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구두가 톡 소리를 내며 벗겨졌다. 보름이나 마차 여행을 해야 하므로 발이 불편해서는 안 된다며 안나가 골라준 구두였다. 훤히 노출된 맨발의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루크는 시선만 흘려 나디아의 흰 발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디아는 멍하니 루크를 올려다보았다. 등과 목을 구부리고 기댄 나디아의 위로 루크는 굉장히 낯선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저 표정이 사라졌을 뿐인데, 딴 사람이 아닌데. 나디아는 마른 목으로 숨을 삼켰다. 왜 그래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앗….”
루크가 손을 뻗어 나디아의 발목을 손에 쥐었다. 얇은 발목과 불거진 복사뼈, 어쩔 줄 모르는 발가락, 예쁘게 모양이 잡힌 발톱과 흰 발등. 사람의 몸이라는 걸 아는데도 맛있어 보였다.
루크는 검게 가라앉은 눈으로 얇은 발목과 툭 불거진 복숭아뼈를 핥듯이 바라보다 발가락 끝을 삼켰다. 나디아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루크, 더럽, 더럽게! 뭐 하는 거예요!”
발가락 끝이 축축하고 부드럽고 뜨거운 점막에 감싸였다. 루크는 믿을 수 없게도 나디아의 발가락이 맛있는 간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쪽쪽 빨고, 혀로 발가락 사이를 핥아올리기까지 했다. 너무 당황해 얼어붙어 있던 나디아가 입을 틀어막았다.
“읏, 흐윽…. 루크, 제발, 놔, 놔요….”
느릿하게 움직이는 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제 몸에서 가장 멀고 험한 부분에 입을 맞추는 루크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는 한편, 발끝에서 시작되어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야릇한 감각에 몸이 저절로 뒤틀렸다. 절로 높은 비명이 튀어나갈 것 같아서 틀어막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나면 바깥에 다 들릴 것 같았다. 나디아가 발을 비틀자, 루크는 그대로 입술을 미끄러뜨려 발등과 복사뼈에 입을 맞추었다. 나디아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숨을 헐떡거렸다.
감각이 예민해지면, 숨이 막히기도 했다.
“…… 루크….”
“멈춰주길 바라면 뺨을 때리시오, 나디아.”
“아! 읍….”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말을 하려던 나디아가 펄쩍 뛰어오를 듯 몸을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루크가 종아리 뒤로 입술을 미끄러뜨려 오금에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높게 들고 있어 치맛자락이 허벅지 위까지 말려 올라가 희고 탐스러운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루크는 입술을 뗀 부분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탄력 있는 허벅지 안쪽 살을 깨물었다. 이번에야말로 나디아는 거의 울 것 같았다.
“제발, 제발, 루크!”
이대로는 다리 사이까지 그의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다. 발가락을 빨고 핥은 것만으로도 나디아의 머리는 한계에 몰려 있었다. 정말 기절을 할지도 모른다. 나디아는 다급하게 루크의 머리를 찾아 손을 허우적거렸다.
‘뺨, 뺨을 때려야 해.’
첫날밤에 이어서 또 기절할 수는 없었다. 발끝이 곱아드는 자극과 머릿속이 몽롱한 쾌락만큼이나, 익숙하지 않은 행위에서 오는 긴장도 컸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루크의 얼굴이 있을 법한 위치를 살짝 두드렸다.
나디아의 탐스러운 허벅지를 살짝 깨물어 잘근거리던 루크가 겨우 멈추었다. 나디아의 손이 힘없이 루크의 콧잔등과 뺨 근처를 스쳤다.
‘…이게 때리는 건가…?’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상태이기도 하겠지만, 차마 루크를 때릴 수 없는 나디아의 손길은 쓰다듬는 것에 가까웠다.
루크는 겨우 이성을 차렸다. 순간적으로 인내를 잊고 달려들고 말았다.
나디아가 그의 뺨을 쓰다듬지 않았다면, 그대로 나디아를 잡아먹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별명처럼 그는 진짜 야수가 아니었지만 나디아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위험한 생각이 잠깐 스쳤다.
루크는 욕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검은 눈으로 그녀의 숨에 따라 오르내리는 흰 가슴 부근을 응시하다 나디아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그저 발가락을 빨고 다리에 입을 맞추었을 뿐이었다. 그대로 나디아를 덮치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디아는 이미 한계에 몰린 것 같았다. 발그레 달아오른 뺨과 가쁜 숨,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가가 그 증거였다.
나디아는 여전히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침실과 달리 언제든 다른 사람의 귀에 소리가 흘러갈지 모르는 야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침착해라, 루크 리처드 스테이턴.’
마차에서는 안 된다, 바깥에서는.
나디아는 결코 작지 않았지만 루크와는 비할 수가 없었다. 섹스에 익숙하지 않은 나디아는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기를 힘겨워했다. 침실에서 공을 들여 애무한 후에도 좁다란 입구를 밀고 들어가는 것이 버거웠다. 충분히 애무하지 않은 지금 섹스를 하려고 하다가는, 나디아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 끝을 물었다가 풀어지는 입구의 부드러운 감촉과 뜨거운 체온이 떠오르자 정말이지 견디기가 힘들었으나, 루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뒤로 물러났다.
정확히는 물러나려고 했다.
나디아가 그의 손을 붙잡지 않았다면, 물러났을 것이다. 루크가 의아한 듯 나디아를 보았다. 나디아는 바들바들 떨며 그의 손을 붙잡고서 말했다.
“때, 때린 거 아니에요.”
“……? 알고 있소. 아프지도 않고….”
싫으면, 멈추고 싶으면 뺨을 때려 달라고 말한 쪽도 루크였다.
마차에서 이만큼 나디아를 몰아붙일 생각은 정말이지 없었다. 루크도 그녀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으며,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고 해도 마차에서 섹스를 할 만큼? 발정이 난 것은?.
‘……이건 부정할 수 없겠군.’
발정이 난 상태이긴 했다. 나디아를 만난 후, 그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사랑스러워 보이고, 유혹적으로 느껴져 그의 아랫도리는 언제나 피가 몰려 있었다. 이게 발정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밀폐된 공간이란 사람의 인내를 닳게 했다. 목소리가 벽에 부딪쳐 돌아오는 좁은 공간, 코끝에 머무는 달콤한 살 냄새, 지척에 보이는 아름다운 눈동자,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스치는 무릎, 그곳에서 전해지는 체온 따위가. 그리고 사방이 막혀 조금만 조심하면 아무도 그들을 볼 수가 없다….
제아무리 루크라고 해도 한 번 알게 된 체온과 쾌감을 온전히 무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디아가 싫어할 만한,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짓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나디아?”
“읏….”
나디아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꾹 다물었다. 루크는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곤란한 듯 촉촉하게 젖은 녹색 눈동자에 제 얼굴이 비쳤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자 나디아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
“기절할 것, 같아서….”
“…….”
“……키스해줄래요?”
제 입으로는 차마 계속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나디아의 한계였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는지 말을 끝내고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눈꼬리에 맺혀있던 눈물이 기어코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루크가 내려다보는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제 위에 올라탄 남자는 위협적이었지만 눈을 떼기 힘들 만큼 섹시하기도 했다. 언뜻 싸늘하게도 보였으나 매만지는 손길은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열중해 견딜 수 없이 조바심이 난다고 말이다.
그러니 무섭지는 않았지만, 뇌에 곧장 쏟아지는 것 같은 자극이 문제였다. 이대로는 분명 기절하고 만다고,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지기 직전의 실 같은 신경이 경고했다. 그러니까.
“키스하면, 기절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성급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해야만 했다. 그러나 루크는 차마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루크 리처드 스테이턴은 인내심이 강한 남자였지만, 이런 순간까지 견딜 재주는 없었다.
결국 루크는 나름대로 타협을 하기로 했다. 충분히 애무할 상황도 아니고, 그녀를 다치게 할 수도 없었으니까….
“나디아, 여기 앉아 보겠소?”
“네?”
“이쪽으로.”
루크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나디아를 바로 앉히고, 두 다리를 모아 살짝 옆으로 치우치게 했다. 그리고 루크는 마차의 중간에 앉듯이 섰다. 나디아는 눈을 깜박거렸다. 루크의 얼굴이 바로 정면에 있었다.
“루크? 왜 그래요?”
“여기서 더할 수는 없잖소.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
루크는 나디아의 대답을 삼키려는 듯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부푼 입술을 쓸며 혀로 입을 가리자, 나디아도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고개를 틀어 키스를 받았다. 강하게 빨려 혀뿌리가 아팠지만 그를 따라 키스에 응하려 했다.
나디아의 몸에서 긴장이 슬슬 풀렸다. 루크는 조금 더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키스로 그녀를 달래는 동안 루크의 손이 나디아의 다리 사이에 닿았다. 나디아가 움칠 놀라며 다리를 움츠렸지만, 그녀는 밀어내지 않았다.
얇은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끈을 밀어내듯 속옷을 옆으로 밀어내고, 그 안에 숨겨진 부푼 살을 엄지로 매만진 루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필사적으로 손을 거뒀다. 더 이 손으로 만졌다가는, 그나마 닳아 없어질 것 같은 인내와 결심조차 박살날 것 같았다.
대신 루크는 바지 단추를 풀어 팽팽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꺼냈다. 그리고 다리를 모아 움츠린 나디아의 허벅지 사이로 그것을 가져다 댔다.
“흐으, 으응!”
“쉬, 괜찮소.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낯선 감촉에 놀란 나디아를 달래며, 루크는 조심스럽게 페니스를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문질렀다. 페니스의 끝이 그녀의 배에 닿았다. 루크가 말했다.
“충분히 적셔줄 수가 없으니까, 지금은…. 다리를 모아 주겠소?”
나디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루크의 입술을 찾았다. 루크는 그녀에게 깊이 키스하며, 그녀의 치맛자락을 허리 끝까지 둘둘 말아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 뒤에 받치고, 옆으로 밀어놓았던 속옷과 음모가 있는 곳을 페니스로 문질렀다.
슥, 슥. 살갗이 비벼지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나디아는 더욱 미칠 것 같았다. 내부로 밀고 들어오지는 않으나 자극은 지나치게 선명했다. 비밀스러운 곳을 문지르는 감각, 그러나 강렬하게 치달아오는 섹스의 한중간과 달리 은밀한 쾌락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천천히 눈앞이 희게 번졌다.
차라리 빠르게 흔들어줬으면, 정신을 잃을 것 같이 강렬하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몰아쳐주었으면….
속옷이 옆으로 밀리며 피부를 자극하고, 음모가 쓸리며 소리가 났다. 끝이 젖기 시작한 페니스와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흐른 체액이 섞여 물소리도 났다. 그리고 숨을 삼킨 나디아와 이를 악문 루크의 숨소리도.
루크는 점점 빠르고 강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이따금 끄트머리가 내부로 파고들 듯 틈을 스쳤지만, 느릿하게 둥근 선단을 비비다 이내 물러났다. 철썩, 소리와 함께 그녀의 허벅지 뒤쪽과 그의 허벅지 앞쪽이 찰싹 맞달라붙었다.
“아, 아앗!”
“읏….”
뱃속이 조여들고 머리가 희게 비는 감각은 절정이었다. 나디아가 루크의 팔을 쥐듯이 잡은 순간, 루크도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더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