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1. 시집을 오기는 왔는데
‘결혼 생활이란 게 다 이런 것일까?’
나디아는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하늘이 유독 푸르고 높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량한 하늘이었지만 그것을 보는 나디아의 속은 갑갑하기만 했다. 하늘을 조각낸 창틀이 감옥의 창살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실제로 나디아는 감금당한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극진하게 모셔지고 있었다. 먼저 그녀 평생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호화로운 방…… 가구나 장식품, 하다못해 이불과 베개조차 돈 냄새가 났다. 나디아는 떨떠름한 낯으로 제 손에 들린 천 조각을 쓰다듬었다. 이 천조각마저 그녀의 어머니가 아끼던 손수건보다 비싼 것 같았다.
나디아는 거북한 속을 감추고 흘긋 옆을 보았다.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서서 나디아가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는 시녀가…… 셋이나 있었다.
너무 극진해서 불편하다.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디아가 헛기침이라도 하면 따뜻한 물을 대령하고, 일어나기만 하면 부축할 듯이 손을 뻗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면 다 먹기도 힘들 만큼 엄청난 양의 간식을 가져다주었다. 말만 꺼내면 무엇이든 상상 그 이상의 결과가 돌아와서 나디아는 오히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 자수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그냥 시간을 죽일 거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자수가 취미인 그녀의 어머니가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할 이런 고급품 따위……. 무서워서 바늘을 한 번 찔러넣을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물러가 줄까?’
나디아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속이 따끔거리며 아팠다.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세요, 부인?”
“아니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디아는 화들짝 놀라서 붕붕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저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네….”
그냥 혼자 둬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디아는 속에 담은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배시시 웃었다. 조금 딱딱하지만 호의가 담긴 미소가 돌아왔다.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마음이 조금 덜 불편했을까? 나디아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태어나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던 터라 더욱 외롭고 쓸쓸했다. 결혼하면 예전처럼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했지만…… 이토록 멀리 와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나디아는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 바로 스테이턴 공작령에 왔다. 무려 보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고급 마차는 넓고 편안했지만 먼 여행은 처음이었던 나디아에게는 꽤 버거운 여정이었다. 덕분에 며칠을 앓아누웠고, 정신을 차리니 온전히 혼자 남았다.
열이 올라 앓던 밤, 나디아는 부끄럽지만 조금 울었다.
‘오빠가 알았다면 아직도 덜 자랐다며 한참 놀렸을 텐데….’
울었다 뿐인가, 첫날밤을 딸꾹질과 졸도로 장식했다는 걸 가족들이 안다면…. 나디아의 뺨이 붉게 타올랐다. 그건 아무도 몰라서 다행이었다.
이 얼마나 모욕적인 일인가? 첫날밤에 남편을 보고 기절을 해버리다니.
스테이턴 공작이 모욕을 당했다며 불같이 화를 내면 어떻게 하나. 나디아는 며칠을 혼자 끙끙거리며 걱정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걱정이 조금 남아있기는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차라리 스테이턴 공작이 화를 내서 이 결혼 자체가 무산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그러나 스테이턴 공작령에 오는 동안, 그리고 도착해서 한 달이 지나서도 나디아는 스테이턴 공작이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기….”
“예, 부인.”
무려 세 명이 동시에 대답을 했다. 부담스러워서 나디아는 조금 기가 죽었다. 그러나 이미 불러버렸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는 제게서 눈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나디아는 용기를 쥐어짰다. 결혼을 한 뒤로 매 순간 쥐어 짜낸 덕분에 이제 좀 익숙해진 거 같긴 했다.
“저, 그….”
“네.”
“공작 각하께서는….”
나디아는 말을 꺼낸 걸 후회했다. 그녀가 ‘공작 각하’라고 말을 하기 무섭게 시녀들의 눈빛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니, 아니에요….”
“지금이라면 집무실에 계실 겁니다만, 연락을 넣을까요?”
“네?!”
“부인께서 부르신다고….”
“아뇨!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러지 말아 주세요!”
나디아는 시녀의 소매를 붙잡고 절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감히 자신이 어떻게 공작을 오라, 가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잘못을 저지른 처지에 그런 건방진 짓을 할 용기는 없었다. 나디아에게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
너무 절박하게 매달렸기 때문인지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나디아는 시녀의 소매를 놓고서, 큼큼 헛기침을 했다.
“바, 바쁘신 거 같은데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 그럼, 산책을 좀 하고 싶은데….”
“외투를 준비하겠습니다.”
“부, 부탁할게요. 고마워요.”
나디아는 상냥해 보이길 바라며 생긋 웃었다. 흰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파르르 떨리는 입매만 아니면 퍽 보기 좋았다.
‘어떻게 만나. 무서워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나디아는 몇 번이나 되풀이 한지 모를 기억을 또 곱씹었다. 번쩍거리던 천둥, 선명해지던 윤곽, 덥수룩한 수염과 매서운 눈빛. 침착을 되찾고 생각해보니 그는 사람인 것 같긴 했다. 그야 사람이겠지. 사람 잡아먹는 야수였으면 졸도했던 첫날밤 자신은 이미 그의 뱃속에 들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모욕을 주었는데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디아의 생각보다 그는 자비로운 사람일지 몰랐다. 생긴 것만, 외모만, 무서운 것일지도 모르고…….
모든 건 만나야 확실히 알 수 있는데도 나디아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쥐어짠 용기는 말 한마디 할 정도는 되었어도 스스로 야수 앞에 걸어갈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건 평생 가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결혼을 했으니 평생 피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싶었다.
손대기도 무서운 호화로운 방, 극진해서 부담스러운 시녀들….
결혼식 이후에 무려 한 달 반이나 지나는 동안 그림자도 볼 수 없는 남편까지.
‘대체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스테이턴 공작은 왜 하필 자신과 결혼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결혼하여 스테이턴 공작이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답을 고민하며 나디아는 배를 끌어안았다. 속이 따끔거렸다.
*
“각하.”
“왜.”
스테이턴 공작, 루크 리처드 스테이턴은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계속 이대로 계실 겁니까?”
“뭘.”
보좌관 제이가 무엇을 묻는지 뻔히 알면서, 루크는 모르는 척 대답했다.
“각하답지 않으십니다.”
나다운 게 뭔데, 라고 사춘기 소년처럼 대꾸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루크는 벅벅 소리가 나도록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이리 신경질을 부리시느니 그냥 부딪쳐 보시는 게….”
“어떻게 그러나.”
“대체 왜 그러십니까. 저기압이신 각하 비위 맞추느라 죽어나는 저희 사정도 좀 헤아려 주십쇼!”
“지금 내가 너네 사정 생각하게 생겼냐!”
신부가 첫날밤에, 겁을 먹어 졸도를 했는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사정을 삼키며 루크는 쾅 소리가 나도록 책상을 내리쳤다.
벌써 한 달 반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부를 공작령으로 데려온 지도 한 달이 지난 것이다. 그러나 루크는 단 한 번도 신부를 만난 적이 없었다. 혹시 만날까 봐 기를 쓰고 피해 다녔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스테이턴 성은 크고 넓었으며, 신부는 한정된 공간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의 보좌관을 비롯해 성 안의 사람들이 슬슬 그들을 수상하게 여긴다는 점이었다.
물론 루크는 부하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평판 따위에 신경을 썼다면, 사교계에 그가 야수라느니 사람을 잡아먹는 살인마라느니 하는 소문은 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할 줄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입방아만 찧어대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 하나만의 문제라면 이번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테지만, 이 문제에는 신부의 명예도 얽혀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방치만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신부는 얼마나 모멸감을 느낄지….
그런 소문이 나지 않도록 이제 손을 써야 한다는 걸 알지만 루크는 도저히 신부를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얼굴을 본 것만으로 졸도해버린 신부다. 그런데 말을 걸면, 어떻게 반응을 할지….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가 올지도 몰랐다.
“대체 이럴 거면 왜 결혼을 하신 겁니까. 일 보러 간다고 수도에 가셔놓고는 갑자기 결혼까지 해버리셔서 저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놀라든 말든 알 바 아니다.”
“방치당하고 계신 공작 부인이 불쌍하지도 않으십….”
“닥쳐, 닥치고 꺼져.”
“아, 진짜! 신경질 좀 그만 부리시라고요!”
신경질이라도 부려야 속이 풀린다. 가장 답답한 건 루크 본인이었다.
“나도 알았냐고…. 이럴 줄….”
루크는 평생, 그 어떤 것에도 겁을 낸 적이 없었다. 대범하다거나 겁이 없다는 평을 들었지, 소심하고 겁이 많다는 평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돌아가신 그의 조부가 “겁대가리 상실한 망나니”라고 하셨겠는가. 하나뿐인 손자에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첫날밤에 겁을 먹고 졸도해버린 신부는 상처가 되었다.
이제껏 누군가에게 상냥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 없던 루크는, 저와는 다른 생물로 보이는 연약한 신부를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눈에 반해서 무작정 청혼하고 결혼까지 해치워버렸지만, 막상 그녀를 앞에 두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세상 다시 없는 멍청이가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그녀가 딸꾹질을 하며 어쩔 줄 몰라할 때 물이라도 한잔 내밀었다면, 자상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었다면…….
기절까지는 안 하지 않았을까.
루크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하얗게 질려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나디아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라고 나디아를 만나고 싶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무려 첫눈에 반한 상대인데 말이다.
이 성 안에 있다는 걸 아는데도 차마 갈 수 없는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제이.”
“예, 각하.”
루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존심을 접고 또 접어, 물었다.
“내가…….”
“……?”
“……그렇게 무섭나?”
“…….”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루크는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죽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