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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라는 공작에게 시집왔는데-26화 (26/150)

25화

“푸, 푸흣!”

“……나디아?”

“으흣, 잠깐, 루크!”

나디아가 돌연 루크의 머리를 밀어냈다.

루크는 재빨리 몸을 떼내었다. 착 달라붙은 피부며 체온이 아쉬웠지만 나디아가 싫다는 짓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역시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란 것이다. 더 천천히 다가갔어야 했다. 오늘 밤에는 나디아가 좋아하는 키스만 했어야 했다. 괜히 욕심에 무너져서….

후회하며 입술을 깨무는 루크의 귀에 나디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루크가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혼자 웃던 나디아가 루크의 시선을 깨닫고 얼른 말을 이었다.

“참,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내가 뭔가 실수했소?”

“아뇨,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닌데….”

싫거나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루크는 일단 안도했다. 자신이 싫어진 건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자신이 성급하게 굴어서 나디아가 다시 자신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모든 욕망의 원흉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가만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루크에게 나디아가 말했다.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

눈을 동그랗게 뜨는 루크에게 나디아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의 얼굴이었다.

간지러워? 무엇이? 이 얼굴이? 무섭다면 또 모를까 간지럽다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으니 당연히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필사적으로 생각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루크는 나디아에 관한 한 이해력도 떨어졌다.

“수염이요.”

“…….”

“목은 그런대로 참을 만했는데…. 그, 그래도 조금만 얼굴을 떼주면, 아니, 다시 하면 참을 수 있을 거예요! 정말….”

나디아의 말은 끝으로 갈수록 흐려졌다. 루크는 다소 참담한 기분이었다. 나디아의 기분이 상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지만, 그녀가 아프거나 불쾌해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어쩐지 침울해졌다.

‘진작 이 수염을 다 밀어버렸어야 했는데.’

투핸드소드로 밀어버리게 내버려 두지 않았던 제이를 향해 살의가 치솟았다.

나디아도 침울한 루크의 기색을 읽고서 슬쩍 눈치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묘한 긴장감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달라붙어 입술과 혀를 비비고, 맨살을 만졌다는 게 새삼 믿어지지 않는 거리감이었다.

“루크, ……또 내가 실수했어요……?”

“아니오. 그런 건 절대.”

루크는 한순간도 망설임 없이 나디아의 염려를 잘라냈다.

그러나 나디아는 자신이 말을 잘못 꺼내서, 혹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서 분위기를 다 깨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슬며시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시, 키스할까요?”

“…….”

“…루크….”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조심스럽게 유혹하는 나디아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루크는 그녀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해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드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화를 내도 괜찮았다. 이유가 있어도 좋았고, 없어도 좋았다. 루크는 나디아가 자신을 좀 더 막 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디아라면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이용해 먹고자 해도 기꺼이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아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나디아에게 쓸모가 있다면 기쁠 것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줄 수 있는 것만으로 루크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부부의 관계는 나디아의 마음이 가장 중요했다. 그녀가 싫다면 싫은 것이다. 그것에 대해 나디아는 다른 말을 더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루크는 얼굴을 내려 나디아의 입술에 키스했다. 질척하게 달라붙었던 키스가 아니라, 가족들과 나누었던 굿나잇 키스처럼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키스였다. 나디아는 루크의 목을 끌어안았다. 떨어지려는 그를 붙잡아 제가 먼저 입술을 맞부딪쳐 왔다.

나디아는 입술을 붙인 채 말했다.

“루크…? 역시 기분이 상한 거예요…?”

“절대 그렇지 않아.”

루크의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낮게 잠겨 있었다. 나디아는 맞닿은 입술을 통해 느껴지는 숨결이나 체온, 입술의 감촉이 너무나 적나라하고 선명하다고 생각했다. 눈을 뜨고 있어서 더욱 그럴지 모른다. 올려다본 얼굴이 가깝다. 루크의 눈가가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루크는 나디아의 아랫입술을 물듯이 삼켰다가 놓았다. 가볍게 두 번 더 입술만 맞추고 떨어지려는 듯 얼굴을 뒤로 뺐다. 나디아가 울먹거렸다.

“그러면 왜 키스해주지 않아요……?”

나디아는 자신이 다 망쳐 버린 것만 같았다.

오늘 밤이야말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기회였다. 그러나 고작 간지러움 하나를 참지 못해서 그걸 날려버리고 말았다. 루크는 입술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깊이 키스해주지는 않았다. 마음이 상해 그런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디아.”

루크는 차분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기세가 한 꺼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랫도리에는 피가 몰려 있었고, 손만 뻗으면 닿는 보드라운 몸은 참을 수 없이 유혹적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직접 문지르며 확인까지 했으니 더욱 참기 힘들었다. 장벽이 낮아진 유혹은 치명적이었다. 나디아가 적극적인 만큼.

그러나 오늘 밤은 도저히 그녀를 안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기분을 살피는 나디아를 욕심내어 안아봤자 미안해지기만 할 게 뻔했다. 오직 그녀의 의지로, 그녀가 기분이 좋은 채로 안고 싶었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소. 그리고 솔직히 말해봐요. ……무서웠지?”

“…….”

나디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다리 사이를 문지르는 루크의 것이 너무 크고 딱딱해서, 그것이 틈 사이를 비빌 때마다 무섭고? 조금은 달아나고 싶었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이었다. 굵고 큰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루크는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당신이 무서워하는 건 하고 싶지 않소.”

“하지만…… 그럼 진정한 부부가….”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루크의 말이 빨랐다.

“우린 이미 부부요.”

“…….”

“신 앞에서 맹세한 순간부터 우리는 부부였소. 혹시라도 누군가 감히, 당신에게? 우리가 진정한 부부가 아니라는 망발을 했다면.”

루크는 굳이 뒷말을 잇지 않았다.

나디아는 루크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상하게 웃었으나, 검은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단호하고 차가운 눈동자였지만 나디아는 무섭지 않았다. 말보다 침묵이 더욱 선명한 의지를 전달해주었다. 만약 감히 그런 말을 지껄이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목이라도 베어 주겠다는 듯 흉흉한 기세였다.

루크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자, 흉흉한 기세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나 아무리 나디아라도 알 수 있었다. 정말 죽이지는 않더라도 가만히 두지는 않겠다는 의지 정도로 말이다.

“그렇군요……. 우리, 이미 부부죠.”

“당연히.”

루크는 나디아의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꼿꼿하게 솟아오른 그것이 그녀의 배에 닿겠지만, 이미 들켜버린 것 이제 와서 숨기거나 닿지 않으려 애를 쓰진 않았다. 그가 그녀의 매끄러운 머리칼 위에 입을 맞추었다.

“오늘 밤은 키스만으로도 충분하오.”

“……응.”

“얼굴을 들어보겠소?”

루크의 가슴에 뺨을 문지르던 나디아가 얼굴을 들었다. 루크는 그녀의 턱을 들고 깊이 키스했다. 키스까지라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좋았다. 나디아는 입을 벌리며 팔을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밤이 새도록 두 사람의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길고도 짧은 밤이 흘러갔다.

*

날이 밝기 무섭게 루크는 침실을 나섰다.

잠들어있는 나디아가 깨지 않도록,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적을 기습할 때보다 더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무게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침실 밖으로 나가서는 문을 닫았다.

탁.

닫힌 문에 기대어 루크는 엄지로 제 입술을 쓸었다.

그녀가 잠들기 전까지 물고 빨았던 탓에 입술이 얼얼하게 부풀어 있었다. 루크조차 이러니 나디아는 더할 것이다. 그녀는 온몸이 부드러웠으니까. 안나에게 미리 언질을 해서 얼음찜질이라도 할 수 있게 준비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이번에도 루크는 한순간도 잠들지 못했다. 곤히 자는 나디아의 옆에 누워 전신을 긴장시키고 있었던 밤보다는 나았다. 아니,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행복했다.

가느다란 팔이 목에 감기던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뒷목을 끌어안고 손톱이 피부 위를 스치던 감각, 밭은 숨을 내쉬던 붉고 탐스러운 입술….

못 견디겠다는 듯 새어나오는 신음과, 발갛게 달아오른 뺨, 촉촉하게 젖은 눈.

오늘도 찬물 샤워를 해야겠으나 이제 루크에게 그건 익숙하고 당연했다. 그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문을 닫았다고는 하지만 혹시 침실 안까지 들릴지도 모르니 그의 걸음은 조심스럽고 은밀했다.

루크는 어느 정도 침실에서 멀어지고서야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복도를 달리듯 걷는 그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보좌관 제이드 앨런의 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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