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읍토미. 라 세상 속에 들어와 버렸다-46화 (46/54)

19 EP.50 4885 너냐?.

#049화, 4885 너냐?.

삐-, 삐-, 삐-

스으으으읍, 후우우우우

몸에 붙어 있는 스티커와 전깃줄을 통해 전해진 심장박동의 정보가 기계음으로 변해 하얀 커튼에 부딪혀댔다.

코에 들어간 관과 입에 쓰여있는 호흡기.

알싸한 알코올 향과 왠지 기분 나쁜 약 냄새들을 저 호흡기 때문에 맡지 못해 다행이었다.

공기가 차 있는 투명한 원통의 관 안의 펌프가 눌러질 때마다, 환자의 몸 위로 덮여 있는 흰색의 이불보가 솟아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밖에 없는 천장에 빛이 새어 들어온다.

“타, 타케시!”

커튼을 걷은 미카의 눈에 타케시가 들어왔다. 온몸에 붕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의 타케시. 붕대에 가려져 있지 않은 것은 고작 붕대 사이로 튀어나온 머리카락일 뿐.

그녀의 뒤에서 서 있는 마오와 츠우미는 그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곧바로 뒤따라 들어오는 타케시의 여동생.

타케시와 똑 닮은 붉은 머리에 트윈테일을 한 그녀가 미카의 바로 옆에가 아픈 타케시에게 안기지는 못하고 그저 울음만을 터트려대고 있었다.

병실 안을 가득 채우는 울음소리.

그 처연한 모습에 츠우미의 눈에도 살짝 눈물이 고여왔다.

목 놓아 운다는 것을 보여준 둘, 미카는 쓰러질 것만 같은 타케시의 동생을 부축해준 뒤.

그녀라도 정신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입술을 물었다.

“모모, 어머님한테는 전화했어?”

“흐으윽, 오빠아아아아!”

눈물을 흘리며, 손으로 마구 눈을 비비던 모모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미카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붙잡고, 병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벽에 붙어 있는 마오와 츠우미.

미카는 그녀들을 보며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 타케시 친구들이지?”

“네.....”

“어떻게 된.....일이야?”

생각하기도 끔찍하다는 듯이, 두 눈을 감고 손이 새하얘질 정도로 잡고 있는 츠우미를 대신해, 마오가 한 발 나와 섰다.

“그 류 집에서, 공부하고 나오는 중이었는데. 타케시가 훈련을 해야 한다고…. 보행등이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앞으로 튀어나갔어요.”

미카는 그녀의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안전하게 길을 건너지 않은 타케시에 대한 원망과 안타까움이 그녀의 배 속에서 뒤섞여 그녀를 더부룩하게 만들었다.

“근데, 그 차는 멈추기 충분한 거리에 있었어요! 타케시도 뛰기 전에 차가 멀리 있는지 확인을 하고 뛴 건데, 그 차가! 브레이크도 안 잡고 그대로 타케시를….”

으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미카는 가슴팍을 틀어쥐었다.

“경찰서에는 신고를 다 했어?”

“네, 조금 전에 경찰도 왔다 갔었어요.”

“차는, 차는 무슨 차였는데?”

“하얀색의 미니버스 같은 차였는데, 차 번호는 4885요.”

“4885....그런데, 류는 어디 있는 거야?”

미카는 병실로 들어오면서, 류를 본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했는데....”

“그, 그, 류는 항, 항상 10시 정각에 잠이 들어서.”

그 말에 휴대폰을 쥐고 있는 미카의 손이 얕게 떨려갔다. 속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분노가, 괜히 류에게 향했다. 화풀이인 것을 알지만 그녀는 내심 속상함을 감출 수 없었다.

친구의 집에 남자답게 교과서를 수양하러 간다고, 들떠 하던 타케시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더.

“그래...알겠어. 그럼 나는 타케시 어머님에게 전화를 해볼 테니까.”

미카는 현재 야간근무 중일 타케시의 어머님을 생각하며 침울하게 병실 밖을 걸어나갔다.

닫힌 문을 바라보는 츠우미는 타케시를 바라보다, 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류가 타케시를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기에.

뒤늦게라도 류가 문자를 읽고 병실로 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이 정말로 통했는지. 문에 조그맣게 나 있는 반투명의 유리창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드르륵

*

미닫이문을 열고.

나는 쉬지 않고 달려와 턱 끝까지 올라온 숨을 다스리며 얼른 질문을 던졌다.

“아직,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다고요?”

나는 침대 위에서 누워있는 키코를 보며 말했다.

호흡기를 차고 기계의 도움을 받아 호흡을 하는 키코의 모습.

“응, 쟤도 약물을 너무 과다 복용을 했더라고, 그래도 그 전의 아스카 만큼은 약물을 과용하지 않았으니 일주일 정도면 깰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지금은 일부러 깨우지 않는 거에 가까워. 이 상태로 깨버리면 금단증상 때문에 백치가 되어버릴 수도 있어.”

“그렇군요.”

정말, 힘겹게 구해온 증인인데 일주일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니. 아쉽게 되었다.

얼른 꼬리를 잡아야 할텐데.

여태껏 뒷골목의 그리고 악의 조직들을 만나본 결과.

놈들의 민첩함이 바퀴벌레 저리 가라 할 정도라, 자칫 잘못하면 꼬리를 끊고 숨어버릴 수도 있었다.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지금 당장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면, 일단은 그 끄나풀이라도 잡아. 바짓가랑이를 붙들어 매야겠지.

“후욱-, 후욱-. 류 너무 빠르다.”

내 뒤를 따라 시라베 선배가 엉덩이를 잡으며 왔다. 어쩜 숨을 쉬는 것도 무표정인지.

엉덩이를 잡고 있는 것은 마하 3의 속도로 총알 대신 괘씸죄로 남모르게 내가 한 대 쳐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엉덩이에 박혀있는 붉은색의 내 손자국을 보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일단 먼저....’

“시라베 선배, 녹화는 전부 다 잘 되어있죠?”

“응-. 조사의 기본은 기록. 철저히 해놨어. 근데 그 회의실에 들어간 우리 스파이더 로봇이 망가지는 바람에, 데이터를 똑바로 못 받아서 그 부분은 날아갔어.”

“그렇습니까. 그럼, 먼저 제가 키코에게 약을 사는 장면이랑, 약이 보관되어있던 창고 부분만 따로 빼서 편집해주시겠어요?”

“응-.”

도도도도, 걸어가 책상 위에 단말기를 올린 그녀가 자신이 할 일을 시작했다.

허리를 옆으로 틀어, 살짝 엉덩이 한 짝을 들고 있는 게 아직 엉덩이가 아린 모양새였다.

시라베 선배에게는 합당한 벌을 줬으니-.

“리카 선생님?”

나는 자신이 그동안 해 온, 연구를 정리하며 뽑은 피를 조사하고 있는 리사 선생님을 불렀다.

내 목소리가 진지한 게 심상치 않아서 그런가.

리카 선생님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 표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떨려가는 그녀의 두 동공.

“제가 건네준 실험체들 말입니다.”

“응....실험체들이 왜?”

“대체 어떤 식으로 처리를 해 온 거죠?”

내 질문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고는 리카 선생님이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부각하듯 허리를 숙였다.

“하, 난 또 뭐라고. 내 난자랑 류 정액이랑 유전적으로 얼마나 궁합이 맞는지 실험한 거 걸린 줄 알았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손날을 세워, 리카 선생님의 머리를 툭하고 쳤다.

“아얏!”

“제발, 그런 거 연구하지 말라 하지 않았습니까?”

뭐, 어쨌든 클론 같은 거는 만들지 않았으니, 넘어갈 수는 있었다.

“그냥, 현미경으로 류 정자를 살펴보는데, 정자도 안경을 끼고 있는 거야! 그래서 흥미가 돋는 바람에 이것저것 실험하다 보니.....아, 어쨌든. 실험체는 그냥 당연히 잘 쓴 뒤, 쓰레기장이나 폐기물 수거장에 버렸지.”

“예?”

“응? 아...한 번씩 처치 곤란일 때는 그냥 길에 내버려 두고 오기는 했어...”

“아니, 지금까지 촉수 괴물이나, 초능력자, 그리고 범죄자들 모두요?”

“응, 그런데 왜? 뭐, 그래도 내 실험체들이었는데. 죽일 수는 없잖아.....”

“하….”

그녀의 말대로 나 또한 죽이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적어도 폐쇄 병동에 집어넣는다던가, 아니면 시험관에 보관해 격리할 생각은 하지 못한 건가?

“아닙니다. 정말. 다음부터 제가 실험체를 전해주면 적어도 시험관에 집어넣던지, 격리를 해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세요. 범죄자들 아닙니까?”

“아, 그렇구나. 그치만 연구하는데 새로운 기계도 많이 들여와야 하고, 공간이 항상 부족하단 말이야.”

“그럼 다시는 실험체 없습니다.”

내가 안경을 고쳐매고 호언장담을 하니, 리카 선생님이 목울대를 꿀걱 삼키며 고개를 끄덕여 왔다.

“알겠어. 또 비밀기지를 만들어야 겠네.”

“그리고 지금까지 실험을 한 사람들 목록 좀 정리해서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아무렇게나 산처럼 쌓인 서류 뭉치를 바라본 리카 선생님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천재라서, 어디 있는지는 다 아는데.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내일 줄게 류.”

“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도도도-

“류, 여기 파일 정리해 놨어.”

나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시라베 선배에게 유에스비를 받아 챙기고는 바지에서 바늘과 실을 꺼냈다.

오의 바느질의 술.

안 쓰는 거로 보이는 이불보를 빠르게 재단해, 위에 걸칠 티셔츠를 만든다.

적당히 평범한 티셔츠로 보이자, 나는 옷을 챙기고. 리카 선생님에게 내 휴대폰을 건네줬다.

“선생님, 휴대폰이 망가져서 그런데 고쳐주실 수 있을까요?”

액정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는 휴대폰.

3층 높이에서 착지한 뒤, 구르다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맨입으로?”

리카 선생님이 가슴골이 지갑이라도 되는지 골을 벌리며 깊숙한 가슴 사이를 보여주었다.

가슴골 사이에 들어있는 지갑과 차 키, 그리고 귀중품들.

“이번에 마법사를 잡아 올 거 같아요.”

“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라베 선배를 바라봤다.

“선배는 이제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집으로 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경찰서에 가볼 생각이에요.”

“흠, 경찰서 가는 거는 조사가 아니니까. 흥미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여 리카 선생님과 시라베 선배에게 인사를 한 뒤 양호실을 나섰다.

*

웅성웅성-

“어이?!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느그 서장이랑!”

“예, 예. 압니다, 알아요. 그러니 쫌 조용히 합시다.”

취객들과 어깨에 나 한주먹 합니다라는 뜻을 담은 문신을 한 야쿠자들이 앉아있는 곳.

늦은 밤이 오히려 더 바쁜 그곳 경찰서 안.

나는 천천히 내가 알던 형사에게 다가갔다.

갈색의 양복과 중절모를 쓰고, 시가를 문 채 온갖 폼을 다잡고 있는 형사.

강력반의 부장 셔르로쿠

이름부터 모, 유명한 탐정을 떠오르게 만드는 형사였다.

문제는 짝퉁같은 이름에 걸맞게, 그다지 능력이 있는 형사는 아니었다.

‘그래도 기본은 하니까, 말도 잘 듣고.’

“셔르로쿠 형사님, 오랜만입니다.”

나를 올려다보는 셔르로쿠가 입에 문 시가를 흔들어대며,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위아래로 흘겨보았다.

“누구?”

“접니다. 류.”

툭-

떨어지는 시가가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아, 뜨것!”

허벅지를 잽싸게 털어내다, 의자에 구멍을 내는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끈 셔르로쿠가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봤다.

“그 목소리, 너 진짜냐? 아니 사람이 이렇게 변해?”

그러면서 곧바로 커피를 타, 빈 의자를 끌고 내게 내미는 셔르로쿠. 역시 누구 덕에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는지 잘 아는 모양이었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나는 커피를 받아 들었다.

“옛날 생활은 청산하려 했는데, 과거가 제 바짓가랑이를 붙들더라고요.”

“옛날에 밤거리의 다크 나이트라 불리던 네가?”

그리고 나는 낯부끄러운 별명을 애써 무시하고 책상 위에 유에스비를 올려놨다.

“아부라야 유곽 아시죠?”

“어, 그 오늘 총격 사고가 난 곳?”

“네, 그곳에서 미약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더라고요. 이건 증거들이요. 그리고 총질한 놈의 얼굴도 찍혀있습니다.”

“알겠어. 그럼 이번에도?”

“네, 신상정보를 알게 되면 제게 넘겨주시는 조건으로.”

고개를 끄덕인 셔르로쿠가 유에스비를 얼른 품 안으로 챙겨넣었다.

“저, 외근 갔다 왔습니다!”

“어, 어.”

대충 손을 흔드는 셔르로쿠에 나는 기합 섞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선명한 붉은색의 머리를 가진 여경이었다.

타케시와 비슷한 머리색의.

‘녀석 내가 내준 숙제는 잘하고 있으려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아냐, 나야 뭐 항상 고맙지. 그리고 쉬지 말라고! 이 도시의 안전은 너한테 달려있으니까.”

살짝 길을 비켜주는 붉은 머리의 여경에게 감사하다 목례를 한 뒤, 나는 천천히 복도를 지나갔다.

“뭐? 지, 지금 어디라고?!”

놀란 듯한 여경의 목소리.

“얼마나 다친 거야! 어, 어. 어디 병원? 지금 바로 갈테니까. 저 부장님 제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해서요.”

“어, 어. 얼른 가봐.”

황급히 달려나가는 그녀를 위해, 이번에는 내가 길을 비켜주었다.

얕은 목례와 함께 여경의 두 눈에서 떨어진 눈물방울들이 내 옷에 흩날려와 묻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안 다쳤으면 좋겠네.’

나는 속으로 기도를 한 뒤,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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