀어 세리아에게 달려가는 고블린을 쫓았다.

“케케륵!”

그는 뒤를 돌아볼 생각도 않고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압!”

나는 아린의 축복 덕에 빨라진 발걸음으로 달려가 그 녀석을 단칼에 베었다.

베인 고블린은 그대로 쓰러졌다.

“에릭! 뒤!”

유니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니 아까 내가 밀친 고블린이 어느샌가 내 근처까지 다가와있었다.

“걱정마! 뜨거운 걸로 간다!”

그러자 세리아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스태프를 고블린에게 조준했다.

스태프 끝에 뭉친 열기가 나한테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펑!

스태프 끝에 뭉쳐있던 열기가 화살처럼 날아가 고블린에게 명중했다.

“키에에! 키에! 키엑!”

고블린은 피부가 순식간에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발버둥쳤다.

나는 정신이 팔린 그의 목을 베었다.

“키익, 킥?”

남은 고블린은 한 마리뿐. 그러나 그 고블린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것 같았다.

우리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용사님. 저들은 마물입니다. 용서해서는 안 돼요.”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아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에릭이 못하겠다면 내가 할게.”

세리아가 차가운 표정으로 스태프를 들어올린 채 말했다.

“아냐. 내가 할게.”

그녀들에게 자꾸 의지할 수는 없다.

나는 용기를 잡고 칼을 들었다.

“키익….”

고블린이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큭…….”

손이 떨렸다.

방금 전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문제였다.

압도적인 승기를 잡았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망설이고 만다.

그들이 약자처럼 느껴져서일까?

일방적으로 그들을 죽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키릭… 키익….”

고블린이 서서히 몸을 굽히더니 몽둥이를 내려놓는다.

항복하려는 걸까?

나도 모르게 검 끝이 살짝 내려갔다.

“키에에엑!”

그러자 고블린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나한테 뛰어들었다.

퍼엉!

내가 자세를 고쳐잡기도 전에, 세리아의 스태프에서 발사된 마법이 고블린의 피부를 녹였다.

“케에엑!”

고블린은 몽둥이를 떨어뜨리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절명했다.

“내가 말했잖아. 저들을 동정하지 말라고. 쟤네는 사악한 마물들이야.”

세리아가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설교했다.

언제나 이 패턴이다.

또 바보같은 짓을 해버렸다.

“미안해…….”

“아, 아니야. 에릭이 너무 착한 탓인걸.”

유니가 애써 나를 위로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연약함이다.

위로는 고마웠지만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후읏…… 앞으로는 조심해줘.”

세리아가 웬일로 더 길게 설교를 하지 않고 말을 마쳤다.

“하아… 읏…….”

고개를 들어보니 세리아는 아까보다 훨씬 상기된 얼굴로 스태프를 몸 사이에 끼운 채 기대어 서있었다.

“세리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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