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읍토미. 라 세상 속에 들어와 버렸다-11화 (11/54)

19 EP.19 츠우미 교도일기

#018화, 츠우미 교도일기.

두쿵, 두쿵, 두쿵, 두쿵

습기가 가득 차 뿌연 창밖, 축축하고 불쾌한 날씨임에도 학생들은 학교를 마친 것만으로도 기쁜지 새처럼 지저귀고 있었다.

‘좋을 때지.....’

학교를 마치고 방금 막 깨어난 듯 지저귀는 학생들을 바라본 회사원 A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지금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오랜만의 정시 퇴근이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시내에서 살 수 없으니. 이 전철을 타고 끝으로 간 뒤, 다시 버스를 타야 했다.

그는 인생의 3분의 1을 이동에 쓰는 불쌍한 뚜벅이였으니 말이다.

‘지금 쉬어줘야 또 내일 출근하니까.’

전철에서 눈을 감으려 고개를 벽에 기대는 순간, 알맞게 알림음이 들려왔다.

-이번 역은 사쿠라, 사쿠라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 왼쪽….

학생들은 활기차게 문밖으로 나오고, 우중충한 날씨와 어울리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어깨가 처져 전철 안으로 들어온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회사원 A는 특이한 차림새의 사람이 눈에 띄었다.

‘지금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아닌데….’

분명히 우비를 쓰고 있는데, 그 우비가 처져있지 않고 양옆으로 펴져 있었다. 마치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것처럼.

멋들어지게 펴져 있는 우비 속에 이 근방의 학교 교복이 보였다.

터벅터벅

‘오타쿠 같은 친구인 건가?’

회사원 A는 자신의 앞에서 천장의 손잡이를 잡은, 학생을 슬쩍 올려 봤다.

앞머리까지 내려온, 우비 모자 때문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있었다.

뚝뚝

보이는 것은 조명 빛을 반사하는 은색의 안경뿐.

‘그건 그렇고 저기 우비 안은 뭘로 고정한 거지?’

작은 호기심이었다.

그도 한때는 오타쿠였으니 말이다, 슈퍼히어로들이 망토를 흩날리는 것을 멋있다 생각하는 그런 흔한 어린애였다.

그래서 회사원 A는 쉽게 그 히어로의 망토 같은 우비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응? 애기띠?’

그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코너 길에 접어든 전철. 사람들이 관성에 몸이 조금씩 기울었다.

뻑뻑한 만원 전철.

조금만 움직여도 서로 어깨를 부딪쳐 댔고, 당연히 우비를 입은 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 등 다 젖었잖아. 거기 학생. 전철에서 우비를 쓰고 있으면 안 되죠.”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흐잇!♡”

앞으로 살짝 밀렸다가, 곧바로 바른 자세로 선 학생.

‘흐잇?’

우비를 벗고 있는 학생을 살펴보던 회사원 A는 이상한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려 옆을 살폈다.

치한 같은 게 있나 궁금해서.

치한이 없는 걸 확인한 그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다시 우비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류, 미아내, 흐으읏, 못 참겠어어! 흐아아아-.”

푸슈슈슈숙-

“푸흡, 푸하.”

뿌려지는 분수를 정면으로 받은 회사원은 콧구멍과 입으로 들어가는, 물을 손으로 훑어 냈다.

“이게 무슨?”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앞을 본, 회사원의 눈에 보이는 흰 손수건. 그 팔을 따라 올라간 그의 시선이 류의 은색 안경에 닿았다.

“죄송합니다. 우비를 접다 물이 튀어서.”

우비를 접는데, 그렇게 강한 물싸대기를 날릴 수 있는지 의문인 그였지만 어쩌겠는가. 회사원 A의 눈에는 우비를 개어 팔에 건 학생밖에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 아. 아니야 괜찮네.”

그럼 그 달뜬 목소리는 뭐였는지 궁금한 회사원 A는 받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고 학생을 바라봤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학생이 통화하고 있었다.

“괜찮아. 츠우미. 이제는 한 번 만졌다고 가버리지 않잖아? 잘했어.”

“흐윽, 응...더 노력할게.....”

“아, 스피커폰으로 되어있었네. 조금 있다 얘기해.”

“응...”

‘만졌다고? 가버린다?’

회사원 A는 통화를 하는 학생을 바라봤다. 조금 특이한 학생으로 보였지만, 생긴 거는 그와 달리 빼어나게 생겼었다.

‘요즘 학생들은 과감하구나.’

회사원 A는 부러움에 입맛을 다시다, 왠지 그의 입안에 들어간 빗물이 달큼한 거 같았다.

킁킁

옷에 묻은 물 냄새를 맡던 그의 아랫도리가 왠지 모르게 묵직해졌다.

*

“흐잇, 흐엣, 흐앙♡”

한 발자국을 내밀 때마다, 신음을 내어대는 츠우미. 아기띠가 아니었다면 흐물흐물 녹아버린 그녀의 몸이 그대로 물웅덩이 가득한 도로로 흘러내려 빗물과 함께 고였을 것이었다.

“자, 이곳 맞지?”

저번에 함께 하교했을 때도 우리 집 아파트와 가까운 교차로까지 함께 걸어왔던 츠우미였다.

그래도 이 정도로 가까웠을지는 몰랐다. 집에서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보이는 주택촌이었다.

이 주택촌은 못해도 중상층은 되어야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츠우미?”

나는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츠우미를 내려다봤다. 얼마나 가 댔는지, 엉망진창인 츠우미.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게, 마약을 한 트럭은 한 얼굴 모양새였다.

‘확실히 그렇게 뿌려댔는데, 이 모양인 건 당연하지.’

이곳까지 오면서, 쉴 새 없이 분수를 뿌려대던 그녀였다. 이렇게 뿌려대다가는 말라 비틀어져 미라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역시 읍토미.

조루녀는 분수를 빗물처럼 뿌려댈 수 있었다.

“츠우미!”

“헤에에에, 으으응? 류?”

왠지 지적으로 퇴화한 것은 츠우미가 내 얼굴을 보며 헤벌쭉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 집 앞이야. 이제 들어가야지.”

“아, 집, 앞....”

나는 천천히 애기띠를 풀어 츠우미를 내려줬다. 나도 츠우미를 매고 오면서 상당히 힘들었다.

‘물론 몸이 아니라….’

벌거벗은 여자를 앞으로 메고 다니는 이상, 고자가 아닌 한 발기가 되는 게 당연했다.

거대한 양 엉덩이 살에 찌부러져, 핫도그 안의 소세지가 되어있었던 내 자지가 뻐근할 정도였다.

나는 살짝 땡기는 자지용 벨트를 조정하고 츠우미를 바라봤다.

느적느적, 애액이 말라붙어 허벅지 위로 설탕을 뿌려놓은 듯한 츠우미가 문 앞으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츠우미의 부모님은 얼마나 놀라실까?

애가 알몸으로 그것도 투명인간이 돼서 오다니.

이 읍토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기본적인 상식이 전생과 다르지 않았다.

만화 속에 주인공과 히로인을 제외한 이들은 대부분이 평범한 엑스트라. 특별한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했다.

물론, 나는 금태양이었던 탓에 변태적이고, 저런 투명인간 그리고 평범치 않은 것들에 익숙했지만, 그들은 마치 외계인을 본듯한 느낌일 수도 있었다.

“에....이러면, 안 되는데?”

“왜 그래?”

“그, 그게.....이게 인식이 안 돼.”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츠우미에게 다가가니, 전자식 도어락이 보였다.

설마....

“이거 혹시?”

“응.....지문 감지용이야.”

투명인간이라 지문 센서가 작동하지 않는 듯했다.

내 은색 안경이 비뚤게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

“네, 엄마. 괜찮아요.”

-츠우미! 다행이다. 엄마는 우리 딸이 친구가 없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오늘 친구 집에서 잔다니 감동이야!

“에, 아니에요.....엄마도 오늘 출장 잘 갔다 오세요.”

나는 부모님과 통화를 중인 츠우미를 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정말 나와 츠우미의 사이에서 흐르고 있는 클리세가 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투명인간이 되었다가, 약을 잊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집에 데려다주는 데, 그 친구의 부모님이 갑작스레 출장을 가 있다?

내가 이런 스토리의 야애니를 본 적이 있던가?

“류...통화는 끝냈어. 부모님들 전부 친구 집에서 자고 와도 된다고 허락 맡았어.”

“그래.....”

어쩔 수 없나.

비어있는 집, 나름 중상층 집이라. 창문을 깨고 들어간다거나 할 수도 없어 보였다.

집 문 옆에는 사설 경호업체 표지판이 감시하고 있다는 표지판이 걸려있었다.

그렇다고 어디 러브호텔이나 무인모텔에 츠우미를 데려가 재우기에는 마음이 걸렸다.

이 읍토미 세계에서 여자 혼자 모텔에서 잤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결국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갈 수밖에.

“저기…, 류. 나....기다리고 있는데.”

뭘?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발로 원을 그려대는 츠우미를 바라봤다. 손을 뻗어 슬쩍 애기띠를 붙잡아 살살 당기는 그녀.

아, 업히고 싶다는 말이구나.

나는 안경을 고쳐 쓰고, 츠우미를 들어 다시 아기띠를 메어 줬다. 온천에라도 들어왔는지, 츠우미는 ‘하아아아’ 소리를 내며 다시 녹아버렸다.

이게 제 자리라는 듯이, 내 자지 위로 엉덩이 사이의 빈공간을 매운 츠우미가 은근히 허리를 돌려댔다.

엉덩이 살이 내 골반과 아랫배에 맞게 일그러지는 모습. 날씨가 추울 법도 한데, 엉덩이는 새빨갛게 달아 올라와 있었다.

“츠우미, 엉덩이 돌리지 마.”

아기띠 밖으로 나온 다리를 통통거리며 휘두르던 츠우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건지 깨달은 듯 뒷목이 시뻘겋게 달아 올라왔다.

“앗! 아, 미안해, 류...친구집에서 자는 건, 처음이라. 너무 신나 버려서 그만. 흐읏.”

피슛-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짝 지려 버리는 츠우미,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것이었다.

나는 우산을 다시 쓴 뒤,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빗방울이 떨어져 우산 위를 때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기뻐 보이는 츠우미가 콧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류는....친구 집 많이 놀러 가봤지?”

“아니, 없어.”

내 말에 놀란 듯 츠우미는 고개를 뒤로 젖혀 나를 바라봤다.

“왜? 그게, 류는 나랑 다르게 인기도 많고……. 뭐든지 잘하고, 그리고 나랑은 다르게 전부 다 해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딱히, 나도 사는 게 바빠서, 친구를 사귈 새가 없었으니까.”

“아…, 열심히 살았구나.....”

투둑, 투둑, 툭

조금씩 짧아지는 빗소리, 저 멀리서부터 황금빛 노을이 올라오는 게, 이제 슬슬 비가 그칠 듯했다.

남자가 여자를 업고 우산을 쓰고 가다가, 비가 그친 뒤 햇빛이 든다.

전생에서 보던 럽코 애니에서 많이 보던 상황이었다.

‘나는 발가벗은 투명인간 여자를 앞으로 업고 걸어간다는 차이가 있지만.’

피슛-

아, 물론 매달아 놓은 여자가 세 걸음마다 가볍게 가버린다는 차이점도 있었다.

이제는 이 상태도 익숙해졌는지, 얼굴을 가리고 있지 않은 츠우미가 궁금한 게 있다는 듯이 눈을 깜박여댔다.

“왜, 그래?”

“그.....류는 여자친구 사귀어 본 적이 있어?”

여자친구라....

전생에서는, 학창시절에는 공부에, 대학교 때는 학점을 딴다고, 그리고 졸업을 한 뒤에는 취업준비를 한다고 방 안에서 펜대만 잡던 나라 여자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었다.

사실 시간의 문제보다는 자존감에 대한 문제였다.

이 상태로 취업을 한다고 해도, 집도 없는 내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내가 미래에 만난 여자친구를 만족 시켜줄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런 흔한 고민과 불안감.

그 고민들이 물질적인 것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순수한 이어짐에 관해 나를 집착하게 만든 것 같았다.

“없어.”

실실 미소를 흘려대는 츠우미가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내게 물었다.

“그럼.....여자친구 사귈 생각은 없는 거야?”

“아직은.”

이세계에서 여자친구라.

당연히 사귀고 싶었다.

사귄 뒤, 당연히 이것저것 모두 다 해보고 싶었다.

마음만 먹으면 전생에서 상상을 할 수도 없이 아름다운 여자들과 주지육림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이세계였다.

‘츠우미도, 전생에서는 내가 눈도 못 마주칠 미인이지.’

나라고 하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허리를 돌려대는 여자를 개처럼 눕혀 자궁에 내 정액이 가득 차도록 박아대고 싶다는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하면 거짓말이었다.

‘순애 태그.’

전생에서 본 읍토미의 수많은 동인지와 망가들. 그곳에서 순애물들을 보면 알겠지만, 순애물 속의 남주인공은 거의 다 동정이다.

NTR을 피하고자, 심기체가 완벽히 처녀인 여자와 첫 경험을 한다.

이게 내가 이 천박한 세상에서도 아직 동정인 이유였다.

*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끝없이 던져지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문 앞이었다.

나는 등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츠우미에게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검지를 입술에 붙이고는, 문을 열었다.

끼익-

“다녀왔습니다.”

“류! 어서 와!”

엉덩이에 개꼬리라도 단 것 같은 환상이 보일 정도로 나를 반기는 어머니.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 것도, 이렇게 현관문까지 달려와 반겨주는 것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를 보니 외로움에 개를 키울 일은 없어 보였다.

“아들, 집에 왔으니까. 엄마한테 뽀뽀.”

볼을 내민, 미도리에게 뽀뽀를 하니, 갑자기 어머니가 내 와이셔츠 목덜미를 붙잡아 당겨 코를 킁킁거려 댔다.

“류? 여자 생겼어?”

나는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슬쩍 어머니의 엉덩이를 흘겨봤다.

혹시 진짜 개꼬리가 달려있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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