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비록 보름간 비참하게도 패전을 이어왔지만 피오나를 아군으로 얻었으니 이제는 다를 것이다. 희망이 차올랐다.
‘나디아도 좋아해주겠지!’
랭커스터 가와 관계를 다지고 남편으로 인정받아 가족의 일원이 되면!
기뻐하는 나디아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돌아온 길이었다. 꿈처럼 그녀가 보여 얼마나 행복했나. 나디아가 자신을 보자마자 녹아내릴 듯 달게 웃으며 안겨올 때도, 매달린 그녀의 몸을 들어올렸을 때도 꿈만 같았다.
가까운 미래에 나디아에게 칭찬 받을 기대에 부풀어 있던 루크는 가볍게 인사 같은 키스만 할 생각이었다.
여긴 나디아가 나고 자란 집이고, 이 집에는 나디아의 가족들이 있고,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있고, 조카도 있고…….
그러니까 불순한 짓을 저지를 생각은 결단코 없었다.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변명을 주워 삼키면서도 루크는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입술을 떼면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죽지는 않더라도 죽을 것처럼 괴롭기는 할 테니 마찬가지였다….
“루크, 잠깐, 나, 숨….”
“아, 미안….”
아프지 않게 가슴팍을 두드리는 손길과 가느다란 목소리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루크가 아주 조금 떨어지자 나디아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금색 속눈썹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촘촘한 속눈썹에 가리웠다 드러나는 녹색 눈동자를 보던 그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내렸다.
기다려야지, 떨어져야지 생각하면서 말랑한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가, 도톰한 아랫입술을 집어삼켰다가, 새가 쪼듯 키스했다.
쪽, 쪽. 쪽. 나디아는 숨을 고르다 웃음을 터뜨렸다.
“뭐예요, 미안하다면서!”
“한 번만 더. 아니, 두 번.”
쪽.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닿았다.
입술을 삼키면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입안을 달게 채웠다. 달콤한 맛이 전신으로 퍼져 심장 안쪽부터 뿌듯하게 채웠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배 속을 긁어대는 충동을 참기가 어려웠다. 충동대로 으스러지게 끌어안으면 나디아는 부서지고 말 테다.
완전히 이성이 끊어지면 나디아를 다치게 할까 봐 무서웠다. 그는 그녀의 허리에 올려주었던 손을 주먹 쥐었다. 이 주먹으로 제 머리를 세게 때리면 정신이 들 것 같았지만 그랬다간 나디아가 놀라겠지 싶어 그만뒀다.
“잠깐이면, 되는데, 음….”
멈춰야 한다, 나디아가 숨이 막히다잖아. 괴로워하면 안 되지……. 잠깐 정신을 차린 이성이 허무하게 빠져나갔다. 쪽, 쪽. 그나마 깊어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듯 그는 입술을 붙였다 떼기에 여념이 없었다.
꿀단지에 혀를 처박아도 이보다 달 것 같진 않다. 루크는 정신없이 나디아의 입 안을 헤맸다. 타액을 삼키고 혀를 비볐다. 볼 안쪽 미끄러운 점막을 핥고 오돌토돌한 입 천장을 훑었다.
키스가 깊어질수록 나디아의 몸도 녹아내렸다. 힘이 빠져 기대어오는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다. 루크는 허리에 올려둔 주먹을 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머릿속이 흥분으로 뿌옇게 흐려지는 와중에도, 뭉그러지는 부푼 가슴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기어코 참았다.
여긴 나디아의 집, 나디아의 방, 그녀의 부모님, 형제자매와 조카….
그러나 나디아가 끌어당기는 데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루크의 목에 매달리듯 안겨, 점점 밀착해왔다. 신께 맹세코 루크가 나디아의 다리 사이에 자신의 다리를 끼운 것은 그녀가 넘어질 듯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으응, 루크, 응.”
결국 허리를 한 손으로 붙잡은 것도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허리부터 미끄러진 손이 동그란 엉덩이를 세게 움켜쥔 시점에서는 이성은 이미 끊겨 있었다. 아니지, 이성은 한참 전에 끊겨 있었다. 나디아가 안겼을 때, 신음이 흘러나왔을 때, 젖은 숨이 귀에 닿았을 때.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입술이 겨우 떨어졌다. 나디아가 모자란 숨을 쉬기 위해 입술을 벌리는 사이, 루크는 보드라운 뺨에 이를 세워 아프지 않게 씹고 그대로 귀를 물었다. 달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살 냄새가….”
“으응…?”
“미칠 것 같아…….”
달았다. 정작 달콤한 맛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 단내는 루크를 미치게 만들었다. 오랜만이라 더 그랬다. 보름이나 떨어져 있어서. 그녀가 아픈 어머니 곁을 지키는 동안 그는 나디아의 흔적과 냄새로 가득 찬 방에서 혼자 눈을 감았다.
가느다란 목, 귀 뒤의 패인 부분, 피부 위로 선명하게 드러난 얇은 뼈, 섬세한 쇄골과 둥근 어깨. 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울 수 있나….
나디아가 예술 작품이라면 루크는 장기를 팔아서라도 수집하고 말 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둘 수 없지. 나디아가 예술 작품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생각이 헛돌았다. 이성 없는 정신으로 제대로 된 생각이 떠오를 리 없었다.
나디아는 또한 제정신이 아니었다. 두껍고 단단한 허벅지에 닿은 음부가 뜨거워서 미칠 것 같았다. 저절로 허리가 움찔거렸다. 열이 올라 더웠고, 다리에 엉기는 두꺼운 치맛자락이 성가셨다. 맨살이 닿았으면 좋겠다.
더 깊이 들어와줄 것이 필요했다. 그녀의 시선이 불룩 솟아오른 루크의 중심을 향했다. 바지 위로도 솟아오른 형태가 선명했다.
바게트처럼 크고 두꺼우며 단단한 것, 뜨겁게 배 안을 긁어줄.
혀 아래에 침이 고였다. 그녀는 달달 떨리는 허벅지로 루크의 다리를 꽉 죄었다.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며 음부를 단단한 곳에 문질렀다. 체중이 실린 압박이 넓게 음부를 자극했다. 하지만 모자랐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은데 허리가 멈추지 않았다.
“하아, 하, 흣….”
“……안 되겠지?”
나디아가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는 가슴을 무섭게 노려보던 루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밭게 오르내리는 가슴께의 피부가 붉었다. 숨을 따라 흔들리는 가슴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그의 손바닥에 착 감기는 감촉과 무게도 알았다. 모르면 몰랐지, 알면서 참는 건 불가능했다. 그의 페니스를 홀린 듯 바라보던 나디아가 눈만 들어 그를 보았다. 흥분으로 흐려진 녹색 눈동자가 촉촉했다.
‘제기랄, 젠장, 제기랄….’
나디아는 원래 예뻤다. 그 어떤 보석보다 반짝이는 녹색 눈동자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크림처럼 흰 피부도, 달달한 살 냄새도, 루크를 미치게 만들었지만 그 어떤 것도 흥분으로 흐려진 저 얼굴보다 강렬하진 않았다.
스스로 허리를 들썩거리며 그의 허벅지에 젖은 음부를 문지르고, 부푼 가슴이 그의 몸 위에 뭉그러지도록 기대어서? 달콤한 숨을 귓가에 불어넣었다.
발정난 나디아가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다.
“뭐가, 안 돼요….”
“넣으면.”
“…….”
“당신 부모님이 계신데?.”
턱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나디아가 손을 뻗어 턱을 쓰다듬었다. 루크는 그대로 무너질 뻔했다. 손바닥이 닿은 것만으로.
“문, 닫혀 있어요…?”
“……닫혔지.”
“커튼도, 쳤고.”
“절대 보일 리 없소.”
“저녁식사는….”
“일곱 시.”
루크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여섯 시가 되기도 전이었다. 나디아가 말을 할수록 인내가 닳았다. 그는 아까부터 성가시던 나디아의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나디아는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그가 치맛자락을 걷기 쉽게 도왔다.
세상에서 가장 성가신 치마가 사라지고 매끄러운 피부가 손바닥에 감겼다. 말랑한 허벅지부터 엉덩이 아랫부분까지 단숨에 쓸고, 엄지로 충분히 젖은 음부를 길게 눌렀다. 축축한 살이 저항 없이 엄지 끝을 물었다.
숨을 삼킨 나디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옷, 옷만 더러워지지 않으면 돼요.”
“……이미.”
구겨진 치맛자락에 시선을 두고 루크가 말했다. 나디아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치마는 괜찮은데 여기, 여긴, 안나가 없으면 혼자서는 못 입으니까….”
“가슴은 만지지 말라면서?.”
가슴에 제 손을 끌어당기면 어떻게 하라고. 루크는 까딱 힘을 주었다가는 다 풀어져버릴 것 같은 매듭과 섬세한 레이스 위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풍만한 가슴을 감싼 드레스를 찢어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붉은 유실이 맺혔을 위치를 매만지다 아쉽게 손을 뗐다.
“……나디아. 만지지 말라고 한 건 당신인데.”
눈을 들어 나디아를 본 루크가 옅게 웃었다.
“당신이 더 아쉬워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오?”
“…….”
속내를 들킨 나디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쉬운 게?.”
“아니오?”
“아닌 건 아니지만…….”
아쉽기는 하다는 소리였다. 루크는 웃고 말았다. 하하, 예쁘고 섹시한데 귀엽고 솔직하기까지. 사람 미치게 만드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루크?”
“…….”
루크가 깨끗하게 떨어졌다. 음부에 물렸던 엄지를 빼내고 그녀를 똑바로 세워 주었다. 나디아는 당황했다. 숨 좀 쉬겠다고 떼어내려고 할 때에도 떨어져주지 않았는데?.
“7시 전까지, 가슴은 건드리지 않고.”
루크가 말했다. 그는 목소리도 담담했다. 옅게 웃는 얼굴에는 짙었던 욕정의 흔적조차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길 잡아요, 나디아.”
“테이블을요?”
“그래, 그렇게.”
나디아는 테이블을 두 손으로 잡았다. 창가 앞에 놓아둔 테이블은 간단한 티타임을 즐기기 위한 것으로, 그녀가 십 대 때부터 써오던 물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제 뒤로 가버린 루크의 얼굴을 더 볼 수 없는 것이 불안했다.
달뜬 몸이 채 식지도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몸은 뜨거웠는데 루크는 아닌 것 같았다. 평온한 얼굴이며 담담한 목소리. 무언가 실수한 것일까. 그녀의 어떤 부분이 그를 식게 만든 걸까? 불안해하는 나디아의 귓가에 루크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팔꿈치를 테이블에 대요, 나디아.”
“이? 이렇게요?”
나디아가 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대었다. 저절로 상체가 아래로 기울었다. 테이블 위에 뺨을 대고 누운 꼴이었다. 루크가 “고맙소.”라고 말했다. 여느 때처럼 다정했지만? 나디아는 그가 다정하기만을 바라진 않았다. 이제는 부족했다.
당장 돌아서서 그를 확인해야 했다.
“……!”
팔꿈치를 세우려던 나디아는 뻣뻣하게 멈추어 숨을 삼켰다.
뜨거운 기둥이 엉덩잇골 사이를 길게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