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키스가 이어졌다. 나디아는 자리를 옮기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루크의 목을 끌어안았다. 손가락 끝이 저절로 움찔거려 그의 뒷목을 긁었다. 그녀는 그가 아프지 않길 바랐지만, 손을 떼었다가는 힘이 풀린 몸이 축 늘어질 것 같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상해….’
입술을 붙이고 혀를 비비며 타액을 나누는 과정이 이어질수록 머릿속이 안개라도 낀 듯 몽롱해졌다. 감각이 흐려지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믿을 수 없이 예민해졌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던 때처럼 몸 깊은 곳부터 기이한 열감이 올라왔다. 피부 아래 담긴 모든 것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너무 기분 좋아, 어쩌지….’
허리를 세우려고 해도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목을 잡은 손가락 끝이 자꾸만 미끄러지고, 그럴 때마다 나디아는 쓰러질 듯 흔들렸다. 치맛자락 아래로 단단한 허벅지가 느껴졌다. 나디아가 균형을 잃고 무너질 때마다 말랑한 엉덩이가 루크의 허벅지를 문질렀다. 단단한 근육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지나치게 흐트러졌다는 자각은 있었다. 여긴 마차 안이고, 나무로 만들어진 벽 너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릴 것이었다. 그러나 나디아는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쾌락은 추락하는 감각과 닮아 있었다. 어디까지 떨어질지도 모르는 채로 부유감과 불안, 흥분에 떨면서?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거부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무너져내리는 감각 속에서 오로지 루크만을 붙잡고, 조금이라도 더 닿으려고 발버둥쳤다. 더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몽롱한 것도 좋았지만 조금 더 강한 것이 필요했다. 머릿속이 다 하얗게 비어버릴 수 있다면….
정신이 없는 것은 루크도 마찬가지였다. 나디아와의 키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촉촉한 입술의 여린 살점이 참을 수 없이 부드러웠다. 그 안에 자리한 혀는 또 어떤가? 하루 종일 물고 빨아도 부족했다. 나디아가 숨을 돌리기 위해 입을 떼는 순간조차 아쉬웠다. 가지런한 치열을 훑고 도톰한 입술을 삼킬 듯 빨다가, 다시 깊이 들어가 입천장을 긁었다. 목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신음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기교 같은 건 모른다. 루크도, 나디아도 그저 조금이라도 더 닿고, 비비고, 깊은 곳까지 가고 싶어서 힘껏 달라붙고 있을 뿐이었다. 루크는 등을 기대며 나디아가 조금 더 제게 기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가 기대며 자연스럽게 부푼 가슴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뭉그러졌다.
‘안 되는데.’
실낱같은 이성이 한 줄 남아 있기는 했다. 루크는 눈을 가늘고 뜨고 고개를 틀었다. 나디아가 쫓아오며 달라붙는다. 밭은 숨소리가 심장 소리 같았다. 그는 신음을 흘렸다. 한 손으로는 나디아의 허리를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차의 벽을 짚고서 주먹을 꽉 쥐었다. 참지 않으면 당장 움직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겨울 드레스는 옷감이 조금 두꺼운 편이었지만, 체온을 지워버릴 정도는 못 되었다. 허리를 받친 손을 넓게 펴서 허리부터 등까지 천천히 쓸었다. 충동 같아서는 당장, 이 거슬리는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고? 허벅지를 문지르는 엉덩이를 움켜쥐고 싶었다. 손바닥에 착 달라붙는 감촉이 금세 그려졌다. 둥근 모양의 살은 적당한 무게감과 탄력으로 손바닥 안에서 뭉그러지겠지….
알기 때문에 더 참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나디아는 너무나 무방비했다. 뒷목을 긁는 손톱, 볼에 흩어지는 뜨거운 숨, 가느다란 신음과 경련…. 힘이 풀리는지 무너진 몸이 그대로 루크의 위로 쏟아졌다. 그녀는 제 가슴이 그에게 얼마나 유혹적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머릿속에서 파렴치한 상상이 쉽게 그려졌다. 루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나디아는 예쁘게 웃으며 그의 허벅지에 앉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디아는 그를 생각해준 결과였지만, 루크는 끊임없이 시험에 드는 기분이었다.
“으흣, 아….”
“…나디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스스로 들어도 형편없었다. 루크가 나지막하게 부르며 입술을 떼자, 나디아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녹색 눈동자가 흐릿하게 젖어 있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제게 상을 주어야 마땅하다. 이토록 유혹적인 아내를 앞에 두고도, 마차라고, 바깥이라고 참아내고 있는 자신에게 말이다.
물론 바깥이기 때문에 참는다기보다는, 나디아가 싫어할 거라 생각해서 참는 것이었다.
아주 쉽고 간단할 것이다. 치맛자락을 올려 그 아래 숨겨진 늘씬한 다리를 훑고, 말랑거리는 허벅지 살을 지나, 얇고 섬세한 속옷을 옆으로 밀어내면…. 습하게 젖은 그곳이 부풀어 더욱 부드러워져 있겠지. 루크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상상을 이어가는 건 그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았다.
키스를 잠시 멈추자 나디아는 이성을 차리려는 듯 눈을 두어 번 깜박거렸다. 나비의 날개처럼 팔랑거리며 속눈썹이 흔들릴 때마다 녹색 눈동자에는 또렷한 이성이 돌아왔다. 루크는 조금 아쉬웠지만, 제 인내를 위해서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역시 말을 타고 나가서 찬바람을 쐬어야겠다….
“루크…. 더 안 해요…?”
나디아는 어디까지나 ‘키스를 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더한 행위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럴 테지, 그럴 것이다…. 루크는 단순한 말 한마디에도 온갖 망상이 이어지는 제 상태가 결코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지극히 정확한 판단이었다.
“더했다가는 곤란해질 거요.”
“무엇이… 아.”
“읏!”
힘이 빠진 허리를 세우고 앉다 주륵 미끄러질 뻔한 나디아가 루크의 허벅지를 짚었다. 그녀가 엉덩이를 대고 앉은 다리가 아닌, 반대쪽 다리였다. 그곳에는 다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
“…….”
이 순간, 루크는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꼿꼿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들킨 건 처음이 아니었다. 그것을 나디아의 납작한 배에 노골적으로 문지르기도 했다. 나디아도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곳에 나디아의 손이 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디아는 나디아대로 당황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게, 그….
‘어, 어쩌지?!’
당장 손을 떼어야 한다는 걸 아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기는커녕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선도 고정되지 않고 방황했다.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루크도 어째서인지 말이 없다.
손을 떼어야 하는데 어떻게 움직이지? 놀라면 루크가 상처를 받을까? 떼고 나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 텐데 뭐라고 하면 좋은가,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야 하나, 아니면 아프냐고 물어야 하나. 이걸 태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삽시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물이 흘러가듯 생각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얼어붙은 와중, 손바닥 밑에 있는 그것이 꺼떡거렸다. 루크가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차마 물어보거나 고개를 돌려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말 이…… 커다란 게…?’
아래로 받아들일 때에도 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배 속 내장이 모조리 짜부라질 듯한 압박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특히 루크는 처음 그녀에게 들어갈 때 공을 많이 들였는데, 마냥 흥분해서 흐느끼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디아는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런 굵기의 물건을 그냥 밀어 넣었다가는, 분명 그녀는 반으로 찢어지고 말 테니까.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 마치 몽둥이 같았다. 길고 두꺼웠는데 뜨겁기까지 했다. 심지어 움직였다….
그야 움직인다. 믿을 수 없지만 사람 몸의 일부니까. 나디아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자문자답이었지만 의식은 제멋대로 흘러갔다. 옷 위로, 제 손바닥 만큼만으로도 놀라운데 대체 이건 얼마나 큰 걸까? 루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으니, 그동안 나디아는 이상한 호기심을 키워갔다.
옷 위로도 형태는 선명했다. 그러니까 이게 허벅지…. 나디아는 슬금슬금 손바닥을 움직였다. 바로 떼면, 깜짝 놀라며 징그러워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아주 천천히 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누구에게 하는지 알 수 없는 변명을 하면서.
‘이걸 직접 만지면 어떨까….’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서 미끄러지듯 그것을 쭉, 밀었다. 그녀의 몸이 뒤로 젖혀진 것은 그와 거의 동시였다.
“꺅?!”
“?제발.”
나디아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들렸는데, 그녀는 루크가 기분이 상한 것 같아서 초조해졌다. 그러나 미간을 찌푸린 루크의 얼굴에서 짜증이나 화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어딘가 다급하고 초조해 보였다. 그가 보기 좋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디아 자신도 그렇겠으나 오랫동안 키스해 붉게 달아오르고 약간 부풀어 있었다.
나디아는 마차의 벽에 등을 눕듯이 기댄 상태였는데, 뒤에는 쿠션이 있어 굽은 등과 목을 받쳐 주었다. 루크는 그 위를 덮치듯 올라타 있었다. 나디아의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굴러갔다. 루크가 낮은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감쌌다. 엄지가 귀밑머리를, 검지가 귓바퀴 뒤에 닿았다. 그는 살짝 힘을 주어 귓바퀴 뒷부분을 문지르며 얼굴을 내렸다.
“루, 루크. 미안해요, 너무 당황, 당황해서….”
“미안하오, 나디아.”
“네?”
“미리 사과하겠소. 멈추고 싶을 때 언제든 내 뺨을 때리도록 해.”
뺨을…? 왜…?
루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