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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라는 공작에게 시집왔는데-1화 (1/150)

1화

Prologue

나디아는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꾹 감았다. 떨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사실 그녀는 기절하지 않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한계에 몰려 있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흔들렸다.

‘첫날밤에 기, 기절했다가는 모, 모, 모욕을 주었다고 우리 가족에게 어떤 보복을 할지…….’

생각할수록 더 기절하고 싶었다. 나디아는 최대한 밝고 행복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진한 초콜릿이 흘러내리는 퐁당 쇼콜라, 갓 만들어 고소한 냄새가 나는 흰 빵, 바삭바삭한 쿠키 따위를…….

‘또 먹을 거만 생각하잖아!’

이러니 살이 찔 수밖에 없다. 나디아는 고개를 휘저었다. 단순한 고갯짓으로 달콤한 간식 생각은 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그러나 긴장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나디아는 지금 상황을 꼼꼼하게 되짚어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따지자면 그리 절망적인 상황도 아니었다.

한미한 남작 가문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공작 가문에 시집을 가는 것이니 말이다.

스테이턴 가문은 제국에 단 넷밖에 없는 공작 가문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가였다. 광활한 영지와 탄탄한 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황가와도 가까이 얽혀 있는 푸른 피.

영지는커녕 이름만 겨우 귀족 나부랭이인 랭커스터 남작 가문으로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가문인 것이다.

그러나 나디아는 이런 과분한 행운은 한순간도 바라지 않았다. 사실 랭커스터 가족들 전부 바라지 않았다.

‘대체 왜 스테이턴 공작 가문에서 나에게 청혼을 한 걸까.’

청혼을 받기 전이나 후, 결혼식을 올린 오늘까지도 나디아는 자신과 결혼할 남자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결혼식 때에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주변은 전혀 보지 못했다. 그녀는 넘어지지 않고 걷는 것만이 목표였다.

공작의 청혼을 감히 남작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적당한 핑곗거리라도 있으면 가져다 대었겠지만 나디아에게는 그 흔한 약혼자도 없었다.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청혼을 받아들인 후 오늘까지 랭커스터 가문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사실 다른 공작 가문이었다면 배짱을 부려 거절하려는 시늉이라도 해 봤을지 몰랐다. 나디아의 아버지인 랭커스터 남작은 비록 소심한 사람이었지만 늦게 낳은 막내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다.

그러나 감히 배짱을 부리기에는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스테이턴 공작은 사교계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를 둘러싸고 흉흉한 소문이 무성했다. 가장 유명한 소문은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야수라는 것이다.

키가 2미터가 넘는다느니, 털이 덥수룩한 고릴라라느니, 어린애를 잡아먹는다느니, 살육을 즐긴다느니…….

나디아도 소문을 많이 들었다. 혼담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준비하며 더 많은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반의 반의 반만 진실이라고 해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결혼식을 올릴 때 무서워도 볼 걸 그랬다. 나디아는 후회했다. 그래도 밝은 곳에서 확인을 해뒀다면 조금 나았을지 몰랐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디아는 용기를 낼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어두운 신방에서 홀로 기다리는 지금보다는 나았을 수도…….

‘아니야, 미리 봤으면 난 이미 기절했을지도 몰라…….’

나디아는 겸허히 인정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은 겁이 무척 많았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나디아는 화들짝 놀라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느끼기로는 땅에서 30센티는 뛰어오른 것 같았다.

저벅저벅.

묵직한 발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멈췄다. 뒤에 있다. 뒤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 나디아는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등 뒤에, 오늘 결혼을 한, 그녀의 남편이 서 있었다.

도망가봐야 소용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다.

나디아는 오늘 몇 번이나 거듭했던 말을 또 되뇌었다. 청혼을 거절하지 못했을 때부터 그녀는 이미 도망갈 곳이 없었다. 아무리 외면해 봐도 등 뒤의 남자가 바로 자신의 남편이었다. 죽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진실…….

기절하지 말자, 비명도 지르지 말자, 침착하자.

남편은 나디아를 재촉하지 않고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나디아는 병아리 눈물만 한 용기를 억지로 쥐어 짜내어 천천히 뒤를 돌았다.

“……!”

비명은 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나디아는 자신이 대견했다. 사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게 아니라 지르지 못한 것이었다는 건 묻어두기로 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숨도 멈췄다.

남자는 키가 컸다. 나디아가 고개를 꺾어야 겨우 그의 얼굴 부근에 닿을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창을 등지고 있어 나디아는 어렴풋한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디아는 커다란 눈을 깜박거렸다. 그가 제 답답한 행동을 참아 주어서 다행이었다. 지금 그가 제게 말이라도 건다면, 과장을 보태지 않고 그녀는 이 자리에서 1미터 정도는 뛰어오를 자신이 있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어둠에 익숙해진 나디아의 눈에 남자의 모습이 조금 더 자세히 보였다.

소문에 뭐라고 했더라? 2미터가 넘는 키에 털이 덥수룩하게 난 야수…….

쿠르릉, 번쩍!

때마침 번개가 번쩍거리며 방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야, 야, 야수야!’

검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덮힌 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키와 단단하고 두꺼운 골격, 날카롭게 찢어져 매서운 눈매가 더해져 위압감이 배가되었다. 나디아는 이번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있었지만,

“딸꾹!”

딸꾹질은 참지 못했다. 나디아는 재빨리 제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니가 강조하신 숙녀다운 몸가짐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남자가, 아니 야수가, 아니 남편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됐다.

나디아의 하얀 뺨이 안쓰러울 만큼 붉게 물들었다. 커다란 녹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멈춰야 했다. 그냥 실수라고, 숨을 잘못 쉰 거라고 변명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녀의 몸은 필사적인 주인의 뜻을 몰라줬다.

“딸, 딸꾹!”

딸꾹, 딸꾹!

멈추려고 할수록 딸꾹질 소리만 커졌다. 나디아는 차마 위를 올려다보지 못했다. 보지 않아도 남자의 시선이 제 얼굴 위로 떨어지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딸꾹질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더라. 나디아의 어머니는 코를 막고 물을 마시라고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물도 없고, 당장 남자 앞에서 코를 막고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딸꾹, 딸꾹, 딸꾹!

‘멈춰, 제발…….’

왜 몸뚱이는 주인 말을 들어주질 않을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나디아에게는 더욱 압박으로 다가왔다.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첫날밤에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딸꾹질부터 하는 부인이라니 말이다.

‘감히 내 얼굴을 보고 딸꾹질을 해?’라며 뺨이라도 때리면 어떻게 하지. 화가 나서 이런 딸을 시집보낸 부모님을 해코지할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니면…….

무성한 소문 가운데 벌써 둘이나 진실로 판명이 되었다. 그는 거인처럼 큰 키의 소유자였고, 털은 몰라도 수염은 덥수룩했다. 언뜻 번갯불에 비친 얼굴은 무섭고 야수 같았다. 부모님은 야수의 손에 죽을지도 몰라, 내가 첫날밤에, 딸꾹질하는 바람에…….

용기를 내서 눈을 들어 올리자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계속 나디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

“…….”

남자의 눈길이 따갑게 쏟아졌다.

‘도망가고 싶어……. 그리고 무서워…….’

나디아는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딸꾹질을 멈추려고 입을 틀어막아 숨이 모자랐고, 무엇보다 이 순간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다.

꼬르륵.

첫날밤, 나디아는 두려움과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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