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EP.7 투명인간은 울부짖었다
#006화. 투명인간은 울부짖었다.
류헤이 고교 앞, 바람결에 흩날리는 벚꽃과 함께 길을 걷는 여자들의 치마도 흩날렸다.
따뜻해진 봄 날씨라 얇아진 천들이 유려한 몸 위로 달라붙어, 그녀들의 몸의 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어머! 바람이 많이 부네, 이럴 줄 알았으면 속바지라도 입고 오는 건데.”
“그런데, 자기. 속옷이 너무 과감한 거 아니야?”
부드러운 니트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흰색의 주름치마를 입은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아직 신혼이잖아.”
“부러워라, 뜨거워 정말?”
이런 게 아줌마력이라는 걸까. 새신부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스러운 신랑을 자랑하기 바빴다.
이미 등교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학교 앞의 도로는 한적했고, 지나가는 사람 또한 없었다.
덕분에 새신부의 레이스가 달린 도발적인 속옷을 그녀들밖에 보지 못했다는 게 그들의 대범함에 한목 더했다.
물론 그들만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크크크크-”
낮게 깔린, 악당에 걸맞은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이름은 토메이.
“잠깐, 무슨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응? 아무도 없는데? 자기, 신혼이라고 너무 기 빨린 거 아니야? 기가 빨리면 귀신이 보기 쉽다는데.”
일순간 기가 다 빨려 손을 들 힘도 없다는 듯이, 낭창낭창하게 손을 휘저어대는 그녀, 그리고 은근히 기를 세워주는 그녀의 친구. 잘 짜인 연극을 보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 짓궂어. 나 귀신 무서워 하는 거 알면서. 그리고 우리 남편이 기가 빨렸으면 빨렸지 내가 왜 빨리니?”
“그래서, 이번에 남편이 월급 받은 거 왕창 뽑아서 온 거야?”
“우리 남편 장어 사.줘.야.지?♥ 그리고 오늘은 특별 세일을 하는 날이라구!”
“어머, 얼굴도 이쁜 기집애가 현모양처까지? 그래도 조심해 요즘 날치기가 그렇게 많대.”
뭐라할까.
감정 따위는 들어가지 않는 외교적 수사가 가득한 국가 간의 협상에서나 볼 것만 같은, 고도의 칭찬과 자랑의 릴레이.
토메이는 잠시 그 모습에 입맛을 다시다, 피곤한 그들의 말들을 피해 안락한 공간으로 돌아갔다.
‘아줌마치고는 속옷이 꽤 화려한데.’
정리하지 않아 지저분한 머리. 허벅지와 가슴에 난 털들에 흡사 유인원처럼 생긴 토메이는 알몸으로 그녀들의 치마를 들쳐 훔쳐보고 있었다.
자신과 같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은, 실패남. 그와 정반대되는 능력 있는 남자들이 채간 여자답게 엉덩이부터 일류급이었다.
‘남편이 왜 그렇게 기가 빨리는지 알겠어. 크크킄’
흉악한 말자지 끝에 맺힌 쿠퍼 액으로 새신부의 치마를 마음껏 더럽히던 그는 배알이 뒤틀리는 듯했다.
자신은 공립학교를 끝마치고, 진학에도 실패해 히키코모리 백수가 되어버렸는데. 저 여자의 남편이라는 자는 아름다운 외모에 다이너마이트같이 폭발적인 몸매의 여자와 매일 같이 섹스를 한다니!
‘불공평하다.’
저 여자의 남편이라는 자는 자신처럼 못생긴 외모도, 뚱뚱한 몸도, 빈약한 의지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화목한 가정에서 적당히 잘 태어난 덕분에, 남 못지않게 잘 살았을 뿐이겠지.
‘그렇게 다 가지고 태어났으면, 잠시 빌려 써도 억울하면 안 되지.’
딱 한 번만 쓰고 버릴 생각의 토메이였다. 다른 남자에게 닳도록 써진 중고녀 따위는 한 번 먹고 버리는 게 딱이었으니 말이다.
토메이가 아무리 정력에 자신이 있다 한들, 그가 일주일간 모아놓은 주머니를 쏟아부을 곳은 따로 있었다.
그곳은 바로.
얀치 마오━!
바로 그녀였다.
그가 이렇게 볼품없어진 것도, 사립학교 류헤이에서 떨어진 것도. 그리고 학창시절 내내 바퀴벌레처럼 숨어다니며, 투명인간처럼 지낸 것도 모두.
‘다 그 가루년 때문이야.’
사실 그도 자신이 한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호감 가지 않은 생김새를 가지고 태어났었다 해도, 그도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립 중학교에 올라가, 이미지를 바꿔 학교데뷔를 성공시키고 싶었던 토에이의 갈대 같은 의지를 곧바로 꺾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하하하하, 저것 봐봐. 존나 웃겨. 왠 병신이 호박에 줄 그어 놓으면, 수박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먹이사슬에 상위권에 있는, 권력의 상징인 맨 뒷자리에 앉은 갸루년의 한 마디에 그의 학창시절이 모조리 박살 나버렸다.
그 한 마디 이후.
그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렸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친해지려고 노력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 그와 같은 밑바닥과는 아무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 했었다.
‘내 학창시절을 망가트린 갸루년, 그리고 감히 날 떨어트린 류헤이 고교에 대한 복수!’
그것이 토메이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던 만화처럼, 볼품없던 자신은 사실 주인공이었던 것이었다. 마치 이세계에서 용사가 된 주인공들처럼!
물론 토메이는 용사 따위는 될 생각이 없었다.
이 힘을 얻은 뒤, 토메이의 머리를 감싼 것은 오직 복수뿐이었다.
‘나는 선택 받았어.’
그는 솥뚜껑 같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새신부의 엉덩이를 움켜쥐기 위해 뻗었다.
엄연히 범죄이지만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토메이는 그가 주인공이니 무엇이든지 해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먼저 이 불끈거리는 자지를 물로 조금 적셔도 괜찮을 것이다.
애를 쾌변 보듯이 낳을 것 같은 널찍한 엉덩이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을 때, 토메이의 뒤에서 자전거의 체인이 기어에 맞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해, 위험! 입학식 날부터 지각이라니! 완전히 망했다고!”
망했다는 말과 다르게 왠지 모르게 신나 보이는 듯한 말투. 거기에 목소리 속에는 불타오르는 ‘열정’이라는 게 느껴졌다.
입에 잘 구운 빵을 물고 자전거를 모는 류헤이의 학생.
토모에는 잠시 그를 보았다가, 무시한 뒤 그대로 새신부의 엉덩이를 더욱 억세게 꽉 쥐었다.
“꺅!”
갑작스러운 감촉에 놀란 그녀는 엉덩이를 감싸 쥐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띠링, 띠링
다급한 종소리.
“아, 비켜요, 위험해!”
붉은 머리의 학생이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를 피해 핸들을 틀다, 곧바로 중심을 잃고 쓸리듯이 넘어졌다.
치이익-
검은 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며 앞으로 향했다. 그 바퀴가 향하는 곳은 바로 멀뚱히 서 있던 그의 발목.
자전거의 바퀴가 그대로 토메이의 발목에 부딪혔다.
퍽━!
꽤 무거운 몸무게였지만, 건장한 남자의 무게와 자전거의 무게를 견딜 수는 없는 법. 그대로 밀려 나가듯이 쓰러진 토메이는 얼굴부터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쿠헤에엑!”
“어머, 괜찮니?”
“아, 네, 괜찮습니닷! 제가 지각을 해서요! 빨리 가 봐야 해서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구겨진 고구마같이 생겼던 얼굴에 붉은 줄이 그어진 토메이의 얼굴이 더욱 찌부러져만 갔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호쾌한 인상의 남자, 그리고 서로 괜찮다고 미루는 하하호호한 상황에 토에이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소외감을 느꼈다.
그가 입고 있는 사립고교 류헤이의 교복은 토메이의 어깨를 더욱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복수를 하기 전에 조금 가지고 놀아 줘야겠어.’
그는 자신이 저 중고녀의 우유 통을 가지고 논다면, 새신부가 그녀의 앞에 있는 학생의 뺨을 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추잡하게 웃어댔다.
천천히 봉긋한 가슴에 손을 올리는 토메이.
그런 그의 귀에 갑작스레 오토바이의 배기음이 들려왔다.
‘젠장! 이게 뭐야 또?’
가슴을 잡자마자 어느새 다가온 오토바이에 밀려, 토메이는 땅바닥에 볼품없이 나자빠졌다.
“아! 거기엔 우리 달링이 힘들게 일해서 번 월급이!”
가슴을 출렁거리며 제자리에서 뛰는 새신부가 애가 타는지 다리를 동동거려댔다.
“아, 더 늦으면 진짜 위험한데.....미카누나 한테도 혼날 거고, 그래도....그래, 나는 남자야.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남자다워야 해! 남자는 불의를 보고 물러서지 않아. 내 소중한 친구가 알려줬었으니까!”
그 모습을 본 붉은 머리의 열혈남아는 바로 앞의 교문과 그녀를 번갈아 보다, 한숨을 내쉬고는 곧바로 땅에 널브러져 있는 자전거를 들어 올렸다.
문제는 그 핸들이 세워지는 궤적에 토메이의 머리가 있었다는 점이 이겠다.
“쿠힉-!”
토메이는 다시 처참하게 땅바닥에 찌그러져 내렸다.
“아주머니. 걱정마세요! 제가 바로 찾아올 테니까!”
열혈남아는 곧바로 자전거에 올라탄 뒤,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동공에서 순간 불꽃이 솟아올랐다.
“남자는 열정, 남자는 의리, 남자는 정의!”
자전거의 바퀴가 보도블록에 맞물리며, 연기를 피워 올렸다. 순간 검은 고무에 불꽃에 올랐다 꺼진 것은 그 누구의 착각도 아니었다.
“오랴아아앗! 거기 기다려어어어━”
그 뒤를 따라 총총걸음으로 따라가는 유부녀들, 처량하게 남겨진 토메이는 털로 덥힌 엉덩이를 부들거리며 그들을 바라봤다.
“젠장, 이세상의 주인공인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다니. 젠장!”
곧바로 따라가 잘 빠진 엉덩이 사이로 그의 베르볼트 2세를 박아 메차쿠차 해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는 토메이였지만-.
우우웅━.
“히익-!”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 곧바로 손으로 머리를 덮고 덜덜 떨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뭐 이 정도쯤은 주인공에게 오는 시련이다. 젠장, 운 좋은 줄 알라고.”
그렇다.
토메이가 선택한 ‘투명인간’은 사실, 뺑소니와 각종 사고에서 굉장히 위험한 능력이었다.
그가 선택한 투명인간이다.
토메이는 악과 깡으로 흉터가 가득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교문으로 향했다.
왠지 그의 어깨가 조금은 의기소침해 보였다.
*
“이곳 반장이 누구지?”
선생의 말에 절도있게 일어난 반장이, 일자로 손을 뻗어 올렸다.
“저입니다. 선생님.”
-어머, 손드는 것도 잘생겼어.
-어떻게? 왜? 목소리도 좋아?
“흠흠, 조용-. 그래, 12 페이지 본문을 읽어보도록.”
“시, 너에게로 가는 길. 뜨거운 태양을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어느 수업시간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교실 안. 토메이는 봄바람을 맞으려 열려있는 문으로 손쉽게 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찾았다.’
얀치 마오였다. 역시, 언제나처럼, 맨 뒷자리 창가 옆. 서열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녀.
“낄낄낄, 드디어 복수의 시간인가….”
언제 의기소침해졌냐는 듯이 어깨를 곧바로 편 그는,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전능감에 휩싸였다.
교실의 가장 앞, 교탁 앞에서 팔을 좌우로 벌린 토메이는 불어오는 봄바람에 왠지 그의 무거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했다.
학교 안에서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던 마오. 흥미를 줄 가치도 없다는 그 차가운 눈빛.
스스로가 저 공중에 흩날리는 꽃가루와 먼지처럼 산산조각이 나 흩날려버린 자존감들!
토메이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작 그런 벌레보다 못한 놈한테, 따먹히면 어떤 기분이 들까?’
처음엔 이게 뭔지 두려워할 것이다. 귀신으로 착각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이 무슨 병에 걸렸을 거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지금껏 조교해 왔던 여자들과 정신없이 박혀, 자궁 안을 정액으로 가득 채워주다 보면, 그의 자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될 것이었다.
‘그다음에 내가 누군지 공개하는 거지.’
한낱 벌레라고 생각했던 남자한테, 따먹히고 애까지 생겨 버린다면?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토메이는 몰아치는 흥분에 콧김을 뿜으며, 마오에게 향했다.
“.....가슴 벅찬 열정을 끌어안고 벅차올라 외치고 싶어”
‘그것보다 이 새끼 재수 없잖아.’
촌스러운 머리에 촌스러운 은색의 뿔테안경. 문제는 그 위로도 뚫고 나오는 잘생김.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토메이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그를 지나쳤다.
어차피 복수에 성공하면 불태워 버릴 학교였다.
복수에 눈이 멀어 마오에게만 시선이 고정된 토메이가 보지 못한 게 있었다. 그가 지나칠 때, 그의 뒤통수를 따라오는 검푸른 눈동자를.
촌스러운 은색의 안경이 봄볕에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