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고작 과자 한 입 베어 먹었을 뿐인데, 왜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인가. 오독오독 소리가 났다. 나디아의 입술이 오물거리며 귀엽게 움직였다.
나디아의 입술은 유난히 통통하고 붉었다. 이목구비 비율로 보자면 시원한 입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워낙 체격 차이가 커서 그에게는 매우 작아 보였다. 입술은 그녀의 피부처럼 부드럽게, 착 감기겠지….
안 돼, 생각을 멈춰야 한다……!
그러나 힘을 받기 시작한 아랫도리에 온 신경이 몰렸다. 나디아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루크는 머릿속으로 양을 세었다. 양이 한 마리, 두 마리…. 잠은 안 오고 양이 나디아로 변신했다. 나디아가 하나, 나디아가 둘, 아랫도리는 점점 단단해졌다.
루크는 입 안쪽 살을 깨어 물었다. 불행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감각이 한 곳으로 몰려 다른 건 느껴지지도 않았다.
쿠키 하나를 삼켜 넘긴 나디아가 루크와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하나 드시겠어요?”
“……고맙소.”
“뭘요. 루크는 오늘 무얼 하셨어요? 새벽에 나가셨죠?”
“……그냥, 일이, 좀, 많아서.”
내가 지금 목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나. 이상한 대답을 하지는 않았겠지? 한 손으로는 나디아가 건넨 쿠키를 받고, 다른 한 손은 무릎 위에 올려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섰다. 그는 쿠키를 와작와작 씹었다.
“맛있죠? 성의 주방장이 과자를 무척 잘 굽네요!”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루크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혀를 깨물어볼까. 그러면 뭐가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꿔 먹었다. 혀를 깨물어 피가 흐르면 나디아가 놀랄 것이다. 지금도 기절할 만큼 무서워하는데 피까지 토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내일은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고맙소.”
“아직 만들어 드리지도 않았는데 벌써요?”
나디아가 까르르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떠도는 것 같았다.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먼 것 같기도 했다. 그냥 눈앞이 팽팽 돌아서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 많이 바쁘셨으면 피곤하시겠어요. 제가 피곤한 분을 붙들고 괜히 쓸데없이….”
안돼! 아직 안 돼! 아직 저 침대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그의 창의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침실에서 여인에게 꺼낼 변명을 짜내는 머리가 그에게는 없었다.
루크는 입을 벙긋거렸다. 말재주가 없는 자신을 이토록 저주해본 적이 없었다. 입은 벌렸으되 튀어나오는 말이 없었다. 나디아가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를 가리켰다.
그리고 사형을 선고했다.
“자러 가요, 루크.”
어떻게 감히 거절할 수 있을까? 비록 지옥 같은 인내가 그의 신경을 모조리 갉아먹을지라도 고통마저 달콤할 것이다. 루크는 랭커스터 남작 부부에게 진심을 다해 사죄를 거듭했다.
수도에 가면,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야겠다…….
루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천천히, 그리고 기꺼이 침대에 누웠다.
사실 나디아가 침실 문을 열어준 순간부터 루크의 신경은 계속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건전하고 무해한 생각으로 그곳으로 신경과 시선이 흐르지 못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그녀가 과자를 베어 물기 전부터 사실 그의 아랫도리는 이미 반쯤 힘을 받고 있었다.
건전하고 무해한 생각이 무엇이 있나. 루크는 기사단원들이 모여 단체로 기합을 지르는 장면을 떠올렸다. 진한 땀 냄새와 털이 부숭부숭한 사내놈들이 모여 괴성을 지르는 장면…….
나디아가 해맑게 웃으며 눈을 맞춰올 때에도 머릿속 한구석에서 루크의 노력은 이어졌다. 그녀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싶은 마음과 아무리 딴생각을 해도 자꾸 아래로 떨어지는 시선이 사납게 맞붙었다.
과자를 오물거리는 오동통한 입술, 볼록해진 뺨, 가느다란 목과?.
‘안 돼, 보면 안 돼….’
나디아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녀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부족한 게 없는지 알아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아주 조금 집중이 흩어지면 시선은 자꾸 아래로 흘러내렸다.
이곳은 공작 부부의 침실이었다.
루크가 잘 준비를 마치고 침실에 온 것처럼 나디아도 잘 준비를 마치고 왔다는 뜻이었다. 잘 준비라고 하면, 목욕과 가벼운 옷차림을 일컫는다. 루크는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셔츠와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다. 나디아가 없을 때에는 거추장스럽다고 알몸으로 자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이 흉물스럽게 솟아오른 것을 어떻게 나디아 앞에서 꺼내 보일 수 있겠는가. 그는 내일부터는 더 두꺼운 바지를 입기로 결심한 참이었다.
문제는 루크의 차림새가 아니라 나디아의 차림새였다.
나디아의 잠옷은,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다.
적어도 루크의 눈에는 그랬다.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얇기는 해도 속이 비치지는 않았다) 노출이 많은(목부터 발목까지 떨어지는 긴 치마였다) 옷은 악마의 유혹과도 같았다. 희고 하늘하늘한 잠옷은 나디아의 크림 같은 피부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가죽 잠옷을 선물해주면 너무 속이 보일까. 루크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계절은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공작령이 북부 시골이라고 해도 낮에는 조금 더워지고 있었다. 가죽은커녕 두꺼운 옷감으로 지어진 옷도 이제는 입을 수 없는 날씨였다.
이제는 평상복도 가벼워질 계절인데, 밤으로도 모자라 낮에도 그녀의 노출 높은 차림새를 보고 견뎌야 하다니……. 루크는 고민에 골몰한 나머지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해질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느다란 목과 섬세한 쇄골을 고스란히 드러낸 잠옷의 옷깃 사이로 부드러운 흰 살결이 살짝 보였다. 루크는 자꾸 그곳으로 흐를 것 같은 시선을, 그렇지 않아도 참아오던 참이었다.
보기만 해도 힘들었는데, 제 팔에 찰싹 달라붙은 이 상황은 어떻겠는가….
“무거우면 말씀해 주셔야 돼요.”
“전혀. 가볍기만 한데.”
“……너무 듣기 좋은 말씀만 해주시면 진짜인 줄 알고 믿어 버려요.”
팔뚝에 얹은 머리의 무게감은 그야말로 신경 쓸 것도 아니었다. 그는 왜 반팔 잠옷을 입고 왔을까 죽도록 후회했다. 어제 그토록 괴로워했으면서도. 수도승처럼 온몸을 덮고, 아니 붕대를 칭칭 감고 오기라도 했어야지.
나디아의 매끄러운 머리칼이 맨살을 간지럽혔다. 꿀물 같은 금발이 살랑거리며 팔 언저리에 닿았다. 조금 간지러웠지만 차라리 그 감각에 집중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나디아가 조금 뒤척거렸다.
“불편하시오?”
루크가 반색하며 말했다. 고목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던 루크는 그녀가 조금 떨어져 주기를 바라는 한편으로 좀 더 닿고 싶었다. 두 가지 마음이 격렬하게 싸웠다. 자신의 입으로는 죽어도 먼저 떨어져달라고 말할 수 없었으니 나디아가 먼저 떨어져 준다면……. 그러나 나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불편하지는 않은데요…. 루크, 저 옆으로 누워도 돼요?”
“응?”
“똑바로 누워 자는 것보다 옆으로 누워 자는 게 편해서….”
나디아는 사소한 것에도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녀는 제 잠버릇 때문에 어머니와 언니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옆으로 누워 자면 얼굴 균형이 무너진다느니, 주름이 생기기 쉽다느니 하는 이유였다.
균형이 좀 무너지면 어떻고, 주름이 좀 생기면 어떤가. 그녀가 편하게 잘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했다. 루크가 말했다.
“나디아, 당신이 편한 대로 해요.”
“그럼….”
이를 허락함으로써 맞닥뜨리게 될 한 치 앞의 고통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나디아는 옆으로, 또 반대로 누워보며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바깥쪽을 향해 누워보았다가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렸다. 루크는 팔을 내어준 채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올라오는 살 냄새 때문에 화들짝 놀라며 숨을 참고 있었다.
나디아는 옆으로 누워, 그러니까 그에게 향한 채로, 얼굴을 들어 루크를 보았다.
그녀가 보는 시선의 끝에는 덥수룩한 수염으로 덮인 얼굴이 있을 것이다. 루크는 나디아가 다시 겁먹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나디아는 이제 루크의 외모 때문에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역시, 신혼인데 등을 돌리고 자는 건 좀 그렇죠?”
루크에게 선택권이 어디 있으랴. 그는 딱딱하게 웃기만 했다. 억지로 입매를 늘려 웃음 비슷한 걸 만들기는 했는데, 그게 제대로 된 미소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디아는 옆으로 돌아누운 후 한결 편안해진 듯 표정이 밝았다. 그러나 루크는 더욱 죽을 맛이었다. 일단 그녀의 얼굴이 더 가까워졌고?.
‘보지 마라, 루크 리처드 스테이턴! 보면 너는 파렴치한이다, 쓰레기다….’
결혼을 한 부인을 보는데도 이토록 죄책감이 들 일인가.
루크는 입 안쪽 살을 꽉 깨물었다. 나디아가 돌아누우며 옆으로 쏠린 살이, 특히 가슴이…… 얇은 잠옷 위로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의 향기, 체온, 숨결만으로도 지나치게 자극을 받는 루크에게 이는 시각적인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빨리 나디아가 잠들어주기를 바랐다.
루크는 눈을 질끈 감고 나디아의 숨소리가 편안해지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팔을 내어주고, 그 외에는 그녀가 닿지 않게 슬쩍 몸을 빼내는 것뿐이었다.
1mm라도 떨어질 수 있다면 그만큼 덜 고통스러울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