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EP.5 험난한 학교생활.
#004화. 험난한 학교생활.
입학식이라 그런지, 교내로 향하는 길에 팸플릿들이 가득했다. 기다란 책상 위에 서 있는 선배들이, 자신의 동아리에 들어 와라고 이리저리 홍보를 해대는 것이 평범한 모습 같아 보기가 좋았다.
이 평범한 모습.
이것이 내가 이 류헤이 사립학교를 선택한 이유였다. 상위권인 성적으로 더 뛰어난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학교의 명성 따위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평범한 학생 생활이 가능한가?
그게 내가 학교를 고른 기준이었다.
이곳은 야애니 속의 세상. 그런 세상의 학교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엘리트만 가는 학교일수록 학생부나 외부인들의 힘이 강했고.
화장실에 오줌을 싸러 갔더니, 양변기에 여자가 묶인 채로 「육변기」라는 팻말이 적혀있을 수 있었다.
끔찍하고도 악랄한 범죄.
인권을 박탈하고 여자를 성노예로 만들어 버린 꼴을 보고 내가 참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말도 안 되는 성욕처리 당번 같은 것들이 있는 곳에서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 거로 생각지는 않는다.
내 부모님 시기에나 있던 물당번이 다른 의미의 물을 빼려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정말 심란하다.
다행히, 이 학교에는 입학 전, 성욕처리 당번이나 육변기 같은 것이 제공되는지 물었더니,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학교복지까지는 운영을 안 합니다’라는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딴 게 정말로 학교복지란 말이냐! 라고 소리 지르고 싶던 나였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 생각 있으면 우리 부에 들어와.”
왠지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맹해 보이는 인상. 대충 이세계는 가슴과 엉덩이가 저리 크면, 대개 맹하거나 멍청하다고 볼 수 있었다.
보라색 머리에 보라색 눈을 가진 그녀가 준 팸플릿을 들어 읽어봤다.
「탐정부」
‘무엇이든지 조사합니다!’
탐정부인가.... 왠지 내게 팸플릿을 전해주는 선배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무엇이든지 조사하다가 이리저리 각종 성희롱과 그렇고 그런 일을 당할 것 같은 얼굴이다.
탐정부라.....
어떤 부에 들어갈지는 천천히 결정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알아보아야 할 듯했다.
무슨 만화연구부, 사진부 이런 곳만 안 들어간다고 해도, 충분히 평범한 동아리 생활을 보낼 수 있을 듯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왠지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아 보이는, 맹한 탐정부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교내로 향했다.
*
교내도 나름 괜찮았다. 일본 애니에서나 볼 수 있던 신발장과 나름 깨끗한 학교의 모습.
쓰레기 하나 굴러가지 않는 모습이 이곳이 다른 세상이기는 해도, 일본만화에서 비롯된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혹시 끔찍한 육변기 같은 것들이 있나 싶어, 화장실을 기웃거려봐도 다행히 멀쩡한 양변기만 보였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살피다 들어온 나의 반. 나는 곧바로 의자에 앉아 들고 있는 가방을 책상 옆에 건 뒤, 책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공부는 예습이지.’
수업이 시작하기 10분 전에는 수업을 들을 준비를 모두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시작하는 수업의 진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진도는 필수.
전생에서도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공부를 했다면, 아마 서울대도 가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컨셉질로 얻은 게 있다면, 희생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하기 싫은 공부를 내 멋대로 하게 된다는 점. 이것이 이 안경남 컨셉의 부작용이었다.
‘아....그냥, 엎드려서 자고 싶다.’
엎드리려 해도 내 이 몸이 ‘어림도 없지!’를 외치며 억지로 몸을 고정해, 열심히 공부를 시켜댔다.
그렇게 얼마나 공부를 해댔을까, 드디어 선생이 들어왔다. 선생의 모습은 깐깐하게 생긴 배불뚝이 아저씨였다.
어깨에 노란색 완장을 차고 있는 것을 봐서, 선도부의 부장이거나 할 것이었다.
탁-
들고 있는 매를 교탁을 때리듯이 놓은 선생이, 뒤를 돌아 팔에 토시를 끼기 시작했다. 멜빵 바지에 토시 그리고 완장까지. 정말 완벽한 학생주임상의 이미지.
끼익, 끼이이익-!
기선 제압을 하고 싶은 듯, 선생은 소름 끼치는 칠판 소리를 내며 그어댔다.
“윽, 아 저거 왜 저래?”
“몰라 생긴 것도 기분 나쁘게 생겼어.”
높은 급의 학교가 아니라, 껌을 짝짝 씹어대는 갸루들도 이 학교에 있었다.
발목까지 내린 니삭스에, 못해도 3개는 푼 단추.
화려하게 한 염색 등등.
일본 내에서도, 이제는 갸루처럼 하고 다니는 여자가 없다는데, 오직 망가 속에서 만 살아남은 듯싶었다.
“내, 이름 마케다다. 앞으로 일 년 동안 너희들을 책임지게 될 담임이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반 전체를 살폈다.
“보아서 알겠지만, 나는 이 학교에서 선도부장을 맡고 있지. 내 반에서 감히, 교칙을 어기는 사람이 나오지를 않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나온다면? 곧바로 개.인.지.도를 받게 될테니 그렇게 알도록.”
개인지도라는 말을 뱉으며, 얼마나 콧김을 뱉어대는지. 맨 뒤 창가에 앉은 갸루들이 질색하는 소리를 내어댔다.
“그럼, 출석을 부르지. 미츠다?”
“네!”
:
:
그렇게 내 출석을 부르는 와중, 나는 비어있는 내 옆자리를 바라봤다. 입학실날 지각하는 것도 힘들 텐데 아마 새로운 학교에 오는 게 설레서 잠을 못 잤었나 싶었다.
“타케시? 타케시는 안 왔나?”
“네, 아직 안 온 거 같습니다.”
“쯧, 입학식 날부터 지각이라니. 타케시가 오면 곧바로 교무실로 오라 하도록. 그리고 류.”
내 이름과 함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네. 류입니다.”
출석부를 슬쩍 살피고 눈에 이채를 띈 채 나를 바라보는 마츠다 선생. 털이 숭숭 나 있는 손으로 턱을 만지 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이번 모의고사에서 일등인 학생이라는 거지. 좋아. 그럼 오늘부터 네가 반장이다.”
반장이라, 나쁘지 않았다. 이 반장직을 하는 것도 나중에 취업할 때, 분명히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반장을 정하는 건 투표로 할 줄 알았는데…….
‘전부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뭘 알고 투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관없나.’
“네, 감사합니다.”
“그래, 열심히 하라고. 그건 그렇고 부반장도 뽑아야 할 텐데, 지원할 사람?”
나는 마케다의 시선과 함께 반 안을 살폈다.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확실히 내신에도 상관없는 부반장같이 귀찮은 걸 할 사람은 없나 생각하는 와중, 누군가 손을 들며 일어났다.
“부, 부부 반장 제가 하겠습니다앗!”
‘쟤는?’
*
원래 존재감이 투명인간급으로 없던, 츠우미. 그녀는 책상에 앉아 반 안에 들어오는 반 친구들을 바라보다. 익숙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히익!”
깔끔한 2대 8머리에 로봇 같은 움직임의 류. 그녀는 잠시 그의 날카로운 턱선에 넋을 놓았다가 아직도 축축하고 약간은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치마에 곧바로 머리를 책상 위로 엎드렸다.
쿵
‘못 봤겠지? 못 봤을 거야. 어떡해! 그런 꼴을 봤으니 분명히 경멸할 거야. 경멸할 거라고!’
츠우미는 귀까지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제 얼굴을 소매에 비벼대며 류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얼굴이 더 시뻘겋게 달아오른 츠우미. 그녀는 자신의 엉덩이를 쥔 그의 커다란 손의 감각을 떠올렸다.
‘@#@#[email protected]#@##@@’
그녀의 머리에서 온갖 감정과 생각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기분 좋았지부터 시작해, 아무리 치한을 당해서 절정 직전까지 갔었다고 해도, 고작 엉덩이 한 번 쥐어졌다고 조수를 뿌리며 가버린 자신에 대한 자책.
혹시나 그가 자신의 백마탄 왕자님이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 등등.
그렇게 어지러운 머리에 눈이 핑핑 돌아대는 츠우미의 귓속에 여자애들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쟤 류? 진짜 잘생겼지 않아?”
“응, 머리는 너무 2대 8로 해서 조금 촌스러운데, 피부 하얀 거 봐……. 턱선이랑 목선도, 하.....이 학교 오길 잘한 거 같아. 정말로.”
류를 칭찬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츠우미의 기분도 좋아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칭찬을 듣는 데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류가 츠우미를 구해줬을 때부터 그는 그녀의 아이돌이었다.
귀를 쫑긋거리며, 여자들의 수다를 듣던 와중.
츠우미는 류가 이 반에 반장이 되었다는 걸 듣게 되었다.
‘류가 반장이 되면....나 같은 애한테도 신경 써주고, 말도 걸어주겠지?’
류 같이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는 사람이 반장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잘생긴 줄로만 알았는데,
뛰어난 머리까지!
호감이 끝없이 쌓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원할 사람?”
부반장에 지원한다면, 류와 좀 더 친해질 수 있겠지? 같이 서류를 옮기다가, 놓쳐버린 서류를 함께 줍다가 갑자기 손이 얽히고, 그리고 두 눈을 마주 보는 거야. 그리고 천천히 류의 입술이!
통, 통, 통, 통
책상 위에서 날뛰어대는 츠우미의 다리. 좋아 죽어가는 다리인데도, 그녀는 차마 부반장에 지원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 같은 애가 어떻게 부반장을 해....’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녀였다. 그런 츠우미가 어떻게 반 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손을 들고 부반장에 지원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무리야...무리....’
울적해진 기분에, 더는 뛰지 않는 허벅지에 손을 올린 츠우미의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바로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평범한 여자애들의 말투와 다른, 왠지 모르게 끈적하며 중저음의 양아치 말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쟤 먹음직스럽지 않아?”
“그러게 엉덩이 쫌 봐, 화난 것처럼 솟아 있는데?”
“딱 봐도 동정 같은데, 내가 부반장 돼서 동정 맛 좀 볼까. 츄릅.”
안 돼!
츠우미는 속에서 비명을 질러 댔다. 저런 질 안 좋은 여자들이 류에게 접근한다고?
그녀의 머릿속에서 갸루들 속에 둘러싸여, 팔목이 묶인 채, 동정을 강탈당하는 류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쥬륵
저절로 흘러내리는 코피. 속으로 그것도...좋은데? 라 생각했던 츠우미였지만, 빠르게 고개를 흔들어 그 상상을 날려버렸다.
“내가 지켜줘야 해.”
그녀를 한 번 지켜줬었던 류였다. 츠우미는 이번이 자신의 차례라 생각했다. 첫눈에 반한 왕자님을 엉덩이 가벼운 저런 걸레들한테 빼았길까 보냐!
속으로 외치며 츠우미는 곧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부, 부부 반장 제가 하겠습니다앗!”
츠우미는 말을 외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왜냐면 그녀가 반 안의 친구들이 모조리 그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정도의 시선을 동시에 받은 적이 없었다.
‘다들, 날 보고 있어....’
“그래, 이름이...츠우미? 앞으로 네가 부반장이다.”
마케다가 무어라 말을 했지만, 츠우미는 그 말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얼굴의 얇은 피부로도 그녀의 심장박동이 전해졌다.
‘류가, 류가 날 바라보고 있어.’
푸른 빛이 섞인 날카로운 검은 눈.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수 많은 시선들.
츠우미는 눈앞이 껌껌해졌다. 그녀의 눈앞에는 마치 검은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져 오로지 흰색의 눈만이 그녀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림자가 미소를 짓는다, 분명히 그녀, 자신을 비웃는 게 분명했다. 기분 나쁜 조소들이 그녀를 향한다.
츠우미는 어렸을 적 기억이 그들에게 덮여가는 것을 느꼈다.
-킥킥킥, 저것 봐 돼지년.
-으, 냄새날 것 같아.
-젖통이 크면 우유 나온다는데, 한 번 짜볼까?
깔깔깔깔깔━
‘이건....더는 무, 무리...’
툭
츠우미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류, 부반장을 양호실로 데려가도록.”
“네, 선생님.”
*
등 뒤에 업힌 츠우미를 고쳐 엎은 채, 양호실로 향했다.
‘젠장.’
왠지 이 여자와 얽히면 피곤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