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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라는 공작에게 시집왔는데-147화 (147/150)

147화

손바닥 안쪽부터 땀이 차올랐다. 심장이 갓 물 밖으로 꺼낸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며 뛰었다. 반대로 전신의 뼈는 공기에 노출된 촛농처럼 빠르게 굳었다. 마른 목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루크는 덜덜 떨리는 손을 문고리로 가져갔다. 그에게는 이 얇은 문이 제 양심과 망상과 이성의 한계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망상에 빠진 정신병자라는 게 증명될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그러나 만약 현실이라면? 꿈도 아니고 망상도 아니라면…….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꿈도 망상도 아니라면 찬란한 인생을 선물해주신 신께 부지런히 감사를 드려야지. 내친김에 영지민들에게 이 축복을 베풀어 한 달간 세금 면제 혜택을 내려도 좋을 것이다. 명분은, 그래, ‘행복의 축일’ 정도로…….

‘적당히 하자.’

루크는 측근들의 싸늘한 눈빛을 떠올리며 두방망이질치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오죽하면 충성스러운 그렌트 존스마저 한심함을 숨기지 못했을까. 제이드 앨런이야 그렇다 쳐도 그렌트 존스에 이르러서는 루크라고 해도 반성을 하게 되었다. 피오나에게 홀딱 반해 졸졸 쫓아다니던 그렌트 존스는 “부인을 닮은 딸 하나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스테이턴 성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해주십시오.”하고 매일 간곡하게 부탁했던 것이다. 사람 마음도 모르고….

아이를 낳아 후계를 생산하는 것이 의무라고는 하나, 임신과 출산은 오롯이 여인의 부담이었다. 아기는 어미의 뱃속에서 그 몸을 통해 자양분을 얻고, 살을 찢다시피 하여 태어난다지 않은가……. 언젠가 결혼을 한 흑곰 기사단원이 제 부인이 출산하던 장면을 보았던 이야기를 해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부인이 죽을까 봐 무서워서 달달 떨었다고 했다.

나디아가 죽는다면. 루크는 잠시 가정해봤다가 소름이 끼쳤다. 두려운 정도가 아니었다. 숨이 턱 막혀서 상상만으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날 이후로는 질외 사정을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것만으로는 불안했다. 하지만 약을 구할 수도 없고, 나디아를 보면 안지 않을 수도 없으니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가 아프지 않게 조심해가며 안는 게 힘이 드는데…. 걸핏하면 이성이 날아가서….

‘핫, 이럴 때가 아니지….’

루크는 각오를 다지고 문고리를 내렸다. 문 너머에 망상이 있든 현실이 있든, 노크 소리는 진짜였다. 침실 안에 사람이 달리 또 있을 리가 없으니 나디아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였다. 그녀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벌컥.

“드디어 열었다.”

“헉.”

“너무 오래 안 열어줘서 가버린 줄만 알았잖아요….”

“허어억….”

루크는 숨을 들이켜며 입을 틀어막았다.

“나, 나, 나디아, 이게 무슨….”

“…어…. 별로예요? 이러면 좋아할 거라고, 셀리아가….”

셀리아 이 빌어먹을 여자, 평생 도움 한 번 안 되더니 한 방에 큰 선물을 주는구나. 너의 모든 죄를 잊겠다……. 죄가 다 뭐야, 루크는 당장 셀리아가 시집간 몰브티 왕국에 무엇이든 선물을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디아는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인 루크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별로인가 봐….’

셀리아도, 레이나도 모두 추천해준 방법이었는데 말이다. 가족들을 반년이나 대접해주면서 단 한 번도 싫은 티를 내거나 성가신 기색을 보여주지 않은 그에게 고마워서, 그동안 자주 갖지 못했던 부부의 시간을 위해 무얼 어떻게 노력할지 아이디어를 쥐어짜냈다. 나디아는 어깨를 움츠리며 제 차림새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가슴의 반 이상이 드러난 얇은 실크 슬립은 촘촘한 레이스로 장식되었다. 허벅지를 채 덮지 못하고 엉덩이 근처에서 살랑거리는 밑단이 간지러웠다. 슬립은 평소에도 입던 것이지만, 그 밑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여름이라고 해도 밤공기는 싸늘했고, 태연한 척을 해도 루크 앞에 벌거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서 있는 건 아무래도 창피했다. 바싹 달라붙었거나 술이라도 마셨다면 모를까….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나디아는 갈등했다. 아직 준비한 게 남았는데….

루크는 무표정했다. 자신처럼 얼굴이 빨개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민망해서 눈 둘 곳이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싫은 건가 봐, 라고 포기하려던 나디아는 타오르듯 새빨개진 귓바퀴를 발견했다.

‘싫지는… 않은가 봐……?’

“어서 들어와요.”

나디아가 그의 팔을 끌어안아 방 안으로 당겼다. 어기적거리며 그가 끌려들어온 후에 나디아는 침실 문을 굳게 닫아 걸어잠갔다. 이제부터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쥐어짜내려는 참이었다. 레이나, 나한테 용기를 줘. 그녀는 고개를 숙인 그에게 재차 물었다.

“나 이상해요?”

“허억….”

“루크, 말을 해줘야죠.”

그의 앞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물으니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숨이 모자란 듯이 헉 놀라기만 했다. 나디아는 시선을 조금 내려 그의 중심을 확인했다. 존재감이 뚜렷한 그것이 선명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디아는 용기를 얻었다.

“이리 누울래요?”

“나, 나, 나디아. 이게 다 무슨, 아니, 이건….”

“루크?”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싶었더니 루크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디아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슬립 안에서 탐스러운 가슴이 흔들렸다. 저 살이 얼마나 탄력적인지 알고 있다. 오늘따라 한층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루크는 몽롱한 눈으로 손을 뻗었다.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고, 입술에 키스라도 해야만 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디아가 매몰차게 입술을 피했다.

“나디아?!”

“기다려요. 오늘은 루크한테 끌려가지 않기로 결심했단 말이에요.”

“뭘 끌려가. 끌려가는 쪽은 언제나 나였는데….”

나디아에게 정신을 못 차리고 이성을 잃었던 쪽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끝내 덮치고 말아서 자괴감에 혼자 울었던 적도 있었다. 이것만은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디아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보기에 그가 충분히 여유로웠던 탓이다. 늘 먼저 까무룩 잠든 것도 그녀이고, 질척하게 젖은 몸을 닦아주고 정리를 해주는 사람도 그였는데….

하지만 오늘은 지지 않아야지. 그는 나디아가 이끄는 대로 저항 없이 침대에 몸을 누였다.

나디아는 아예 그의 허리 위에 걸터앉았다. 단단한 복근에 힘이 바싹 들어가는 것이 허벅지를 통해 느껴졌다. 뻣뻣하게 굳어서도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마른 목으로 침만 꿀꺽 삼켰다. 이 몸이 얼마나 강인해도 제게는 결국 무력해지고 만다. 머뭇거리면서도 기대감을 숨길 수 없는 눈빛이 귀여웠다.

“역시 이건 꿈인가…?”

“…루크, 이런 꿈을 꿨어요?”

“……미안하오, 나디아. 이런 파렴치한 남자가 남편이라서?.”

나디아가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자괴감으로 일그러진 얼굴까지도 귀여워 못 견딜 지경인 건, 그녀 자신도 어지간히 사랑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리라.

“루크가 파렴치하면 나는 뭐가 돼요. 헐벗고 남편을 유혹하는 중인데….”

“…천사인가…?”

진지하게 그가 대답했다. 꿈결에 젖은 듯이 몽롱한 눈빛이 아니라면 진담이라고 믿을 뻔했다. 루크도 참, 알고 보면 재미있다니까. 나디아가 키득거리며 어깨를 떨었다. 루크는 제 배 위에 걸터앉은 나디아의 몸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슬립이란 잠옷 주제에 어째서 선정적일 필요가 있는 것인가? 속옷을 디자인한 세상 모든 디자이너에게 상을 내려야만 했다. 사람을 시험에 들게 만드는 잠옷이라니, 기능적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더없는 축복이었다.

흰 살결이 고스란히 비치는 얇은 소재는 또 어떻고. 여름이니 시원하기는 하겠다…. 봉긋하게 솟은 탐스러운 가슴과 잘록한 허리의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배운 변태들 같으니라고, 희대의 천재들 같으니라고….

더 견디기 힘든 건 얇은 셔츠만 사이에 두고 다리 사이가 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디아가 불편한 듯이 그의 배를 짚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당장 얇은 슬립을 찢어버리고 그녀를 안고 싶은 욕구만큼이나, 나디아가 하고 싶은 대로 이끌려가고 싶은 욕구도 강했다. 나디아는 유혹적인 차림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손쉽게 그를 유혹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가 무얼 할지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나디아는 머리를 내려 얼굴을 가린 루크의 두꺼운 손가락 위에 천천히 입을 맞췄다. 촉촉한 점막이 손가락을 감싸듯 오므렸다 떨어져 나갔다. 신이시여, 제게 인내를 주소서…. 저 풍만한 엉덩이를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사납게 솟아오른 페니스가 닿을 텐데. 조금만, 아주 조금만….

“가만히 있어야 해요, 알겠죠?”

“…자신은 없소….”

“안 돼요.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내가 더 부끄러워……. 단언컨대 루크는 수줍게 자신을 올라탄 나디아보다, 그녀를 핥듯이 바라보면서도 무엇이든 해주길 바라는 제 솔직한 본심 쪽이 훨씬 창피할 것이다. 나디아가 침대 옆 협탁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병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집어올려 뚜껑을 열었다.

주르륵. 하얀 손이 금세 미끈거리는 오일로 덮였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 오일이 그의 셔츠 위로 떨어졌다.

“미끄러워….”

“허억….”

향긋한 장미 향기가 진하게 퍼졌다. 나디아가 오일을 듬뿍 적신 손가락을 그의 가슴 위에 미끄러뜨렸다. 손가락 끝에 단단해진 유두 끝이 닿자 그가 몇 번째인지 모를 숨을 들이켰다. 셀리아의 조언이라고 했나, 이게.

‘신이시여, 빌어먹을, 셀리아 너.’

선물 받을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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