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스테이턴 공작, 그러니까 루크 리처드 스테이턴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무척 무서운 남자였다.
단순히 외모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니, 물론 외모도 포함된 이야기였지만 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루크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보좌관 제이가 보기에 루크 리처드 스테이턴은 누구보다 거칠고 사나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물론 결코 칭찬이 아니었다.
대귀족인 주제에 그는 일반 병사와 같이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훈련을 받았다. 손자 교육에 매우 엄격했던 조부의 영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병사들과 어울리며 그들 사이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히 귀족다운 예의범절과는 거리가 벌어졌다.
까마귀 같은 검은 머리칼과 얼굴을 덮은 덥수룩한 수염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했고, 낮고 굵은 목소리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의 그것 같았다. 그 험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나 고운가? 그렇지 않다. 입을 열면 반절은 욕설이었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 걸 감안해보면 비율을 더 높여야 할지 모른다.
수염으로 덮이지 않은 얼굴이라도 그나마 나으면 모르겠다. 그러나 길게 찢어진 눈매와 일반인의 1.5배는 더 큰 키와 덩치는 그를 야수처럼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보좌관 제이는, 툭 튀어나온 짧은 질문만으로 그의 상관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순식간에 파악했다.
차마 대답은 하지 못했다. 그는 죽을 때 죽더라도 입에 발린 말은 절대 못 하는 남자였다. 그 결벽에 가까운 정직성 하나로 오랫동안 보좌관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니, 이런 상황에서도 제 정체성을 버릴 수는 없었다.
“……됐다. 내가 미쳤지…….”
쾅 소리가 나도록 책상에 갖다 박았던 머리를 들어 올리며 루크가 말했다. 체념과 한숨이 섞인 음성은 적어도 그를 모시는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루크를 키워주었던 유일한 혈육, 조부의 장례식 때에도 저런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제이는 이제야 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깨달았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각하!”
“…….”
“그,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거짓말도 못 하는 주제에 무리하지 마라.”
“……아닙니다, 이건 제 전문 분야가 아닐 뿐, 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죽으란 법이 있겠습니까….”
원숭이도 사람처럼 다듬어준다는 이발사를 불러야 할까. 분명 방법은 있을 터였다. 제이는 헛기침을 했다. 아주 잠깐 사람을 다루는 이발사를 불러야 할지, 말의 갈기를 다듬는 기술자를 불러야 할지 망설인 것은 평생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우선 몇 가지 여쭈어보지요. 부부 관계는 각하의 프라이버시라 생각해 여쭤보지 못했습니다만.”
“묻지 마라.”
“그럼 혼자 해결하실래요?”
“…….”
루크 리처드 스테이턴은 거칠고 사나운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상황 판단이 정확한 영주이기도 했다.
루크는 이 상황을 혼자 힘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미 허비한 시간이 한 달 반이었다. 이 이상 무의미한 발버둥을 이어가 본다고 한들 뾰족한 수는 떠오를 것 같지 않았다.
제이는 인내심을 가지고 상관의 결단을 기다렸다. 그가 아는 루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인물이 아니었다. 루크는 침통한 신음을 흘리며 커다란 손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 피곤한 듯 눈가를 꾹꾹 누르던 그가 제이를 쳐다보았다.
“이 자리에서 들은 말은, 무덤까지 가져가라.”
“예, 믿어 주십쇼.”
“허튼 소문이 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직접 그 목숨을 거두어줄 테니.”
“……명심하겠습니다.”
살벌한 경고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잿빛 눈동자에 흐르는 살기를 감지한 제이가 꿀꺽 침을 삼켰다. 루크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오래 제 옆을 지킨 보좌관의 목숨을 거두겠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제이도 각오를 다졌다.
“그럼, 여쭙겠습니다…. 공작 부인은, 어떤 분이십니까.”
“…….”
“그, 청혼하시기 전에 어떤 교류가 있기는 하셨을 것 아닙니까.”
“…….”
“…….”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이어서 취미며 특기, 장점과 단점 따위를 물으려고 했던 제이는 질문의 수준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
“성함, 성함은 아시는 거죠?”
너무 낮췄다.
“나디아. ……나디아 마샤.”
청혼을 하고 결혼까지 했으면서 설마 성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제이는 괜히 긴장을 했다. 루크는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제이는 창밖에서 그의 원수라도 발견한 줄 알았다. 노려보는 눈빛이 살벌했다.
“……나디아 마샤 스테이턴.”
정식으로 결혼을 했으니 공작 부인의 성이 바뀐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을 입에 담기 쑥스러워 망설이는 꼴이라니. 원수를 노려보듯 살벌한 눈빛을 하고 있으면서 귓바퀴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기괴한 간극에 소름이 돋았다. 루크를 오래 알아왔던 만큼 징그럽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
안 되겠다. 이 남자를 상대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제이는 깨달았다.
*
제이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떻게 만났느냐, 공작 부인의 어떤 모습에 반했느냐, 이제까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느냐……. 그러나 루크가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렇다. 단 하나도 없었다. 제이는 죽음을 무릅쓰고 직언했다.
“거의 납치 아닙니까?”
“…….”
“일방적으로 첫눈에 반해서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이라뇨…….”
생각보다 훨씬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가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루크가 인상을 쓰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좋겠나.”
묻기 전에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주제에, 루크는 당당하게 해결 방법을 내놓으라 재촉했다. 나디아에 대한 말을 섣불리 꺼낼 수 없어 망설였지만, 터놓은 후로는 거리낄 게 없었다.
“그, 우선, 공작 부인의 호감을 사야겠죠…….”
“그걸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는 말이다. 똑같은 걸 묻게 하지 마라, 답답한 자식.”
“…….”
“넌 꽤 인기가 좋지 않았나?”
인기가 좋다고 말하면서 아래위로 훑어보는 꼴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태도였다. 제이는 욕을 한 바가지 쏟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루크의 말처럼 제이는 번듯한 외모와 건장한 체구, 무엇보다 젠틀한 행동거지로 마을에 사는 처녀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척 높았다. 영주의 최측근이자 기사였으니 오죽하랴.
그러나 루크는 제이의 손짓 한 번에 꺄르르 비명을 지르는 여인들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야 제이도 제 인기 요인을 상관에게 이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루크가 알아주는 때야말로 그가 도망가야 할 때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부인이 자신을 무서워해서 도망다니는 남자에게는 무시당하기 싫었다.
“저라면 각하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정작 공작 부인과는 대화 한 마디 나눠본 적이 없다뇨. 공작 부인께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우셨겠습니까?”
“……시간이 없었다. 수도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고.”
“아무리 그래도 순서라는 게 있는 겁니다.”
제이의 말이 정론이었기 때문에 루크도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변명을 해보자면 루크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랭커스터 가문에 청혼을 하자마자 승낙이 돌아올 줄도 몰랐고? 될 수 있는 한 빨리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결혼식 전에 신부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속전속결로 진행이 될 줄도 몰랐다.
“레너드가 다 이리 하는 것이라기에 그런 줄로만…….”
“……전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면 안 된다는 걸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하필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평소에는 잘만 경계하시지 않았습니까.”
“……경황이 없었다.”
평생 하지 않았던 실수를 하필 치명적인 순간에 저질러버렸다. 제이는 고개를 숙인 상관이 난생처음으로 안쓰럽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답답할 사람, 그리고 불쌍한 사람은 바로 이 남자였다. 제이가 할 일은 지난 잘못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우선 정공법으로 가죠.”
제이는 차가운 눈길로 루크를 훑었다.
“그 덥수룩한 털부터 정리를 하시고…….”
“뭐?”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어느 여자가 우락부락한데다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덮은 남자를 좋아합니까? 솔직히 각하, 언뜻 보면 정말이지 사람으로 안 보입니다!”
“말 다했나, 제이?”
“아직 멀었습니다. 각하를 두고 어떤 소문이 도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두 발로 선 곰?.”
제이는 멈칫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만 하겠다는 그의 신조는, 루크의 살기 앞에서 때때로 흔들리기도 했다.
“?곰은 아니고, 어쨌거나 짐승처럼 보입니다.”
“……곰이나 짐승이나.”
루크는 코웃음을 치며 제 턱을 문질렀다. 수염을 기르려고 마음먹고 기른 건 아니었다. 귀찮아서 내버려 두다 보니 이리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길러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 놔둔 것이다.
그런가. 이 수염 때문에 더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제이는 한층 누그러진 루크의 반응에 힘을 얻어 말을 이었다.
“게다가 훨씬 늙어 보입니다.”
“이쪽이 말발이 먹혀 좋은데.”
“……누가 감히, 각하의 말씀을 허투루 듣습니까?”
제이의 목소리가 짐짓 진지해졌다. 외모와 관계없이 스테이턴 공작, 루크의 말은 절대적이어야만 했다. 설령 그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그 어떤 사람도 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색하고 으르렁거리는 제이를 보며 루크는 피식 웃었다.
“됐다, 넘어가. 그리고 또?”
“선물이죠. 꽃이나 보석이나…….”
제이의 경험도 얕은 바닥을 드러냈다.
“일반적으로는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이건 제가 더 조사해보겠습니다.”
썩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머리 하나보다는 둘이 나았다. 혼자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을 때보다야 어떻게든 방향이라도 정해졌기 때문이다. 제이가 말했다.
“무엇보다 자주 찾아가서 얼굴을 보고,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안 되니 이러고 있는 것 아니야. 이제까지 뭘 들은 거냐?”
“저녁 식사를 하시죠.”
“아직 낮인데?”
“……저녁 식사에 공작 부인을 초대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만.”
“…….”
루크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벌써 식은땀이 나려고 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디아와 마주 앉는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전신이 긴장으로 굳는 것만 같았다.
“준비할까요?”
“……그래.”
“이발사도 불러 놓겠습니다. 아무나 부를 수야 없으니 일단 바로 알아보죠. ……각하?”
“…….”
루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이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루크를 보며 진심으로 경악했다.
겁먹었다. 전쟁터에 혼자 떨어진다고 해도 겁먹기는커녕 코웃음이나 칠 남자가, 고작 부인과 저녁 식사하기를 겁내는 것이다.
‘제일 실력 좋은 이발사를 알아보자…….’
곰도 사람으로 빚어낼 실력자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