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읍토미. 라 세상 속에 들어와 버렸다-20화 (20/54)

19 EP.27 각자의 목표

#026화. 각자의 목표.

아직 해가 산에 겨우 걸려있는 이른 아침.

류헤이 사립학교의 주짓수부에서는 남녀의 기합 소리가 한참이었다. 서로 도복을 잡고, 기술을 연마하는 그들은 땀을 뻘뻘 흘러 대며 서로의 빈틈을 노려댔다.

“미카 누나, 어때 나 많이 늘었지?”

남색 머리에 푸른 도복, 짧은 단발에 구릿빛으로 타 있는 피부. 열린 도복에 아래, 스포츠 브래지어 탓에 볼록 튀어난 앞가슴으로 타케시의 코를 막아 버렸다.

“대련하면서 여유 부릴 정도는 아니거든 타케시?”

막힌 코에 숨을 못 쉬어 바둥거리는 타케시는 손을 버둥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어깨 밑으로 손을 파고 넣은 미카.

그녀는 곧바로 가슴으로 타케시의 가슴과 목을 꾹 누른 채 사이를 잡아, 팔목을 땅바닥으로 내리눌렸다.

어깨를 파고 들어가 있던 팔이 자신의 팔목을 잡고-.

기술이 완성됐다.

기무라.

“크흑, 항, 항복.”

재빨리, 땅바닥을 여러 번 내려친 타케시는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외쳤다.

“가슴으로 숨을 못 쉬게 만들 다니, 그, 그건 비겁하다고 미카 누나!”

“참나, 이기려면 뭐든지 이용해야 하는 거야.”

타케시는 슬쩍, 다리를 꼬아 앉고는 무릎을 꿇고 도복을 정리하는 미카를 바라봤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그녀도 타케시와 같이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어있었다.

약간의 어색한 정적.

도복을 정리한 미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이번 주 지나고 모의고사 있는 건 알지? 운동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공부는 하고 있어?”

“하.하.하. 열정으로 부딪히면 어떻게든 되겠지!”

타케시는 또 잔소리가 시작된다는 걸 아는지, 슬그머니 일어나 문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기 시작했다.

“타케시! 너 성적도 안 되는데, 내가 겨우겨우 부탁해서 입학한 거 알잖아. 중간고사에서 낙제하면, 너 학교 짤릴 수도 있다고.”

“오늘은 류와 결투 날이잖아. 이런 중대한 결전의 날을 두고, 공부까지 할 수는….”

미카는 한숨을 푹 쉬고는 가방으로 가, 수건 두 개를 꺼내 들고 하나는 타케시에게 던졌다.

“그래서, 결국 안 했다는 거지?”

수건을 받은 타케시는 땀에 젖은 적발을 털며, 그저 웃어넘겼다. 웃는 얼굴에 차마 욕은 못하겠는 미카는 타는 속에 물병을 들어 물만 마셔댈 뿐이었다.

“앗! 시간이! 얼른, 열정적으로 교복으로 갈아입고 수업을 준비해야겠어!”

양팔과 다리가 함께 나가는 타케시를 바라본 그녀는 역시 타케시답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넘겼다.

“이렇게 도와줬으니까, 그 양아치 녀석 본때를 보여 줘라고!”

역시 뒤에서 나쁜 말도 못 하는 성격답게,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나가는 타케시의 모습을 본 미카는 괜스레 섭섭해졌다.

‘그딴 양아치 같은 놈이 뭐가 좋다고.’

갑자기 아무 말 없이, 더는 놀아줄 흥미가 없다는 듯이 류가 사라져 버린 뒤 타케시는 굉장히 힘들어했었다.

“줄 곳 옆에 함께 있었던 건, 그 녀석이 아니라 나인데.”

처음 만난 건, 타케시가 그녀가 가족 여행을 떠나 있을 때, 괴롭힘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여느 날과 같이 괴롭힌 녀석들을 혼내주러 갔을 때였다.

금발에 새까맣게 탄 피부.

그리고 비열하게 생긴 생김새.

그 녀석 옆에서 울고 있는 타케시를 보고 미카는 눈이 돌아갔었다.

골목 대장이라는 이름답게 곧바로 덤볐었던 미카였지만-.

결과는.

‘순식간에 제압당했었지.’

미카는 자신을 깔고 앉아, 음흉한 눈길로 자신을 훑어보던 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아지트에 있던 야한 책에서 나오는 눈길과 똑같았었다.

어린 나이라 성에 관한 지식이 없었음에도, 그녀의 몸을 노리는 시선임이 명확할 정도의 눈빛이었다.

‘그 녀석은 남자가 되기 위한 훈련이라 했지만.’

미카는 알았다. 훈련을 빙자한 괴롭힘이었다는 것을. 끝없이 타케시를 혹사 시키면서,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웃음과 온몸을 핥아대는 듯한 눈.

이러고도 알아서 몸을 바치지 않을 거냐는 사악한 의도.

무력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타케시를 그 녀석에게 떨어트려 놓으려 했던 미카였지만, 이미 그 녀석에게 흠뻑 빠진 타케시는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발만 동동 굴러대며,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

타케시의 동생, 모모가 타케시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나왔었다. 그리고 그 음흉한 시선이 모모의 몸을 핥은 뒤, 그녀를 바라봤을 때.

미카는 완전히 체념해 버렸었다.

모모에게까지 손을 대게 할 수는 없었기에, 미카는 결국 자신의 몸으로 만족하고 타케시와 모모는 제발 그 사악한 손아귀에서 풀어달라고 부탁하려 했었다.

‘그 녀석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면 말이야.’

얼핏 들리는 소문으로는 양아치답게 사람을 크게 상하게 만들었다고 들었었다.

어른을 한 명도 아닌 5명을. 촉법소년이라 처벌하지 못하고 풀려났다고 들은 뒤로는 다시는 그 얼굴을 볼 일이 없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같은 학교에 있다니….”

녀석도 많이 변했는지, 마치 모범생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미카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 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인 걸 알기에.

문제는 타케시였다.

그 녀석의 영향 때문인지, 타케시는 양아치 같은 녀석들을 항상 동경해왔다. 덕분에 꼬인 양아치들을 처리하는 건 미카의 일이었다.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에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무술, 주짓수를 배우지 않았다면 그녀도 양아치들에게 크게 당했을 것이었다.

‘이제는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는 일은 절대 없어. 내 소중한 사람은 내 손으로 지킬 테니까.’

도복을 벗은 뒤, 자신의 옷 칸에 집어넣은 미카는 옆 칸에 적혀있는 이름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긴타요」

기분 나쁠 정도로 옛날의 그 녀석과 닮은 모습이었다. 여자를 임신시킬 것처럼 훑어대는 눈빛까지.

‘타케시는 옛날의 류 같다면서 좋아하지만.’

오늘 미리 불러서 대련할 생각인 미카였다.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기절을 시킨다면, 한심한 양아치답게 더는 주짓수 부실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모습을 류에게 보여주면 경고의 의미도 되겠지.’

미카는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

“에, 얼른 들어가야지 이러다가, 종 치겠어! 아자 아자 아자!”

급하게 샤워를 하느라, 아직 머리가 덜 마른 머리로 물을 뿌려대며 달리는 타케시의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어! 츠우미. 좋은 아침!”

“응! 좋, 좋은 아침이야. 타케시.”

잠시 츠우미 옆으로 간 타케시는 제자리에서도 뜀박질을 멈추지 않으며 말을 걸었다.

“헛, 둘, 헛, 둘. 오, 츠우미 머리했구나! 잘 어울린다고!”

부담스럽게 눈앞까지 내밀어지는 엄지손가락에 츠우미는 순간 목을 움츠렸지만, 저런 열정 가득한 타케시의 모습은 익숙했었다.

그런 걱정 근심 없는 모습을 보니, 류에게 고백할 예정이라 새가슴처럼 움츠려진 츠우미의 가슴이 조금은 펴져 갔다.

“고마워, 타케시.”

“여! 그럼! 나는 얼른 교실로 가서! 수업 준비를 해야 하니까! 이만! 츠우미도 뛰는 게 좋아. 이제 곧 있으면 종이 친다고!”

거대한 가슴 때문에 뛸 수 없는 츠우미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 뿐이었다.

그녀도 뛰지는 못하지만, 걸음 속도를 빠르게 옮겼다.

짤그락, 짤그락

호주머니에 든 열쇠와 정조대가 부딪혀대, 츠우미가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열쇠를 빼려는데, 친구가 많아 보이는 타케시가 또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여, 타케시! 저 아리따운 아가씨는 네 친구야?”

“그렇지! 미안하지만, 지금 나는 바빠서, 부활동 시간에 보자고! 친구!”

인사를 나누는 그들을 바라보는 츠우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졸업앨범 속에서 봤던 옛날의 류의 모습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덩치도 엄청....크네.’

눈썹과 코에 뚤려있는 피어싱부터 시작해서, 화가 난 흉근으로 터질 거 같은 하얀 와이셔츠 속에 문신까지 비추는 듯했다.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

‘류가 저렇게 생긴 사람은 무조건 경계하라고 했으니까.’

츠우미는 슬쩍 눈을 내리깔고, 복도의 가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땅을 보고 걷던 츠우미의 눈에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걸음을 멈춘 츠우미의 눈에 남색의 교복바지가 들어왔다.

‘언제나, 당당하게. 겁먹지 말고.’

류가 해줬던 말을 기억하며, 눈을 부릅뜬 츠우미는 서서히 고개를 올렸다.

호주머니에 왠지 굵은 물병이 들어간 듯한 모양새. 와이셔츠 안에서도 선명하게 굴곡을 그리는 복근. 가슴팍의 문신과 얼굴을 뒤덮고 있는 피어싱.

“여어, 너 타케시 친구야? 너 좀 예쁘다?”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손을 보던 츠우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저, 저기 미안한데, 얼, 얼른 반에 들어가야 해서. 늦, 늦었어.”

“에이, 내민 손 민망하게,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야? 내 이름은 긴타요 너는?”

손을 갈무리한 긴타요는 민망한 척 우스꽝스럽게 웃더니, 츠우미를 내려다봤다.

“좀, 좀 지나갈게.”

“뭐, 그렇게 해. 이름이 츠우미네?”

츠우미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긴타요를 지나치려 하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눈으로 핥는 것 같아.’

황급히 손으로 가슴을 가린, 츠우미의 팔과 긴타요의 팔이 부딪혔다.

짤랑-

“응?”

츠우미의 눈에 뭔가 빠르게 움직인 거 같아, 긴타요를 바라봤지만, 이미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어깻죽지만 보일 뿐이었다.

‘뭐지?’

츠우미는 앞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정조대를 만져봤지만, 서늘한 쇠의 감촉만 느껴질 뿐.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한 츠우미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얼른 반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킥킥거리며 바라보는 긴타요.

“류, 이 새끼 재밌네, 자기 여자라고 정조대를 채워 둔 건가?”

눈 깜박할 사이에 보지를 슬쩍 만졌다가, 호주머니에 걸려있던 은색의 줄을 빼낸 긴타요는 목걸이를 눈앞에 흔들어댔다.

이미 류의 주변 인물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 보고 받은 긴타요였다.

다행히 목표물이 먹을만하게 생겼다는 것에 의의를 둔 그는 꽤 예쁘장하게 생긴 열쇠를 대충 호주머니에 쑤셔 박은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건들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쉽네, 아쉬워! 저렇게 먹음직스러운 여자를 그냥 놔두고 간다는 게. 운동녀보다는 저런 암퇘지가 내 취향인데. 쩝.”

안타깝게도, 첫 번째 타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 학교의 이사장 딸내미인 미카.

그리고 류의 친구의 소꿉친구인 여자.

‘학교 장악이고 나발이고, 오늘 다 끝날 건데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캬악- 퉤

긴타요는 복도에 대충 침을 내뱉었다.

“시발.”

일을 복잡하게 처리한다는 것은, 긴타요를 이곳으로 보낸 윗대가리들이 그를 믿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약해질 정도로, 약해진 류를 자신이 처리를 못 한다 생각하다니, 긴타요는 자존심이 상했다.

‘어쨌든, 오늘 드디어 부실로 온다라.’

너무나도 오랜 기다림이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쿄소 만지회가 한 사람의 손에 처참히 붕괴한 뒤, 긴타요는 이 시간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놈을 뛰어넘어 더 완벽한 금태양이 되기 위한 수련의 나날들.

꽈악-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손이 꽉 쥐어진다. 얼마나 힘을 세게 주었는지, 날카로운 열쇠에 배여 조금씩 피가 흘러나오는 손.

‘최고의 상태인 놈을 꺽지 못 하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낄낄낄

광대까지 찢겨 올라간 입꼬리에서 흘러나오는 웃음. 앞머리를 덮었던 금발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려 올라가고.

섬광을 내뿜는 듯한 눈동자, 광기가 드러났다.

“실망 시키지 말라고 류. 너무 약해져 버렸으면, 모르고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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